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56
고통 속에서도 강하게 거부하던 그녀가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숨을 토해 냈다.
“허어어억!”
찬란한 빛이 그녀를 감싸더니 얼굴에 튀어나온 혈관들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시, 시로네.”
아레스가 뒤로 물러서고, 시로네를 돌아본 글렌이 놀란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야, 야훼.”
미라클 스트림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최후의 성전 (5)
글렌이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루키아 씨는 당분간 괜찮을 거예요.”
“그러니까 뭐 하는 거냐고! 어째서 그녀가 참았는지 알아? 고통 때문에 이러는 거라고 생각해?”
“엔젤보다는 낫잖아요.”
“틀렸어! 차라리 마약을 하고 말지, 이단에게 도움을 받는 건 라미교에서는 절대로 해서는……!”
“글, 글렌.”
전과 달라진 루키아의 목소리에 글렌은 어깨를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이제…… 괜찮아졌어.”
평온을 되찾은 그녀의 눈빛 앞에서 글렌은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왜지?”
그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나도 알고 있어. 야훼가 감정병을 치료하는 기준은 세계를 위해 싸우는 자들이라는 걸.”
그런 기준조차 없다면 온 세상의 사람들이 야훼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라미교의 사제야. 너를 돕는다는 건 믿음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부정할 필요 없어요. 저는 그저 루키아 씨의 감정병을 억제한 것뿐이니까요.”
“네 기준을 파괴했잖아! 루키아를 구하면 다른 사람들도 구해야 돼! 하지만 그럴 수는 없겠지. 온 세상 사람들이 너를 비난하게 될 거라고!”
“그럼 비난을 받으면 되죠.”
글렌의 표정이 멍해졌다.
“중요한 건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거지, 제 규칙을 지키는 게 아니에요. 누군가에게 사랑받거나 인정받기 위해 이런 일을 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그저…….”
원하는 것은 하나.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사도는 경건한 표정으로 시로네를 지켜보고 있었고, 글렌은 고개를 숙였다.
“젠장…….”
그의 어깨에 손이 올라왔다.
고개를 돌리자 아레스에게 부축을 받은 루키아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표정이 말해 주고 있었다.
“미안하다.”
글렌이 다시 시로네를 돌아보며 말했다.
“조급함에 이성을 잃은 모양이야. 설명할 기회를 줘. 나와 루키아는…….”
“알고 있어요. 교황청 공식 신문에 두 분의 기사가 났더군요. 파문당했다고 들었어요.”
루키아가 말했다.
“저와 글렌은 사랑하는 사이예요. 하지만 상급 사제가 되기 위해서는 금혼의 교리를 지켜야 하죠. 막시무스 대사제님은 저를 타일렀어요. 글렌과 헤어지라고. 저는 화가 났고, 그러다가 그만…….”
그녀가 왼손을 들었다.
“새로운 능력이 발동되어 버린 거예요.”
“능력?”
글렌이 설명했다.
“루키아는 교황청에서도 견줄 자가 없을 정도로 강력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 그래서 대사제님이 나를 싫어하신 거지. 루키아의 미래가 나 때문에 끝장나게 생겼으니까.”
“글렌.”
“원망하는 건 아니야. 나라도 그랬을 테니까. 어쨌든 루키아는 굉장한 능력이 있어. 신의 오른손이라 부르지.”
루키아가 시로네에게 다가왔다.
“보여 드릴게요.”
프리지와 아르간이 다가가려 했으나 시로네가 말렸다.
“괜찮아. 나도 알고 싶어.”
“저의 오른손은…….”
루키아가 시로네의 손목을 부드럽게 움켜쥐자 온몸의 힘이 쭉 빠져나갔다.
“어?”
루키아가 시로네의 등을 받치고 바닥에 눕혔다.
“모든 생물체를 극한까지 이완시킵니다.”
구속은 아니었다.
‘기분 좋게 탈진한 느낌. 손가락조차 움직이지 않지만, 어떤 불안도 없다.’
“여태까지 누구도 이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어요. 그중에는 야차나 반야도 있었습니다.”
확실히 강력했다.
“하지만 당신이라면 빠져나올 수 있을 거예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시로네가 손을 들어 올리자 글렌의 눈이 커졌다.
