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71
파르카 쿠안.
***
델타 본청으로부터 200미터 떨어진 지점에는 12개국의 근위대들이 전부 모여 있었다.
성전이 제시한 라인이 길게 쳐져 있고, 그 선 밖으로 한 걸음이라도 나갈 시 적국에 대한 공격 의사로 간주한다는 룰이었다.
라이 또한 본청의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운 가운데, 자이브의 근위대가 말을 걸었다.
“혹시 강신의 근위 대장 라이 씨입니까?”
“그렇습니다만?”
성전의 치열함을 아는데도 기사들이 눈을 빛냈다.
“오오, 그럼 오젠트 리안의 형이군요?”
라이의 얼굴이 구겨졌다.
“아, 무례했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미르를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검사니까요.”
“자격지심 가질 필요도 없다, 이런 말입니까?”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어쩌면 사실일 테지만.
‘하긴, 모르겠지.’
세계 최강의 검사를 막냇동생으로 둔 형제의 입장 따위,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자신보다 유능한 자들이 전부 죽어 버렸기 때문에?
“대장님.”
테스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왕을 지킨다. 그것만 생각하면 돼.’
그 순간 라이의 등골이 서늘해지고, 12개국의 근위대가 동시에 몸을 틀었다.
“누구냐!”
마치 1명이 뽑은 듯 검의 마찰음이 하나의 음파로 굉음을 일으켰다.
“저건…….”
외팔이 검사가 절뚝이며 다가오고 있었다.
거대한 꿈 (1)
그곳에 모인 근위대는 쿠안이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세상이 휘청하는 것을 느꼈다.
“…….”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어찌 보면 애처롭기까지 한 걸음이었지만.
‘기운다.’
마치 파도가 몰아치는 배 위에 올라탄 듯 몸의 중심을 잡기가 어려웠다.
“흐음.”
나타샤가 입술을 매만지며 흥미로운 표정을 짓는 반면 풍장은 불쾌했다.
리더 율라가 말했다.
“접근을 막아.”
모두에게 쏘아지는 살기 가운데 가장 강력한 기운이 풍장을 향하고 있었다.
“네.”
99명의 검사들이 바람처럼 흩어지려는 그때, 키도가 먼저 앞으로 걸어갔다.
“멈춰.”
쿠안의 걸음이 멈췄다.
“토르미아 쪽의 검사지? 여긴 경호 허가증이 없는 자는 들어올 수 없는 곳이야. 돌아가.”
토르미아는 미워할 수 없으니까.
“본청에 볼일이 있다.”
델타의 건물을 돌아본 키도는 다시 쿠안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더욱 보내 줄 수 없어. 성전이 열린 뒤에는 누구도 출입하지 못해.”
라이가 끼어들었다.
“들어갈 수 있어. 그는 토르미아 특무대 소속으로, 출입증을 지니고 있다.”
키도는 입술을 말아 물었다.
‘살의는 있지만 적의는 없다. 물론 이 기운이 적의로 변하면 엄청나겠지만…….’
출입증까지 가지고 있다면 그냥 보내 줘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었으나.
‘죽여야 한다.’
율라는 확고했다.
키도만큼은 아니지만 풍장 또한 우오린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의중을 살피는 위치.
‘저 남자는 여황님의 우환이야. 어쩌면 좋은 기회다. 여기서 벤다고 해도 성전에는 영향이 없어.’
선을 넘은 건 쿠안이므로.
“무슨 이유로 지각을 한 건지는 모르지만, 여긴 경호 구역이다. 이쪽을 통해서는 갈 수 없어.”
“그럼 어디로 가지?”
“그거야 네 마음이지. 하지만 델타 본청으로 들어가는 길은 이곳뿐이다.”
어떻게든 옭아맬 생각이었다.
율라의 성격을 알고 있는 키도가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쿠안에게 말했다.
“돌아가라, 제발.”
그 눈빛을 담담하게 받아들인 쿠안이 시선을 천천히 올리며 중얼거렸다.
“운이 좋군.”
“응?”
어릿광대 피에로-초기움.
갑자기 땅이 쿠안 쪽으로 급격히 기울더니 70도가 넘는 경사를 만들었다.
동시에 근위대가 외중력을 토해 냈다.
“잡아!”
자연체로 추락하는 건 나타샤, 땅에 붙어 있는 건 키도, 풍장은 바람처럼 날아가 검을 뽑았다.
‘놓치면 안 돼.’
쿠안은 마치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듯했고 잠시라도 놓치면 끝장이었다.
그 순간 기울어진 70도가 이번에는 왼쪽으로 뒤집혔다.
“제길!”
다시 북쪽과 남쪽이 역전되고, 이제는 아예 구처럼 난회전을 하고 있었다.
쿠안의 동작을 확인할 수 있는 건 지박령으로 땅에 붙어 있는 키도뿐이었다.
“푸우! 진짜 괴상하네.”
반면 나타샤는 마치 놀이 기구를 탄 듯 세상이 도는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역시 쉽지 않다.’
단일 대상으로 초기움을 사용하면 시야 밖으로 벗어나는 건 쉬운 일이지만.
‘전부 따돌리기는 어려워.’
이곳에는 수백 명의 검사들이 있고 하나같이 왕국에서 최고의 실력자들이었다.
풍장의 멤버가 율라에게 고했다.
“대장, 속셈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단체로 움직이면 호위망에 빈틈이 생길 수도…….”
“음…….”
고작 1명의 검사에게 전원이 끌려다닌다는 사실은 충분히 수치스러웠다.
‘하지만 그 정도의 사내다.’
