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59
‘나쁜 사람은 아니야. 다만…….’
은근히 남녀 사이를 강조하는 레온의 언사가 세이나에게는 몹시 거슬렸다.
‘성기사는 혼인이 금지되어 있다. 우리의 육체와 영혼은 이미 신에게 바친 것.’
눈치가 없지는 않은지 레온이 화제를 바꾸었다.
“세이나 씨의 보고가 들어간 이후로 성기사 훈련 프로그램이 부활한다고 하더군요. 부하들의 원성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하하. 우리 때는 정말 살벌했는데요.”
‘그랬었지.’
신의 종이 되기로 한 어린 시절부터 세이나는 혹독한 훈련을 거듭했다.
또한 그것은 분명 그녀의 자부심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야훼에게 세례를 받은 이후로는 그런 일련의 과정이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그래, 이 의심이 나를 약하게 만드는 거야. 정신 차려, 세이나. 너는 팰러딘이라고.’
생각에 잠긴 세이나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는 레온의 표정은 황홀했다.
‘정말 멋진 사람이다.’
성기사는 혼인이 금지되어 있지만, 일반 평신도에게까지 교리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만약 내가 성기사 직위를 포기한다면 세이나 씨는…….’
그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그때, 복도 저편에서 사제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테미 씨? 무슨 일이에요?”
“아, 세이나 님! 레온 님!”
무릎을 짚고 가쁜 숨을 내쉬던 사제가 고개를 벌떡 쳐들고 소리쳤다.
“큰일 났습니다! 지금 교황청에…… 그러니까 이 신성한 교황청에……!”
레온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침착하게 말씀해 보세요. 무슨 일이에요?”
“야훼가 왔습니다! 그것도 당당하게 정문으로 쳐들어왔어요! 교황님을 뵙겠답니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말에 레온이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무슨 소립니까?”
그 순간 뒤에서 들린 거친 숨소리에 고개를 돌린 그는 눈을 크게 떴다.
“세이나 씨?”
그녀의 얼굴이 홍시처럼 빨갰다.
“야훼가…….”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주체할 수 없는 그녀가 멍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여기에 왔다고요?”
빛의 파동이 잔상처럼 눈앞에 아른거렸다.
파멸의 시작 (3)
***
후드를 뒤집어쓴 아담한 체구의 여성이 교황청이 보이는 광장에 도착했다.
캔들러 에덴.
고대 도시의 명칭을 이름으로 가진 그녀는 사랑을 실천하는 요라였다.
후드를 벗은 에덴은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서 있는 탑의 꼭대기를 주시했다.
‘저기는 아니야.’
천천히 시선을 내린 그녀는 교황청의 입구를 지나 보이지 않는 땅속을 음미했다.
‘지하.’
집중하지 않으면 느끼지 못할 정도로 옅지만 분명 악의 냄새가 풍겼다.
‘내 느낌이 맞았어. 하지만 어째서 교황청에 저런 기운이 도사리고 있는 것일까?’
로 하비츠의 마음의 소리를 들은 이후 에덴은 악몽에 시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단테와 함께 마족을 추격하던 중에 이상한 소문을 듣게 되었으니.
‘사탄교.’
창시자는 기요르기, 또한 그는 놀랍게도 야훼가 버린 감정으로 이루어진 마족이었다.
단테와 헤어진 그녀는 사탄교를 조사했고, 그렇게 악의 기운을 따라 도착한 장소가 바로 이곳.
“교황청.”
라미교는 선의 의지를 받든다.
성기사는 마족과의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고, 사제들은 힘든 자들을 보살펴 왔다.
“…….”
무수한 의문을 뒤로한 채 에덴은 후드를 눌러썼다.
‘내 눈으로 확인하겠어.’
사탄의 정신적 기반인 사탄교를 궤멸시키고 끔찍한 악몽에서 벗어날 것이다.
‘요르 신이시여.’
원형 테두리 안에 있는 십자가 펜던트에 입을 맞춘 그녀가 교황청으로 향했다.
‘저를 지켜 주옵소서.’
***
“이곳입니다.”
시로네 일행을 교황실 앞까지 안내한 대사제의 표정은 여전히 찝찝했다.
‘대체 어쩌시려고.’
세계 3대 종교인 라미교, 요르교, 테라포스교.
