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58
람파 또한 알고 있었다.
‘상아탑의 별은 초국적인 존재. 총이가 누군가를 존경한다면 말릴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번만은 예외였다.
‘우리는 중립을 선언하고 상아탑을 나온 상태. 이곳에서 야훼에게 특별한 감정을 드러내면 상아탑마저 정치판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어.’
람파는 마음으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오대성님. 훗날 이 노인네를 꾸짖어 주시길.’
물론 시로네는 그들의 사정을 이해했고, 총이가 시선을 피하는 것을 보고도 담담했다.
‘람파 씨. 총이. 쯔오이. 무쏘. 마도 10인회. 모두 시스템감찰부 소속이다.’
다른 부서의 별과 위성은 보이지 않았다.
‘시스템감찰부의 수장은 3성급인 람파 씨. 오대성 간의 알력 싸움에서 버티기는 힘들었을 테지. 그럼에도 중립을 선택했다는 것은…….’
미묘한 뉘앙스였다.
‘감사합니다.’
똑같은 중립이라도 시스템감찰부의 이탈로 타격을 입은 쪽은 씽일 터였다.
‘람파 씨의 용단으로 균형은 맞춰졌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큼 상아탑 내부의 힘 싸움이 팽팽하다는 거야. 아무래도 내가 가 봐야…….’
코로나의 행렬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한 시로네는 생각에서 벗어났다.
‘아르민 씨.’
광안의 아르민이 케이라와 함께 가고 있었다.
‘그래. 상아탑에는 별만 있는 게 아니다. 주민들의 능력 또한 최상급이지.’
세계 100대 위험인물 중 32퍼센트가 상아탑 소속이었다.
‘구디오 씨네.’
카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물론 이름만 들어도 아는 전문가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지성.’
지성의 나라.
“코로나 왕국! 내성 입장!”
파멸의 시작 (2)
***
자이브 왕국의 내성에서 우오린은 입을 굳게 다문 채 생각에 잠겼다.
“휘이이이.”
그녀의 등에 기대 있는 하비츠가 휘파람을 불며 애스커의 연기를 뿜었다.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군.”
메이레이의 능력, 신의 주파수였다.
“시로네를 봤을 때 너의 소리 말이야. 그건 아마도 고통에 가깝지 않을까?”
우오린이 입을 열었다.
“길을 양보해 달라고 했으면 그렇게 했을 거야.”
“너도 망상을 하나?”
다시 침묵이 찾아온 가운데 하비츠가 말을 이었다.
“처음에 너를 죽이지 않은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기 때문이지. 궁금했어. 그때는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들어 보니, 너는 나와 비슷한 사랑을 하는 것 같군.”
“사랑을 해 본 적은 있고?”
“글쎄.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것이라면, 매일 하지. 아니, 어쩌면 매초일까?”
“…….”
“사람들은 말이야, 어떤 단어가 있으면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하더라고. 사랑도 그렇고, 성공이나 실패랄지, 행복이나 불행이랄지. 그런 단어가 없었을 때는 대체 뭐 하고 살았는지 몰라.”
마약에 취해 눈은 풀려 있었으나 오히려 감정은 평소보다 훨씬 차분했다.
“머릿속에 있는 단어를 전부 지워 봐. 그래도 심장은 뛰고 있고, 육체는 무언가를 원하겠지. 원하는 게 무엇이든, 결국 이루게 될 거야. 정의하지 않으면.”
“그게 배니싱이야?”
“또 그런다.”
하비츠는 자신을 경악의 눈으로 지켜보는 자이브의 관리에게 꽁초를 던졌다.
“단어에 가두려고 드니까 복잡해지는 거야. 생각을 나누면 전체를 느끼지 못하니까. 사랑이 아니어도 되잖아. 중요한 건 그 느낌이 무엇이냐가 아닐까?”
우오린은 씁쓸했다.
‘사탄에게 위로를 받다니. 하긴, 그만큼 내가 타락했다는 뜻일지도.’
무슨 상관일까?
간절한 욕망은 늘 가까이에 있는 법이고, 인간에게 신은 멀기만 한 것을.
“……이룰 수 있을까? 시로네를 향한 내 감정을 정의하지 않으면, 나는 내가 원하는 그 무언가, 그 느낌에 도달할 수 있을까?”
“그럼.”
하비츠가 이루지 못한 욕망은 없었다.
“당연히 할 수 있지.”
