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77
얼마나 기다렸을까.
“억! 억!”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어둠 속에서 아리우스는 사지를 허우적댔다.
‘언제 도착하는 거야?’
끝없이 파묻히고 있었다.
수압,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미르의 정신이 그들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가르르르…….”
폐에 있는 공기가 빠져나오면서 아리우스의 벌어진 턱이 차갑게 굳어 갔다.
한편 루버는 시로네를 찾아 헤맸다.
‘저기에 있다.’
야훼라면 이미르의 정신을 버틸 수 있을 테지만 시로네는 움직이지 않았다.
‘역시 영향을 미친 것인가.’
사고의 역전, 역전의 역전을 거듭하는 과정 속에서 그의 정신이 어떤 상태일지는 짐작이 어려웠다.
‘이대로는 죽는다.’
어둠으로 가라앉은 시로네를 바라보던 루버가 결심한 듯 눈을 빛냈다.
‘꿈의 장벽.’
금기 중의 금기지만, 시로네를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결단이었다.
루버의 육체가 물에 스며들면서 바다의 색채가 짙은 보라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부디 무사하기를!’
그의 의식이 빠르게 옅어지는 가운데, 가올드는 미로를 찾아 헤맸다.
‘어디 있는 거지?’
꿈의 이론은 모르더라도 현재 어떤 상태인지는 육체가 느끼고 있었다.
“가르르르르!”
인간의 육체는 산소를 무한정 참을 수 없지만 이곳은 꿈의 세계였다.
다만 물리적인 수치는 정신으로 변환되어 가올드의 정신을 파괴하고 있었다.
‘포기하지 않아. 미로를…….’
그 순간 심연의 깊은 곳에서 미로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가르륵! 가르르륵!”
마침내 미로에게 다가가자 차가운 손이 가올드의 목을 끌어안았다.
귓가에 울리는 환청 같은 목소리.
가올드.
“…….”
잠에서 깨어난 가올드는 조금 전의 꿈을 복기하며 눈을 깜박거렸다.
창문을 통해 햇빛이 들어오고, 먼지가 많기는 했으나 포근한 냄새였다.
“여보, 일어나요.”
천천히 시선을 돌리자 강난이 바구니에 음식을 담아 부엌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아.”
그렇지.
‘강난이 내 아내였지.’
그렇다면…… 꿈속에서 자신을 끌어안고 속삭인 여자는 대체 누구일까?
“또 그 꿈이야?”
강난이 야채를 다듬으며 물었다.
“응.”
“……그래.”
강난의 목소리가 잠긴 이유는, 그녀 또한 날마다 같은 꿈을 꾸기 때문이다.
늘 그랬다.
꿈에서 깨어 그녀와 함께 산책하고, 밥을 먹고, 잠자리를 같이하고.
‘다시 잠이 들면.’
지긋지긋한 전투의 현장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이다.
“후우.”
가올드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악몽일 뿐이야.’
그래, 악몽이다.
꿈속에서 그토록 자신을 괴롭혔던 자기상환적 돌연변이도 이곳에는 없었다.
‘아프지 않아.’
그것만으로도 이 세상을 살아갈 이유는 충분하다고 가올드는 생각했으나.
“우린…… 어떻게 된 거지?”
물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그 소리야?”
“뭐가 진짜인지 모르겠어. 가끔 이상하지 않아? 여기 말이야. 정말로 이곳이 현실이라면…….”
“그만 좀 하라고!”
강난이 버럭 소리쳤다.
“그냥 꿈이야! 꿈속에서 당신이 누구를 사랑하든 신경 쓰지 않아! 하지만, 너무하잖아!”
그들이 혼란스러운 이유는, 원인을 모르기 때문이다.
“…….”
어쩌다가 이곳에 살게 되었는지, 왜 둘이 사랑하게 되었는지, 악몽을 꾸는 이유는 무엇인지.
“미안해.”
가올드가 침대에서 벗어나 강난을 끌어안았다.
“내가 너무 예민했어. 그래, 꿈일 뿐이야. 이제 깼으니 즐거운 하루를 시작해야지.”
“……밥 먹어.”
입술을 삐죽 내민 강난이 수프를 넘겨주자 가올드가 식탁으로 옮겼다.
‘이상하지는 않아.’
원인이 없다는 거, 당연한 거잖아?
‘그런데 이상하다.’
무언가를 놓친 느낌.
‘시간.’
이 집에 오래 살았지만 오늘부터 산 것 같고, 매일 악몽을 꾸지만 어쩌면 지금이 처음인 것 같은.
“나가자.”
아내의 음식은 맛있었고, 꿈에서는 절대로 경험하지 못할 안도감이었다.
가올드가 식기를 내려놓았다.
“바람 좀 쐬자고. 오랜만에 쇼핑도 좀 하고.”
돈을 번 적이 있었던가?
“그래, 좋아.”
미지근하고 찝찝한 기분은 같을 것이기에 미소를 지어 주는 강난이 고마웠다.
밖으로 나가자 철골을 드러낸 고층 빌딩들 사이로 난민 복장을 한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쏴아. 쏴아.
어딘가에서 파도 소리가 들렸으나 이곳의 누구도 그 실체를 알지 못했다.
“자, 쌉니다. 싸요!”
