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54
“그럼 식사라도 할까요?”
“좋아. 내 팀이 기다리고 있어. 소개해 줄 테니까 잘 살펴봐. 모두 유능한 놈들이야.”
은근히 면접으로 분위기를 유도하는 말에도 시로네는 휘둘리지 않았다.
팀원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중에 아레스가 물었다.
“잘 지내냐?”
누구인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스탕 국립 마법학교.
해가 질 무렵 마지막 훈련이 끝났다.
“하아. 하아.”
위저드는 거친 숨을 내쉬었으나 표정에는 성취감이 듬뿍 담겨 있었다.
‘해냈다.’
시로네가 가르쳐 줄 수 있는 모든 것, 말 그대로 시로네의 정수였다.
“축하해, 위저드.”
교사들이 박수를 치고, 훈련을 지켜보던 시로네와 에이미가 걸어갔다.
마냥 웃을 수 없는 이유는, 그녀의 첫 번째 실전이 너무 가혹하기 때문이었다.
‘할 수 있을까?’
살인을.
‘우주 최악의 인간이라고 해도 누군가를 죽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실력과는 별개로 생각해야 돼. 만약 위저드가 한순간이라도 주저한다면…….’
하비츠는 그 틈을 놓치지 않을 터였다.
“선생님.”
위저드가 또렷한 눈빛으로 시로네를 올려다보았다.
‘좋은 눈이야.’
누구 하나, 심지어 벌레 한 마리조차 죽일 수 없을 것 같은 맑고 청명한 눈빛.
‘하지만 그렇기에 가능하다.’
미화할 생각은 없지만 그럼에도 위저드의 사고는 살인의 범주를 초월했다.
‘하비츠에 대한 원망도, 특별한 목적이나 의지도 없다. 인간을 초월한 순수함.’
그렇기에 배니싱을 간파할 수 있고.
‘자연현상 같은 거야. 아니, 이미 정신은 자연이다. 위저드를 표현하자면…….’
선한 하비츠, 라고 해야 할까?
“…….”
그 말에 담긴 깊은 의미가 마음을 무겁게 했다.
‘유일한 천적. 이 방법뿐이야.’
이제는 시로네의 눈빛만 봐도 기분을 아는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모든 준비가 끝났어요.”
“그래. 가자.”
성전 총회가 열리는 자이브로.
“오늘은 푹 쉬어라. 내일 스탕 왕국을 떠날 테니. 나도 너를 따라갈 거야.”
“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멀어지는 위저드를 보고 시로네가 한숨을 내쉬자 에이미가 어깨를 다독였다.
“최선을 다했잖아. 믿자.”
“그래야지.”
시로네의 눈빛이 잠시 아련해지고, 문득 떠오른 듯 고개를 돌렸다.
“아, 그런데 아레스 씨 소식은 들었어?”
“응? 우리 오빠? 아니, 못 들었는데. 갑자기 왜?”
“그게…… 사실 지금 나랑 같이 있거든. 파라스 왕국에서. 피라미드를 조사하려는가 봐.”
멍한 표정으로 눈을 깜박거리던 에이미가 갑자기 인상을 찡그렸다.
“이 멍청이가……!”
그러고는 시로네의 귀를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야! 사지 멀쩡하게 살아 있으면 집에 한 번은 와야 할 거 아니야! 엄마 아빠가 얼마나 걱정하는지 알아?”
“아야야!”
시로네가 한쪽 눈을 찡그렸으나, 에이미는 반쯤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도 없고! 보낸 편지라고는 피 묻은 그림뿐이고! 내가 진짜……!”
“그만, 그만!”
시로네가 귓바퀴를 어루만지며 투덜거렸다.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니까. 이건…….”
하지만 에이미의 눈에 맺힌 눈물을 본 순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진짜 죽은 줄 알았잖아…….”
에이미를 끌어안은 시로네가 등을 다독였다.
“괜찮아. 잘 지내고 계셔.”
훈련장 입구에서 몸을 돌린 위저드가 오랫동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그낙 오아시스.
