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55
시로네가 자리를 뜨려고 하자 글렌이 무섭게 눈을 치켜뜨며 달려들었다.
“잠깐 기다려!”
“글렌! 제발…… 허억!”
애인을 말리려고 일어서던 루키아가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더니 바닥에 쓰러졌다.
“루키아!”
“아아! 아아!”
엄청난 고통에 전신이 떨리고 목을 따라 일어선 핏줄이 뺨으로 올라갔다.
“루키아! 정신 차려! 조금만 참아! 루키아!”
시로네는 즉각 알아챘다.
“감정병.”
악마가 만든 질병이 대륙의 바람을 타고 교황청까지 흘러든 것이다.
최후의 성전 (4)
“우으으으!”
고통에 몸부림치는 루키아를 내려다보며 시로네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토르미아에서 시작된 감정병이 바람을 타고 교황청에 도착했다는 것은…….
‘행성을 거의 한 바퀴 돌았다는 뜻이다.’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
‘세계보건기구에서 내려온 지침으로 감정병은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루키아 씨는…….’
더 이상 포기할 게 없다.
‘아니, 포기하지 못하는 거야. 신을, 신의 이름으로 수행하는 모든 지침을.’
글렌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루키아, 조금만 참아! 내가 고쳐 줄게! 반드시 진리의 피라미드에 데려갈 테니까……!”
“아우! 아아아!”
시로네가 차가운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기룡 아르간이 작은 소리로 답했다.
“통제를 뚫고 진리의 피라미드에 접근한 순례자 중에 감정병이 완치된 이가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듣지 못했는데?”
만약 사실이라면 세리엘이 나섰을 터였다.
“파라스에서 정보를 통제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근래 들어 더 많은 순례자들이 오고 있어요. 국경 밖으로 정보가 퍼지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그래서 국왕이 출입을 허가했군.”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오기 전에 피라미드의 진실을 밝히는 게 좋다는 판단.
아레스가 말했다.
“미리 밝히지 않아서 미안하다. 처음 피라미드를 탐사하려고 했던 것은 순수한 호기심이었어. 그러다가 감정병이 발발했고, 글렌과 루키아가 합류했지. 루키아는 좀 특별한 상황이야.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
“감정병에 대한 처방은 몇 가지가 나와 있어. 우선 세계보건기구의 지침. 그리고 듣자 하니, 기요르기라는 자가 증상을 완화시켜 준다고 하더군.”
시로네의 눈이 매서워졌다.
“하지만 그는 마족이야. 라미교에서는 절대로 용납하지 못하는 방법이지. 그러다가 야훼에 대한 소문을 들었지.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너 또한…….”
아레스는 잠시 눈치를 보았다.
“감정병을 억제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지?”
“네.”
글렌이 고개를 틀고 소리쳤다.
“아레스 씨!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라미교의 사제가 야훼의 도움을 받다니!”
“아아! 아아아!”
루키아가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자 글렌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루키아! 루키아!”
그 모습을 보며 시로네가 말했다.
“하지만 저 또한 완치는 시킬 수 없어요. 주기적으로 저에게 세례를 받지 않으면 재발할 겁니다.”
“……그렇군.”
아레스가 속주머니를 뒤졌다.
“우리가 조사한 마지막 해결책은, 바로 이거야. 남부 대륙에서 만든…….”
그가 꺼낸 것은 액상과 주사기였다.
“천사의 눈물, 엔젤.”
감정병에 대응할 수 있는 네 가지 방법을 모두 제시한 그가 말했다.
“혹시 몰라서 가지고 있었어. 우리는 버틸 수 있어도, 루키아는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
고통 속에서도 아레스의 말을 들었는지 루키아가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안 돼, 글렌. 사제가 저런 것에 의지해서는……. 버틸 테니까…… 아아아!”
버틸 수 있는 고통이 아니라는 것은 감정병에 걸린 모두가 알고 있었다.
글렌이 울먹거렸다.
“루키아, 이번 한 번만이야. 이 약을 맞자. 그러면 내가 진리의 피라미드에서…….”
루키아가 가녀린 미소를 지었다.
“글렌, 나는 반드시 교황청으로 돌아갈 거야. 교황께서…… 나를 인정해 주실 거야.”
교황령.
