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46
“젠장! 기분 더럽네! 이딴 시뮬레이션, 안 하고 말아. 어이, 다들 나가자고.”
접속을 끊으려는 사용자들이 속출했으나 누구 하나 빠져나가지 못했다.
“뭐, 뭐야?”
접속 종료 불가라는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한 그들은 비로소 공포를 느꼈다.
“키이이이이!”
박쥐를 닮은 크리처들이 고공 낙하를 하더니 사용자들을 덮쳐 물었다.
“으아아아! 이게 뭐야?”
-미확인 프로그램이 감지되었습니다.
인공지능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자 사용자들이 다른 사용자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 멍청아! 우리를 쏘면 어떡해!”
“전. 인. 류. 멸. 살.”
감염자들은 똑같은 소리를 내뱉었고, 도시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하이 기어의 종말을 어두운 공간에서 지켜보고 있는 넘버세븐은 심란했다.
“이제 만족하냐?”
오퍼레이터가 사랑했던 세계였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사춘기 소녀의 마음 따위, 알면서도 이용당해 준 거라고.”
앞으로 그녀는 현실을 살게 될 것이다.
‘좋겠네.’
가상의 세계에서 일어났던 활극은 잊고, 진짜 인간과 진심을 교환하게 될 것이다.
“쳇! 잘 살아라.”
사실은 그렇게 되기를 바랐지만, 어째서 마음은 이토록 허전한 것일까?
“넘버세븐!”
암흑 너머에서 소리가 들리더니 투명한 벽에 부딪힌 듯 전자기장이 퍼졌다.
운영자들이 침투하고 있었다.
“야! 너 무슨 짓이야? 빨리 이벤트 중단 안 시켜? 이러다 하이 기어가 종료된다고.”
“……호들갑은.”
넘버세븐은 전자기장의 파문이 일어나고 있는 가상의 벽을 돌아보았다.
“시뮬레이션 하나 끝나는 것뿐이야. 이거 하나 없어진다고 큰일도 아니잖아?”
“미쳤어? 우리가 여태까지 만든 세계란 말이야. 그걸 네 마음대로 부수겠다고?”
“우리가 만들어? 이 세계는 오퍼레이터밖에 만들 수 없어. 우리는 대체 가능하지만, 오퍼레이터는 아니란 말이야. 그런데 그만두겠다고 하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남아서 버티면…….”
“그게 싫다는 거야!”
넘버세븐이 소리쳤다.
“남기는 뭘 남아?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남아서 주인 떠난 집이나 지키는 개가 되라고? 난 싫어.”
그 순간 암흑의 공간을 찢고 막대 사탕을 든 꼬마 아이의 기체가 들어왔다.
“넘버세븐 형.”
“막대 사탕?”
방화벽에 막혀 움직일 수는 없지만 여기까지 침투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실력이었다.
“형, 할 얘기가 있어요. 잠시 바깥으로 나가는 신호를 차단해 줘요.”
“할 얘기 없어. 그리고 언제 봤다고 형이야? 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떻게 알지?”
“나, 오퍼레이터 누나 만난 적 있어요.”
신호가 차단되었다.
“뭐? 어디서?”
“현실에서요. 누나는 인플레이 하느라 바쁘니까 내가 찾아갔었거든요.”
넘버세븐에게는 오퍼레이터가 야훼2에게 키스를 한 것보다 충격적이었다.
“네가 왜?”
“그냥, 궁금해서요. 실제로 보고 싶다고 했더니 작업실로 찾아오라고 하던데요.”
넘버세븐도 궁금했다.
“어땠는데?”
“하하, 똑같아요. 까칠하고, 말수도 적고. 그래도 나쁜 성격은 아닌 것 같아요. 과자도 주고 그랬어요.”
어떤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올랐으나, 그렇다고 궁금증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밖에서 만나요, 형.”
넘버세븐은 말이 없었다.
