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52
“특별이 시키실 일이 있으신지…….”
“아니.”
우오린이 미소를 지으며 간도를 지나쳤다.
“끝났어. 하이 기어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다 얻었다. 성전까지 얼마나 남았지?”
“3일입니다.”
간도가 뒤를 따르며 물었다.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나란히 걸으며 돌아본 우오린은 언제 그랬냐는 듯 차가운 얼굴이었다.
‘이런 느낌은 오랜만이군.’
간도가 침을 꿀꺽 삼키는 가운데 우오린의 생각은 더욱 깊어졌다.
‘마이너스 우주.’
전부는 아니지만, 페르미는 거래했던 대로 개괄적인 정보를 전달했다.
‘사상 최악의 성전이 될 수도 있겠어. 아니,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우오린이 걸음을 멈췄다.
“간도, 성전은 내가 참가한다.”
아들에게 물려준 황제의 자리를 다시 차지하겠다는 말에 간도는 즉각 응답했다.
“알겠습니다.”
“너무 서운해하지 마. 대정화기 이후 살아남은 자들, 세력, 왕국. 괴물들이 전부 모이는 자리다. 너 혼자 감당하기에는 벅찰 것 같아서 그래.”
자신의 기분을 헤아려 준다는 것만으로도 간도는 감격에 몸이 떨렸다.
“여황님의 제국입니다.”
우오린의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번졌으나, 표정은 이내 싸늘해졌다.
‘절대로 넘겨주지 않아.’
그녀가 말했다.
“키도를 불러와.”
***
남부 대륙, 케시아.
대부분의 국민들이 엔젤에 취해 있는 만큼 장사를 하는 가게는 많지 않았다.
시로네가 정모 장소로 선택한 곳은 금화륜이 운영하고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였다.
“어서 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흐리멍덩한 눈빛의 종업원이 시로네를 반겼다.
귀족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이 보였고, 그들 또한 약에 취해 있는 듯했다.
‘문제는…….’
가게의 구석에 앉아 있는 일단의 무리도 딱히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진짜 볼만하다.’
이번 정모에 모인 하이 기어의 운영자는 5명이었고 누구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사회성 제로의 인간들을 모아 두었으니 예상했던 풍경이기는 하지만, 정도가 심했다.
“어? 혹시……?”
유일하게 밝은 표정으로 앉아 있던 꼬마 아이가 시로네를 보고 손을 들었다.
“야훼 형?”
“막대 사탕?”
운영자의 신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았으나 본명은 굳이 밝히지 않았다.
“와, 진짜 하이 기어하고 똑같네요. 어서 와요. 여기 분위기 완전 폭망이야.”
시로네가 왔는데도 운영자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고 애먼 짓만 하고 있었다.
‘막대 사탕은 여기 있고.’
거구의 몸을 구부정하게 굽히고 있는 중년의 털보는 아마도 스마일 마크.
그냥 머리가 자라니까 기른 것 같은 마른 체형의 여자는 검은 서클 마크.
‘그리고 나머지 두 사람이…….’
하이 기어에서 사달을 일으킨 장본인, 오퍼레이터와 넘버세븐이었다.
‘넘버세븐. 나랑 동갑이려나?’
건장한 체격에 어울리지 않게 초조하게 다리를 떨고 있는 모습에서 성격을 알 수 있었다.
상석에 앉아 있는, 커다란 안경을 쓴 오퍼레이터가 앞머리를 계속 손으로 털어 댔다.
“에이. 아, 진짜.”
‘여드름이 신경 쓰이나 보네.’
시로네는 오퍼레이터의 기체가 앞머리로 눈을 가린 이유를 짐작했다.
“자, 그럼.”
맞은편 의자에 앉은 시로네는 종업원에게 차를 주문하고 말을 꺼냈다.
“일단 만나서 반가워요. 시로네라고 해요.”
“…….”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고, 스마일 마크가 뭔가 말을 하려다가 고개를 돌렸다.
‘정말 사교성 떨어지네. 아예 의견이 나오지 않아. 이래 가지고 어떻게 같이 일하지?’
