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49
정의할 수 없는 공간.
“…….”
어느새 바깥 세계로 돌아온 시로네는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어았않 지나지 은간시.’
다시 역전.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내가 조금 전 경험한 것은 뭐지? 꿈을 꾼 것인가?’
아니, 그게 아니다.
‘꿈이 아니야. 그것보다 훨씬 공에 가까운, 말 그대로 무에서 태어난…….’
일종의 착각.
‘나는 조금 전 어떤 착각을 했던 거지?’
의식이 흔들.
“다니습왔 셔모, 님장사.”
시로네의 눈앞에 서 있는 것은 이지스의 기체였고, 곧바로 문이 열렸다.
침대에 욜가의 아들이 앉아 있었다.
‘페르미?’
라고 말한 기억이 남아 있지만 지금의 시로네는 묵묵히 방으로 들어갔다.
“진, 진짜 욜가의 아들이잖아?”
파괴마신707 일행이 감탄하는 소리가 들리고, 페르미가 의자를 권했다.
“앉아. 그나저나…… 일행이 있네?”
“할 얘기가 있어.”
차가운 야훼2의 목소리에 파괴마신707 일행이 당황한 듯 고개를 돌렸다.
“뭐가 그렇게 심각해?”
“이미 경험했어.”
“뭘?”
“지금 이 상황. 이 순간. 지금 네가 나를 불러서 하려고 하는 모든 말들.”
“…….”
다른 사람 같으면 미친놈 취급을 했겠지만 페르미는 극한으로 차가워졌다.
“일단 앉아. 다른 사람들은 나가 있고.”
일행을 소개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만 봐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 수 있었다.
문이 닫히고, 페르미가 물었다.
“시간 역행이야?”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야. 솔직히 잘 모르겠어. 어차피 이것도 내 착각일 테니까.”
시로네는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태양전이 열렸어. 그리고…….”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끝까지 진행되자 페르미가 턱을 괴었다.
“모르겠군.”
어쩌면 그것이 정답이기에, 페르미의 통찰력도 상당하다고 할 수 있었다.
“너는 바깥 세계에 나갔다.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 있지. 하지만 여전히 바깥 세계에 머물러 있는 상태. 말하자면 그런 느낌인가?”
“비슷해.”
“만약 나를 죽이면?”
페르미가 상체를 내밀며 물었다.
“나를 죽이면 어떻게 되지? 그래도 나를 만나는 상황을 접할 수 있나? 내가 현실로 이탈해도 너는 이 자리에서 나를 만날 수 있어?”
“가능해.”
“어떻게 장담하지?”
“해 봤으니까.”
“…….”
“아까 말했잖아. 네가 하는 말은 모두 들었어. 지금이 정확히 371번째야.”
공간이 없기에 시간도 없다.
“태양전도 몇 번이나 클리어 했어. 죽이고, 죽어 보고, 마틴 박사가 역습을 했다가, 안 했다가…….”
그렇게 변수를 제거해 나갔다.
“흐음.”
천천히 상체를 뒤로 기울인 페르미는 그로부터 10분 동안 말이 없었다.
“다중우주.”
페르미가 결론을 내렸다.
“바깥 세계에서 봤을 때, 안쪽에는 무한히 많은 우주가 존재한다. 너의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 새로운 우주가 열리게 되는 거야.”
시로네는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래.”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 봤기에, 이제는 더 이상 시도할 게 남아 있지 않았다.
“왜 찾아왔지?”
페르미가 물었다.
“나에게서 들을 수 있는 건 다 들었을 거 아냐? 나를 찾아온 이유가 뭐야?”
“이유?”
시로네는 헛웃음이 나왔다.
“하하.”
이렇게 되는 것이다.
“그게 안쪽과 바깥쪽의 차이야, 페르미. 너는 내 말을 이해하지만 본질은 깨닫지 못해.”
시로네는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대체 이 상황에서 뭘 해야 하는데? 아무 우주나 잡고 살아갈까? 그럼 원래의 우주는?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모든 사람들은?”
거기에 페르미도 있었다.
“내가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 틀렸어. 모든 상황이 똑같다고 해도, 그곳은 내가 마음을 심은 세계가 아니야. 그냥 복제품일 뿐이라고.”
“그래도 어쨌든…….”
“아니, 너는 몰라. 지금의 정보를 현실에 적용하느라 바쁘겠지. 그래서 닫혀 있다는 거야.”
“침착해.”
“괜찮아. 침착하지 않아도 되니까. 왜 그런지 가르쳐 줄까? 이게 다 뭔지 알아? 아무리 냉철하게 생각해도! 너에게 그 어떤 소리를 지껄여도!”
정의할 수 없는 공간.
“……이렇게 되어 버린단 말이야.”
착각일 뿐이다.
어떤 사건도 망상이 되어 버리는 이곳에서 과연 무엇을 이룰 수 있을까?
‘내 마음은 어디에 있지?’
바깥 세계는 무한히 자유로운 곳인가, 아니면 그 무한함에 갇혀 버린 곳인가.
‘돌아가고 싶어.’
자리에 앉은 시로네가 등을 기대자 마치 벽이 있는 것처럼 압박이 느껴졌다.
수없이 많은 착각을 했다.
‘나네.’
하이 기어에서도 이럴진대, 현실에서 광자계를 이탈한 나네의 심정은 어떨까?
‘많이 슬펐겠구나.’
아마도 피눈물을 흘리며 악을 지르지 않았을까?