‘요르교는 조직을 키우지 않고, 테라포스교는 테라포스 교황청과 함께 몰락했다. 소수의 과격분자들이 테러를 일으키지만 위험한 수준은 아니야.’
라미교만이 혼탁한 시대에 굳건했다.
‘이것이야말로 크리아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언제부턴가…….’
야훼라는 이름이 들리기 시작하더니,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소문이 퍼져 나갔다.
‘처음부터 싹을 잘랐어야 하는데.’
이번 성전에서 세계 지도국이 결정되면 라미교의 교황이 공증을 하게 된다.
‘세계 유일의 종교가 될 수 있는 기회.’
그 전대미문의 업적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야훼가 교황청에 찾아온 것이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교황님 앞에서는 경건하게 행동하십시오. 믿는 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언사를 함부로 하면, 라미교도 교리에 따라 행동할 것입니다.”
네이드가 발끈했다.
“흥! 어차피 그쪽도 성기사들을…….”
“네이드.”
시로네가 말렸다.
“알았어요. 짧은 대화일 겁니다. 원하는 대답을 들으면 조용히 돌아가겠습니다.”
대사제는 더욱 불안했다.
‘대체 무슨 대답을 듣겠다는 것인가?’
교황실 앞에서 서성이는 것도 좋은 풍경은 아니기에 그가 점잖게 노크했다.
“교황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들라 하게.”
중후한 목소리에 이어 문이 열리고, 사람 좋은 인상의 콘스탄틴이 보였다.
시로네가 당당하게 들어가고, 경계하는 이루키와 긴장한 네이드가 좌우에 포진했다.
“흐음.”
시로네를 한참 바라보던 콘스탄틴이 미소를 지었다.
“자네가 시대의 박애, 야훼로군. 소문은 들었지만 실제로 보니 훨씬 어려 보이는구먼.”
“저도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마족 전쟁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죠. 감사드립니다.”
콘스탄틴이 자리를 권했다.
“감사랄 것까지 있겠나? 자네가 한 일에 비하면 부끄럽기만 할 따름일세. 앉지.”
시로네는 의자에 앉으며 생각했다.
‘명예욕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하긴…… 젊을 때부터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지.’
오메가를 통해 그의 청장년 시절을 알고 있었다.
‘힘의 교황.’
실제로 콘스탄틴의 신성력은 교황청 내에서도 수위를 다툴 정도로 강력했다.
‘악의 기운에 흔들릴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곳에서는…….’
사탄의 냄새가 나는 것일까?
“그래, 야훼여.”
교황이 입을 열었다.
“성전이 열리기 전에 나를 보고 싶었겠지. 어떤가? 내가 자네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가?”
“다른 사람을 평가할 자격은 없습니다. 저는 다만 궁금한 게 있을 뿐이에요.”
“그런가? 조금 아쉽군.”
평생을 통틀어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았기에 시로네의 답변이 오히려 서운했다.
“좋아, 뭐든지 물어보게. 자네도 알겠지만 이제 곧 성전으로 출발해야 해서.”
“무엇을 숨기고 있죠?”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교황은 입을 다물었으나 표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흐음. 무엇을 숨기고 있냐고? 내가 자네에게? 어디 보자…… 무엇을 숨겼을까?”
방을 돌아다니던 교황이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어린 시절 친한 친구의 장난감을 부순 적이 있지.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네. 아, 그렇군. 사춘기 시절이었어. 옆집 소녀를 짝사랑했지. 신의 종으로서 할 짓은 아니네만, 타락한 생각을 하고 만 적이 있네. 그리고…….”
“상관없어요.”
시로네가 말했다.
“인간은 누구나 욕망에 흔들리죠. 제가 듣고 싶은 건 그보다 본질적인 문제예요.”
“잘 모르겠군. 설명을 해 주겠나?”
“성안.”
교황의 눈썹이 꿈틀했다.
“순교 코드. 라미교의 성기사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훈련을 받는다고 들었어요.”
콘스탄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야훼여, 나는 자네를 이해하려고 했네. 그런데 어찌하여 교리를 논하려고 하는가?”
“논하는 게 아니라 묻는 겁니다.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어린 시절 친구의 장난감을 부순 것은 똑똑히 기억하면서, 왜 거기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죠?”
“잘못한 게 없으니까.”
콘스탄틴은 단호했다.