해야 한다.
이들이 바로 언더 코더에서 전대미문의 흥행을 이룩한 하이 기어의 개발자들이니까.
‘세계 최고의 코더들이다.’
막대 사탕 마크가 먼저 운을 띄웠다.
“자기소개부터 하죠. 원래 정모 나오면 이런 거 하는 거예요. 저는 막대 사탕. 하이 기어에서는 타격 및 충격량 프로세서를 담당하고 있어요.”
가장 순발력이 좋아야 하는 자리였다.
“허허, 그럼 나도 할까? 어…… 그러니까 나는 스마일 마크라고 해. 내가 담당하는 건…….”
구구절절한 설명이 이어지고, 그다음 차례인 검은 서클 마크가 말했다.
“검은 서클이야. 메타 프로세서 맡아.”
겨우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했으나 넘버세븐은 마치 실어증에 걸린 사람 같았다.
“형, 형 차례예요.”
“아. 아.”
귀는 빨갛게 달아오르고 동공은 풀린 것이, 이미 다른 세상에 가 있는 듯했다.
시로네가 다시 현실로 끌어내렸다.
“편하게 말하세요. 그냥 소개하는 거니까.”
“어? 어…… 그게.”
퍼뜩 정신을 차린 듯했으나, 이번에는 상석의 오퍼레이터를 흘끔거릴 뿐이었다.
그녀가 앞머리를 흔들며 쏘아붙였다.
“아까부터 뭘 그렇게 흘끔거려? 왜? 실망했냐? 못생겨서?”
“누, 누가 그래! 예쁘기만 하구만!”
스스로 내뱉은 말에 놀란 넘버세븐이 고개를 푹 숙이고, 오퍼레이터가 빨대를 물었다.
이어진 정적.
“……일단 자기소개는 됐고요.”
시로네는 작전을 바꿨다.
“정모는 제가 오퍼레이터에게 제안한 거예요. 아는 분도 계시겠지만, 앞으로 오퍼레이터는 현실에서 저를 도와 어떤 일을 하게 될 겁니다.”
운영자들이 처음으로 관심을 드러냈다.
“어떤 일?”
시로네는 디 어비스의 영역에서 아포칼립스를 채굴하기 위한 전략을 설명했다.
검은 서클이 중얼거렸다.
“흐음, 세포질 경화 프로그램이라. 메인 시스템에 주입하려면 단말 패턴을 알아야 할 텐데?”
넘버세븐이 말했다.
“인공지능을 이용하면 되지. 대형 굴착 기능이 달린 크리처를 풀어서 3차원 지도로 도식화하고…….”
“방화벽이 뚫릴 때까지 걸리는 시간도 문제야. 프로그램에 인베이전 코드를 심으면…….”
여태까지 침묵을 지키던 자들이 마치 싸우는 것처럼 저돌적으로 의견을 냈다.
시로네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몸은 현실에 있지만…….’
그들의 생각은 여전히 언더 코더, 가상의 세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턱을 괴고 듣고 있던 오퍼레이터가 검지를 세웠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시로네 오빠를 돕기로 했는데, 너희들은 어떻게 할 거야?”
운영자들이 시선을 교환하는 가운데 넘버세븐이 천천히 손을 들었다.
“쳇! 나는 무조건 포함인 거겠지?”
오퍼레이터가 말했다.
“아니. 여기 참석하는 게 조건이었으니까,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얼굴이 빨개진 그가 손을 내리려고 하자 그녀가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농담이야. 네가 해 먹은 게 얼만데 이대로 끝내? 수천 톤은 용접해야 할 거야.”
넘버세븐은 울컥했으나 오퍼레이터가 농담을 했다는 사실이 더 좋았다.
“하하! 내가 아니면 해낼 사람이 없는 거겠지. 나 없이는 절대로 아포칼립스 못 파낼걸!”
“그것도 사실이고.”
“…….”
넘버세븐의 입이 다시 닫혔으나, 처음과 달리 분위기는 뜨거웠다.
시로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자, 그럼 일하러 가 볼까?”