지중해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세계 최대 종교인 라미교의 교황청이 있다.
중부 대륙의 순례를 중지한 시로네와 이루키, 네이드는 아침 일찍 교황령에 도착했다.
네이드가 주변의 눈치를 보았다.
“괜찮을까? 네가 야훼라는 것을 알면 교황청에서 가만두지 않을 텐데.”
“어쩔 수 없지. 이제 곧 성전이 열리니까. 지금이 아니면 교황을 만날 수 없어.”
중부 대륙을 순례하며 마족과 싸운 야훼는 이제 전 세계적인 유명인이었다.
라미교는 좌시할 수 없었고, 성기사청을 움직여 부단한 방해 공작을 해 왔다.
“교황청.”
보는 것만으로 경외심을 느끼게 하는 높은 첨탑이 세 사람의 눈에 들어왔다.
“호외요! 호외!”
머리를 민 사제들이 신문 꾸러미를 들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교황청 공식 신문은 전 세계 교구에서 일어난 특별한 일들을 기사화하지만 지금은 호외였다.
시로네를 대신해 이루키가 다가갔다.
“한 장 주세요.”
신속함이 먼저인 사제는 신문을 건네고는 얼굴조차 보지 않은 채 지나갔다.
“흐음.”
헤드라인을 살폈다.
-임박한 성전. 세계의 지도자들이 신의 지령에 인류의 미래를 걸다.
“결국 이렇게 되네.”
인류의 지도국을 결정하는 자리.
세계정세가 심각한 만큼 이번이 마지막 성전이 될 거라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이번 성전에는 12개 국가가 참가할 거야.”
자격 요건은 1년 국내총생산, 인구수, 국방 규모 등을 종합하여 정해진다.
“여태까지는 삼황계가 상임위원국으로 성전의 군사를 움직였지만, 이번에는 12개 국가가 비상임위원국의 자격으로 경쟁을 하게 돼. 콘스탄틴 교황은 거기에 옵저버로 참석하게 될 거야. 지도국이 정해지면 라미교가 공인하는 시스템이지.”
이루키가 말했다.
“지도국이야 힘의 논리에 의해 정해질 테지만, 종교를 이용하면 결과를 빠르게 세상에 흡수시킬 수 있어. 라미교는 성전이 승인한 데다가 교황의 발언도 세계법의 보호를 받으니까. 확실히 탁월한 선택이네.”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신이라는 단어에서 라미교의 신을 떠올릴 정도로 강력했다.
네이드가 말했다.
“라미교 쪽에서도 손해 볼 건 없어. 신흥 종교가 힘을 얻는 세기말의 정세에서 다시 한번 종교계의 패권을 장악할 절호의 기회니까.”
시로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의 힘을 합쳐야 한다는 생각에는 나도 동의해.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네이드가 신문을 넘겼다.
“어느 기사나 감정병 얘기로군. 그나저나 엄청난 정보력이네. 교황청 발행 신문만 봐도 세계 각지의 이슈들을 알 수 있을 정도야.”
그때 시로네의 눈을 사로잡는 기사가 보였다.
“잠깐만. 여기…….”
-루키아 사제는 어디에 있는가?
그런 머리말로 시작되는 기사였고, 시로네는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읽었다.
이루키가 중얼거렸다.
“흐음, 흥미롭군. 신의 정수라 불리기도 했던 교황청의 사제가 파문을 당했다니.”
모태 신앙에서 사제까지 오른 루키아는 교황청 최고의 사제로 이름을 날렸다.
네이드가 덧붙였다.
“엄청나게 뛰어난 능력을 가졌나 봐.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악당들이 전부 무릎을 꿇었으니까.”
시로네는 계속 읽었다.
‘그녀는 악마의 저주를 받았다. 교황청의 3인자 막시무스 대사제에게 부상을 입히는 한편…….’
기사의 말미에 총명한 사제 글렌이 루키아의 유혹에 넘어갔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루키가 말했다.
“동반 도주라. 교황청의 입장에서 쓴 기사이니 100퍼센트 믿을 수는 없지. 사랑의 도피일 수도 있잖아. 상급 사제나 팰러딘은 금혼을 지키는 교리가 있으니까.”
네이드가 말했다.