“어, 어떻게?”
루키아가 시로네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학자들은 규정외식이라고 하지만, 라미교에서는 이런 현상을 이적이라 칭해요.”
둘 다 믿음의 영역이었다.
“저는 대상의 마음을 만질 수 있습니다. 마치 물 같은 느낌이에요. 거기서 결정되죠. 정신과 달리 마음에는 방어벽이 없어서 신의 오른손을 이기기 위해서는 마음, 그 자체가 강해야 하는 거예요.”
루키아는 씁쓸했다.
“당신의 손목을 잡는 순간, 솔직히 아찔했습니다. 물을 만지는 게 아니라 바다에 잠기는 기분이었어요.”
야훼의 마음을 느꼈다.
“저는 이 능력으로 수많은 악인들을 교화했습니다. 하지만 나쁜 마음이 깃들었는지, 막시무스 대사제님에게 혼나는 동안 새로운 능력을 각성했죠.”
루키아가 반대편 손을 들었다.
“악마의 왼손.”
라미교의 사제가 굳이 악마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이었다.
“제 왼손에 닿는 생물체는 스스로 몸을 뒤틀어 구겨져 버립니다. 빠르게 손을 떼기는 했지만, 막시무스 사제님은 팔꿈치가 부러졌어요.”
“……굉장하군.”
솔직한 대답에 루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능력의 강도는 신의 오른손과 맞먹습니다. 저는 악마라는 이름을 부정하지 않을 거예요. 스스로도 수치스럽고, 구역질이 나지만…….”
“그런 능력이니까.”
“네. 규정외식과 마찬가지로 이적 또한 마음의 작용입니다. 그 대가로 파문을 당했지만 저는 확신해요. 제가 이 왼손의 악마를 굴복시킬 수 있다면, 제 믿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그런 사연이었다.
“야훼, 아니, 시로네 씨. 믿는 것은 다르지만 당신의 마음은 저와 다르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니 부디…….”
그녀가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다.
“진리의 피라미드에 데려가 주세요.”
아레스의 수염이 입가를 따라 올라가고, 글렌이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충분히 도움은 될 테니까.”
카니스와 아린, 줄루와 시선을 교환한 시로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요.”
***
자이브 왕국.
성전을 2일 앞두고 세계 각지의 지배자들이 속속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내일이 전야제군.”
왕좌에 앉은 자는 서른 중반의 거구로, 멋스럽게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강철왕 기스.
국왕 메이어를 숙청하고 선거를 통해 자이브의 왕이 된 남자였다.
“내가 세계의 왕이 되는 날이기도 하고.”
자이브의 1년 국내총생산량은 3,224조 골드, 그중 국방비는 44조 골드였다.
공인 제1급 마법사의 숫자는 9명, 또한 시대의 부처 나네를 배출한 국가이기도 했다.
“야! 왕!”
쾅 하고 문이 열리면서 인간보다 키가 훤칠하게 큰 대천사가 들어왔다.
분해의 대천사, 사티엘이었다.
“대체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것이냐. 나는 빨리 이카엘을 분해시켜 버리고 싶다고.”
기스의 눈에 잔잔한 파문이 일었다.
“내일이면 바깥출입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복수를 위해 참는다고 생각하십시오.”
“흥, 애초부터 인간과 협상하는 게 아니었어. 내가 거느린 천사들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대상을 파괴한들, 그 안에 담긴 것까지 파괴할 수는 없지요. 저를 믿으십시오. 아마 이카엘은 피눈물을 흘리게 될 테니까요.”
이카엘이 견딜 수 없는 유일한 한 가지라면 시로네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인간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고, 사티엘이 자이브와 손을 잡은 이유였다.
‘일이 잘 풀리고 있어.’
성전이 자이브에서 열리는 것도 기존 삼황계가 선뜻 승인을 했기 때문이다.
‘나름의 첩보가 있겠지. 하지만 안다고 해서 달라질까? 천사는 계약을 어기지 않아.’
이미 자이브의 무력이었다.
“전하, 참가국들이 도착하고 있습니다. 현재 토르미아, 카샨, 코로나가 국경을 넘었습니다.”
“흐음.”