“이번 일이 끝나면 연락은 하셔야 할 것 같아요. 많이 걱정하고 있어요.”
아레스가 쓸쓸하게 웃었다.
“……그러냐?”
자신의 일을 너무 좋아하다 보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는 법이다.
“아레스!”
걸걸한 목소리에 시로네는 전방을 살폈다.
아레스의 팀원으로 보이는 세 사람이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시로네는 그중의 1명을 알아보았다.
‘대검호 유프라.’
희끗한 수염을 기른 것 외에는 오메가에 기록된 젊은 시절과 거의 똑같았다.
‘쌍검의 달인. 호전적인 성격.’
이미 60대를 훌쩍 넘겼을 테지만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듯했다.
다른 2명은 커플처럼 보였는데, 20대 후반 정도였고 사제복을 입고 있었다.
여자가 물었다.
“아레스, 누구야, 이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아레스가 호탕하게 웃으며 시로네를 소개했다.
“아리안 시로네. 에이미의 남자 친구야.”
소개는 그게 전부였으나 시로네를 모르는 자는 세상에 거의 없었다.
“야훼?”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악수를 청하려던 시로네는 사제들의 미간이 살짝 구겨진 것을 보았다.
‘라미교구나.’
야훼라는 말을 듣고 꺼린다면 유일신을 믿는 라미교도밖에 없었다.
남자가 아레스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된 거야?”
라미교와 야훼의 관계를 알고 있는데도 이곳에 데려온 이유를 묻는 것이었다.
아레스가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그게…….”
다른 일이라면 굳이 소개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관청에서 거절당했어. 장관 인증서까지 보여 줬는데도 소용이 없더군.”
여자가 한쪽 눈썹을 올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교황청에서 얼마나 로비…… 아니, 설득을 해서 얻어 낸 건데.”
시로네의 눈치를 보던 그녀가 말을 이었다.
“이리 줘 봐. 내가 갔다 올게.”
“그럴 필요 없어. 무슨 말을 해도 들어 먹지를 않는다고. 일단 왕이 바뀌었잖아. 게다가 이번 국왕은…….”
정상이 아니라는 소문이 있다.
남자가 물었다.
“그래서. 그게 야훼를 데려온 것과 무슨 상관인데? 이 사람은 들어갈 수 있다는 건가?”
“바로 그거야.”
“응?”
“국왕이 직접 승인한 통행증을 가지고 있거든. 이거라면 우리도 프리 패스지.”
시로네가 끼어들었다.
“저는 동행한다고 말한 적이 없는데요?”
사제들의 표정이 심각해진 가운데, 아레스가 시로네의 등을 떠밀며 말했다.
“자, 자! 그러니까 밥이나 먹자고, 밥.”
시로네 일행을 데려가던 아레스가 사제 일행을 돌아보며 윙크를 날렸다.
여자가 물었다.
“……어떻게 할 거야?”
“일단 가 보자. 교황께서도 이번 원정에 많은 기대를 걸고 계시니까.”
바깥 세계에 무언가가 있다면, 라미교가 믿는 유일신이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식당에 모인 10명은 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았다.
아레스가 자신을 소개할 때는 카니스와 아린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 사람이 아레스구나. 수염 때문에 몰랐는데, 이제 보니 눈이 에이미를 닮았네.’
고고학과 지도 제작은 종목이 다르지만 큰 범주에서 보면 같은 영역이었다.
“여기 있는 두 사제는, 뭐 짐작하고 있겠지만 라미교의 사제들이야.”
남자의 이름은 글렌, 여자는 루키아였다.
“교황청이 2개의 부서로 나뉘는 건 알지? 교구관리청과 성기사청.”
“아, 네.”
성기사청에는 팰러딘이 있다.
“글렌과 루키아는 교구관리청에서 근무하고 있어. 두 사람 모두 최고의 성직자지.”
사제에게 신앙심은 마법사에게 정신력과 같은 것이라 그 의미를 짐작했다.
‘하긴, 초고대 문명을 조사하는 임무라면 교황청에서도 아무나 보내지는 않았을 터.’
