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6
리안이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온 사람은 빈센트였다.
끌어안는 순간 술 냄새가 확 풍겼다. 어지간히 많이 마신 모양이었다.
“어이쿠! 우리 아들 왔구나!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으, 술 냄새. 갑자기 어떻게 된 일이에요? 왜 리안이 우리 집에 있어요?”
“너를 보려고 2일 동안이나 머물렀단다. 나무하는 것도 도와주고 사냥도 같이 다녔지. 리안도 즐거웠을 거야. 그렇지 않니, 리안?”
“하하하! 물론이죠, 아버님! 역시 진정한 사나이는 사냥을 할 줄 알아야죠!”
시로네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가 아는 아버지는 설령 아들의 친구라도 귀족에게 함부로 대할 사람이 아니었다. 도대체 2일 동안 무슨 의기투합을 했기에 점심시간도 되기 전부터 술판을 벌이고 있는 것일까?
시로네는 수염을 비벼 대는 빈센트의 품에서 빠져나와 리안에게 향했다.
“너 연락 두절이라면서? 본가에는 들렀다가 온 거야?”
“아니, 본가에 왜 가? 이곳이 바로 내 주군의 집인데. 안 그렇습니까, 아버님?”
시로네는 즉각 간파했다.
“웃기는 소리 하네! 너 또 무슨 사고 쳤지?”
“내, 내가 무슨 사고를 쳐?”
아닌 척 잡아떼지만 리안의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집에 안 가는 게 아니라 못 가는 것이었다.
시로네는 한숨을 내쉬며 거실로 향했다.
‘하아, 이게 아닌데…….’
고대하던 상봉이 술판으로 끝나다니.
하지만 전보다 야윈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한편으로는 울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시로네 왔구나. 이리 오렴, 내 새끼.”
올리나는 포근한 품으로 시로네를 끌어안았다.
역시나 세상에 믿을 건 엄마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며 시로네는 비로소 취향에 맞는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엄마, 저 없는 동안 고생 많으셨죠? 죄송해요.”
“고생은 무슨. 오젠트 가문에서 많이 도와줬단다.”
올리나는 시로네의 등을 토닥이는 한편 남편을 흘겨보았다. 반년 만에 아들이 왔는데 술에 취해 있는 꼬락서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손님(4)
눈치 없는 리안이 한술 더 뜨며 말했다.
“아버님, 이럴 것이 아니라 지금 바로 나무나 하러 가시죠. 시로네가 온 기념으로요!”
“푸하하! 그럴까? 좋아, 사나이들 셋이서 제대로 한번 불태워 보자!”
올리나의 눈이 샐쭉해졌다.
“여보! 술 마셨으면서 무슨 나무예요? 일단 들어가서 잠이나 자고 와요.”
“엄마, 괜찮아요. 갔다 올게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회포를 푸는 것도 괜찮을 듯싶었다.
올리나는 안심이 되지 않았다. 빈센트가 술이 세기는 하지만 취한 상태에서 산을 오르는 건 난다 긴다 하는 산꾼에게도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괜찮겠니? 그러다가 다치면 어쩌려고?”
“제가 있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점심 먹기 전까지는 돌아올게요.”
예전 같으면 올리나의 말에 따랐겠지만 이제는 시로네도 책임질 능력이 있었다. 울크들과 맞서 아이들을 지켜 낸 적도 있으니 우려할 일은 없을 터였다.
올리나는 그런 아들의 모습이 생소했다.
확실히 전보다 표정도 밝아졌고 말이나 행동거지에도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이게 바로 교육의 힘인가?
착한 아들이긴 했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때가 많았는데 이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전보다 더 믿을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그래, 알았다. 대신 조심해야 된다.”
올리나의 허락을 받은 세 남자는 그동안 못 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벌목 구역으로 향했다. 특히나 리안은 그간의 성과를 보여 주고 싶은 마음에 걸음이 빨라졌다.
벌목 구역에 도착한 리안이 말했다.
“자, 그럼 사나이답게 나무를 한번 패 볼까? 어때, 시로네. 나랑 내기할래? 지는 사람이 소원 들어주기.”
키가 전보다 커진 리안은 양손도끼를 한 손으로 쥐고도 무리가 없었다.
“하하! 좋아, 그러지 뭐.”
리안과의 내기라면 진 적이 없는 시로네였다. 패자가 도전하는데 승자가 뺄 수는 없지 않겠는가?
리안이 빈센트에게 눈짓을 보내자 빈센트도 팔짱 밑으로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럼 먼저 한다.”
리안은 있는 힘껏 도끼를 휘둘렀다. 쿵 소리가 나면서 나무둥치가 우수수 흔들렸다.
가히 살인적인 괴력. 반년 동안 얼마나 혹독한 훈련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우와, 대단하다. 그게 스키마야?”
“응? 아하하! 당연히 아니지! 나무 패기 정도에 스키마까지 할 필요가 있겠어?”
