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69
***
원인.
“당신이 유프라요?”
진리의 피라미드에 갇힌 사람들은 각자의 삶을 이룬 수많은 원인을 경험했다.
대검호 유프라가 인상을 찡그렸다.
‘젠장, 언제까지 이런 게 보이는 거야?’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30대 중반의 시절, 대검호라 불리기 부끄러운 때였다.
하지만 나름대로 소문 관리를 잘해서 그와 맞붙으려는 검사들이 종종 찾아왔다.
“그렇소만?”
당시의 유프라는 그를 찾아온 검사가 놀랍도록 강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어쩌면 자신보다 더.
“패검의 달인이라는 소문은 익히 들었습니다. 허나 저도 검에는 일가견이 있는 바, 승부를 청합니다.”
유프라는 무심한 척 남자를 살폈다.
‘솔직히 말하면…….’
두려웠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그의 검에 무참히 깨지는 상상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미안하군. 오늘은 친구의 기일이라서. 쓸데없는 살생은 저지르고 싶지 않아.”
‘그렇게 둘러댔었지.’
죽은 친구는 수도 없이 많았으니까.
‘나는 언제나 그랬다.’
다른 검사들이 꿈을 향해 목숨을 거는 동안, 이길 수 있는 상대하고만 싸웠다.
현실의 유프라가 내뱉었다.
“젠장! 그래서 뭐?”
자격지심.
당시의 그는 등을 돌린 채 멀어졌기에 상대의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
진리의 피라미드에서 확인한 남자의 눈빛은.
경멸.
“으아아아!”
현실의 유프라가 튀어 나갔다.
“그래! 싸워 주마! 덤벼! 내가 못 이길 것 같아?”
과거에는 도망치는 게 전부였지만 이제는 그의 실력도 상당히 올랐으니.
쾅!
칼이 맞부딪치는 순간 젊은 검사의 얼굴이 오랜 친구인 발자크의 모습으로 변했다.
“여전하구나, 유프라. 그래, 너는 항상 이길 수 있을 때만 검을 뽑았지.”
“크윽!”
다시 심장이 쿵쾅거렸다.
“너는 알고 있었던 거야. 그렇게 버티면, 수많은 경쟁자들이 알아서 사라진다는 것을.”
“아니야.”
아무리 고개를 저어 본들, 진리의 피라미드에서 거짓말은 통하지 않았다.
풍경이 바뀌고 전장 속에서 종횡무진 적을 베어 나가는 발자크가 보였다.
‘천재다. 진짜로 천재야.’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유프라는 친구의 실력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뭘 하고 있었지?’
풍경이 빠르게 변하면서, 한가하게 민간인 구역을 순찰하는 자신이 보였다.
‘가장 안전한 곳.’
적군의 장수를 베면 공을 세울 수 있지만, 높은 확률로 사망에 이를 것이다.
‘도박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어. 나는 그냥…… 그렇게 살아도 족했어.’
순찰을 하는 도중에 유프라는 지평선 쪽에서 타오르는 불길을 보게 된다.
“광역 마법?”
마법사들의 전술폭격에 일대가 초토화되었고 생존자는 1명도 없었다.
친구를 떠올린 그가 소리쳤다.
“발자크!”
검을 뽑아 들고 전장으로 달려가려고 하는데 부하들이 팔을 붙잡았다.
“대장! 참으세요! 전열을 이탈하면 안 됩니다!”
“놔, 이 자식들아! 발자크가 저기에 있다고!”
정말로…… 뿌리칠 수 없었을까?
“아니야.”
과연 친구를 걱정하는 마음이 전부였을까?
“그만해! 이 개자식아!”
어쩌면 나는…… 저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며 새로운 희망을 꿈꾸지 않았을까?
“으아아아! 염병! 나더러 뭘 어쩌라는 거야!”
친구의 장례식으로 풍경이 변하는 순간, 고함을 지르던 유프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안 돼.’
미망인이 된 엘리아나는 당시 그가 봤을 때보다 훨씬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30대의 유프라는 생각했다.
‘내가 먼저 좋아했어.’
그런 자신만의 이유가 마치 면죄부라도 된다는 듯이, 그는 그녀에게 걸어갔다.
“엘리아나 씨, 많이 슬프시죠.”
장례식 내내 유프라는 그녀의 곁을 지켰다.
“발자크는 검에 미친 놈이었죠. 검사로서 가장 멋진 마무리를 한 겁니다.”
그녀는 말이 없었고 유프라는 말이 많았다.
“발자크 그놈, 남겨 둔 유산이 별로 없다고 들었어요.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유프라 씨.”
엘리아나가 처음으로 꺼낸 말은.
“제발 이러지 마세요.”
그리고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은, 자신에게 도전해 온 남자와 똑같은…….
경멸과 혐오.
“어쩌라고! 개 같은 것들아!”
쾅!
유프라의 쌍검이 발자크의 검에 막혔다.
“그래! 사랑했다! 너무 사랑했어! 그래서 내가 네 마누라한테 손이라도 댔냐?”
잊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강한 상대는 피했고, 이긴 상대는 크게 부풀렸으며, 그렇게 수십 년이 지나자…….
“대. 검. 호. 유프라.”
“닥쳐! 너라고 뭐 다를 줄 알아? 그렇게 자신 있으면 네 과거도 까 봐! 다 똑같잖아! 조금은 비겁하게, 수치스럽게!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거라고!”
유프라는 반쯤 이성을 잃었다.