“만나자고 그래요. 누나는 현실을 싫어하지만, 이곳의 인연까지 싫어하지는 않아요. 아마도 그래서 만나자고 했을 때 허락했을 거예요.”
“인연이라고?”
그것이 싫어서 도망친 세계가 아니던가.
“됐어. 내가 무슨 이유로 오퍼레이터를 만나? 어차피 여기서도 앙숙이었는데.”
“그때 누나가 형에 대해 말했는데.”
넘버세븐의 고개가 돌아갔다.
“나? 뭐래?”
“그냥 뭐…… 특별한 건 없어요. 말투도 거칠고, 만날 툴툴거려서 짜증 난다고.”
“…….”
넘버세븐의 실망감을 느낀 막대 사탕이 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실력은 최고래요. 형만큼 자신의 세계를 이해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하던데요.”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그만해요, 형. 굳이 파괴할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여기는 여기로 두고, 현실로 가요.”
그것 또한 너무나 무서운 말이었지만.
‘만나고 싶다.’
언더 코더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능가하는 프로그래머를 직접 보고 싶었다.
“하이 기어를 파괴하면 기회는 없어요. 누나에게 더 이상 상처를 주지 마요.”
“젠장!”
넘버세븐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
“도와줘. 서비스 종료를 염두에 두고 만든 거라 코드가 전부 엉켰거든.”
“헤헤, 그거야 제 전공이죠. 그 전에 이 방화벽부터…….”
그 순간, 넘버세븐이 갑자기 단말마를 내지르더니 땅으로 고꾸라졌다.
“형!”
그의 기체가 투명하게 사라지는 것을 본 막대 사탕은 침을 꿀꺽 삼켰다.
‘강제로 접속이 차단됐어.’
하이 기어는 여전히 멸망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깨웠습니다.
꼬마마녀는 통신을 받았다.
-일단 잡아 둬. 나중에 쓸모가 있을 테니까. 어디 부러뜨리거나 그러지는 말고.
넘버세븐이 혹시라도 마음을 바꾸기 전에 먼저 처리를 해 두는 게 수순이었다.
-알겠습니다.
통신을 끊은 우오린은 마틴 박사의 본체를 치받는 시로네를 눈에 담았다.
‘세계의 비밀?’
애초부터 그딴 건 관심이 없었다.
‘시로네, 난 너만 있으면 돼.’
하이 기어가 비정상적으로 종료되면 오퍼레이터는 좌절감을 느낄 것이다.
아포칼립스의 채굴이 유예되면 시로네는 결국 자신을 찾아오게 될 터였다.
‘페르미. 보통 놈이 아니야.’
뱀처럼 영악한 놈이 시로네를 향한 자신의 광기를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거래에 응한 건, 이 상황을 보는 관점이 나와 같기 때문. 다른 점이라면…….’
페르미는 시로네의 승리를 원한다.
-여황님.
다시 통신이 왔다.
“후후후.”
넘버세븐이 실토한 모든 정보를 귀담아들은 그녀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내가 이겼어.”
동시에 굉음이 터지며 마틴 박사의 본체가 옆으로 휘청휘청 움직였다.
“끝이다!”
부스터로 날아가는 시로네가 미켈란 건의 섬광을 거체의 중심에 작렬시켰다.
7억 5천만의 내구력이 전부 깎이고, 본체가 연쇄 폭발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해, 해냈다.”
크리처를 상대하고 있던 랭커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그것을 바라보았다.
“저걸…… 잡았다고?”
전투에 끼어들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던 오퍼레이터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지켜 냈다.”
그때 납작하게 쓰러진 마틴 박사의 본체가 흔들리더니 중앙 부분이 폭발했다.
“키아아아아!”
그 안에서 튀어나온 불사조를 닮은 기체가 거대한 날개를 펴고 활공했다.
증강현실을 통해 기체의 정보를 확인한 오퍼레이터가 욕을 내뱉었다.
보스 크리처 리얼 마틴.
잠시 후 다른 사용자들도 32억에 달하는 기체의 내구력을 보게 되었다.
