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76
“우오린.”
그녀의 어깨가 움찔했다.
뒤를 돌아보자 아무도 없는 복도를 시로네가 빠르게 걸어오고 있었다.
“……흥.”
자신의 뒤를 따라오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서운했다.
‘이럴 때만 찾지.’
시로네가 말했다.
“조금 전의 상황, 어떻게 된 건지 알고 있지?”
“몰라. 알고 있다고 해도 너에게 설명할 이유는 없잖아. 우리는 경쟁자니까.”
시로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시로네를 꺾어야 하는 아이러니였다.
“신의 관점.”
바깥 세계의 비밀을 페르미에게 전했으니, 우오린의 귀에도 들어갔을 터였다.
“이건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하지만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진 건지 모르겠어.”
“하아.”
한숨을 내쉰 우오린이 말했다.
“따라와.”
카샨 구역에 도착한 그녀는 주위를 살핀 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35분 동안은 아무도 오지 않을 거야.”
미래시로 바라본 복도에 특별한 사건의 궤적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35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뜻이지. 간단히 설명할게. 너에게 얻은 정보도 있으니.”
우오린은 생각을 정리했다.
“연회장에 12개국이 모였지. 나처럼 왕이 참석한 국가도 있지만 몇몇 국가는 오지 않았어. 아마도 범인은 그 국가 중의 하나일 거야.”
“문. 남방. 그리고…….”
시로네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파라스.”
“그래. 연회장에 신의 능력이 작용한 거라면, 진리의 피라미드가 있는 파라스가 유력한 후보. 너도 짐작하겠지만 국왕 키트라는 피라미드에 들어갔었을 거야.”
“감정병도 치유가 된 것 같고. 문제는 어떤 방법으로 시스템을 바꾸었냐는 거지.”
“황도12궁.”
우오린이 검지를 들었다.
“별의 운행이야.”
몇몇 자들은 연회장을 빠져나갔고, 그중 1명은 진천의 황제 진강이었다.
“설명해.”
거두절미하고 묻자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안찰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진천우주국이 조사하고 있습니다. 딱히 특별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다만?”
“별의 위치가 바뀌었습니다.”
진강의 표정이 불쾌해지자 곧바로 말이 이어졌다.
“사실 바뀌었다고 말할 정도는 아닙니다. 어쩌면 바뀌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제대로 설명해라.”
진강의 마음을 이해했지만, 안찰이라고 한들 더 나은 설명은 없었다.
“전하께서도 느끼셨겠지만, 어떤 사건이 망상의 영역으로 짓눌렸습니다. 다만 그것이 어쩌면 실제로 있었을지도 모르는 사건이라고 했을 때…….”
“별의 위치가 기존과 다르다는 것인가?”
“네. 육안으로 확인할 정도는 아닙니다. 천문학적인 숫자 분의 1 정도지요. 하지만 제 마정안은 마음을 다루는 능력인 바, 무언가가 변했다는 것은 틀림없이 느끼고 있습니다.”
“흐음, 별의 위치가 다르다.”
진강이 턱수염을 쓸어내리며 물었다.
“그게 어떤 의미지?”
“최초의 우주.”
우오린이 말을 이었다.
“그 순간부터 이어진 모든 원자들의 작용이 현재의 천체를 만든 것이지. 인간 또한, 아니 이 우주의 모든 존재는 그 율법의 운행에 속박되어 있어.”
그녀는 창문을 열었다.
“물이 있기에 물고기가 있다. 하늘이 있기에 새가 있는 거야. 고대의 인간들은 그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운명이라는 이름을 붙였지.”
밤하늘에 별들이 반짝였다.
“사실 별자리에 특별한 힘이 있는 건 아니야. 단지 그렇게 만들어진 천체. 시작부터 정해져 버린 그 규칙에 따라 어떤 인간은 이렇게 살아가는 결과가 나온다, 라는 의미지. 케이든이라는 남자는 적십자성의 운명을 타고났지만…….”
우오린이 뒤를 돌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케이든이 그렇게 태어나는 것은 이미 우주의 시작부터 정해져 있었고, 그 결과의 형태가 지금 보고 있는 별자리라는 거야.”