대답이 어딘가 어색했으나 자초지종을 모르는 시로네는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리안이 다시 도끼를 치켜들더니 시로네를 돌아보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진짜는 이제부터라고.”
도끼가 껍질이 터진 부위를 재차 강타하자 쩍 소리가 나며 나무가 쓰러졌다.
시로네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천둥패기…….”
또한 이게 가능하다는 건 리안이 검살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우하하하! 어때, 시로네? 예전의 내가 아니라고!”
호기롭게 소리친 것과 달리 리안의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검술학교에서 검살을 배웠지만 성공 확률은 그리 높지 않은 편이었다. 그나마 빈센트에게 천둥패기 설명을 듣고 하루 종일 연습을 한 성과였다.
“대단하다. 내가 하는 천둥패기랑은 소리부터 다르네.”
“후후, 이 정도야 당연한 결과라고 할까? 어쨌든 내기는 내기야. 내가 두 번의 시도로 성공했으니, 너는 한 번에 쓰러뜨려야 할걸.”
빈세트가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시로네, 열심히 해 봐라. 동점이면 한 사람이 이길 때까지 계속하는 거다. 어쩌면 이거, 산 하나를 전부 깎아도 부족할지도 모르겠는데?”
빈센트는 시로네도 만만치 않으리라 생각했다.
리안의 힘도 대단하지만 어릴 때부터 나무를 팬 시로네 또한 기술적인 영역에서 재능이 있었다.
“자, 내 도끼를 써.”
“아니, 괜찮아. 그냥 이대로 할게.”
시로네가 나무에 손을 내밀자 빈센트와 리안의 표정이 어리둥절해졌다.
도끼도 없이 무슨 수로 두꺼운 나무를 쓰러뜨린단 말인가.
시로네는 위치를 가늠하고 스피릿 존으로 들어갔다.
기본 마법이라 할 수 있는 윈드 커터로 나무를 타격하자 탁 하고 짜개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뭐야?”
지켜보는 두 사람이 고개를 갸웃하자 시로네는 나무둥치를 천천히 밀었다. 그러자 깔끔한 절단면을 드러내며 통나무가 그대로 넘어갔다.
“야호! 내가 이겼다!”
“…….”
신이 나서 펄쩍 뛰는 시로네와 달리 빈센트와 리안은 멍한 표정이었다.
얼마나 깔끔하게 베어야 나무가 움직이지도 않고 잘린단 말인가?
‘아, 저게 마법이구나.’
리안은 시로네가 벤 나무 밑동을 살폈다. 엄청나게 얇은 무언가가 지나간 흔적이었다.
“이건 무슨 마법이야?”
“윈드 커터라는 거야. 대기를 날카롭게 갈아서 절삭시키는 건데, 마법에서는 기본이지.”
빈센트는 할 말을 잃었다.
물론 마법학교에 다니니 마법을 배우는 건 당연하지만 고작해야 서커스단의 진기 명기 정도를 상상했던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통나무를 한 번에 베다니.
아니, 애초에 이런 일에 사용할 능력이 아니었다.
“허허, 믿을 수가 없구나. 아빠도 가르쳐 줄 수 있니? 그 마법으로 나무를 하면 지금보다 훨씬 많이 벌겠는데?”
순박한 말에 시로네는 웃었다.
“기본적인 마법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쉽게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윈드 커터를 익히면 벌목이야 하루에 백 그루도 할 수 있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세상의 어떤 마법사도 나무를 해서 돈을 벌지는 않았다. 설령 천 그루를 한다고 쳐도 마법사의 하루 일당이 훨씬 높기 때문이었다.
천 그루의 가치가 낮은 게 아니라 마법사의 급여가 그만큼 높은 것이었다.
시로네가 기분이 좋은 이유였다.
입학 당시만 해도 실패의 두려움이 컸으나 이제는 어떤 일이 생겨도 가족을 건사할 기술이 있으니 안심이었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이모탈 펑션을 개방한 마법사가 미쳤다고 생각하겠지만, 시로네에게 가족이란 그만큼 소중한 존재였다.
“어쨌든 내가 이겼으니 소원을 말할게. 리안이 나무를 집까지 옮겨 주는 거야.”
“쳇! 할 수 없지. 어차피 내가 들려고 했다고.”
리안은 쓰러진 나무를 토막으로 쪼갠 다음 지게를 지고 돌아갈 채비를 했다.
내기에는 졌지만 산을 내려오는 리안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자신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시로네가 몸소 증명해 보인 것이다.
‘열심히 했구나, 시로네. 물론 오늘 보여 준 게 너의 전부는 아니겠지?’
집에 도착하자 올리나가 갖가지 음식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비싼 재료는 아니지만 그녀의 실력을 십분 발휘한 특별 코스였다.
“우와, 맛있겠다. 잘 먹겠습니다!”
밥을 먹으면서 시로네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들려주었다.
목숨이 위태로운 사건들은 당연히 생략했으나 그것 외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래서 정답이 결국 3번이었던 거예요, 하하하! 덕분에 다음 학기부터는 클래스 포로 진급하게 됐어요.”