“키아아아아!”
리얼 마틴의 괴조음이 신호탄이라도 된 듯, 사방에서 사용자들이 몰려들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자들이었다.
“전. 인. 류. 멸. 살.”
오퍼레이터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다.
“으아아아아!”
리얼 마틴의 섬광포가 세상을 휩쓸고, 수많은 랭커들이 재가 되어 사라졌다.
“아직 안 끝났어!”
오직 시로네만이 포기하지 않고 하늘로 날아가 미켈란 건을 난사했다.
범접할 수 없는 화력이 교차되는 광경을 랭커들은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전. 인. 류. 멸. 살.”
감염자들은 더 이상 사용자를 공격하지 않고 기체의 장벽을 만들었다.
그 너머로 하늘을 까맣게 채운 크리처들이 날아와 남은 자들을 공격했다.
오퍼레이터가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싸운다! 물러서지 마!”
리얼 마틴과 시로네, 크리처들과 랭커들 사이의 일대 전투가 벌어졌다.
‘제길! 나가게 해 줘! 나가게 해 달라고!’
반면 기체 안에 갇힌 사용자들은 그저 벽이 되어 전쟁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세상이 쪼개지는 것 같은 전투 속에서 시로네는 리얼 마틴을 무너뜨렸다.
“키에에에에!”
32억의 내구력이 떨어지기 직전, 기체가 빠르게 변화하며 새로운 형태로 탈바꿈했다.
‘리얼 마틴 2단계?’
130억의 내구력 앞에 넋을 잃은 랭커들을 크리처들이 급습했다.
“으아아아!”
감염자가 더욱 많아지는 가운데 시로네는 미켈란 건을 작동시켰다.
-출력 부족
“크윽!”
리얼 마틴의 흉측한 기체에서 수만 발에 달하는 유도탄이 동시에 쏘아졌다.
말 그대로 풍경의 전체였고, 이지스가 날아올라 탄도 기만 시스템을 가동했다.
-이게 마지막입니다.
유도탄을 유인해서 끌고 들어간 이지스의 기체가 사치스러울 정도의 폭발에 휘말렸다.
“제길!”
리얼 마틴이 날아오자 시로네는 후퇴하며 에어 갓으로 대응했다.
내구력이 10씩 줄어들었다.
“……끝났어.”
130억이라는 숫자가 줄어드는 속도를 확인한 랭커들은 비로소 현실을 깨달았다.
“다 끝났다고.”
시로네는 에어 갓을 장전했다.
“리로리드!”
리얼 마틴의 뒤를 따라 날아오는 크리처 정도라면 충분히 요격이 가능했다.
펑! 펑! 펑! 펑!
수많은 크리처가 추락하면서 야훼2의 경험치가 빠른 속도로 오르기 시작했다.
300대의 레벨이 요구하는 경험치의 수준은 랭커보다 훨씬 낮았고…….
‘레벨 업.’
1레벨이 오르는 것과 동시에 하이 기어와 미켈란 건의 동력이 채워졌다.
“이야아아아아!”
야훼2의 손바닥에서 빛의 구체가 엄청난 속도로 응축되자 오퍼레이터가 소리쳤다.
“아직 안 끝났어!”
야훼2가 후퇴를 멈추고 돌진했다.
“최대출력.”
미켈란 건의 거대한 섬광이 대기를 가르고 날아가 리얼 마틴을 직격했다.
굉음이 터지고, 리얼 마틴의 주위에 있던 크리처들이 모조리 폭사했다.
‘레벨 업!’
다시 충전이 완료되었다.
‘레벨 업!’
리얼 마틴의 내구력이 바닥을 드러내는 순간, 굉음이 세상을 뒤흔들었다.
“키에에에에에!”
굉음만으로 지상의 사용자들이 폭발하고, 야훼2의 기체가 땅에 추락했다.
“제길! 저건 또…….”
시로네의 표정이 멍해졌다.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