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60
“그만 나오시죠. 교황께서도 성전에 가셨으니 성청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이루키가 스피릿 존을 펼쳤다.
“7명이야.”
마법 제한 장치는 시옥의 히든 코드마저 해킹한 그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너무 크게 벌이지는 마. 시로네가 남의 교단에서 깽판을 쳤다는 소문이 퍼지면 성전의 여론이 악화될 테니까.”
네이드가 손에 푸른 전기를 피웠다.
“그렇다고 맞을 순 없잖아. 죽이지만 않으면 되지?”
“……뭐, 일단은.”
허락이 떨어지자 네이드가 무게중심을 낮추더니 돌진할 자세를 취했다.
“간다? 진짜 가?”
이루키가 어깨를 으쓱하고, 시로네도 별다른 수가 없기에 떠밀듯 손을 움직였다.
“에라!”
쾅 하고 문이 박살 나는 순간 사방에서 6개의 칼날이 동시에 들어왔다.
‘이럴 줄 알았지.’
네이드의 육체가 뇌전에 휩싸이면서 초인적인 반사 신경으로 공격을 회피했다.
“잡아!”
특명을 받고 대기하는 성기사 중에는 순찰조인 레온과 세이나도 있었다.
“이단을 처단하라!”
그들의 살초에, 여태까지 적당히 힘을 조절하던 네이드도 더 이상 참지 못했다.
‘이 자식들이…….’
쿠르르르르릉!
뇌신전생의 전격이 솟구치더니 천장을 부수고 내려와 복도를 휩쓸었다.
“크으으으!”
강력한 전격이 복도에 휘몰아치면서 성기사들이 검을 쥔 채 몸을 떨었다.
시로네가 소리쳤다.
“네이드!”
정신을 차린 네이드가 황급히 힘을 조절했다.
‘아차.’
뇌신전생은 강력하지만 오래 유지할수록 이성을 잃게 되는 단점이 있었다.
“지금이야! 가자!”
성기사들이 쇼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동안 시로네 일행은 반대편으로 달렸다.
“분하다!”
레온의 주먹이 바닥을 때렸다.
“신탁관리부의 팰러딘을 전부 소집하죠. 저들이 교황청을 떠나게 두어서는 안 됩니다.”
“흐흐흐, 그럴 필요 없어.”
등 뒤에서 들린 음침한 목소리에 7명의 성기사가 화급히 몸을 틀었다.
“히히히히. 히히히히.”
입술이 귀밑까지 찢어진 남자가 쌍낫을 양손에 쥔 채 실없이 웃고 있었다.
세이나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웃는 자.’
교황청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조직.
‘이단관리부.’
파멸의 시작 (4)
***
토르미아 파견단은 자이브 왕국의 왕성, 델타의 해자 건너편에 도착했다.
“도개교 개방!”
톱니바퀴 돌아가는 소리가 하늘을 울리는 가운데 다리가 해자를 넘었다.
성에 진입한 루피스트가 말했다.
“잘 지었군.”
자연 발생적으로 세워진 왕성과 달리 도시계획에 따라 지은 건축물이었다.
시로네가 말했다.
“이렇게 변하는 데 20년이 걸렸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정치가 안정되어 있다는 증거죠.”
델타의 본청이 보였다.
현대적인 양식이었고 하늘에서 봤을 때 납작한 사각형의 구조물이었다.
카샨과 코로나가 먼저 도착했으나 딱히 토르미아를 신경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게 현실이지.’
포니는 생각을 점검했다.
‘지도국이 되기 위해서는 세계를 설득시킬 회심의 카드가 필요해. 원소 폭탄의 기술은 훌륭하지만, 이 정도 카드라면 타국도 가지고 있다.’
사실 간단한 문제였다.
‘마족을 통제할 수 있는 카샨, 상아탑의 지성을 등에 업은 코로나, 그리고 토르미아.’
과연 세상 사람들은 어떤 나라가 지도국이 되어 주기를 바랄 것인가?
‘적어도 토르미아는 아니겠지.’
그럼에도 타국과 힘 대결을 벌일 수 있는 이유는 야훼가 있기 때문이다.