“살면서 좋은 일도 많이 했어! 자부심을 가진 적도 있었어! 네가 뭔데 나를 무시해!”
발자크가 슬픈 미소를 지었다.
“유프라.”
시간을 거스른 목소리 같아서, 유프라는 처음으로 환영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행복해라.”
검을 거두며 멀어져 가는 발자크를 중심으로 풍경이 거두어지기 시작했다.
“행복?”
유프라는 검을 내렸다.
“인생을 통째로 뒤집어 놓고 행복하라고? 그게 정말로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냐?”
어둠을 노려보는 그의 눈에 살기가 깃들었다.
“카니스, 언제까지 있을 거야?”
피라미드의 좁은 방에서 카니스와 아린은 벽에 등을 기댄 채 나란히 앉아 있었다.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움직일 의욕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어.”
카니스가 말했다.
“이 미친 공간이 우리를 미치게 만들려는 거야. 생각해 봐. 쌍둥이라고? 너랑 내가 닮은 구석이 있어?”
있었다.
쌍둥이처럼 똑같지는 않지만, 이란성이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아린이 고개를 숙였다.
“우린…… 어떻게 되는 거지?”
“아무 생각 할 필요 없어! 달라질 건 없잖아. 아린, 우리가 함께한 세월을 떠올려 봐!”
목숨보다 소중한 사람.
‘널 원한단 말이야. 너랑 평생 살아갈 생각이었단 말이야. 그런데 같은 피가 흐른다고?’
분노에 사로잡힌 카니스가 아린의 어깨를 붙잡더니 거칠게 입을 맞추었다.
큰 용기지만, 아린이라면 기꺼이 용납했을 터.
“안 돼!”
하지만 그녀는 몸을 밀어냈고, 엉덩방아를 찧은 카니스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왜, 왜 그러는 거야?”
초경으로 카니스의 감정을 읽은 그녀가 눈물을 흘렸다.
“미안해. 나도 너를 사랑하지만, 만에 하나…….”
“아니라고! 절대로 그럴 리 없어. 아니, 그럴 리가 없다고 믿고 살기로 했잖아!”
말로 전한 적은 없지만.
“그랬었지. 하지만 이제는 알아 버렸잖아. 적어도 정확히 알기 전까지는…….”
“이……!”
카니스가 악에 받친 소리를 지르려는 그때.
“여기 있었군.”
어둠 속에서 붉게 타오르는 눈동자가 다가왔다.
“아레스 씨.”
“모두 무사한가? 시로네를 찾아야 해.”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가온 그는 카니스와 아린의 얼굴을 보고 놀랐다.
“무슨 일 있었냐? 얼굴색이 왜 그래?”
대답은 없었다.
“그래, 너희들도 당한 거군.”
“아레스 씨도…… 과거를 보았나요?”
“음. 홍안의 능력으로 계속 초기화시키고 있지만, 상당히 끔찍한 작업이야. 이곳의 시간선은 뒤틀려 있어. 일행이 전부 흩어진 것도 그 증거겠지.”
카니스가 중얼거렸다.
“대체 왜 우리에게 이러는 거지?”
“이유는 없을 거야.”
아레스는 벽을 타고 흐르는 문자를 살폈다.
“그냥 그런 공간인 거지. 이곳에서는 모든 인과율이 시간에 상관없이 전부 해체되는 것 같아. 그건 마치…….”
“신의 관점 말이죠?”
아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주의 바깥에서 본다면 시간조차 그저 하나의 선에 지나지 않겠지. 어쩌면 이곳에는 정말로 신이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
“가자.”
카니스가 몸을 일으켰다.
“직접 만나겠어. 우리에게 이런 거지 같은 짓을 하는 이유가 뭔지. 되돌릴 거야. 만약 정말로 신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그 신을 죽여서라도.
***
세계보건기구의 파견단에는 각자 개인실이 주어졌다.
큼지막한 가방을 책상에 올려놓은 세리엘은 아침부터 기분을 망쳤다는 것에 실망했다.
“짜증 나.”
페르미의 얼굴이 떠올랐다.
당시에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학창 시절의 작은 해프닝.
‘에이미가 알면 죽이려고 들겠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으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그럴까?’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한 인간의 삶을 원인과 결과로 해체한다면 그 안에는 남이 상상할 수 없는 수많은 충동과, 수치와, 희열이 있는 법.
‘그때는 세상이 이 지경이 될 줄은 몰랐지.’
책상에 걸터앉은 그녀는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후우.”
어째서 담배를 물게 되었을까?
어쩌면 그것 또한…….
원인.
세리엘이 졸업반에 있을 무렵.
그날은 19주 차의 훈련이 끝나고 하루의 휴식이 주어진 날이었다.
에이미와 세리엘은 절친이었지만 졸업반에서 여가 생활은 꿈조차 꿀 수 없었다.
“에이미, 오늘 쉬는 날인데 뭐 해?”
“스피릿 존 보강 훈련 하려고. 너는?”
지칠 줄 모르는 카르미스와 달리 세리엘은 휴식이 필요한 평범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냥 뭐, 커피나 마실까 하고.”
“그래, 그럼…… 카페로 가자.”
흔쾌히 말은 했지만 에이미의 눈에는 난처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그것을 느낀 세리엘이 손을 맞부딪쳤다.
“아, 맞다! 원초적 올가미 후속편 나오는 날이네! 에이미, 미안. 커피는 다음에 마시자.”
“알았어. 서점으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