“하지만 이들이 상급 사제는 아니지. 뭐,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지만. 그런데 시로네, 이 기사가 왜?”
“아는 사람들이야.”
“동시 사건?”
“응. 지금 파라스 왕국에 있어. 진리의 피라미드에 집착하는 이유가 뭔가 했더니…….”
시로네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교황청.
콘스탄틴은 첨탑의 가장 높은 곳에서 교황령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노크 소리가 들리고, 교구관리청의 언론 담당 사제가 방으로 들어왔다.
“교황님, 호외가 배포되었습니다. 이제 조만간 전 세계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 수고했네.”
후광을 받은 교황이 인자한 미소를 짓자 마치 몸에서 빛이 나는 듯했다.
‘세계 최강의 성직자.’
성직자에게 최강이라는 호칭은 이상하지만, 마족이 활개 치는 지금은 달랐다.
‘온 마족을 홀로 상대하실 분이다. 이분이 우리를 신의 길로 인도하실 것.’
콘스탄틴이 말했다.
“호외는 읽어 보았네. 잘 만들었더군.”
“과찬이십니다. 세계보건기구의 지침을 따르기로 공표한 교황님의 큰 판단에 감복할 따름입니다.”
“루키아는…….”
사제가 어깨를 움찔했다.
“내가 원했던 방향과는 조금 다르더구먼. 물론 사제의 실력을 폄하하는 건 아니네만.”
“송구합니다. 하지만 루키아를 편애하시면, 교황청의 권위가 무너집니다. 어쨌거나 그 아이는…….”
“편애?”
실수를 깨달은 사제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괜찮네. 누구나 실수를 하지. 신을 따른다고 해서 우리가 신은 아니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망각하고 살아. 심지어 대사제인 막시무스조차.”
“교황님…….”
아무리 콘스탄틴이라도 교황청 서열 3위의 대사제를 흉보는 건 위험했다.
“하하! 뭐 어떤가? 꾸짖는 건 아닐세. 막시무스도, 루키아도, 심지어 나조차도. 사실 깊이 들어가면 누구 하나의 잘못은 아니지. 복잡한 거야, 삶이란.”
“그렇기에 교리가 있는 것입니다. 신의 뜻을 받드는 것. 루키아는 교리를 어겼고, 파문은 합당했습니다.”
“가엽기도 해.”
콘스탄틴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자네, 왜 신을 믿는가?”
“……네?”
교황의 입에서 나왔다고 하기에는 너무 불경스러운 질문이 아닌가 싶었다.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면 그냥 착하게 살면 되지. 신께서 우리를 창조하셨다고 해도, 그저 감사히 생각하며 우리의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 아니겠나? 그렇다면 우리는 어째서 신을 믿는 것일까?”
비로소 사제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저로서는 잘…….”
“여기가 끝이 아니라는 것.”
콘스탄틴이 말했다.
“끝이 없기를 바라기 때문에 우리는 신을 믿는 것이야. 찰나의 공허함을 깨닫고 영원을 도모하는 것. 그게 바로 종교인에게 주어진 책무이지.”
사제는 약간 위축되었다.
“인간은 쉽게 죽음을 망각하지만 우리는 그래서는 안 돼. 성직자란 말일세, 삶이 아닌 죽음을 책임지는 자리야.”
끝이 없음을 확신하는 것.
“자네는 타인의 죽음을 책임질 수 있는가? 과연 나는, 인류의 죽음을 책임질 수 있을까?”
책임지는 자가 신의 쓰임을 받게 될 것이다.
“루키아가 보고 싶군. 글렌도.”
잠시 우물거리던 사제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다음 호에 기사를 내겠습니다.”
나그낙 오아시스.
루키아의 비명 소리가 얼마나 섬뜩했던지 식당에 남아 있는 자들은 없었다.
오직 시로네와 아레스 일행만이 초조한 심정으로 그녀의 결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 돼. 고통이 안 멈춰. 루키아는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을 거야.”
자신의 신앙을 증명하기 위해.
“엔젤을.”
아레스가 뭔가를 하기도 전에 글렌이 주사기를 낚아채 약물을 주입했다.
“글렌, 나는…….”
“미안해, 루키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던 글렌은 루키아의 가는 팔뚝에 바늘을 가져다 댔다.
“싫어!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