“라미교는 악에 맞서 싸워 왔네. 성기사는 그 선봉에 있는 자들이지. 그들을 훈련시키는 게 뭐가 문제지? 자네가 기어코 트집거리를 하나 물었는지는 모르겠네만, 라미교의 교황으로서 교리에 대해 의문은 없네.”
“그렇다면 저도 라미교를 인정할 수 없어요.”
교황의 얼굴이 더욱 구겨지자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가구가 흔들렸다.
‘엄청나다.’
본래 악에 대항하는 기운임에도 무정한 존재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위력.
‘어지간한 마족은 그냥 짓눌려 버리겠어.’
교황이 말했다.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것이 자네와 나의 공통된 숙제가 아니었던가? 이러는 이유가 뭔가? 싸우는 방법마저 자네를 따라야 한다는 것인가?”
“저는 제가 태어나기 이전의 모든 역사를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 역사에는 라미교도 있어요.”
“…….”
“어떤 신을 믿든 상관없어요. 종교란 기본적으로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지만 성기사는 아닙니다. 종교가 아니에요. 라미교가 그들에게 한 일은…….”
시로네가 말했다.
“세뇌예요.”
어쩌면 교황 또한 예외가 아닐 터였다.
“가혹한 훈련을 받고, 정신을 무장하고, 그렇게 해서 얻은 강력한 신성력으로 악을 무찌르고. 라미교는 그렇게 성장해 온 것 아닌가요?”
“수많은 사람을 구했지. 악으로부터 세상을 지켰어. 그게 그렇게 잘못된 일인가?”
“가장 큰 잘못은,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잘못이라고 생각할 수조차 없게 만든 거예요. 그게 세뇌입니다.”
“인간은 약해!”
교황이 소리쳤다.
“온 세상에 악이 득시글거리고, 그들의 유혹은 너무나 달콤하지. 거기에 맞서 싸우려면 우리도 필살의 무언가가 있어야 하지 않나. 악을 이길 수 있는 신념을, 정신을 갖지 못하면 전부 끝장이란 말이야.”
“그런 생각이…….”
시로네가 바닥을 가리켰다.
“신의 성지라는 이곳에 악을 부른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이해하지 못한 교황은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모욕을 당한 기분이었다.
“교황청에 악이 있다고?”
“인간은 약해요. 욕망에 쉽게 흔들리죠. 하지만 강제로 억누르려고 하면 더 큰 악의 유혹에 넘어가게 되는 겁니다. 오히려 악을 키우는 거예요.”
“이제 알겠군.”
교황은 차분해졌다.
“내가 자네를 착각한 모양이네. 고작 이런 거였나? 다른 종교의 교리를 물어뜯으며 인정을 받은 건가?”
“성전에 가지 마세요.”
시로네는 단호했다.
“이곳에 남아서 라미교가 끌어들인 악을 확인하세요. 그게 순리입니다.”
“시간이 되었군.”
아예 귀를 막아 버린 듯 콘스탄틴은 시로네의 말에 무반응으로 일관했다.
회중시계를 주머니에 쑤셔 넣은 그가 문을 열기 직전 고개를 돌렸다.
“자네의 계획은 실패했어. 나는 성전에 가서 세상을 위한 일을 할 생각이네. 자네가 내 뜻에 동참한다면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게야. 하지만 라미교를 흠집 내서 이득을 취할 생각이라면 그때는 내 명예와 신념을 걸고 맞서 싸워 주겠네.”
쿵 하고 문이 닫혔다.
교황실에 덩그러니 남은 세 사람은 대화를 복기할 겨를도 없이 바짝 긴장했다.
“……살벌하네.”
문밖에서 느껴지는 살기였다.
“시간을 끌면 방으로 쳐들어올 거야. 어떡하지? 한판 붙을까? 아니면 도망쳐?”
“지금 떠날 수는 없어.”
시로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황의 입장은 알았으니 나라도 확인해야겠어. 교황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네이드가 물었다.
“그런데 정말 이곳에 악이 있는 거야? 교황은 느끼지 못하는 것 같던데.”
“교황청이니까. 악을 감지하는 건 율법의 시소야. 왜, 물속에 오래 있으면 온도에 적응하지만, 이제 막 들어온 사람은 차갑거나 뜨겁다고 느끼잖아.”
이루키가 말했다.
“외부인이라서 더 민감한 거로군.”
“응. 게다가 강력한 악일수록 악의 기운은 옅어져. 영리하기 때문이지. 하비츠는 아예 인지도 못 하니까.”
노크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