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74
시로네는 또 다른 자신의 위치를 살폈다.
‘2일 뒤면 자이브에 온다.’
문제는 람파가 알고 있다는 것.
위저드를 훈련시키는 것 자체가 상아탑 프로젝트의 일환이었기 때문이다.
‘람파 씨가 사탄을 도울 리는 없겠지. 하지만 현재는 상황이 미묘해졌어.’
씽이 내분을 일으켰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 상아탑의 결과에 따라서는 정보가 새어 나갈 위험성도 있어.’
상아탑에 갈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마계…….”
하비츠의 목소리가 들렸다.
“없애 줄까?”
회의장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리자 우오린이 미간을 찡그렸다.
‘또 제멋대로 구네.’
그녀의 불안한 마음과 다르게 각국의 대표들은 일말의 희망을 가졌다.
“가능한 일이오?”
“가능하지. 나는 지옥의 군주니까. 레테에게 말하면 될 거야. 지옥을 정화시키면 되니까.”
포니가 말했다.
“지옥이 정화된다는 건 당신의 세계가 파괴된다는 거잖아요. 우리를 놀리는 것입니까?”
“아니, 진짜야. 내가 오늘 느꼈는데, 지옥은 안 없어져. 너희들이 살아 있는 한.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인류의 10퍼센트를 나에게 넘겨.”
“10퍼센트?”
“다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 나도 명색이 사탄인데 지옥을 재건할 재료는 필요하지 않겠어? 결정만 하면 마계는 완전히 사라질 거야.”
재앙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단, 사탄의 손에 붙잡힌 인류의 10퍼센트는 지옥이 재건될 정도의 고통을 당하겠지만.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기스가 벌떡 일어났다.
“인간의 존엄을 폄하해도 유분수지. 인류의 10퍼센트가 얼마나 큰 숫자인지 알기나 하는 겁니까? 인류는 절대로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을 겁니다!”
“흐음.”
신의 주파수는.
-닥쳐. 내가 세계의 왕이 될 거야.
“싫다면 할 수 없는 일이고, 제안을 하는 거야. 그럼 이런 건 어때? 10퍼센트가 너무 많다면, 1명만 넘겨.”
“응? 1명?”
하비츠가 시로네를 가리켰다.
“야훼.”
우오린의 마음에 극한의 살기가 치솟는 걸 알면서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충분하거든. 인류의 10퍼센트가 아니어도. 저 녀석을 넘기면 세계는 평화로울 거야. 안 그래?”
“이……!”
포니, 세리엘 등 시로네와 마음으로 교감하는 자들이 벌떡 일어서는 그때.
“너 따위가 뭔데?”
사티엘이 말했다.
“더럽고 불결한 짐승이여, 네피림은 너 같은 놈이 손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네피림이라고 돌려서 말했으나 시로네는 자신을 지칭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째서?’
사티엘은 이카엘과 거핀 사이에서 태어난 생물학적 아이를 죽음으로 몰았다.
인간의 기준으로는 이모가 조카를 사지로 내친 것과 같은 느낌일 터였다.
‘죄책감이라도 느끼는 겁니까?’
시로네가 쳐다보는 것을 알면서도 사티엘은 의도적으로 시선을 피했다.
‘착각하지 마라. 나는 천국을 위해 할 일을 하는 것뿐이야. 너를 죽인 건 내 자랑이다.’
그런데 어째서 기분이 나빴던 것일까?
‘아마도.’
시로네의 모습에서 가장 증오하는 천사와 가장 사랑하는 인간이 동시에 보여서.
‘그래, 죄책감 때문이 아니야. 난 천사장 사티엘이다. 죽여도 내가 죽일 거야.’
그녀가 선언했다.
“사탄아, 인간은 현혹시킬지 수 있을지 몰라도 천사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네피림을 네 밑에 둘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힘으로 찍어 눌러 주마.”
“크크.”
신의 주파수가 발동되었다.
‘이것도 꽤 물건이군.’
고리타분한 대천사의 정신에서 인간의 파동을 느끼는 날이 올 줄이야.
“마계를 없앨 방법은 있소.”
진강이 말했다.
“진천우주국은 마계를 연구했고 가시적인 성과를 얻을 정도의 기술력에 도달했소. 조만간 마계는 천사가 아닌 진천에 의해 종적을 감추게 될 것이오.”
