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47
리얼 마틴의 흉측한 기체가 더욱 거대하게 확장되면서 하늘을 가득 채웠다.
리얼 마틴 3단계.
-내구력 : 140,000,000,000/140,000,000,000
쿵쿵, 랭커들이 무릎을 꿇었다.
욜가의 아들도 전투를 멈췄고, 꼬마마녀는 어깨를 들썩이는 오퍼레이터를 지켜보았다.
“흑. 흐윽.”
그녀는 울고 있었다.
기계의 몸에 눈물은 흐르지 않지만, 태어나 가장 서러운 울음소리였다.
“이게 뭐야, 이 나쁜 자식아.”
그녀가 설계했던 모든 것이 부정당했다.
‘끝났어.’
꼬마마녀는 웃었다.
‘완전히 꺾였다. 이제는 회생할 수 없어.’
감염된 기체 속에 갇힌 사용자들 또한 오퍼레이터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진짜 개허무하네.’
고작 이딴 숫자 놀음에 조롱당하려고 그 많은 시간을 바쳤던 것인가?
‘대체 여기서 뭘 한 거야, 나는? 그냥 빨리 끝내. 다 집어치우고 나가자고.’
그들의 소리가 들리는 듯해, 우오린은 페르미를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이겼…….’
그 순간.
“리……!”
누군가가 소리쳤다.
“……로리드!”
모두가 고개를 돌린 곳에, 에어 갓을 장전한 야훼2가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어?”
고개를 쳐든 채 그를 바라보던 오퍼레이터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모두의 심장 소리였다.
신이란 무엇인가 (1)
우오린은.
“하아아아!”
마틴 박사에게 홀로 날아가는 시로네를 보고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아…….’
시로네, 시로네.
‘너는 내 거야.’
하이 기어에서 시로네의 실패는 우오린을 분명 유리한 위치에 놓을 테지만.
‘사랑이란 게 어디 그런 것이던가?’
최강의 적을 향해 돌진하는 시로네야말로 그녀가 모든 걸 바쳐 사랑하는 모습이었다.
‘이런…….’
현실에 있는 자신의 상태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그녀는 머쓱했다.
너무 흥분한 감이 없지 않지만, 그런 실수조차 후련할 만큼 달콤한 감정이었다.
‘시로네. 넌 나에게 오게 될 거야.’
우오린의 감정은 감동보다 쾌락에 가까웠지만 다른 사용자들의 마음은 달랐다.
‘더 싸우겠다고?’
고도에 떠 있는 마틴 박사의 기체를 보고 있노라면 무모할 정도의 용기였다.
내구력은 1,400억.
숫자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사람들도 리얼 마틴의 초형태는 느낄 수 있었다.
‘끔찍한 비극.’
아마도 그런 제목이 아닐까.
분명한 사실은, 절대로 특정인이 혼자서 상상할 수 있는 형태는 아니라는 것이다.
치이이이잉!
괴상한 것들이 짜깁기되어 있는 거대한 기체의 중심에서 눈동자가 튀어나왔다.
“왜에에에.”
명백한 기계음.
하지만 마치 감정이 담겨 있는 듯해서, 듣고 있는 자들은 소름이 돋았다.
“결과값이 나오지 않는가?”
감염된 기체 안에 갇혀 있는 사용자들은 마틴 박사의 말에 의구심이 생겼다.
‘저게 무슨 말이야?’
통신조차 불가능해 의견을 나눌 수는 없지만, 위화감만은 똑같이 전해졌다.
‘저건 대사가 아니라 시스템 메시지잖아. 에피소드하고 아무 상관 없는 내용을…….’
마치 연극 무대의 주인공이 갑자기 관객을 돌아보며 티켓값을 말하는 기분이었다.
‘오류다.’
오퍼레이터는 직감했다.
‘시스템이 파괴되면서 알고리즘 변화가 임계치를 넘어섰어. 넘버세븐도 여기까지는 예측하지 못했을 테지.’
그렇다면 결과값이란 무엇인가?
‘마틴 박사의 수행 목표는 세계의 종말. 즉, 그 확률이 제대로 잡히지 않고 있다는 건…….’
그녀의 시선이 야훼2에게 향했다.
‘끝나지 않았어.’
마틴 박사가 계산하는 승률이 정확하게 집계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었다.
수없이 진화해도, 시스템을 파괴할 정도로 수치를 늘려도 종말은 오지 않는다.
‘어떻게?’
오퍼레이터는 전율했다.
‘아직도 싸울 수 있는 거지?’
그녀는 야훼2의 등을 밀어내고 있는 거대한 힘의 존재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은 신성하고 경건했지만, 그보다 훨씬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졌다.
‘알아.’
싸워야 하는 이유.
‘네가 아니면 누구도 싸울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굴복했기 때문에.’
이 세계의 누구에게 물어도, 지금 야훼2가 지고 있는 짐을 지고 싶지 않을 터였다.
시로네는 이를 악물었다.
“크으으으!”
에어 갓을 쏘아 대며 수직으로 솟구치는 그의 머릿속에 선명한 기시감이 들었다.
‘신이 아니야.’
마틴 박사의 대사에서 시로네는 앙케 라가 떠올렸던 의문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어찌하여 신이 될 수 없는가.
수많은 답 중에서 정답을 골라내기 위해서는 또 다른 질문에 답해야 한다.
