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62
‘무슨 오빠가 저래?’
이어서 카니스와 아린, 글렌과 루키아 커플이 손을 맞잡고 걸음을 옮겼다.
이런 사랑도 있고, 저런 사랑도 있지만.
‘다들 행복했으면 좋겠다.’
시로네가 그들을 따라가고, 과묵한 유프라와 줄루가 후미에서 이동했다.
“오오, 진리의 피라미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구조물은 크기만으로 인간을 압도했다.
아레스가 무릎을 꿇고 나름의 의식을 치르는 가운데 아린이 말했다.
“카니스, 이거…….”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응. 어떻게 보여?”
아린은 모든 사물을 처음 보는 것처럼 인식하지만 이번에는 정도가 심했다.
“모르겠어. 대체 이게 뭘까? 거대한 빛. 하지만 노이즈처럼 검은 방울들이 뿌려져 있는…….”
빛과 어둠이 섞여 있지만 조화롭다는 느낌은 조금도 들지 않는 색채였다.
‘기괴해. 보는 것조차 힘들어. 이 형태가 뭐기에 감정병이 치유된다는 거지?’
줄루가 말했다.
“진리의 피라미드는 인간 문명이 생기기 전부터 존재했다요. 고대 파라스 왕국도 이 피라미드를 본떠서 수많은 피라미드를 만들었지. 바로 왕의 무덤이다요.”
시로네가 말했다.
“의미심장하네요. 고대의 왕들은 사후 세계가 바깥으로 통한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걸까요?”
초고대 문명은 스스로 기록을 말소하기에 오메가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이 바깥 세계를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모른다요. 다만 파라스 왕국이 점성술의 시초라는 걸 상기하면 부정할 수도 없는 일이지.”
“점성술.”
시간을 뛰어넘는 능력.
“준비 끝.”
의식을 끝낸 아레스가 배낭을 들었다.
“들어가자. 뭐가 됐든 조사해 보면 밝혀질 일이야. 어쩌면 신을 만날지도 모르고.”
“신이시여.”
글렌과 루키아가 읊조리는 가운데 시로네가 진리의 피라미드로 걸어갔다.
전체 크기에 비하면 균열보다 작을 테지만, 사람이 들어갈 만한 틈이 보였다.
의외로 내부는 어둡지 않았다.
“묘하군.”
아레스가 랜턴을 끄자 조금은 어두워졌으나 여전히 식별에는 무리가 없었다.
“빛이 들어올 만한 곳은 없는데 말이야. 어떻게 우리가 볼 수 있는 거지?”
“전자 같은데요.”
시로네가 말했다.
“대기 중의 전자들이 미약하게 빛을 방출하고 있어요. 느낌이 상당히 안 좋네요.”
피부가 자르르 울렸다.
“흠, 하지만 전자가 빛을 방출하려면 일정량의 에너지가 가해져야 하잖아. ……설마?”
“네. 아마도 이 피라미드 자체에서 에너지가 생산되는 거 같은데요.”
“가능할까? 이건 역사 이전의 유물이라고.”
“오파츠와 같은 원리일 겁니다. 초고대 문명의 모든 것이 전기를 발생시켜요.”
“그럼 무한 동력이잖아?”
“적어도 이 세계의 관점에서는. 그보다 중요한 건 오파츠의 전기장이 뇌파를 교란시킨다는 거예요. 아카식 레코드의 데이터마저 지우는 것 같습니다. 조심하세요.”
“그렇군. 자, 자! 모두 조심하자고.”
아레스가 뼈 있는 농담을 던졌으나 웃을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미로처럼 복잡한 길을 따라 방을 살핀 카니스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크다.’
밖에서 봤을 때의 압도적인 느낌은 몸으로 체험하는 지금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전부 조사하다가는 끝이 없겠어. 문제는 어떤 방도 문명의 흔적이 없다는 거야.’
초고대 문명의 특징이었다.
홍안으로 지리를 외우며 나아가던 아레스가 갑자기 걸음을 우뚝 멈추었다.
“방이 아니야. 의도를 찾을 수 없다고. 그저 이런 형태, 이런 크기의 공간이 굉장히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흐름을 통제하는 게 아닐까요?”
시로네가 말했다.
“복잡한 길. 저마다 크기가 다른 방. 불규칙적인 배열. 이런 구조가 눈에 보이지 않는 특별한 흐름을 만들기 위해 설계된 것이라면…….”
“그래서 전기가 발생했다. 흐음.”