‘만날 수 없겠지. 네가 어떤 착각을 하든, 그 착각 속의 시로네는 내가 아니니까.’
돌아갈 수 없다.
하이 기어의 어떤 우주에서 현실로 이탈한다고 해도, 그곳에서 싸운다고 해도.
‘거기에 다시 내 마음을 준다고…….’
가능할까?
‘내 마음속에 있는 에이미를 버리고 새로운 에이미를 사랑한다고? 이카엘도, 거핀도…….’
맥클라인 거핀?
“그래! 거핀!”
시로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광자계를 이탈했잖아. 그런데 어떻게 헥사를 보냈지? 설마 아무 세계에나 쐈다는 건가?”
그 정도로 만족할 신념이었다면 처음부터 헥사를 보내지도 않았을 터였다.
‘돌아갈 수 있어!’
정의할 수 없는 공간을 빠르게 돌아다니며 시로네는 끝없이 말을 내뱉었다.
“찾자.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왔던 것의 역순으로 가면 되잖아. 그러니까 마음을 뒤집어. 음, 마음을 뒤집는다. 그게 어떤 의미일까?”
수없이 내뱉었다.
“착각을 되돌리는 거야. 흐윽. 내가 어떤 생각을 했더라. 내 마음이 그 순간에…….”
울먹이는 와중에도 생각을 이어 나가던 시로네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잠깐만.”
절대로 느끼지 못했을 위화감.
“나, 지금…….”
부처와 맞먹는 사고를 가진 야훼의 통찰이 불현듯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지있 고하각생 로꾸거 왜?”
신이란 무엇인가 (3)
시로네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착각이 아니야.’
지금 이 생각조차 마치 시간을 거꾸로 돌린 것처럼 역으로 흐르고 있었다.
“어? 어?”
당황하는 것도 잠시, 시로네는 어느새 냉철한 정신으로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러고 보니…….’
다중우주를 경험했을 때와 바깥 세계에 있을 때의 사고가 정반대였다.
‘안쪽과 바깥을 기준으로 사고가 역전된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자면…….’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는 것이다.
“흐음.”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시로네가 정의할 수 없는 공간을 직진으로 나아갔다.
‘나는 앞으로 걸어가고 있다.’
과연 그럴까?
‘사실은 뒤로 걸어가고 있고, 시간의 방향성이 역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라면?’
사고실험을 해 보자.
‘영상 기록 장치에 앞으로 걸어가는 사람을 녹화하고, 그 영상을 거꾸로 돌리게 되면 어떨까?’
움직임이 어색할 것이다.
‘하지만 어색한 이유는 우리의 시간에 익숙해서야. 만약 시간 자체가 반대로 흐르는 세계라면…….’
오히려 시로네가 앞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질 것이다.
‘대충 알겠어.’
시로네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시간이 역전되는 이유.’
이 세계가 두 가지 신호, 즉 광자와 양자의 결합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눈동자. 안에서 밖을 보는 눈과, 밖에서 안을 보는 눈. 그 관점에 따라…….’
시간의 방향성이 뒤집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로네는 꼭두각시 인형을 떠올렸다.
‘인형은 막대로 연결되어 있고, 그 막대를 조작하는 키가 머리 위에 떠 있다. 그리고 인형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의지가 있다.’
적어도 그렇게 확신한다.
‘막대를 조작하는 키가 움직였다. 인형은 오른팔을 들었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
‘인형은 자신이 오른팔을 들었기 때문에 키가 움직였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세계를 대하는 관점이다.
‘조금 더 직관적으로 표현하면…… 내가 땅을 팠기 때문에, 땅은 파여야 옳다.’
즉, 인형이 팔을 든 것이 원인이고 키가 움직인 것이 결과라는 얘기.
‘반대로 바깥 세계의 입장에서는…….’
키를 움직인 것이 원인이고 인형이 오른팔을 들어 올린 것이 결과가 된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지. 즉 원인과 결과가 완전히 뒤바뀌어 버리기 때문에…….’
사고 체계 또한 반대가 되고.
‘시간을 받아들이는 감각 또한 역전된다.’
시로네는 전율을 느꼈다.
‘신에게는…….’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네.
‘이카엘이 나에게 해 준 말. 베디움이 남긴 마지막 유언. 그런 것이었어.’
점점 좁혀지고 있다.
‘신은 시간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 신의 사고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가?’
우리에게 결과가 그들에게는 원인.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한다. 이게 인간의 사고방식이다. 하지만…….’
신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결혼한다. 사랑할 것이기 때문에.’
그런 역전.
‘마법을 쓸 수 있다. 마법을 배울 것이기 때문에. 세계 최고의 검호가 되었다. 그만큼 노력할 것이기 때문에. 감옥에 갔다. 살인자가 될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수많은 의지로 이루어야 하는 결과물이 시작부터 이루어지는 역전.
“으…….”
신이란 무엇인가.
‘모든 시간의 끝.’
결과다.
‘신은 우리에게 결과.’
이 생각을 확장시키면 현실에서의 바깥 세계가 무엇인지 추론할 수 있다.
‘모든 역사, 오메가를 알고 있다. 신의 관점에서 세계를 거꾸로 돌리게 되면…….’
문명이 쇠퇴하고, 생물이 사라지고, 우주가 좁아지고, 마침내 그곳에 도달하게 된다.
‘태초가 시작되는 순간이 있을 거야. 그리고 거기에서 신의 관점을 적용시키면…….’
시로네는 입술을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