“어떤 방법이죠?”
“광천성.”
진성음이 사용한 시공간 요격기였다.
안찰이 말했다.
“광천성은 공간을 왜곡시킵니다. 이면 세계도 다르지 않다는 것은 진천의 공주, 진성음이 증명한 바. 또한 우리에게는 공주가 남긴 데이터가 있습니다.”
안찰이 검지를 올리자 큼지막한 구체에 광천성의 환영이 펼쳐졌다.
“이에 우리는 개발에 개발을 거듭, 지옥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무기를 만들었습니다. 파마광천성. 진천의 공주를 자폭시켜, 마계를 초토화시킬 겁니다.”
하비츠가 눈을 깜박거렸다.
“흐음.”
사탄이 반박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파마광천성의 가능성이 검증된 셈이었다.
“잘 들어라, 하비츠.”
진강의 눈에 실핏줄이 일어섰다.
“진천을 건드린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다. 너를 초월하는 악이 되어 벌해 주마.”
‘엄청난 울림.’
사랑하는 딸을 지옥에 보내야 했던 아비의 마음이 하비츠에게 똑똑히 들렸다.
시로네는 그 심정을 이해했다.
‘오직 이 순간을 기다리며 버텼겠지.’
이 한마디를 내뱉기 위해 폐부로 삼켜야 했던 수많은 언어의 무게가 느껴졌다.
“잠시…… 휴정하겠습니다.”
의장의 선언에 각국 대표와 관리들이 우르르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오늘 회의는 여기서 끝이야.’
모두 직감하고 있었다.
거대한 꿈 (4)
***
‘첫날은 탐색전.’
관리들은 자국의 구역으로 향했다.
‘하나의 국가만이 지도국이 될 수 있다. 지금 당장 연합을 제안할 나라는 없어.’
동맹국이 투표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지도국을 정하는 문제가 남았다.
‘동맹국 간의 우선순위가 정해지려면 힘의 균형이 어느 정도 기울어야 한다.’
피아가 구분되지 않은 시점에서 선뜻 손을 내밀 나라는 아직 없을 터였다.
각국의 생각이 복잡해지는 가운데 방으로 들어온 우오린이 버럭 소리쳤다.
“지금 뭐 하는 거야!”
키도가 지켜보고 있었고, 하비츠는 침대에 드러누워 눈을 깜박거렸다.
“뭘?”
“시로네를 걸고넘어졌잖아. 거래를 잊었어? 세계를 넘기는 조건으로…….”
“너는 시로네를 차지하지.”
하비츠가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좋은 전략이잖아. 시로네가 내 거래를 받아들이면, 너에게도 좋은 일이니까.”
“그런 식으로는 마음을 얻을 수 없어. 처음 계획대로 해. 자꾸 엇나가지 말고.”
“엇나가는 건 너야.”
“뭐?”
하비츠는 우오린을 가리켰다.
“히스토리 서치의 능력. 카샨이 지도국이 되면 너는 인류를 울티마로 통합시킬 수 있다.”
우오린이 시로네가 자신에게 올 것이라 확신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게 어쨌다는 거야?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면, 너에게 능력을 넘긴다고 했잖아.”
미토콘드리아 이브의 계보에서도 미래시를 가진 건 우오린뿐이었다.
그녀가 무언가를 보면, 그 물체가 미래에 움직일 궤적이 빛의 선으로 드러난다.
실제로 그녀가 보고 있는 사과는 표면을 따라 미약한 빛이 흐르고 있었다.
잠시 후, 손의 형태를 띤 빛이 사과의 빛과 연결되더니, 사과를 아래로 떨어뜨렸다.
“…….”
“사실 별거 아니지.”
하비츠의 말에 우오린이 시선을 돌렸다.
“미래의 움직임을 본다는 거. 그 정도는 그냥 예측할 수 있는 거야.”
미래시가 강력한 이유.
“진정한 진가는 눈을 감았을 때 발동되지. 그게 바로 네가 감추고자 했던 비밀.”
우오린이 아무것도 보지 않을 경우 시간선은 무한으로 확장될 수 있다.
‘모든 신호는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하비츠의 손끝, 그 손이 닿는 테이블, 테이블이 닿는 바닥, 바닥과 연결된 대지.