하늘을 향해 눈웃음을 짓는 그의 얼굴은 어린아이처럼 순수했다.
“날씨 참 좋다.”
오늘도…….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를.
‘단 1명의 예외도 없이.’
***
교황청이 보이는 광장 분수대에서 시로네와 이루키, 네이드는 고민에 빠졌다.
네이드가 말했다.
“몰래 들어가는 건 어때? 시로네의 정체가 밝혀지면 성기사가 움직일 거야. 그때 당해서 알겠지만, 그 녀석들하고 얽히는 건 질색이라고.”
이루키가 턱을 괴었다.
“흐음. 하지만 교황청 내에서도 그럴까? 내가 알기로 라미교는 딱히 호전적인 교리는 아니야. 밖에서야 어떨지 모르지만, 적어도 대외적인 체면은 지키는 종교지.”
시로네가 말했다.
“그것도 경우마다 달라. 라미교가 타 종교를 대하는 태도는 둘로 나뉘어. 사이비와 이단. 크리아가 아닌 다른 신을 믿는다면 라미교 입장에서는 사이비지.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는 방치하는 편이야. 반면에 나는…….”
사이비가 아니다.
“이단으로 치부되지. 즉, 자신을 신이라 칭하는 종교 말이야. 이런 경우 라미교는 언제나 공격적으로 제압해 왔어.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거야.”
“하지만 너는 신이라고 말한 적도 없고, 무엇보다 종교를 세운 것도 아니잖아.”
이루키가 말했다.
“평판이 문제라는 거로군. 이미 수많은 사람이 시로네를 메시아로 여기고 있으니까. 다른 신을 믿는 것은 가짜라고 치부하면 그만이야. 하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인간이 신으로 추앙을 받는다면…….”
비로소 네이드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라미교에 치명적이라는 거지. 유일신에 대한 교리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루키가 동의했다.
“그래서 성기사들이 시로네에게 유독 적대적인 거였군. 종교가 다를 뿐이라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위험하겠어.”
분명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밝히는 건 그렇잖아? 여기서 한판 붙을 수도 없고 말이야.”
이루키가 검지를 들었다.
“가명을 쓰는 것은 어떨까? 교황의 관심을 끌 만한 인물이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지만.”
“정면 돌파.”
시로네가 결정을 내렸다.
“작전을 짜면 콘스탄틴 교황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을 거야.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내 주장을 관철할 수 없지. 게다가 교황은 이제 곧 성전으로 떠나. 나는 그 전에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
네이드가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았어. 그럼 정식으로 면담을 요청하자. 성기사가 덤비면 내가 악당이 되지 뭐.”
교황청 안에서 그들은 교구관리청과 성기사청의 중앙에 있는 사무처를 찾았다.
“실례합니다.”
사제가 미소로 반겼다.
“오서 오십시오, 크리아 신의 종이여. 성청에는 무슨 일로 오셨나요?”
네이드가 말했다.
“콘스탄틴 교황님을 만나러 왔는데요. 성전으로 가시기 전에 꼭 뵙고 싶어서요.”
“네?”
잠시 눈을 깜작이던 사제는 시로네 일행의 나이를 확인하고 머리를 긁적였다.
‘하긴, 그럴 나이지.’
라미교의 신자 중에 혈기 왕성한 청년들은 교황을 알현하기 위해 대륙을 횡단했다.
“죄송한 얘기지만 교황님은 아주 바쁘신 분입니다. 면담을 하려면 따로 절차를 밟아야 하지요. 교구관리청에 부서가 마련되어 있으니…….”
“저는 시로네예요.”
사제는 처음에 이해하지 못했다.
“콘스탄틴 교황하고 대화를 하고 싶어요. 야훼가 면담을 요청했다고 전해 주세요.”
사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야, 야훼?”
동시에 통합사무처에 있는 사제들이 전부 벌떡 일어나 시로네를 보았다.
“뭐? 야훼라고?”
물론 악인은 아니다.
살인자도, 테러리스트도 아니건만, 몇몇 사제들의 눈매는 곱지 않았다.
통합사무처의 장인 대사제가 다가왔다.
“흐음.”
소문으로 들은 인상착의와 시로네의 얼굴을 대조한 그가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인 것 같다.’
목숨이 2개가 아니고서야 교황청에서 그런 거짓말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대가 정말로 야훼라면, 이곳이 어떤 곳인지도 알고 있을 테지. 선전포고인가?”