아레스가 생각에 잠긴 그때, 뒤를 살핀 아린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카니스, 저기 봐.”
통로의 벽에 푸른빛의 문자들이 발광하더니 그들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성전의 규칙 (2)
시로네 일행은 그들이 있는 벽을 타고 흐르는 문자들을 유심히 살폈다.
시로네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
울티마 시스템으로 해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야말로 바깥 세계의 증거였다.
“아마도 문자일 거야. 내가 여태까지 본 형태와 유사한 초경을 가지고 있으니까.”
아린의 말에 카니스가 벽을 더듬었다.
“미약한 전류.”
벽에는 각기 다른 형태의 홈이 파여 있었고, 그곳을 따라 전기가 흘렀다.
“이런 건 처음인데. 만약 이게 언어라면 격자의 종류가 너무 많아. 똑같은 걸 찾지 못하겠어.”
아레스가 물었다.
“그게 정확히 무슨 의미지?”
“언어는 사고를 담는 그릇이야. 만약 이 언어를 구사하는 문명이 존재한다면,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사고를 가지고 있어야 할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식의 문자는 공간 낭비일 뿐이니까.”
“…….”
“예를 들어 정사각형의 격자에 빛을 흘려서 만들 수 있는 기호는 수직선, 수평선, 직각 부등호 등 상당히 많아. 그 조합만으로도 충분히 언어를 만들 수 있어. 그런데 문제는 격자마저 전부 다르다는 거야. 어떤 정보를 다루기에 이런 언어가 필요할까, 생각해 보면…….”
카니스가 턱을 괴었다.
“시간을 표기하기 위한 수단이 아닐까?”
“시간?”
“예를 들어 사과라는 단어가 있다고 치면, 1초 뒤에도 사과는 사과일 뿐이지. 하지만 이 문자는 시간에 따라서도 의미가 변해 버려. 따라서 어떤 문자의 의미를 아는 순간, 시간마저 알 수 있다는 거야. 과거, 현재, 미래가 전부 이 문자에 담겨 있는 거라고.”
한기가 느껴졌다.
“4차원 언어라. 그래도 대충 의미라도 알 방법은 없을까? 목숨이 걸린 문제잖아.”
“고대 문자를 해독하는 건 마방진을 푸는 것과 비슷해. 문자에도 계급이 있어. 얼마나 많은 상황과 연결되느냐에 따라 힘이 다르다고. 다시 사과를 예로 들면 먹는다, 떨어뜨린다, 열린다, 같은 수많은 상황에 쓰이잖아? 반면 사과를 싼다, 사과를 피운다, 같은 말은 잘 쓰이지 않아.”
카니스가 벽을 가리켰다.
“사과가 귀족이라면, 이 문자들은 전부 왕이야. 똑같은 격자가 하나도 없으니까. 단순한 기하학적 도형이라도 전부 다른 형태일 거라고.”
글렌이 벽을 가리켰다.
“여기에 있는 삼각형이 저기에도 있는 것 같은데?”
“미묘하게 다르겠지.”
아레스가 홍안을 발동시켰다.
“……세 각의 정합성이 0.7도의 오차를 보이는군. 하지만 피라미드에 새겨진 문자들이 하나도 겹치지 않는다는 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가능해요.”
시로네가 말했다.
“눈으로 확인이 어려울 뿐이죠. 수학적으로 보자면 도형은 무한대로 만들 수 있어요. 왜냐하면…….”
줄루가 말했다.
“원주율. 파이는 끝이 없으니까.”
“네. 원이라는 형태 안에 무한의 도형이 담겨 있죠. 마도사들이 율법의 수를 정의하는 것과 같아요. 그리고 이 문자들이 율법의 수 1이라면, 안쪽에서 해독은 불가능해요. 바깥 세계의 울티마가 필요하죠.”
카니스가 말했다.
“결론을 내리자면, 해독은 불가능해. 이곳에 새겨진 문자들이 모든 상황에 쓰일 수 있기 때문이야. 심지어 상황이 없어도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고.”
“……천사.”
“응?”
일행의 시선을 느낀 시로네가 설명했다.
“알다시피 천사는 개념의 화신이야. 하나의 개념을 모든 상황에 접목시킬 수 있기 때문이지.”
사법 광륜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천사의 위상은 이곳에 적힌 문자의 위상과 똑같다고 볼 수 있어. 한마디로 이곳에 적힌 모든 문자가…….”