별의 위치가 만들어 내는 특정 패턴.
“적십자성은 남쪽 하늘, 붉은 7개의 별이 십자가 형태를 띠고 있지. 그런데 말이야. 만약…… 별의 위치가 바뀐다면 어떻게 될까?”
시로네는 비로소 깨달았다.
“율법이 바뀐다. 우주의 시작, 즉 최초의 원인이 달라졌기에 결과도 달라진다는 거로군.”
“그래. 실제로 행성을 옮기면 큰일이 나겠지. 하지만 시작부터 다르다면 위화감은 없어. 인간의 논리는 인과를 기반으로 하니까. 내가 태어났고, 부모가 있고, 부모의 부모가 있고…….”
우오린이 손을 돌렸다.
“그리고 마침내 우주의 시작에 도착하면 인간의 논리는 끝난다. 역으로 말하자면 거기서부터 인간의 논리가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 어떤 결과가 나온다고 해도 이상하다고 여기지 못하는 거야.”
“인과율을 철저히 지키면서 도달한 결과니까.”
연회장의 모두가 다른 기억을 가지고서도 자신의 의지라고 믿는 이유였다.
“그래. 기억의 오류는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야. 연회장에서 사람의 위치가 바뀐 것은 전 우주적 규모의 변화가 일어난 것. 물론 그 변화의 수치는 무한소에 가까울 정도로 미세할지도 모르지만, 파라스는 미세 조정에 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해.”
시로네는 신인류의 수장 피리를 떠올렸다.
‘나네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시작이 파라스일 줄은…….’
페르미는 알고 있었을까?
“시로네, 키트라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 우리가 할 일은 파라스보다 더 빨리 바깥 세계의 비밀을 파헤치는 거야.”
“진리의 피라미드를 탐색하고 있지만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성전이 끝나기 전에 결판을 내야겠지만…….”
“하나 더 있잖아.”
“응?”
우오린이 팔짱을 끼며 물었다.
“이미르의 꿈속. 양자 신호가 차단됐다는 것은 바깥 세계와 연결이 됐다는 뜻 아니야?”
냉철한 분석에 시로네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 보니…….’
울티마를 도굴하기 위해 꿈속으로 들어간 자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심연의 깊이 (2)
***
가올드는 꿈을 꾸었다.
끝이 없는 바다 위를 빠르게 비행하고 있는 그는 분명 고통스러운 상태였다.
머리카락은 하얗게 세었고, 흰자밖에 없는 눈에서는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에어 프레스!’
심해 고래보다 2천 배는 큰 시커먼 괴물이 괴성을 내지르며 꿈틀거렸다.
마신 레비아탄.
이미르의 정신, 심층 2단계에 존재하고 있는 최강, 최악의 생물체였다.
크아아아앙!
일갈만으로 수백 미터 높이의 해일이 생기자 세인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일월광륜.’
2개의 광륜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소리를 점차 줄이는가 싶었으나.
크아아아앙!
재차 터진 괴성에 결국 버티지 못하고 산산조각 깨지고 말았다.
“이런……!”
억제하는 힘이 사라지자 레비아탄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몸을 뒤틀었다.
바다를 내리칠 때마다 충격파가 터졌고, 쏟아지는 물속에 일행의 모습이 가려졌다.
“이야아아!”
미로의 기합에 이어 천수관세음의 화신이 물의 장막을 가르고 나타났다.
마신을 압도하는 크기의 손바닥이 수만 개로 늘어나면서 몸통을 가격했다.
키에에에!
얼마 만에 들어 보는 괴물의 비명인가.
‘틀렸어. 효과가 없어.’
하지만 단지 그뿐, 레비아탄은 상처 하나 입지 않은 채로 다시 날아올랐다.
시로네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얼마나 오래 싸웠지?’
현실의 시간을 짐작하기에는 그들은 너무 깊고 거대한 곳에 들어왔다.
다만 레비아탄과 나눈 합의 숫자로 계산했을 때…….
‘여섯 달은 지난 것 같은데.’
위력의 총량은 현실의 행성을 초토화시킬 정도였지만, 레비아탄은 부서지지 않는다.