그 대지를 통해 세워진 건물, 인간, 생물, 식물의 모든 궤적이 빛의 선으로 드러난다면.
“역사를 지배하게 되는 거지. 그 안에서 일어나는 변수를 조작하면서 말이야.”
하비츠가 사과를 들었다.
“자, 어때?”
황금빛으로 펼쳐진 시간선이 거대하게 요동친다.
“내가 여기서 사과를 떨어뜨리면, 2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지?”
사과가 바닥을 굴렀다.
키도가 주울 것이고, 그 사과는 내일이면 상해서 청소부가 수거해 갈 것이다.
물론 그 사과는 쓰레기통에 담겨 벌레들의 먹이가 되고…….
‘끝없이 시간선을 가속시켰을 때.’
벌레들이 서식하는 콜로니에 변화가 생겨 결과적으로 1만 개체 단위의 생물학적 변화가…….
“그만.”
우오린은 생각을 접었다.
미래시는 파고들수록 확장되기 때문에 어느 순간에는 뇌에 과부화가 걸린다.
“멋지군.”
우오린이 설명하지 않아도 하비츠는 신의 주파수로 모든 걸 꿰뚫었다.
“내가 사과를 떨어뜨린 사소한 행동이 벌레들의 역사를 바꾸다니. 마치 신 같군.”
우오린이 콧잔등을 구긴 이유는 그 벌레가 인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눈으로 보는 건 한계가 있어. 히스토리 서치는 반경이 너무 방대하고. 고작해야…….”
라 에너미를 찾을 수 있는 정도.
“아니, 아니지. 능력의 한계는 없어. 그건 너의 뇌가 인간의 것이기 때문이지.”
하비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가이아인의 뇌가 남아 있다고 들었는데…….”
우오린의 눈에 살기가 치솟고, 가슴속에서 뜨거운 분노가 차올랐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너를 살려 둔 이유를 잊지 말라고. 강제로 뺏으려면 너는 자살할 테니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너의 뜻에 동참하는 거지만…….”
그만큼 가지고 싶은 능력이었다.
“미래시가 시로네에게 넘어간다면, 나도 처음으로 분노를 느낄 것 같거든.”
하비츠는 문으로 향했다.
“내 방법이 좋을 수도 있어. 잘 생각해 봐.”
그가 카샨 구역 밖으로 넘어가면 소란이 일 테지만 어차피 막을 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
문이 닫히자 키도가 말했다.
“마음에 들지 않아. 처음부터 불가능한 거래였어. 저 녀석은 네 능력이 너무 탐나서 그냥 이용당해 주고 있는 거라고. 이러다가는…….”
“닥쳐.”
키도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정신 차려! 네가 울티마를 만들 수 있다고 해도 시로네는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키도, 제발.”
우오린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제발…… 닥쳐.”
***
저녁이 다가올 무렵, 아라크네의 사신이 각국에 서신을 전달했다.
“연회라. 팔자 좋군.”
루피스트가 테이블에 서신을 올려놓자 시로네가 눈을 내려 읽었다.
“대부분 참석할 겁니다.”
“음, 회의에서는 할 수 없는 물밑 작업이 이제부터 시작될 테니까. 분위기를 보기 위해서라도 빠지지 않을 거야. 문제는…….”
루피스트가 서신의 마지막 문장을 가리켰다.
“즐거운 연회를 위해 각국의 예인들도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 주시기 바랍니다. 표면적으로는 문화적인 우위를 겨루어 보자는 의도일 수도 있지만…….”
알비노가 말했다.
“밤의 정치가 시작되려는 것이지. 아라크네 쪽에서 본격적으로 미인계를 펼칠 게야. 어느 정도 위력일지 궁금하군. 자네가 한번 경험해 보는 게 어때? 수준을 알면 타국에서 얼마나 많은 정보가 빠져나갈지 유추할 수 있지 않겠나?”
대답이 없자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할 수는 없잖아. 이 나이에…….”
“상황 봐서 결정하겠습니다. 그보다 문제는 우리 쪽 예인입니다. 가급적 아껴 두고 싶군요.”
지키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불온한 의도가 섞여 있다면 거절하고 싶어요.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요?”
시로네의 말에 동의하는 사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