‘신이란 무엇인가?’
어떤 것이라고 정의할 수는 있겠지만 그 정의에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틴 박사는 신이 아니야. 마틴 박사를 창조한 넘버세븐도 신이 아니다. 신이라는 것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설마?’
하이 기어의 세계를 경험했기에 들어오는 새로운 통찰이 정신을 감전시켰다.
‘정말로…… 있다고?’
신神.
리얼 마틴이 괴성을 내질렀다.
“완벽한 세계를 위해!”
시스템 메시지를 대사처럼 내뱉는 모습에서 생과 물의 경계선이 흐릿해졌다.
‘1,400억의 내구력.’
그리고 온갖 끔찍한 것들이 마음대로 뒤섞여 있는 그로테스크한 외형조차…….
‘형태는 없다.’
무태에 도달한 시로네의 눈에는 1과 0, 유와 무가 교차하는 신호의 집합일 뿐이었다.
‘할 수 있어.’
이모탈 펑션의 정신이 광자 응집을 강화하면서 사상 최대의 크기를 드러냈다.
‘미켈란 건!’
섬광이 작렬하자 마틴 박사의 내구력이 무려 10억 이상 깎여 나갔다.
“……이긴다.”
오퍼레이터가 벌떡 일어섰다.
“우리가 이길 수 있어.”
그녀의 말이 모든 사용자의 마음에 파문으로 번지며 투기를 불살랐다.
‘싸운다. 이 세계를 지키는 거야.’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인간의 통합이 훨씬 쉽게 일어난다는 것은.
‘싸우자! 싸우자! 싸우자!’
사용자들의 마음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을 시로네는 똑똑히 느끼고 있었다.
‘통합된다.’
설령 야훼라고 해도 사용자의 마음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였을 때, 양자 신호는 광자 신호가 되고.
‘지금이다!’
무태의 감각에 스며들어 바꿀 수 있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 시스템의 이름은…….
“울티마.”
세계가 요동치고, 사용자들의 인공지능을 감염시킨 바이러스가 소멸하기 시작했다.
“움직일 수 있다! 돌아왔어!”
“싸우자!”
자아를 되찾은 사용자들이 동시에 화기를 치켜들고 크리처를 사격하기 시작했다.
시로네는 화면으로 지상을 확인했다.
‘모두 싸우고 있다.’
세계를 지킨다는 일념하에 죽음을 도모하는 그들의 모습에 편견은 어디 있는가?
경쟁은 어디에 있으며, 차별은 어디에 있고, 레벨의 격차는 어디에 있는가?
‘없다.’
아주 오래전, 인간이라 불렸던 인류는 통합적 정신 체계를 이룩한 적이 있었다.
오직 인류의 발전을 위해, 모두의 행복을 위해 지성을 사용했던 적이 있었다.
‘왜 안되지?’
하이 기어에서 되는 것이 현실에서는 안되는 이유.
‘언제부터 인간은…….’
하나가 되는 것을 거부한 채, 자신의 존재만을 추구하게 되어 버린 것일까?
‘우오린.’
꼬마마녀가 중얼거렸다.
“내 잘못이 아니야.”
아무리 그렇게 되뇌어도, 인간이라 불리는 모든 생명의 원죄는 그녀에게 있기에.
“사랑해, 시로네.”
이 세상에서 그녀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야훼밖에 남아 있지 않기에.
나비가 날아들기만을 영원히 기다리는 아름다운 꽃이 될 수밖에 없었다.
욜가의 아들은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는 꼬마마녀의 기체를 곁눈질했다.
‘독이 든 꽃.’
성전이 열리면 그 진가가 드러나게 될 테지만, 그렇기에 멀리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어쨌든…….”
모두가 싸우는 와중에도 페르미는 시로네의 울티마에 동참하지 않았다.
‘어차피 감염도 안 됐지만.’
이지스가 통신했다.
-사장님, 어떻게 할까요?
페르미는 하이 기어의 존멸을 건 사용자와 시스템 간의 충돌을 지켜보았다.
“크크.”
사람을 믿어?
‘이 정도로 울티마의 가능성을 봤다면 한참이나 우습게 본 거야, 시로네. 인간의 마음은 네가 모든 역사를 통해 봤던 겉모습 이상으로…….’
훨씬 깊고 탁하니까.
-일단 맞춰 주자고. 끝내야지.
하늘로 솟구치며 욜가의 아들이 미소를 지었다.
“나쁜 기분은 아니군.”
마틴 박사의 기체 상부가 열리더니 붉은 섬광이 하늘을 뚫고 올라갔다.
-메탈 레인 발동. 세계를 초기화시킵니다.
‘뭔지는 몰라도…….’
시스템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탄막을 피해 내려온 시로네가 하늘로 올라가는 페르미를 스쳐 지나갔다.
-시간을 벌어 줘.
메탈 레인이 발동되기 전에 리얼 마틴 3단계의 기체를 파괴하는 게 관건이었다.
통신을 할 필요도 없이 페르미는 올라갔다.
“그러지.”
현실이라면 하지 못할 판단들이 이곳에서는 너무나 쉽게 가능한 이유.
‘핵심은 거기에 있다.’
그들에게는 이곳이 파괴되어도 돌아갈 수 있는 바깥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이 기어는 공이지만, 그렇기에 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