아레스가 중얼거렸다.
“전부 천사라는 건가?”
정적이 흘렀다.
벽을 타고 전진하는 문자의 행렬이 마치 천사의 질주를 보는 듯했다.
“푸우.”
아레스가 정리했다.
“좋아, 이 문자 하나하나가 천사에 준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치자. 그리고 그런 것들이 이 거대한 피라미드를 가득 채우고 있다는 거지. 왜일까? 무엇을 위해?”
“그건 아마도…….”
시로네가 말을 꺼내려는 순간 카니스의 그림자에서 하비스트가 솟구쳤다.
“카니스, 파동이다.”
푸른빛의 문자들이 사라지는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들이기에 빠르게 전투태세를 갖추고 기다렸지만.
“뭐……야.”
등장한 자의 형태를 보고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벌거벗은 육체는 인간의 것이었으나 목 위에 있는 건 작은 피라미드였다.
시로네가 미라클 스트림을 발동했다.
“누구야? 정체를 밝혀라.”
서로가 보이는 곳에 우뚝 멈춘 피라미드 남자가 오른팔을 쭉 내밀었다.
강력한 파동이 밀려들었고, 진동에서 탄생한 하비스트가 이를 언어로 변환했다.
-아린, 정신 채널 연결해!
정신 마법이 전개되면서 시로네 일행은 피라미드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나는 인人이다.
순간 소름이 돋았고, 그들은 본능적으로 전투를 택하며 튀어 나갔다.
“해치워!”
그리고 동시에, 시간선이 뒤틀렸다.
“타하!”
쌍검을 휘두르고 지나간 유프라는 변화를 직감하고 황급히 정지했다.
“뭐야?”
일행은 보이지 않았다.
피라미드의 지루한 풍경 속에서 푸른 빛을 내는 문자들이 지나갈 뿐이었다.
“흥.”
그는 양쪽의 어둠으로 검을 겨누었다.
“무슨 수작인지는 모르지만 순순히 나오는 게 좋을 거다. 누구도 내 검망을 뚫을 수 없으니.”
게걸음으로 천천히 10미터를 움직이자 모퉁이 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거기냐!”
유프라가 빠르게 몸을 뒤트는 순간 젊은 검사가 모퉁이를 돌아 나왔다.
“발……자크?”
어린 시절 함께 검을 수학했던 동료였다.
“어떻게 네가 여기에?”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옮기던 유프라는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검을 들었다.
‘아니야, 발자크는 죽었어. 게다가 젊은 시절의 모습이지 않은가. 내가 아는 그는…….’
모두가 인정하는 천재였으나 전쟁터에서 광역 마법에 휘말려 전사했다.
“유프라, 대검호가 됐구나.”
“크윽!”
발자크의 미소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었으나 유프라는 모욕을 당한 기분이었다.
“엘리아나도 좋아할 거야.”
발자크의 아내.
또한 유프라가 평생을 바쳐 마음에 담아 둔 유일한 여인이었다.
“닥쳐, 이 개자식아!”
눈에 핏대를 세운 유프라가 외중력을 토해 내며 전방으로 튀어 나갔다.
검이 엑스 자를 그린 자리에 발자크는 없었다.
“허억! 허억!”
정신적으로 녹초가 된 유프라는 두 팔을 늘어뜨리고 거친 숨을 내쉬었다.
“대체 뭐야?”
돌아보면 아픈 추억이지만 이제 와 돌아볼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오래된 기억이었다.
‘40년도 더 지난 일이다. 생각 안 한 지 10년이 넘었어. 그런데 어째서…….’
이제 와 눈앞에 나타난 것일까?
“카니스! 카니스, 어디 있어?”
미로처럼 복잡한 길을 달리며 아린은 쉬지 않고 카니스의 이름을 불렀다.
‘갑자기 모두 사라졌어. 어떻게 된 거지?’
만약 이것이 환각이라면, 정신 마법사인 아린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마법이 아니야. 실제로 일어난 현상이지.”
인人이라고 했다.
‘진리의 피라미드와 똑같은 형태가 있었어. 어째서 인간이 아니고 인이지?’
그녀는 걸음을 멈췄다.
‘마냥 돌아다니는 게 능사가 아니야. 실마리를 잡지 못하면 계속 엇갈릴 테니까.’
응애, 응애.
어딘가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응?”
고개를 돌리자 그녀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여긴…… 라둠?’
오감이 라둠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끔찍한 기억이 밀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