“싸울 생각은 없어요. 그럴 이유도 없고요. 다만, 교황에게 전할 말이 있어서 왔습니다.”
교황을 평대하다니.
‘이런 오만 방자하기 짝이 없는……!’
대사제의 눈에 노기가 들었으나 시로네도 이번만은 물러서지 않았다.
‘콘스탄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니,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딱 잘라 구별할 수 있는 인간이 세상에 존재할까?
‘설령 있다고 해도.’
과연 우리는 그것을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가?
‘그때가 되면 이미 인간을 초월한 개념이다. 미로 씨가 극선이고, 하비츠가 극악이듯이.’
물론 시로네도 포함이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만나게 해 주세요. 어차피 저도 성전에 참석하고, 그곳에서도 교황은 만날 수 있습니다. 굳이 지금 찾아온 이유는, 교황청에서 처리해야 할 안건이 있기 때문입니다.”
“크흠.”
성전에 대한 정보는 교황청이 더 자세히 알고 있기에 반박할 수 없었다.
“일단 고하기는 하겠네. 하지만 교황님이 거절하시면 그때는 우리도 어쩔 수 없네.”
“네. 부탁드립니다.”
대사제의 지시를 들은 2명의 사제가 복도로 뛰어가더니 좌우로 갈라졌다.
‘2명.’
교구관리청과 성기사청.
‘곱게 보내 줄 리는 없지. 어쨌든 교황은 나를 만날 것이다. 성전에서 권위를 유지하려면 반드시 나와 타협을 해야 할 테니까.’
문제는 다음이었다.
‘교황은 내 물음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 인간다운 대답이라면, 나는 인정할 거야. 하지만 만약…….’
그 대답이 인간을 부정하는 것이라면.
‘피를 보는 수밖에.’
성기사청.
신탁관리부 소속의 상급 성기사 세이나는 상앗빛 갑옷을 걸치고 거울 앞에 섰다.
‘신이시여.’
금색의 단발에 청초한 얼굴은 신이 빚었다고 해도 믿을 만큼 아름다웠다.
‘저를 벌하여 주옵소서.’
하지만 성기사인 그녀에게 육체는 신앙을 담고 있는 껍데기에 불과했다.
‘제 안의 의심을 지우소서, 신이시여.’
신성력이 약해졌다.
‘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특별히 달라진 것도 없는데. 왜 나는 내 삶을, 내가 이룬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된 것일까?
처음 변화를 느낀 것은 야훼를 만나고 나서 교황청에 복귀할 때였다.
‘시로네라고 했지.’
시옥의 유혹에 무릎을 꿇었을 때, 야훼가 달려와 그녀에게 세례를 가했다.
‘나는 순교를 결심했었다. 죽음은 두렵지 않았어. 그런데 어째서…….’
눈물을 흘렸을까?
시로네의 손에 통렬하게 이마를 강타당하는 순간, 끔찍한 악이 통째로 빠져나갔다.
‘어쩌면…….’
빠져나간 것이 악마만이 아니라면?
“아니야!”
세이나는 버럭 소리쳤다.
“그 녀석에게 내 마음이 흔들렸을 리가 없어. 그래, 이건 시옥에게 굴복한 대가야.”
신앙의 변절자가 되느니 악에 당한 패배자가 되는 게 심적으로 편했다.
“하지만…….”
당시에 눈앞에 밀려들던 그 빛의 찬란함이 떠오르자 그녀는 다시 멍해졌다.
“세이나 씨, 안에 계세요?”
“아! 네!”
문밖에서 들린 소리에 성검을 장착한 세이나가 황급히 몸을 돌렸다.
문을 열자 턱수염을 짧게 기른 30대 초반의 미남자가 웃고 있었다.
“레온 씨.”
같은 부서의 상급 팰러딘이었다.
“이번 주 순찰조에 세이나 씨와 제가 당첨되어서요. 너무 빨랐나요? 아직 5분 남았는데.”
방에서 5분이면 점호에 약간 늦은 시간이었다.
“아, 아뇨. 죄송해요.”
세이나의 사교성은 그리 떨어지는 편이 아니었으나 레온은 항상 어색했다.
이유는 아마도…….
“세이나 씨와 순찰조에 속한 게 얼마 만인지. 이거 아무래도 크리아 신께서 제 기도를 들어주신 것 같은데요?”
가볍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