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82
‘자해하는 기분이겠지.’
서로가 반목해서 티격태격 싸우는 것하고는 무게가 다른 일격이었다.
또한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누군가를 죽이겠다는 마음가짐일 터였다.
“일어나시오. 좋은 승부를 합시다. 이런 식으로 동정을 구해도 내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겁니다.”
“원하는 게 뭔가요?”
둘이 격돌하는 순간 세상이 흔들릴 테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을 터였다.
‘아직은 소멸할 수 없어. 적어도 시로네가 자신의 뜻을 펼친 뒤에…….’
이카엘이 고개를 들었다.
“사죄를 요구하면 하겠습니다. 그보다 더한 것이라도 당신의 뜻에 따르겠어요. 시간을 주세요. 저는 아직 여기서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그저 파괴할 뿐.”
유리엘이 천천히 발을 들었다.
“이미 생각은 질릴 만큼 했습니다. 내가 탄생한 이후 가장 많은 사고를…….”
이카엘의 시선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그의 표정은 금속처럼 차가웠다.
“끝냅시다.”
사법 광륜 라그나로크가 발동하고, 그의 발이 이카엘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쿠우우우우웅!
그녀의 코앞에서 발이 멈춘 것만으로 뒤편의 풍경이 모조리 날아갔다.
“…….”
한순간이라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보였다면 얼굴을 날려 버렸을 것이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 그 표정, 그 자태, 그 품격이.
‘카리엘.’
마치 어머니 같아서.
‘네가 이해되기는 처음이구나.’
이카엘만이 가진 또 하나의 무력 앞에 유리엘은 다시 갈등하는 것이었다.
피아 식별 (3)
***
점심을 먹은 시로네는 델타 본청의 복도를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좀 불안한데.’
이카엘과 아슈르의 능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인류의 미래가 달린 문제였다.
‘믿고 맡기는 수밖에 없어. 이제 토르미아와 본격적인 전략을 짜야 하니까.’
그렇게 위저드가 도착하기를 기대하는 그때 복도 끝에서 사티엘이 다가왔다.
“시로네.”
껄끄러운 사이였다.
“이카엘은 어디 있지?”
시로네는 입을 다물었으나 대답이 없을 것이라는 건 사티엘도 짐작했다.
“너도 알고 있겠지. 이카엘과 나는 풀어야 할 문제가 있어. 이카엘이 어디 있는지 말해 주면, 너한테는 손을 대지 않겠다. 도와줄 수도 있어.”
“왜죠?”
시로네가 물었다.
“그래도 저에게 일말의 정이라도 남아 있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이미 한번 죽였기 때문인가요?”
사티엘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뭐라고 해도 좋아. 나는 내 결정을 후회하지 않으니까.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할 거야.”
“알아요, 어쩔 수 없었다는 거.”
그녀는 표정의 변화가 없었지만 성광체가 흔들리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가이아인의 편에 서 준 유일한 대천사. 거핀이 이카엘을 선택했을 때 당신의 배신감은…….”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한 번의 실수가 모든 것을 파멸로 이끌죠. 하지만 지금은 돌이킬 수 있어요. 저는 지금 이렇게 살아 있잖아요.”
“돌이킬 수 없어. 그렇다고 해도 내가 너를 죽음으로 몰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당신을 원망하지 않을게요.”
사티엘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는 없는 건가요? 자식의 죽음은 이카엘에게 큰 고통이었을 테지만, 지금은 그녀 옆에 내가 있어요. 되돌릴 수 있습니다.”
공기가 진동했다.
사티엘의 바이브레이션은 경건하면서도 초자연적인 느낌의 음파였다.
‘되돌릴 수 있다고?’
시로네의 말에 흔들리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너무 멀리 왔다.
‘돌아가는 길도 그만큼 멀겠지.’
지쳤고, 이제 그녀를 움직이는 것은 분노마저 석화되어 사명처럼 굳어 버린 의지였다.
‘거핀.’
되돌릴 수 있다면.
‘그렇다고 해도 거핀은 돌아오지 않아. 다 가져갔어. 이카엘이 내 것을 전부 빼앗아 간 거야.’
시로네가 힘을 주어 불렀다.
“사티엘.”
그 목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성광체에 스며들고, 사티엘은 미간을 구겼다.
“날더러 뭘…….”
그 순간 사티엘의 옆에 2각 마라 갈리오가 나타났다.
“이카엘을 찾았습니다!”
극한 등급의 분해안을 가지고 있는 그의 눈이 소용돌이처럼 회전하고 있었다.
“찾았다고?”
사티엘이 황급히 그를 돌아보는 와중에도 시로네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갈리오가 위치를 포착했다는 것은 아슈르의 시그널이 깨졌다는 뜻이었다.
“이카엘!”
사티엘의 표정에 다시 독기가 차오르고, 말릴 사이도 없이 창문을 깨고 날아갔다.
‘동시 사건을…….’
에이미의 인지를 이용해서 그곳으로 가려던 시로네가 입술을 깨물었다.
“큭!”
같은 공간에 2명이 존재할 수 없는 특성상 신호가 충돌하고 있었다.
“블리츠!”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뇌룡 블리츠가 뇌전을 일으키며 눈앞에 무릎을 꿇었다.
“부르셨습니까, 메시아님.”
“지금 당장…….”
시로네가 지시를 내리려는 그때 창문 밖으로 수백 개의 섬광이 솟구치는 게 보였다.
평천사들이었다.
“따라와.”
시로네가 창문 밖으로 몸을 날리는 것과 동시에 12명의 사도들이 뒤를 따랐다.
***
아루타와 에이미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이미 수많은 합을 겨룬 상태였다.
‘온다.’
가상의 아루타가 정권을 내지르고, 에이미는 몸을 뒤틀며 반격을 시도했다.
