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67
“그래.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 될 때 인간의 정신은 아주 단순해지지. 그래서 맹목적이고, 강해지는 거야.”
세이나도 한때는 강했다.
“하지만 그건 진정한 강함이 아니야. 정말로 강한 것은 파괴하는 게 아니라 지키는 힘이니까.”
“흐으으. 흐으으.”
철문이 열리고 이단관리부의 성기사가 나왔다.
온몸에 피를 칠한 그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우는 자.’
“나, 나는…… 슬프다. 이 세상이, 이 현실이…….”
시로네 일행이 있음에도 그는 신경 쓰지 않고 다른 방으로 향했다.
이루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완전히 맛이 갔군. 우리를 못 본 게 아니야. 이미 사고가 마비되어서 기계처럼 행동하고 있어.’
문이 열린 방 앞에 서자 처참하게 당한 남자가 보였다.
세이나가 다가갔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기다려요. 지혈이라도…….”
“죽여.”
남자가 말했다.
“제발…… 죽여 줘. 감옥에서 벗어나게 해 줘.”
울먹일 듯한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던 세이나가 눈을 감으며 소리쳤다.
“충분히 알았어!”
야훼가 옳았다.
“내가 잘못했다는 걸 알았다고. 그러니 더 조사할 필요 없어. 나가자. 여기 있는 사람들을 구하는 게 먼저야.”
그것이 정상적인 사고일 테지만, 시로네는 여전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죽여! 날 죽이란 말이야!”
발버둥 칠 힘도 없는지 남자가 손을 허우적대자 세이나가 손을 잡았다.
“이제 괜찮아요. 우리가 여기서 꺼내 줄게요.”
“킥.”
남자의 목에서 긁는 소리가 들렸다.
“킥킥킥! 꺼내? 뭘?”
“그야 감옥에서…….”
그 순간 남자의 초점이 처음으로 또렷해졌다.
“이렇게 넓은 감옥도 있나?”
모두가 말의 의미를 생각하는 가운데 남자가 갑자기 얼굴을 들이밀었다.
“죽여어어어! 죽이라고! 날 죽이란 말이야!”
핏물이 얼굴에 튀고, 오한을 느낀 세이나가 황급히 물러서려는 그때.
“헛수고야.”
철문 바깥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바닥까지 흘러내리는 로브에, 양손에 사슬을 들고 있는 남자였다.
이루키가 물었다.
“누구냐?”
“바니사.”
교황청 서열 2위, 용서하는 자였다.
신탁관리부의 팰러딘인 세이나조차 그와 대면하는 건 처음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바니사는 반응이 없었다.
“성스러운 교황청에서 이런 참극이 벌어지고 있다니. 대체 누가 승인한 거예요?”
“……신.”
바니사가 후드를 벗자 로브가 육체를 따라 미끄러졌다.
눈이 휘둥그레진 세이나는 위장 끝에서부터 구역질이 밀려들었다.
‘자기 몸에 무슨 짓을 한 거야?’
신체의 특정 부위마다 근육이 비어 있어 뼈가 보였고, 안에서 장기가 꼬인 듯 복부에 뒤틀린 흔적이 있었다.
시로네가 나섰다.
“내가 맡을게. 강한 사람이야.”
야차 혹은 반야.
아니, 어쩌면 그 두 가지를 전부 가진 무언가.
“죽여…… 죽이라고.”
고문당한 남자의 신음 소리가 새어 나오자 바니사가 낫으로 가리켰다.
“운이 좋군. 해 주는 게 어때? 자비를 베풀라고.”
시로네가 쏘아붙였다.
“저 사람을 감옥에서 데리고 나가는 게 자비야.”
“감옥?”
바니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우리는 모두 감옥에 갇혀 있지. 바로 여기.”
그의 낫이 자신의 가슴을 찔렀다.
“육체라는 감옥에 말이야.”
“…….”
“1밀리미터조차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구속 상태, 그것이 육체다. 내 몸을 봐라.”
그가 상체를 펼치자 부러진 갈비뼈가 살을 찢고 튀어나왔다.
“큭.”
세이나가 고개를 돌리는 가운데 그가 내뱉었다.
“이 육체 어디에…… 내가 안식할 공간이 있지?”
바니사가 천천히 다가왔다.
“어디에도 숨을 수 없어. 고통은 온전히 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신이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야.”
네이드가 전격을 끌어냈다.
“제정신이 아니야.”
“제정신? 우리는 탄생과 동시에 감옥에 갇히고, 이 감옥에서 벗어나기 전까지 끝없이 고통을 받지. 그 고통을 견딜 수 없을 때가 되면 신은 우리에게 감옥의 문을 열어 주신다.”
휘두르면 낫이 닿을 거리에서 바니사가 멈췄다.
“온전한 진리를 얻은 정신을 육체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것이지. 제정신이 아닌 것은 너희들이다.”
어떤 자들은 절망의 끝에 자살을 택한다.
“저 남자는 스스로 죽을 수 없어. 아직 진리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육체라는 감옥에서 탈옥하려고 하지. 나는 그를 도와주는 것이다.”
궤변이다.
분명 그럴 테지만 반박할 수 없는 이유는…….
‘바깥 세계.’
이제는 시로네가 신의 정체를 짐작하기 때문이었다.
‘바니사는 바깥 세계에 대해 몰라. 따라서 스스로 깨달은 신념. 하지만 그것은 또한 극한의 고통 속에서 태어난…….’
한 인간의 진리.
“어리석은 피조물들이여, 신은 우리를 육체에 가두셨다. 그 존재의 업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어. 참회하라. 고통 속에서 진리를 깨달아라. 내가 너희를 용서하리라.”