‘꿈속이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시로네 일행 또한 정신력의 극한에 도달한 존재들.
“이것이 이미르인가?”
그의 정신에 충격을 가할 수 없다.
어떤 공격으로도 레비아탄을 좌절시킬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루버가 날아왔다.
“오대성님, 체력이 바닥입니다. 아니, 정신력이라고 해야겠지요. 여기서 시간을 더 끌면 승산이 없습니다.”
마신과의 여섯 달은 아마도 그들이 쉬지 않고 전투할 수 있는 최대치의 동력.
“……알았어요.”
각오는 빨랐다.
‘되든 안되든 해보는 수밖에 없어. 이번에 실패하면 정말로 끝나는 거야.’
유일한 방법은.
‘바깥 세계의 능력.’
루버의 오브제 가 발동된 뒤부터 시로네의 사고는 달라졌다.
‘신의 관점.’
현재 그가 도달한 깨달음은 현실의 시로네가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경지였다.
‘무한을 뛰어넘는 위력이 필요해.’
야훼의 정신은 무한하지만, 그 위력마저 무한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가 닫혀 있기 때문에.
‘원인과 결과는 단지 시간이 만든 논리일 뿐. 시간의 방향을 마이너스로 설정하면…….’
결과는 곧 원인이 되고, 원인은 다시 결과가 되어.
“무한대가 무한대로 순환한다.”
무한무인 것이다.
시로네의 핸드 오브 갓이 손바닥을 활짝 펼치자 빛의 입자가 압축되었다.
“크으으으!”
원인과 결과가 서로의 꼬리를 물고 순환하자 시로네의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
루버의 눈이 크게 뜨였다.
“저건……!”
마치 실타래에 감겨 있던 실이 풀리듯 시로네의 육체가 해체되기 시작했다.
‘더, 더!’
원인과 결과가 순환할수록 풀어지는 형태는 기괴해졌고, 급기야 허리 쪽이 꽈배기처럼 뒤틀렸다.
“으아아아!”
“오대성님! 안 됩니다!”
루버가 소리치는 순간, 핸드 오브 갓의 빛에 검은 선이 감기기 시작했다.
빛과 어둠이 동시에 공존하는 기상천외한 율법 위로.
“어…….”
굉음을 내며 탄생한 포톤 캐논의 색감은 기괴할 정도로 얼룩덜룩했다.
마치 빛의 구체에 먹물을 뿌린 것처럼 일그러진 색채는 바깥 세계의 미지.
‘원인과 결과가 역전되는 세계.’
루버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시로네를 바라보는 시선이 싸늘하게 식었다.
“바깥 세계는…….”
시로네는 강난과 아리우스에게 향하는 레비아탄의 꼬리를 물고 날아갔다.
“이야아아아!”
팔을 휘두르는 순간 거대한 섬광이 쭉 뻗어 나가더니 레비아탄의 옆구리에 파묻혔다.
“크아……!”
또다시 터진 비명, 하지만 이번에는 음파가 레비아탄의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수백 미터 깊이로 함몰된 옆구리에서 흑백의 포톤 캐논이 난회전을 일으켰다.
……!
레비아탄의 거대한 아가리가 활짝 열리자 일행 모두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이런 빌어먹……!”
가올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생명 전체로 토해 내는 마신의 굉음이 터졌다.
그아아아아앙!
거대한 몸이 꿈틀댈 때마다 세계가 요동치더니 시커먼 피부에 균열이 갔다.
‘폭발한다.’
누구라도 그렇게 느낄 정도로 균열의 안에서 새어 나오는 빛은 정상이 아니었다.
“됐어요!”
아리우스가 소리쳤다.
“레비아탄에게 충격이라는 것을 전달한 겁니다. 마침내 이미르가 있는 심층 1단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온 세상이 백광으로 물들고.
“꿀럭! 꿀럭!”
아리우스는 갑자기 입안으로 밀려드는 바닷물을 마시고 허우적거렸다.
‘추락하는 건가?’
아니, 바다가 상승하는 것이었다.
하늘을 가득 채운 폭발의 광채도, 물이 차오르면서 점차 크기가 줄어들었다.
‘괜찮아. 이제 이미르에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