다음으로 대검호 유프라를 소개하고, 시로네 일행의 차례가 되었다.
글렌과 루키아는 담담하게 들었으나 12사도가 나올 때는 표정이 변했다.
‘드래곤.’
며칠 전, 빙룡과 기룡의 브레스로 오아시스를 가득 채운 것을 보았다.
지금은 폴리모프를 한 상태지만 그때의 섬뜩함은 여전히 몸에 남아 있었다.
아레스가 헛기침을 했다.
“그럼 통성명도 했으니 음식이 나올 때까지 들어 볼까? 어떻게 국왕의 승인을 받았지? 듣자 하니 괴짜에다가 천방지축이라고 하던데.”
“줄루 씨의 도움을 받았어요.”
시로네가 그간의 일을 말하자 아레스 일행도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상당히 오래 체류했군. 그래도 허가증을 받았으니 다행이야. 그래서 말인데…….”
아레스가 엄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우리도 끼워 주라.”
“안 돼요.”
“…….”
단박에 거절당할 줄은 몰랐던지 아레스가 멍한 표정을 짓고, 글렌과 루키아가 미간을 좁혔다.
“죄송해요. 저도 도와 드리고 싶지만, 이건 정말로 위험한 일이에요.”
“그걸 어떻게 알지?”
글렌이 따졌다.
“교황청에도 눈과 귀가 있어. 초고대 문명은 바깥 세계에 관련된 장소, 하지만 어떤 곳인지는 누구도 몰라.”
“…….”
시로네는 알고 있었다.
“내가 말해 볼까? 야훼, 당신은 그저 라미교가 진리의 피라미드를 조사하는 게 싫은 거야. 만약 거기서 신의 존재가 증명된다면, 야훼는 사이비가 될 테니까.”
“그런 건 상관없어요.”
“그런데 왜 안 된다는 거야! 교황청 최고의 사제라 불리는 우리가 위험하다는 이유로 포기할 것 같아? 아레스도, 여기 있는 유프라 씨도 당신 옆에 앉아 있는 친구들보다는 강할 텐데?”
카니스가 발끈했다.
“뭐가 어째?”
“카니스, 일단 참아.”
아린이 말렸으나 카니스의 그림자는 이미 등 너머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마도 생물체.’
그림자의 양쪽에서 긴 팔이 빠져나오자 유프라도 급기야 살기를 드러냈다.
아레스가 양손을 내밀었다.
“뭐야? 분위기 왜 이래? 내 여동생의 남자 친구라고. 다들 일단 진정해.”
시로네도 싸우고 싶지 않았다.
“이런 건 의미가 없어요. 통행증은 제가 받은 겁니다. 팀을 꾸리는 것도 제 권한이에요.”
글렌도 지지 않았다.
“신의 존재를 탐구하는 것은 우리의 권한이다. 우리가 들어갈 수 없다면, 너도 들어갈 수 없어.”
카니스가 말했다.
“시로네, 그냥 받아 버리자. 글렌이라고 했나? 당신이 믿는 신이 남의 통행증도 빼앗으래?”
글렌의 얼굴이 빨개졌다.
“신의 이름을 아무 데나 가져다 붙이지 마라! 이건 내 개인의 싸움이야!”
“하하, 이럴 때는 개인인가? 하긴, 너희들이…….”
“그만해요!”
루키아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더 이상 신을 모독하지 말아요! 글렌이 이러는 것도 저 때문이니까. 글렌, 이만 포기하자.”
“아니, 그럴 수는 없어. 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진리의 피라미드로 갈 거야.”
카니스가 말했다.
“그럼 통행증을 구해 가지고 오든가.”
빈정거리는 말에도 신경 쓰지 않고 글렌은 시로네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여기서 결정하자. 당신과 나, 누가 신을 탐구하기에 적합한 인물인지.”
“분명히 말하지만, 거절합니다. 저는 누구와도 싸우고 싶지 않아요. 아레스 씨, 죄송해요.”
분위기를 망친 건 글렌이었기에 이번만은 아레스도 할 말이 없었다.
“우린 그만 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