‘시로네 없이는 토르미아도 한 표를 행사하는 중개국일 뿐. 나 또한 이 한 표를 어떤 국가에, 얼마에 파느냐를 생각해야 하는 처지지만…….’
세계의 왕.
초강대국과의 조우에서도 밀리지 않는 순간 가슴이 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시로네가 도와주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야. 그래서 루피스트 씨도 사활을 건 것이지만…….’
야훼의 입장은 다를 터였다.
‘시로네는 토르미아가 지도국이 되지 않아도 괜찮아. 성전에 참석한 이유도 인류 통합을 위해서니까.’
물론 토르미아 왕국이 시로네의 신념을 지지하는 한 동맹 관계는 깨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할까?
‘구정물에 발을 담가야 하는 것도 정치야. 그리고 루피스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테고.’
아니, 이런 식으로 떠넘겨서는 안 된다.
‘나도 마찬가지잖아.’
일찌감치 승계 서열에서 밀려난 포니에게 권력이란 극복의 대상이었다.
‘그저 벗어나고 싶었던 시절.’
목적지는 없어도 좋았다.
‘마법학교에 입학했고, 멸시와 모멸의 시선을 받으며 미인 대회에도 나가 보고…….’
권력에 대한 염증이 심했기에 꼭두각시 왕이라도 될 수 있었던 것이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갈망하고 있지 않았을까?
‘아니야.’
포니는 고개를 저었다.
‘한순간의 욕망일 뿐이야. 시로네를 돕는 것만 생각하자. 1명의 마법사로서 인류를 위해…….’
처음 왕이 되었을 때.
“…….”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그녀를 무시하던 왕족들의 표정이었다.
‘이제는 세계의 왕을 노린다.’
어디서도 당당하게 드러낼 수 없었던 자존감이 찬란하게 폭발하는 희열도.
‘여기서 끝내고 싶지 않아.’
그녀 안의 무언가가 속삭이기 시작했다.
‘시로네를 토르미아에 속박시켜. 시로네가 나를 위해서만 움직여 준다면…….’
네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잖아.
포니는 전방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겨 있는 시로네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에이미.’
그녀보다 부족한 건 없다고 생각했다.
‘만약 시로네의 옆에 있는 사람이 에이미가 아닌 나였다면, 도와주었을까? 인류보다도 나를…….’
세계의 왕으로 만들어 주었을까?
‘후후.’
권력이란 무서운 것이다.
‘그래, 이래서 나는 안되는 거겠지. 에이미라면 이런 혐오스러운 생각은…….’
그때 델타 성벽 너머로 소리가 들렸다.
“케시아 왕국! 입장!”
카샨과 코로나의 관리들이 몸을 돌린 것만으로도 국가의 위상을 알 수 있었다.
“흠, 케시아라. 까다로운 상대지.”
남부 대륙의 강자는 여전히 아이론이지만 케시아 또한 7부 7국을 집어삼켰다.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이…….’
아르디노 페르미.
황금 마차를 필두로 들어오는 행렬에, 코로나의 람파가 총이에게 일렀다.
“케시아 왕국을 놓치지 마라. 이번 성전에서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니까.”
“싱크탱크가 금화륜이니까요. 엔젤로 남부 대륙 7국을 먹은 조직이잖아요. 수장은 마약왕 페르미고요.”
“아르디노 페르미지.”
청년과 노년은 정의하는 바가 달랐다.
“스승님, 연세가 많은 건 알지만 너무 복고 아니에요? 정보는 갱신이 중요하다고 하셨잖아요. 욜가가 사망한 이후로 아르디노 가문은 아드리아스에 완전히 밀렸어요. 페르미도 물론 뛰어나지만, 극선인 미로와 비교하기에는 좀…….”
“깊이의 아드리아스.”
람파가 말했다.
“넓이의 아르디노라는 말이 있었지. 두 여걸이 공존하고 있었을 당시에 말이야. 요즘 마법사들은 아르디노를 호구로 아는데, 네가 욜가를 봤어? 확실하지 않으면 갱신하지 말라, 이런 말도 모르냐?”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읽는 욜가의 시야는 인간의 범주를 까마득히 초월했다. 로그는 말소되었지만, 미로의 철학 또한 그녀의 영향을 받았을 거라는 게 정설이야. 페르미의 수완을 얕보면 코로나도 위험해질 거다.”
