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79
옆에서 들린 목소리에 미로가 고개를 돌렸다.
“네?”
“기다리고 있어.”
처음으로 시로네의 입이 열리자 가올드 일행이 황급히 그곳으로 달려갔다.
“오대성님! 정신이 들어요?”
몽아가 물었으나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뭘 기다리고 있는데요?”
미로의 질문에 시로네는 끝없이 뻗어 나가는 바다 위의 수평선을 가리켰다.
“거대한 것.”
그리고 아마도…….
“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것.”
몽아는 충격을 받은 눈으로 바다 쪽을 돌아보았다.
“아…….”
예상치 못했던 또 하나의 변수는, 심연의 끝에 거의 근접한 지점이라는 것.
“이미르가 온다.”
***
다음 날 아침.
새벽부터 분주히 움직이는 실무자들과 달리 관리들의 출근은 어제보다 늦었다.
“으, 속 쓰려.”
연회장에서 사람들의 위치가 바뀐 일이 벌어진 이후 각국의 스케줄이 꼬였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연회장에서 벌어진 사건의 전말을 알기 위해 비상 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또한 몇몇 국가의 수뇌부들은 아라크네가 제공한 축제를 만끽했다.
‘죽여줬지, 어제.’
향락의 장소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참석하지 않은 국가는 모를 터였다.
각국은 긴장했다.
“아라크네는 자이브에 힘을 쏟는 모양새다.”
수행원의 보고를 들은 루피스트가 칠판에 있는 관계도에 화살표를 그렸다.
“연회는 새벽까지 이어졌다고 들었다. 모종의 거래가 있었겠지. 오늘부터 편이 갈릴 거야.”
알비노가 물었다.
“자네는 어땠나? 접대 말일세.”
“안 갔습니다.”
루피스트가 몸을 돌렸다.
“연회장에서 일어난 사건을 분석하느라요. 하지만 토르미아의 몇몇 관리들은 참석했습니다. 특별한 정보 교류는 없었다고 되어 있지만…….”
“VIP는 다르겠죠.”
플루의 말에 루피스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정보를 얻으려면 어떤 식으로든 우리 쪽도 사람을 보내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아군 확보가 먼저야. 현재 접선을 시도한 국가가 있어.”
시로네가 물었다.
“어디죠?”
“남방과 문 왕국. 남방은 야훼에 대해 흥미가 많더군. 반면에 문 왕국은 적대에서 호의로 바뀌었다. 어젯밤에 벌어진 사건이 영향을 미쳤겠지.”
루피스트가 칠판을 가리켰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승부를 낼 수 없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동맹 관계다. 현재 토르미아에 가장 필요한 국가는 코로나야. 확률도 상당히 높지.”
코로나는 상아탑의 관리를 받고, 시로네는 그 상아탑의 최고 권한자였다.
“아직까지 어떤 접선도 없다. 상아탑 내부의 파벌 싸움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이겠지.”
“오늘 아침에 도착했어요.”
시로네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직접 담판을 지을 겁니다.”
코로나 왕국.
성전이 열린 뒤에도 제1군단장 바알이 이끄는 군대는 공격을 거두지 않았다.
살고 싶으면 사탄에게 굴복하라는 것이 마족의 기치였으나, 코로나도 약하지 않았다.
“후우.”
고원에 쌓인 눈은 마족과 인간의 피로 범벅이 되어 역겨운 색감이었다.
3천의 마족을 전멸시킨 남자는 차가운 인상에 입술을 따라 긴 상처가 새겨져 있었다.
푹. 푹.
불규칙적으로 시체의 몸에 칼을 박으며 생사를 확인하던 그가 마족의 팔을 잘랐다.
피가 철철 흐르는 팔을 들고 시체 위에 주저앉은 그가 살점을 물어뜯었다.
으적으적 씹는 소리에 이어, 입술을 절단면에 대고 피를 쭉쭉 빨았다.
식량과 수분을 동시에 채우는 방법이었다.
“크으, 좋다.”
남자의 이름은 라스카.
미네르바가 오대성으로 있는 인류안전집행부의 3성급 주민이었다.
