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64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뭘 어쨌기에 신성력이 약해지고 있는 거냐고!”
시로네는 세이나의 매서운 눈빛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아무것도. 세뇌가 풀렸을 뿐이야.”
“세뇌?”
멱살을 잡은 손이 잠시 느슨해졌으나, 이내 더욱 강한 힘으로 시로네를 들어 올렸다.
“무슨 헛소리야? 나는 세뇌 따위는 당하지 않아. 신탁관리부의 팰러딘이라고.”
“나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이, 스스로 알고 있잖아?”
“…….”
잠시 후, 시로네의 발이 땅에 닿았다.
“하아. 미치겠네, 진짜.”
시로네가 물었다.
“듣고 싶은 게 있어. 성기사들의 가혹한 훈련,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거야?”
“……공식적으로는 폐지되었지만.”
세이나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세계대전 이후로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 성기사들의 숫자가 전쟁 전보다 훨씬 줄었으니까.”
“이단관리부는?”
“거긴 나도 몰라. 같은 성기사라고 해도 이단관리부는 교황청 서열 3위까지만 접근하게 되어 있어.”
“서열 3위라. 1위는 교황이고 2위는?”
“……이단관리부 성기사장 바니사.”
용서하는 자였다.
“2위가 문제의 근원이라면 3위밖에 없네.”
“그렇지, 대사제 막시무스 님. 하지만 지금 몸이 안 좋으셔서 요양 중이셔. 루키아라는 여자가 악마의 능력을 각성하는 바람에 부상을 당하신 것 같아.”
이루키가 물었다.
“성기사들은 어떤 교육을 받지?”
“악에 대항하는 모든 것. 정신과 육체를 극한으로 몰아세운 다음 구절을 외우지. 우리는 신에 충성한다, 신을 부정하는 자들의 말을 거부한다, 같은.”
세이나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힘든 과정이지만, 사실 당시에는 불합리하다는 생각은 없었어. 악과 싸우기 위한 당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모르겠어.”
과연 자신의 의지였을까?
세이나가 시로네를 노려보며 따졌다.
“설령 너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해도, 크리아 신을 믿는 신념은 달라지지 않았단 말이야! 그런데 왜 신성력이 약해진 거지?”
“되찾을 수 있을 거야.”
시로네가 말했다.
“마음속의 의심이 걷히면. 당신 스스로 신을 믿는 과정이 필요한 거야. 그러니 의심이 든다면 지금 확인해. 어느 쪽을 선택하든, 스스로 확신하라고.”
입술을 깨물며 생각에 잠겼던 세이나가 물었다.
“내가 뭘 하면 되지?”
“교황청의 지하실로 안내해 줘.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 거야. 강압적인 방식으로는 결코 선에 이를 수 없으니까.”
“……거긴 이단관리부의 영역이야. 지하에 있기 때문에 교황청 내에서도 거의 마주칠 일이 없지.”
결정을 내린 그녀가 몸을 돌렸다.
“따라와.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해 볼 데까지는 해 볼 테니까.”
***
“파라스 왕국! 입장!”
성전에 참석한 국가들이 본청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무렵 파라스 왕국이 도착했다.
‘빠르구나.’
공간 이동 마법진을 통했다고 해도 최상급 기동력 없이는 도착하지 못할 거리였다.
행렬 선두의 황금 마차에는 거대한 구렁이를 목에 감은 남자가 턱을 괴고 있었다.
‘키트라. 파라스의 새로운 왕.’
현재 중동의 지배자는 카샨이지만, 카샨의 모든 것은 파라스로부터 시작되었다.
‘문명의 시초.’
지성이 시작된 곳이라는 자부심이 가득 담긴 행렬이었다.
“만만치 않아 보이는군.”
루피스트가 내뱉었으나 시로네는 대답이 없었다.
“왜 그러지?”
“아니, 아니에요.”
현재 진리의 피라미드에서 인人이라 불리는 자와 대치하고 있는 시로네였다.
“감정병.”
시로네가 중얼거렸다.
“파라스의 왕은 감정병이 치료되었을 수도 있어요.”
파라스 행렬이 본청 앞에 도달했다.
키트라가 창문 안쪽에 서 있는 시로네와 눈을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
“인의 세례를 받았는가?”
‘역시.’
시로네는 확신했다.
‘키트라 국왕이 진리의 피라미드를 탐색하는 것을 승인한 이유. 이미…….’
그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이미 들어갔다 나온 거야.’
마치 시로네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키트라가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인간의 업.”
원인.
“참으로 기구한 것이지.”
국왕의 옆으로 로브를 쓴 남자가 다가오더니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전하, 운명을 바꿀 시간입니다.”
그 순간 키트라 국왕의 눈에 광기가 휘몰아치는 것을 시로네는 놓치지 않았다.
‘점성술사. 가장 위험한 자들이다.’
파라스 왕국의 싱크탱크, 황도12궁이었다.
***
“글렌! 어디 있어? 글렌!”
시간이 뒤틀린 피라미드 내부에서 루키아는 글렌을 찾아 헤맸다.
‘제발 무사하기를.’
그녀의 능력은 상대를 제압할 수 있으나 글렌의 특기는 오직 회복이었다.
“어디로 간 거야?”
그렇게 다시 첫발을 내딛는 순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풍경이 변했다.
‘여긴?’