세계의 중심이 된 기분이 나쁘지 않았고, 기스는 벌떡 몸을 일으켜 세웠다.
“좋아. 마중이라도 가 볼까?”
***
“입장! 토르미아 왕국!”
자이브의 거대한 외성문 안으로 말을 탄 토르미아의 사절단이 들어갔다.
국왕 포니의 곁에 시로네가, 그 너머에는 근위대 ‘강신’이 방어벽을 구축했다.
근위대장 오젠트 라이가 지시했다.
“저격에 유의해라. 수상한 낌새가 보이면 즉각 대응해. 결과는 내가 책임진다.”
“네.”
부하들이 매섭게 주위를 돌아보는 가운데 옆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입 대장이 기합이 바짝 들었구먼.”
토르미아의 싱크탱크, 용뢰의 수장인 메르코다인 알비노가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초반부터 힘 빼지 말게. 성전 참가국 전부 전쟁 중이야. 외줄 타기를 하면서 앞사람을 밀지는 않지.”
라이는 흔들리지 않았다.
“토르미아는 상대적으로 약소국입니다. 무슨 일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죠. 걱정하지 마십시오. 힘이 빠지는 일은 절대로 없을 테니까요.”
“든든하구먼.”
토르미아 왕국의 1년 국내총생산은 1,700조, 그중 국방비 규모는 24조 골드였다.
공인 제1급 마법사는 3명.
하지만 시대의 박애 야훼가 있고, 시대의 극선 미로가 있으며, 원소 폭탄의 기술 또한 독점 중이었다.
‘지도국이라.’
근위대 너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 알비노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크크크, 이 정도면 해 볼 만한 도박 아닌가?’
한편 시로네는 확 트인 전방에서 코로나 왕국의 행렬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상아탑의 주민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었고, 개중에는 별들의 얼굴도 보였다.
‘미네르바 씨는 안 보인다. 바알을 막아 내느라 여력이 없는 걸까? 아니면…….’
씽을 견제하는 것일까.
“시로네.”
루피스트가 플루와 단테를 이끌고 다가왔다.
“가올드는?”
미로와 가올드가 토르미아에 합류한다면 그 자체로 전세가 변할 터였다.
“연결되지 않고 있어요. 조금 더 기다려 보죠. 만약 죽었다면 저도 여기에 없을 테니까요.”
“……그렇군.”
시로네는 뒤를 돌아보았다.
관리의 행렬 뒤에 군대가, 그리고 그 너머에 예인들이 뒤를 따르고 있었다.
궁중 악사인 레이나가 대표로 이끌고 마야의 옆에 케이든도 보였다.
‘쿠안 씨는 어디 간 거야? 교사 행렬에 있는 건가?’
인류 미래 포럼에 참석하는 교사들 중에 시이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성격상 만나러 가지는 않았을 텐데. 하긴, 어쩌면 내 옆에 있는지도 모르지.’
비대칭의 극의는 그만큼 탁월했다.
시로네의 생각과 다르게, 쿠안은 토르미아 행렬을 벗어나 높은 상공에 있었다.
“…….”
눈에 담긴 것은 카샨 제국의 행렬, 우오린을 지키고 있는 풍장이었다.
‘발목을 받으러 가마.’
근위대장 키도가 눈썹을 꿈틀했다.
“아까부터 짜증 나네. 누가 위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아. 끌어내릴까?”
풍장이 침묵하는 가운데 우오린이 말했다.
“놔둬. 어차피 못 잡을 거야.”
“너, 이제는 대놓고 나를 무시하는데, 이럴 거면 근위대장은 왜 시킨 거야?”
“호호호! 심심하니까. 이번 성전에서 스트레스 받을 일이 많을 것 같거든.”
키도가 눈을 부릅뜨는 그때 간도가 말했다.
“여황님, 저기.”
내성으로 들어가는 거대한 광장에서 토르미아, 코로나, 카샨이 충돌했다.
‘누가 먼저 들어가느냐.’
코로나의 국왕 우들라이가 말했다.
“허허, 민망하군요. 소모적인 자존심 싸움은 접어 두고 도착한 순서대로 입장하는 게 어떨지?”
코로나가 5초 정도 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