총이가 입맛을 다셨다.
“누가 얕본다고 그래요. 저도 이번에는 제대로 해 보려고 생각하고 있다고요.”
“왜? 마음에 드는 처자라도 있냐?”
“아니, 뭐…….”
정보 마법사는 모든 전쟁의 중추지만 주목을 받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성전은 다르지. 여기서는 내가 두각을 드러낼 수 있다는 말이야. 즉…….’
여자에게 어필할 수 있다.
‘세상이 끝날지도 모르는데 죽기 전에 그래도 연애는 해 보고 죽어야 하지 않겠어?’
제자의 생각이야 손바닥 보듯이 훤하지만 람파는 나무라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전부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거창한 이유가 무에 필요할까.
한편 우오린은 씁쓸했다.
‘결국 왔네.’
아포칼립스 쪽에서 시로네를 견제할 가능성도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만만치가 않단 말이야, 쟤는.’
금화륜의 자본력, 감정병의 치료제 엔젤, 아포칼립스에 묻힌 정보들.
‘그 모든 요소를 가장 지저분하게 다룰 줄 아는 놈.’
지도국이 되기에 케시아의 카드는 어둠의 요소가 많지만, 그렇기에 더욱 위험했다.
‘통하겠지.’
시로네도 같은 생각이었다.
‘페르미는 극단적인 효율을 추구한다. 즉, 어떤 문제든 가장 쉽게 해결하려는 성향.’
그리고 사람들은 쉬운 것을 선호한다.
‘적어도 한 번은 판도를 뒤집을 수 있다. 그게 케시아의 가장 큰 무기야.’
델타 본청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 페르미는 수많은 시선을 받으며 웃었다.
“내가 이렇게 유명했나?”
여유로운 시선 처리 속에 핵심 인물들에 대한 분석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코로나도 상당히 세군. 별들도 있는 것 같고. 카샨은 풍장을 중심으로…… 응?’
우오린의 등에 기댄 남자가 보였다.
‘극악, 하비츠.’
둘의 시선이 잠시 충돌했으나 하비츠는 이내 고개를 되돌리며 하품을 했다.
“흐암.”
신의 주파수가 말하고 있었다.
“……묘한 놈이네.”
사탄의 감상은 그게 전부였으나, 다른 자들은 모두 페르미의 행동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용해야 한다.’
정치의 본질을 알고 있는 자들은 페르미의 카드도 얼마든지 삼킬 수 있었다.
‘토르미아, 코로나, 카샨의 순으로 대기하고 있다. 우방이라 생각하는 쪽에 끼어들겠지.’
페르미가 왕에게 뭔가를 속삭였다.
그렇게 선두의 방향이 정해진 케시아의 행보는 예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뭐, 뭐야?”
끼어들 공간이 충분히 있음에도, 외곽에 있는 토르미아의 바깥쪽으로 간 것이다.
타국보다 규모가 작은 행렬이 자리를 잡자 페르미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여기가 급소라고, 멍청이들아.’
카샨 제국과 코로나를 무시하는 포석에, 수뇌부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람파가 수염을 쓰다듬었다.
‘흐음, 중간에 끼지 않았다는 것은 야훼에 대한 적극적인 호감 표시. 실리를 위해서라면 체면 따위는 상관없다는 거군. 그것도 일리가 있다. 신뢰를 쌓아야 할 때는 어떤 손해도 감수하는 성향이야.’
단순히 그런 성향이라면 괜찮지만.
‘아르디노의 시야에만 보이는 어떤 것이 있었다면, 카샨과 코로나는 실수한 것이 된다.’
페르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야, 시로네. 어제 보고 또 보네? 이러다가 정들겠어.”
시로네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공식적인 자리야. 말을 조심해.”
“하하! 뭐 어때? 남도 아니고, 나도 토르미아 출신이라고. 포니도 오랜만이야. 잘 지내지? 우리끼리 있을 때는 편하게 하자. 그러려고 이쪽으로 온 거니까.”
“응? 아, 그래. 정말 오랜만이다.”
가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케시아의 핵심이 내미는 손을 뿌리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