아킬레스건이 떨어져 나간 채 산길을 기어가던 젊은 시절 쿠안의 모습이 떠올랐다.
‘여기까지 도달했는가.’
1명의 검사로서 박수를 쳐 주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그녀가 지시했다.
“한 번에 끝낸다. 사망진을 펼쳐라.”
“네.”
100명의 풍장이 그물처럼 교차하더니 쿠안을 중심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걸리면 뼈도 못 추리겠군.’
과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카샨 최고의 검사들을 상대하는 쿠안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차가웠다.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야.’
근위대장 자리를 거절한 이유는 누군가를 지키는 것 따위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어릿광대.’
그녀를 웃게 만들기 위해서라면 어떤 바보 같은 짓도 할 수 있는 피에로.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아직은 인간이라서, 그녀와 함께할 수 있다는 망상이라도 했던 것일까?
“크크.”
포위망을 좁히는 풍장의 암막 속에서 그는 시이나의 얼굴을 떠올렸다.
“웃어.”
재밌는 거니까.
“쳐라!”
100개의 칼날이 강풍을 일으키며 쿠안이 있는 자리를 초토화시켰다.
풍경의 기울기가 제자리를 되찾고, 풍장의 멤버들이 다시 편대를 형성했다.
“…….”
키도의 표정이 멍해졌다.
“없다.”
보지 못했다.
한순간 풍경이 일그러졌고, 다음 순간 쿠안의 육체가 증발한 상황이었다.
“비켜.”
라이가 달려왔다.
풀들이 소용돌이처럼 휘말린 중심부에 붉은 핏방울이 뚝뚝 떨어져 있었다.
“……베었나?”
율라는 위증하지 않았다.
“아니. 우리 중 누구도 베지 못했다. 검이 도달하기 직전에 그가 먼저 사라졌어.”
“그렇다면 이 피는?”
“아마도…….”
율라가 자신의 머리를 검지로 가리켰다.
“귀.”
스스로 고막을 파열하는 것으로, 그의 청각 또한 이제 반쪽짜리가 되었다.
‘쿠안 씨.’
12개국의 근위대가 전부 모여 있는 진영을 단신으로 돌파한 상황 앞에서.
‘진정 귀신이 되려 하는 겁니까?’
라이는 최강의 검사가 되기 위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조금은 짐작했다.
***
교황이 발의 연설을 했다.
“라미교는 세계적인 종교입니다. 하지만 전 세계인이 라미교를 믿지는 않지요.”
정숙한 분위기였다.
“믿음에는 언제나 대가가 따르는 법입니다. 그것은 영혼을 매장하는 행위이자, 그 어떤 합리에도 더 높은 초월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교황의 시선이 시로네를 향했다.
“그 대가로 얻을 수 있는 것은 강함. 내가 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믿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안식. 이 세계에 필요한 건 그런 게 아닐지.”
시선이 거두어졌다.
“라미교의 가치는 싸울 수 없는 자들이 기댈 수 있는 용기, 희생, 희망이면 되는 게 아닐지.”
기스가 중얼거렸다.
“오오, 신이시여.”
“그 누구도 신은 아닙니다. 라미교의 교황으로서 오직 인류를 위해 싸울 수 있는 지도국이 나오기를 크리아 신께 간절히 바라옵니다.”
박수 소리가 회의장을 수놓았다
야훼의 힘을 빌려야 하는 토르미아 왕국으로서는 불편한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루피스트가 관자놀이를 주먹에 기댔다.
“성전 지도국의 공인 종교로서 입김이 세니까. 무엇보다 왕국에는 없는 명분이 있어.”
플루가 동의했다.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은근히 야훼를 부정하는 워딩을 구사하고 있어요. 노리고 한 거겠죠.”
“음.”
각자의 속마음은 다르겠지만 공식적으로 분위기는 감동에 젖어 있었다.
“다음으로 국제재판부의 발의가 시작되겠습니다.”
수장 소크라테스가 뚱뚱한 거구의 몸을 단상에 올리며 땀을 닦았다.
“응차. 후우, 날이 덥구먼. 아니지, 나만 더운 건가? 비곗덩어리 옷을 입었더니.”
누구도 반응하지 않자, 그가 고함에 가까운 폭소를 터트리며 소리쳤다.
“농이외다! 푸하하하!”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흠흠. 그럼 발의하겠소. 나, 국제재판부의 부장 베베토 소크라테스는…….”
그가 눈을 부릅뜨며 내뱉었다.
“오늘부로 사임하겠소.”
각국 관리들은 반응이 없었으나 성전에 근무하는 자들은 술렁거렸다.
“소크라테스 씨,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말 그대로. 사임이지. 빵이라도 하나 더 먹겠다는 말이외다. 먹는 게 남는 거니까. 내 후임으로 미토 시라노 씨를 추천하는 바이오. 이상.”
“시라노?”
소크라테스가 내려가고, 앙상하게 마른 중년 여성이 단상으로 올라왔다.
별칭은 늪색 마녀, 한때 스탕 왕국에서 마법협회장을 지냈던 인물이었다.
“감사합니다, 소크라테스 씨. 이런 엿 같은 자리를 저에게 물려주어서요.”
성격대로 입이 거칠었다.
“그럼 제가 발의하죠. 저는 이 이 시간부로 부장직을 사임하겠습니다.”
“대체 뭐야! 성전이 장난입니까!”
비로소 몇몇 관리들의 반발이 일어났으나 시라노는 거칠 것이 없었다.
“닥치세요. 마법사를 우습게 보는 것도 아니고, 이런 소꿉장난 같은 정치판에 우리를 끼워 넣지 말란 말입니다. 어차피 모두 알고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