***
중동, 파라스 왕국.
구스타프 제국이 일으킨 세계대전으로 파라스 왕국은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
가장 큰 충격은 40년 동안 파라스를 통치한 카사르타크 국왕의 서거였다.
하지만 고대 문명의 근원지라 불리는 중동의 강자는 쉽게 무릎을 꿇지 않았다.
“슬슬 출발해야지.”
왕성 델라이마의 고풍스러운 그랜드 홀에 미성이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국왕 키트라.
카사르타크의 막내아들로, 눈가에 검은 화장을 해서 중성적인 외모였다.
“전하, 준비가 끝났습니다. 이번 성전에서 파라스 왕국은 세계의 통치국이 될 것이옵니다.”
신하들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약관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 키트라의 능력은 지성의 시초라 자부하는 파라스에 가장 적합했다.
“흐음…….”
키트라의 목에 휘감겨 있는 독사가 좌중의 신하들을 향해 혀를 날름거렸다.
“줄루를 불러라.”
신하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하오나 전하, 파라스의 초고대 문명은 이방인에게 한 번도 접근을 허락하지 않은…… 흑!”
피리리리리리!
뱀의 혀가 떨리면서 내는 소리에, 신하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쉬.”
키트라가 입으로 소리를 내자 뱀이 고개를 틀더니 그에게 혀를 내밀었다.
할짝거리는 소리, 마치 키스를 하듯 뱀이 주는 독을 핥던 그가 다시 말했다.
“줄루를 데려와.”
병사가 빠르게 그랜드 홀을 벗어났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줄루와 시로네, 카니스와 아린이 나란히 들어왔다.
공갈 젖꼭지를 물고 있는 줄루가 쪽쪽 소리를 내며 왕 앞에 무릎을 꿇었다.
“부르셨습니까, 전하.”
“줄루.”
파라스 왕국의 자랑거리이자 카사르타크가 마지막까지 사랑했던 대마법사.
“예전 생각이 나는군. 아버지는 자네를 참 좋아했지. 나도 그대를 이모라 부르며 따랐고 말이야. 통 보기가 힘들어. 우리 아버지가 그렇게 싫었나?”
쪽, 쪽.
공갈 젖꼭지를 물고 있는 줄루의 얼굴에서는 어떤 감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름답다.’
갓 태어난 아이를 매일같이 학대하면 저렇게 뒤틀린 무언가가 되는 것일까?
“그래, 진리의 피라미드를 탐색하고 싶다고?”
“네, 전하. 저와 동료들이 그곳에서 바깥 세계의 비밀을 밝힐 것입니다.”
키트라의 시선이 줄루의 너머에 서 있는 3명, 그중에서도 시로네에게 향했다.
“상아탑의 오대성이여,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네. 알다시피 자국 사정이 좀 바빠서.”
거의 모든 왕들이 별에게 담대한 척을 하지만 키트라의 태도는 진심이었다.
‘정말 독특한 기운이다. 이번 성전, 치열하겠는데.’
시로네는 정중히 답했다.
“일국의 기보를 개방하는 건 큰 결심이 따르는 법이죠. 인류를 위해 허락해 주십시오.”
“인류야 뭐…….”
키트라는 편하게 다리를 꼬았다.
“작렬의 마계 때문에 오아시스가 전부 말라 버렸다지. 자네가 아니면 피해가 더 컸을 게야.”
“과찬이십니다.”
어차피 한마디를 듣기 위한 빌드 업이었고, 키트라는 시간을 끌지 않았다.
“허락하지.”
신하들이 술렁거리는 가운데 카니스와 아린의 눈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됐다.’
초고대 문명이 열린다.
최후의 성전 (2)
***
마치 대륙 위에 렌즈를 덮은 듯 사막의 열기는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었다.
“지독하네.”
카니스는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렸다.
제5군단장 마르바스의 마계, 작렬로 인해 오아시스마저 전부 말라 버린 상태였다.
시로네가 말했다.
“프리지와 아르간이 각 도시의 오아시스를 복구하고 있어. 그래 봤자 3일도 못 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