인류안전집행부의 별들은 성 뇌를 제외하고 모두 한때 이름을 날린 범죄자들.
전쟁과 살인의 전문가였고, 마족들조차 치를 떠는 전쟁터의 악귀였다.
“대장님.”
라스카의 위성 스타프가 무릎까지 파고드는 눈을 밟으며 걸어왔다.
“누님이 진지로 복귀하랍니다. 너무 오래 머물렀어요. 식량도 바닥이고.”
누님이란 다름 아닌 미네르바였다.
“식량이라.”
살점을 우물거리던 라스카가 마족의 잘린 팔을 내밀었다.
“먹을래?”
빤히 그것을 지켜보던 스타프가 코웃음을 치며 턱수염을 긁적였다.
“됐어요. 대장이 입 댄 거잖아요.”
“……너도 정상은 아니야.”
공간 이동으로 산을 내려가자 코로나 왕국의 병사들이 국지전을 벌이고 있었다.
미네르바가 소리쳤다.
“이 멍청아! 대체 어디 있다가 온 거야?”
“잔당 추적했어요. 이건 다 뭡니까?”
미네르바의 제트가 엄청난 속도로 뻗어 나가 마족들의 몸을 꿰뚫었다.
“보면 몰라? 바알이 상아탑을 압박하기 시작했어. 3일 이상은 못 버틸 거야.”
마족들의 숫자는 제1군단이라고 해도 인류의 군대를 까마득히 초월했다.
라스카가 말했다.
“그러지 말고 화해해요. 이게 뭡니까? 율법부랑 함께 싸우면 할 만하잖아요?”
“그것 때문에 부른 거야.”
미네르바가 고갯짓으로 뒤를 가리켰다.
“가 봐. 시로네가 와 있어.”
“오대성님이요?”
막사로 들어가자 시로네가 앉아 있었다.
“오셨습니까, 오대성님.”
물론 모든 별은 시로네를 존경하지만 라스카의 인사는 경망한 감이 있었다.
“네. 태성님을 만나고 싶어요. 미네르바 씨가 라스카 씨라면 할 수 있을 거라고 하던데요.”
‘이 누님이 진짜……!’
물론 그의 능력이라면 가능은 할 테지만, 높은 확률로 목숨을 걸어야 한다.
‘어쩌다가 저런 여자에게 걸려 가지고.’
한숨을 내쉰 라스카가 말했다.
“현재 태성님을 만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율법 안에 감금되어 있거든요.”
“감금?”
시로네의 눈이 커졌다.
“대체 누가? 아니, 어떻게 태성을 감금시킬 수 있죠?”
“씽입니다.”
라스카의 인상이 구겨졌다.
“음지와 양지, 그 둘의 힘이 더해진 씽은 뭐, 무적이죠. 모든 걸 관철시키니까요.”
‘태성이 갇혔다.’
파벌의 균형이 팽팽한 이유였다.
“아무튼 해 보죠. 어차피 이대로는 답이 안 나온다고 생각하던 참입니다. 오대성님이 해결해 주세요.”
라스카는 시로네를 상아탑으로 데려갔다.
전시 상태였기에 전과 다른 마법진을 이용해야 했고, 경비 또한 삼엄했다.
‘분위기가 좋지 않아.’
늘 웃으며 인사하던 코로나의 관리들이 그저 눈치만 보고 있다는 게 증거였다.
상아탑 230층에 도착하자 온갖 마법회로가 작동하고 있는 철문이 나왔다.
“여기에 태성님이?”
“네. 보다시피 자폭 회로예요. 힘으로 부수려고 했다가는 태성님이 위험해집니다.”
시로네는 미간을 찌푸렸다.
‘씽. 단호한 성격이기는 해도 잔인하지는 않다. 어째서 태성에게 이런 적대감을 보이는 거지?’
미라클 스트림을 발동하자 라스카가 말렸다.
“그만두세요. 헥사의 능력이 닿는 순간 끝장입니다. 안에서 마법회로를 해제하는 수밖에 없어요.”
라스카가 숨을 크게 빨아들였다.
‘도적의 극의, 잠영.’