교황청 예하에 있는 사제 교육원. 루키아가 처음 글렌을 만난 곳이었다.
“여기다, 이 바보야!”
열일곱 살의 글렌과 루키아가 텅 빈 예배당을 놀이터처럼 뛰어다니고 있었다.
‘글렌.’
루키아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세상 물정 모르는 나이, 그저 친구와 노는 게 즐거웠던 시절이었다.
“야, 그렇게 느려 터져서…….”
“이놈들!”
담당 수녀가 문을 벌컥 열고 일갈했다.
“신성한 예배당에서 이 무슨 짓들이냐! 오늘은 중요한 날이니 자중하라고 그리 일렀거늘!”
“히익!”
글렌과 루키아가 얼어붙은 가운데 수녀 옆으로 중년 남자가 걸어왔다.
“허허, 너무 나무라지 마세요. 저 나이 때는 다 그런 거지요.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현 교황청 서열 3위, 막시무스 대사제였다.
성전의 규칙 (4)
“대사제님.”
막시무스 대사제의 얼굴을 본 루키아는 슬픔에 잠겼다.
‘죄송해요.’
교황 다음으로 존경하는 사제였고, 그런 그에게 심한 부상을 입히고 말았다.
‘다치게 할 생각은 없었어요.’
마음을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글렌과의 교제를 반대할 때 화가 났고, 그 불경한 마음 탓에 악마의 능력이 발현된 것이라 믿고 있었다.
‘이건 나에게 내려진 시험이야.’
왼손의 악마를 굴복시켜 막시무스 대사제에게 결백을 증명해 보이리라.
“응?”
과거의 기억이 펼쳐지는 가운데, 루키아는 막시무스가 열일곱 살의 자신을 바라보며 멍한 표정을 짓는 것을 발견했다.
‘그랬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만 해도 막시무스라는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많은 것을 알게 된 현실의 그녀는 대사제의 눈빛에서 묘하게 신경 쓰이는 감정을 발견했다.
‘저런 표정을 지을 분이 아닌데.’
그 순간 다시 시간이 뒤틀리고, 그녀가 아닌 대사제의 과거가 펼쳐졌다.
“아이린.”
청년 시절의 막시무스가 한 여성의 앞에서 얼굴을 붉히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저 여자는…….’
쌍둥이처럼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루키아는 그녀가 자신과 닮았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원인.
또다시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아가, 밥 먹어야지.”
막시무스가 아장아장 걸어 다닐 무렵 수프를 먹이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왜?’
아이린과 루키아를 닮은 여인.
‘나에게 왜 이런 걸 보여 주는 거야?’
원인.
풍경이 다시 교육원으로 바뀌었다.
“저 아이는?”
막시무스가 루키아를 가리키자 담임 수녀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교육원에서 가장 뛰어난 사제 후보생이지요. 아주 훌륭한 신성력을 가지고 있답니다.”
“그렇군.”
이번에는 루키아도 기억이 났다.
막시무스는 그녀와 짧은 대화를 나누었고, 열심히 하면 교황청에서 신을 위해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덕담을 남겼다.
‘내 인생을 바꾼 말이었지.’
그날 밤, 막시무스가 간이침대에 누워 잠을 설치는 풍경이 보였다.
‘싫어, 이런 것까지 보고 싶지 않아. 누군가의 침실을 훔쳐보게 되다니.’
“아이린.”
너무나 사랑했으나, 막시무스에게는 야망이 있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을 고백했던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침대에서 일어난 막시무스는 방을 나섰다.
여자 교육생 기숙사로 향하는 그의 모습에 루키아는 충격을 받았다.
설령 대사제라 할지라도 금남의 구역을 침범하는 것은 중죄이기 때문이다.
복도를 걷던 막시무스는 루키아라는 팻말이 적힌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17세의 소녀가 새근새근 잠에 빠져 있었다.
“…….”
그녀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막시무스가 긴 숨을 내쉬었다.
오직 성공을 위해 달린 세월.
어째서 신은 자신의 영혼만 가져가고 육체는 현실에 내버려 둔 것일까?
예배당에서 루키아를 처음 보았을 때, 막시무스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되돌릴 수 있지 않을까?
천천히 내밀리는 대사제의 손을 바라보며 현실의 루키아는 숨이 턱 막혔다.
그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안 돼! 이 무슨…….’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대사제를 선택했을 것이다.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마라. 이제 대사제가 되니 미련이 생긴 것뿐이야.’
그는 거울을 돌아보았다.
청춘의 생기가 빠진 외모이자 교황청의 권위자로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인간.
“크윽!”
거칠게 몸을 돌린 막시무스는 그길로 복도를 걸어 침실로 돌아왔다.
동이 트는 시각까지 그는 무릎을 꿇은 채로 나무 바늘을 들고 허벅지를 내리쳤다.
“신이시여.”
옷에 핏물이 엉겼다.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소서.”
근육이 경련을 일으켰다.
“제 영혼을 정화하소서.”
밤이 샐 때까지도 그는 자해를 멈추지 않았다.
“싫어.”
루키아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알고 싶지 않아. 이런 건 알고 싶지 않단 말이야.”
-아아, 신이시여.
교육원에 근무하는 수많은 자들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제 욕망을 벌하여 주옵소서. 교황청에 가고 싶어. 대사제가 되고 싶어. 강력한 신성력을 갖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