“아, 그렇구나.”
빈센트와 올리나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무언가를 더 설명해야 하나 생각하던 시로네가 비로소 깨달은 듯 손을 크게 벌리며 말했다.
“엄청나게 대단한 거예요.”
그제야 부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학교를 다녀 본 적이 없으니 시로네의 말을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아들의 성취가 기쁜 건 다른 부모와 다르지 않았다.
“그렇구나! 축하한다, 시로네!”
올리나가 옷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장하다, 우리 아들. 엄마는 얼마나 걱정을 했던지.”
리안은 사랑이 넘치는 가정을 지켜보며 흐뭇했다. 시로네의 성품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 것 같았다.
“그나저나 리안, 진짜로 여기 왜 온 거야?”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두 분에게 허락을 구할 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무엇이든 말해도 된다. 해 줄 수 있는 일이라면 당연히 도와줘야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오젠트 가문이 산꾼에게 허락을 받을 일이 무에 있나 싶었다.
“시로네랑 놀러 가도 되나요? 한 일주일 정도요.”
시로네가 고개를 돌렸다.
“뭐, 놀러? 나도 모르는 일을 왜 네가 말하는 거야? 어디 가는데?”
“갈리앙트섬. 걱정하지 마. 계획은 내가 전부 짜 두었으니까.”
“응? 갈리앙트?”
시로네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근래 화두였던 장소가 리안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 도서관에서 일할 때는 꼼짝없이 갇혀 있느라 나랑 어디 간 적도 없잖아. 이번 기회에 바람 좀 쐬자고. 크레아스에서 가깝기도 하고. 재밌을 거야. 갈리앙트섬은 세계에서 인기 있는 휴양지니까.”
“음, 그리고 케르고 유적도 있지.”
이번에는 리안이 놀랐다.
“알고 있었어?”
“아니, 유적이 있는 관광지라는 것 외에는 딱히. 그렇게 유명한 곳이었구나.”
시로네는 엄마의 눈치를 보았다.
방학 중에 한 번은 가 볼 생각이었지만 반년 만에 돌아온 아들이 곧장 놀러 간다고 하면 서운할 터였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올리나는 아들의 뜻에 따랐다.
“다녀오렴. 우리는 적극 찬성이란다.”
“하지만 엄마, 이번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버지 일을 도와드리려고 했는데…….”
빈센트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놈아! 전쟁터라도 갔다 왔냐? 학교 다니다가 온 건데 방학 중에 놀러 갈 수도 있는 것이지. 사내자식이 너무 부모만 찾으면 그것도 못써.”
시로네는 찔끔했다.
물론 마법학교도 엄연히 학교지만 부모님이 상상하는 것만큼 얌전하게 공부하는 곳은 아니다.
검술학교에 다니는 리안도 그 사실을 짐작하기에 지금은 그저 입을 다물었다.
생각을 정리한 시로네가 물었다.
“그럼 10일로 잡아도 돼요?”
“응? 10일씩이나? 상관은 없다만, 그렇게 오래 구경할 만한 곳은 아닐 텐데?”
“사실은 따로 조사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리안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거기서도 공부냐? 너도 참 대단하다, 정말.”
오젠트 가문에 있는 역사책을 모조리 독파한 인물이니 휴양지에서 공부를 한다는 말도 딱히 괴팍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흐흐흐, 하지만 이번에는 쉽지 않을걸. 거기서 과연 공부가 눈에 들어올까?’
비장의 한 수를 떠올린 리안은 남몰래 미소를 지으며 내일을 기다렸다.
***
여행 가방을 챙긴 시로네는 잠자리에 들었다. 리안도 오늘까지 머물기로 했기에 두 사람은 바닥에 이불을 깔아 두고 나란히 누웠다.
“그나저나 말해 봐. 왜 집에 안 간 거야?”
“응? 아, 그게…….”
리안은 말끝을 흐렸다.
레이나가 동생을 파악하고 있듯 리안도 누나를 잘 알았다. 아마도 성적표를 집으로 미리 발송해서 자신을 잡아 두라고 할 것이 분명했다.
‘으, 말 못 하겠어.’
시로네만큼은 몰랐으면 했다.
최선을 다했기에 꼴등이 부끄러운 건 아니지만 기사 서약까지 한 마당에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냥 사소한 가정사 문제로, 하하하.”
시로네도 더 캐묻지 않았다.
“아무튼 잘됐어. 어차피 방학 중에 한번은 가려고 했거든.”
“케르고 유적이라고 했지. 무슨 조사를 하려고?”
“아직은 모르겠어. 휴가는 휴가대로 즐길 거니까 괜찮아. 일단은 너랑 섬에서 놀고, 나중에 나 혼자 남아서 조사하려고.”
리안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케르고 유적은 그저 흔한 관광지였지만, 그런 곳에서 조사만 하는 것이라면 시로네가 자신을 먼저 돌아가라고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손님(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