한때 전 세계의 수많은 금고를 털었던 능력으로, 숨을 참는 동안에는 비물질이 된다.
‘멋지네.’
연기처럼 흐릿해진 라스카가 입을 부풀린 상태로 철문을 향해 걸어갔다.
거짓말처럼 그의 모습이 안으로 들어가고, 잠시 후에 회로가 사라졌다.
“크으.”
문이 열리자 온몸에서 연기를 뿜어내며 주저앉아 있는 라스카가 보였다.
“괜찮아요?”
“그럭저럭요. 비물질이라고 해도 자폭 회로를 건드리지 않는 게 고작이에요. 정신에 가해지는 충격은 상당하죠.”
그의 정신은 갈기갈기 찢겨서 한동안은 움직일 수 없을 듯했다.
“태성님.”
라스카를 지나친 시로네는 방의 끝에 단정하게 앉아 있는 태성에게 갔다.
“결국 왔군요.”
그녀는 슬픈 미소를 지었으나 한편으로는 반가운 빛이 눈에 담겼다.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씽이 태성님을 가두다니. 이건 하극상이잖아요.”
“설명하자면…….”
그때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둬라, 시로네.”
뒤를 돌아보자 씽이 음지와 양지를 대동한 채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시로네가 차갑게 내뱉었다.
“씽, 이게 무슨 짓이야?”
“너야말로 어리석은 짓 하지 마. 모두 너를 위해서다. 인류를 위해 이러는 거야.”
“태성님을 가두는 게 어떻게 인류를 위한 일이 되지? 여태까지 상아탑은 수많은 위기 속에서 인류를 지켰어. 그 중심에 태성님이 있고.”
“그때하고는 상황이 다르지.”
씽은 태성을 보았다.
“바깥 세계가 열리면 아르고네스가 발동된다. 그리고 태성은 아르고네스와 같은 위상의 관리자. 그녀가 정말로…… 마지막까지 너를 지켜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냐?”
“…….”
시로네가 대답이 없자 씽은 태성에게 물었다.
“태성이시여, 직접 말해 보시죠. 아르고네스가 발동된 뒤에도 당신은 여전히 인류의 편을 들 것입니까?”
태성은 거리낌이 없었다.
“네. 저는 행성의 화신이자 인류의 어머니. 최후까지 인류를 지킬 것입니다.”
“거짓말.”
씽이 말했다.
“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이 세계에서 실체는 오직 나 하나. 다른 모든 존재는 허상일 뿐이다. 따라서 태성, 당신도 마찬가지야.”
“씽, 당신의 철학은 알고 있어요. 하지만 틀렸습니다. 당신이 틀렸어요.”
“끝까지 거짓말을 하겠다면…….”
씽이 손을 내밀자 음지와 양지가 음양의 율법으로 그녀에게 힘을 밀어 넣었다.
상아탑이 통째로 흔들리는 기운데 시로네가 미라클 스트림을 피우며 가로막았다.
“멈춰. 후회할 짓을 하지 마.”
씽이 소리쳤다.
“이 멍청아! 왜 모르는 거야! 지금 네 판단이 얼마나 큰 위험을 초래할지 모르겠어?”
시로네의 표정은 흔들림이 없었고, 결국 씽도 무력행사를 하기로 결심했다.
“나를 용서해라.”
쿠우우우우웅!
그 순간, 상아탑 아래에서 굉음이 터지더니 내정부의 아라카가 뛰어왔다.
“큰일 났습니다!”
태성이 물었다.
“아라카, 무슨 일이죠?”
“바알! 바알이 지옥의 군대를 이끌고 진입했습니다. 현재 12층까지 올라온 상태입니다.”
녹초가 된 라스카가 후 하고 앞머리를 불어 올렸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니까.’
피아 식별 (1)
제1군단장 바알.
행성 파괴급의 마계를 가진 것만으로도 다른 군단장과 격이 다른 존재였다.
‘이건 심각한데.’
무엇보다 인류 최강의 마법사가 모인 상아탑이 쉽게 뚫린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시로네는 담담한 씽의 표정에서 깨달았다.
“……일부러 막지 않은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