“왜지?”
시로네는 광인에게서 진리를 찾고자 했다.
“이유가 뭐야? 어째서 신이 우리를 벌하는 거지?”
“오직 하나.”
고개를 수직으로 세운 그의 몸이 천천히 앞으로 쏠렸다.
“신의 영광을 위해.”
“피해!”
네이드와 이루키가 땅을 박찼다.
반면 시로네는 세이나를 지키기 위해 그 자리에서 미라클 스트림을 발동했다.
바니사의 두 팔을 빛의 연기로 휘감는 순간 엄청난 압박이 느껴졌다.
“크윽!”
근육이 끊어졌는데도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신적초월.
“야훼여.”
미라클 스트림의 위력을 이겨 낼 수 있는 이유는 심적초월.
“너야말로 이단이다.”
시로네가 이를 악물고 빛의 연기를 휘두르자 바니사가 복도의 벽에 처박혔다.
콰아아앙!
굉음의 메아리가 사라지기도 전에 시로네가 소리쳤다.
“가! 출구를 찾아!”
바니사의 실력을 확인한 네이드와 이루키는 신성력이 더욱 약해진 세이나의 손목을 붙잡고 복도를 달렸다,
“신념, 육체, 철학, 움직임.”
전보다 망가진 바니사의 육체가 좀비처럼 일어섰다.
“그런 것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천만에, 야훼. 착각이다.”
거슬리는 갈비뼈 하나를 부러뜨린 그가 다시 낫을 움켜쥐고 돌진했다.
“신의 감옥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
***
케이든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마야.’
델타 본청, 토르미아 구역의 예술인 숙소를 지키는 그는 마야의 옆방을 배정받았다.
‘자고 있을까?’
벽 너머를 응시해도 보이는 건 없고, 상상의 나래만 펼쳐질 뿐.
‘헛생각하지 말자. 마야를 지키는 것으로 된 거야.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그때 하체 쪽에서 이상한 감각이 느껴졌다.
“응?”
고개를 들어 확인하자 바지가 벗겨진 상태였고 자신의 오른손이 움직이고 있었다.
“으아아아! 이게 뭐야! 젠장!”
신의 손 증후군.
욕망에 반응하는 것 같지만 어떤 기준으로 움직이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이 멍청한 오른손! 멈추라고! 난 원숭이가 아니야!”
왼손과 오른손이 사투를 벌이는 그때 마야가 문을 벌컥 열었다.
“케이든! 무슨 일이야!”
“어어어! 어어어어!”
케이든은 자신의 육체가 초인적인 반사 신경을 가졌다는 것에 감사했다.
다급하게 이불을 끌어 올리는 모습에 마야가 얼굴을 붉히며 손을 흔들었다.
“미, 미안해. 나는 아무것도 못 봤어. 진짜야.”
‘제길! 제길!’
좌절감에 케이든의 고개가 이불에 파묻혔다.
‘글렀어. 난 절대로 마야를 지킬 수 없을 거야.’
그의 생각을 부정하듯 오른손이 검지를 빼내더니 천천히 좌우로 움직였다.
인간의 미지 (2)
이상한 행동을 하는 케이든을 보고 마야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살며시 고개를 든 케이든이 또다시 오른손의 방종을 목격하고 황급히 팔을 끌어당겼다.
“젠장! 미치겠네.”
“케이든, 괜찮아?”
“아, 그게…….”
할 말이 있을 리 없었다.
“무슨 일이야?”
같은 통로를 쓰는 예인들이 복도로 나오고, 예인단 대표 레이나가 방으로 들어왔다.
“왜 그래? 왜?”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시선이 이불로 아래를 덮은 케이든에게 쏠렸다.
마야가 설명할 방법을 모르는 가운데 케이든의 얼굴이 터질 듯 붉어졌다.
“흐음.”
남자 형제들과 함께 자란 레이나는 대충 짐작했다.
“난 또 무슨 큰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네. 마야, 신경 쓰지 마. 건강해서 그런 거야. 그래도 케이든 씨, 새벽에는 소리에 좀 신경 써 주세요.”
‘아, 아니야.’
어떻게든 만회를 해 보려고 했으나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 앞에서는 혀가 움직이지 않았다.
레이나가 마야의 어깨를 끌어당기며 문으로 향했다.
“가자, 마야.”
그러고는 살며시 속삭였다.
“동창인 건 알지만 조심해. 내가 좀 지켜봤는데, 하는 행동도 음침하고 좀 변태인 것 같아.”
“아, 네.”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마야였으나 솔직히 자신할 수 없었다.
“자, 자! 모두 들어가요. 아침에 점호할 테니까 푹 주무세요.”
레이나가 예인들을 해산시키고, 텅 빈 복도에서 마야는 케이든의 방문을 돌아보았다.
한편 황급히 바지춤을 올린 케이든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젠장. 멍청한 놈.’
차라리 발가벗고 자이브 시내를 돌아다니는 게 나을 터였다.
마야만 그곳에 없다면.
‘토르미아로 돌아가자. 나 같은 놈이 무슨 기사라고. 여기 있어 봤자 사람들에게 폐만 끼칠 뿐이야.’
음침한 방 안에서 사랑하는 여자의 얼굴을 하루 종일 그려 대는 것이 어울리는 인간일 뿐이다.
노크에 이어 마야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들어가도 돼?”
케이든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지금은 안 돼. 어떻게 얼굴을 보라고.’
거절을 하려는 그때, 마야가 말을 이었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중요한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