시장에는 좌판이 깔려 있었고 사람들의 얼굴은 대부분 눈에 익었다.
가올드는 안심했다.
“얼마예요?”
강난이 늑대의 이빨을 가죽끈에 단 목걸이에 관심을 가지며 물었다.
“200피스크인데, 150만 주구려. 아주 좋은 물건이야.”
“여보, 이걸로 할래.”
그때 시장 저편에서 큰 개가 뛰어왔다.
왈! 왈!
“아리우스! 기다려!”
가올드가 고개를 돌리자 두 눈에 붕대를 감은 개가 뛰어오고 있었다.
“이런……!”
가올드가 강난을 밀치며 막아서자 개가 정통으로 복부를 처박았다.
“젠장! 뭐야?”
개의 무게에 눌려 인상을 찡그리는데 축축한 혓바닥이 턱을 핥았다.
“아리우스! 괜찮아?”
여자의 목소리에 개가 돌아가자 가올드가 화난 표정으로 벌떡 일어섰다.
“꼬마야! 이런 데다 개를 풀면…… 응?”
가올드는 말을 멈췄다.
이제 여덟 살이나 됐을까 싶은 어린 소녀가 개의 목덜미를 끌어안고 있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지만 가올드의 심장은 거칠게 뛰었다.
“……미로?”
“응? 아저씨가 제 이름을 어떻게 알아요?”
혼란에 빠진 가올드는 강난과 미로를 번갈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분명 꿈에서 나타나는 그 여자의 이름이다. 하지만…… 어린아이잖아?’
강난 또한 느끼고 있을 터.
“꼬마야.”
그녀가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를 물으려는 그때, 키가 큰 남자가 다가왔다.
“무슨 일입니까?”
가올드는 그의 인상착의가 꿈에서 세인이라고 부르는 남자와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개가 뛰어와서.”
난장판이 된 자리를 살핀 세인이 정황을 파악하고 고개를 숙였다.
“제 딸이 실수한 모양이군요. 아리우스는 눈이 보이지 않아서요. 잘 흥분하지 않는 성격인데.”
월! 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리우스가 가올드를 향해 짖어 대기 시작했다.
“아이, 참! 오늘따라 왜 그래?”
크르릉! 크르릉!
미로의 소매를 이빨로 깨문 아리우스가 연거푸 목을 틀며 잡아당겼다.
“너 진짜……! 응?”
인상을 찡그린 미로는 아리우스의 붕대 아래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았다.
크르릉! 크르릉!
마치 저 남자에게 가야 한다는 듯, 사력을 다해 주인을 끌어당기는 모습에서.
“아리우스…….”
비로소 무언가를 직감한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가올드를 올려다보았다.
“아저씨는 누구예요?”
“꼬마야.”
가올드가 물었다.
“너…… 이상한 꿈을 꾼 적이 있니?”
심연의 깊이 (3)
***
“심각하군.”
문 왕국의 두뇌 집단 천간문은 물 위에 떠 있는 갑자판이 회전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율법은 대자연 어디에나 깃들어 있고 물은 그 대표적인 자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건 처음 있는 일이오.”
그저 고인 것처럼 보여도 유체 안에는 수많은 입자가 움직이고 있는 것.
그것은 실로 혼돈.
갑자판은 그 혼돈의 움직임에 반응하여 미래를 설계하는 역술 기구였다.
“그런데 회전을 하다니?”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곧, 어떤 일도 벌어질 수 있다는 뜻.
“무슨 일인가?”
문룡이 등장하자 천간문의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좌우로 물러섰다.
“전하, 오셨습니까.”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느냐? 연회장에서 사람들의 위치가 갑자기 바뀌다니.”
“과연.”
천간문의 리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하, 세계의 이치가 변하고 있습니다. 이는 절대로 자연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것.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율법을 조작하는 게 틀림없습니다.”
“율법을 조작해? 누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마도…….”
리더는 직감했다.
“파라스 왕국의 키트라일 것입니다. 본래 황도12궁은 우리 천간문과 비견되었으나, 이런 기상천외한 일을 할 능력은 없지요. 무언가를 얻은 게 분명합니다.”
“흐음.”
문 왕국은 역술의 탄생지, 문룡 또한 세계의 이치에 대해 모르지 않았다.
“그럼 어찌해야 하는가? 파라스의 점성술이 더 강력하다면, 반대로 손해를 보는 건 문 왕국일 터.”
주역을 속수무책으로 만들고 있었다.
“두 가지 방법이 있사옵니다. 첫째는 그들이 바꾸는 율법에 순응하는 것이지요. 천간문의 능력이라면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겁니다.”
정론이었으나 라이벌 국가에 고개를 숙이는 기분은 좋지 않았다.
“두 번째 방법은?”
리더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했다.
“저주, 키트라에게 살煞을 날려 정신을 온전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옵니다.”
“……가능하겠는가?”
“일국의 지도자라면 그 기운은 호랑이를 능가. 많은 준비가 필요할 것이옵니다. 다만…… 모든 것이 갖춰진 상황이라면 아주 어렵지만은 않습니다.”
“흐음.”
문룡은 생각에 잠겼다.
‘파라스를 이용하느냐, 파라스를 죽이느냐. 어떤 것도 효과는 있을 테지만…….’
그의 눈이 번뜩였다.
파라스의 황도12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