‘실패.’
에이미의 머리가 터졌다.
수천 번이 넘는 시뮬레이션 속에서 그녀가 반격을 성공시킨 횟수는 0회.
‘이길 수 없어.’
유리엘의 2각 마라라면 당연히 절대 약하지 않겠지만, 그의 일격은 마라의 범주를 초월했다.
‘죽는다.’
흐트러지려는 기운을 황급히 붙잡았다.
아루타가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전히 에이미가 반격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
‘흔들리는 순간 끝장이야.’
먼지만큼의 오차도 없는 팽팽한 균형만이 그녀의 목숨을 연장시키는 유일한 활로였다.
‘어떤 방법으로도 일격을 피할 수 없어. 그런 확신이 들 정도의 강력한 기운.’
식은땀이 뚝뚝 떨어졌다.
“흐으으.”
울음이 터지려는 것을 간신히 억누르는 동안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약해져 가는 기운 속에서 아루타는 에이미의 빈틈을 발견했다.
‘나왔다.’
평생을 통해 얻은 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생긴 통찰력이 그의 육체를 이끌었다.
‘이것으로 끝.’
아루타가 땅을 박차며 돌진하자 에이미는 의식이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아…….”
머릿속이 창백하게 비어 버리고, 회피 불가능한 일격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생각이 없기에, 이대로 죽는다고 해도 죽음이란 단어조차 떠올릴 수 없을 터.
‘그렇기에…….’
이미 죽은 상태와 다르지 않았고, 아루타의 일격에는 그런 의미가 담겨 있다.
세상이 무無로 환원되는 공의 경계에서, 에이미는 자신의 것이 아닌 목소리를 들었다.
마하반야.
화계를 처음 열고 의식을 잃었을 때 나네가 그녀의 옆에서 외운 불경이었다.
의식이 열리고 홍안에 불이 들어왔다.
‘이모탈 펑션.’
자신의 존재마저 잊어버린 상태에서 그녀는 자연체 그대로 불이 되었다.
아루타의 주먹은 코앞까지 도달해 있었지만 거리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발화.’
홍염의 불꽃이 아루타의 팔을 휘감으면서 그의 입속으로 들어가 내장을 불태웠다.
“크으으으!”
고통을 느끼기도 전에 육체가 증발하고 그 자리에 거대한 불의 소용돌이가 켜졌다.
‘아아아아!’
에이미는 벅찬 감동에 눈물을 흘렸다.
‘이런 거였구나.’
시로네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고, 나네가 전하고자 했던 의미가 완벽하게 이해되었다.
‘전부 태운다.’
거대한 반경을 초토화시킨 불꽃이 폭발하듯 퍼지면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 중심에는 온몸이 불로 변한 아름다운 여체가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
아루타의 소멸을 깨달은 유리엘은 이카엘을 겨누던 발을 천천히 내렸다.
“일어나시오.”
살의까지 거둔 것은 아니었기에 이카엘은 신중한 동작으로 몸을 일으켰다.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생각했다고 여겼지만…… 내 착각이었던 것 같군.”
“유리엘, 그것이 마음입니다.”
이카엘이 말했다.
“생각은 생각일 뿐이에요. 모든 천사는 우주의 율법에 따라 사고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사티엘을 따르지 않았어요.”
이카엘이 기대를 걸었던 이유였다.
“마음이 있기 때문이죠. 당신의 의지로 무언가를 바꿀 수 있습니다. 그걸 알기에 저에게 온 거 아닌가요?”
“그래. 당신을 소멸시키기 위해.”
“그 분노 또한 마음. 하지만 주저하고 있잖아요. 그건 마음을 던지지 못한 거예요.”
거핀이 가르쳐 주었다.
“모든 것을 던질 수 있을 때, 당신은 길을 찾을 겁니다. 그때까지는…….”
하늘에서 쩌렁쩌렁한 소리가 들렸다.
“이카엘!”
수많은 천사들을 이끌고 날아온 사티엘이 무서운 속도로 추락하고 있었다.
“죽인다!”
착지와 동시에 튀어 나간 그녀가 주먹을 치켜들자 유리엘이 극락곤을 꺼냈다.
“뭐……!”
예상치 못한 상황에 사티엘이 브레이크를 걸었으나 주먹은 극락곤에 처박혔다.
굉음이 터지고, 두 천사를 중심으로 막강한 충격파가 땅을 휩쓸었다.
사티엘이 눈을 부릅떴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이카엘은 나와 대화 중이었다.”
“그러니까 뭐 하는 짓이냐고. 지금 천사장은 나다. 내 명에 복종하지 않으면 너도 배신자로 간주하겠어.”
유리엘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백 명의 평천사들이 사법 광륜을 발동하며 폭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시 앞을 바라본 그가 말했다.
“그러든지.”
“이……!”
사티엘이 사법 광륜을 펼치자 유리엘의 성광체도 빛의 고리로 퍼졌다.
맞붙은 두 사람 사이에 빛이 회전하면서 또다시 강력한 충격파가 퍼졌다.
사티엘이 날아가고, 유리엘이 극락곤을 휘두르며 라그나로크를 시전했다.
“이래야만 직성이 풀리는가?”
뇌전이 작렬하는 그 순간에도 사티엘은 막을 생각 없이 지시를 내렸다.
“이카엘을 죽여!”
콰르르르르릉!
사티엘의 머리 위로 백색의 뇌전이 솟구치고, 수백 명의 천사가 지상을 폭격했다.
천사들의 전투가 펼쳐졌다.
인간이나 마라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개념과 개념의 충돌로 인해 땅이 흔들렸다.
엄청난 속도로 하늘을 날고 있던 12사도가 선두에 있는 시로네에게 소리쳤다.
“메시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