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83
“그래.”
눈으로 확인한 시로네가 인상을 찡그렸다.
천사들의 전장은 마치 우주 어딘가에서 일어날 법한 재앙을 닮아 있었다.
“내가 맡을게. 위저드의 생사부터 확인해. 그리고 가능하면…….”
이카엘과 에이미도.
“알겠습니다.”
메시아의 뜻을 이해한 블리츠가 고개를 숙이고, 남은 사도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한편 이카엘은 수백 명의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공격을 막아 내고 있었다.
“존경하는 이카엘이여.”
천사장은 아니라도 이카엘이 모든 천사의 근원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어찌하여 우리를 버리시나이까.”
형태의 천사 자리엘이 무한육면각체를 이용해 그녀의 두 발을 묶었다.
공겁의 개념을 담은 구속력은 그 어떤 물리력도 풀 수 없을 정도지만.
“증.”
아타락시아를 개방한 그녀의 육체는 어떤 한계를 반드시 초월하는 개념이었다.
족쇄를 파괴한 그녀가 한 발을 내딛더니 가느다란 팔을 쭉 내밀었다.
주먹이 자리엘의 앞에 우뚝 멈추고, 사방에서 천사들이 달려들었다.
자리엘이 말했다.
“치시오.”
소멸을 각오한 그의 성광체를 본 이카엘은 마음이 찢어지는 듯했다.
‘근원을 잃은 자들.’
그 허무와 공허의 눈빛으로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천사들의 모습에서.
‘나 때문이다.’
이카엘은 주저했다.
‘아니, 이래서는 안 돼. 이미 각오한 일이야. 나는 시로네를 위해 싸울 것이다.’
생각은 찰나, 하지만 천사들의 공격은 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그녀를 압박해 왔다.
시로네는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질주했다.
“이카엘!”
시간이 멈춘 듯 모든 게 얼어붙은 풍경 속에서 한 줄기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뭐야?’
깨달은 것과 동시에 이카엘의 앞에 도착한 에이미의 홍안이 붉게 타올랐다.
‘홍옥.’
태양처럼 거대한 불의 구체가 천사들이 있는 반경을 모조리 장악하며 탄생했다.
“크윽!”
핸드 오브 갓으로 앞을 가린 시로네는 엄청난 열기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에이미?”
불꽃의 형태는 분명 에이미였으나 그가 알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경지였다.
‘현상적인 불이 아니야. 이건 이데아.’
불의 신호를 자유자재로 다룬다는 것은 그녀 또한 화신술을 터득했다는 뜻.
불의 구체가 소멸하고, 인간의 모습을 되찾은 에이미가 이카엘을 돌아보았다.
“괜찮아요?”
대답하지 못한 이카엘은 멍하니 전방을 보았다.
“크으으으…….”
불에 휘말린 수많은 평천사들이 빛의 날개가 녹아내린 상태로 땅에 주저앉아 있었다.
피아 식별 (4)
***
아이론, 아라크네의 왕족과 식사를 끝낸 기스는 자신의 방에서 보고를 받았다.
“천사들이 델타를 벗어났다고?”
“네. 사티엘이 자이브와 약속한 의무 조항마저 무시하고 병력을 이끌고 출발했습니다.”
“흐음, 그 자존심 강한 천사가?”
마족이라면 모를까, 천사에게 계약이란 인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다.
“네. 그리고…….”
보좌관이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시로네도 그 뒤를 따라나선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자이브 국경선 지점에서 지진파가 잡혔습니다.”
대충 상황이 그려졌다.
“이카엘인가 뭔가를 찾았나 보군. 적당히 넘어가. 하나하나 따지고 들면 같이 일할 놈 하나도 없어.”
“타국에서 말이 나올 것 같은데요.”
“성전에서 일어난 일은 아니니까, 그런 쪽으로 몰고 가란 말이야. 멍청하긴.”
“알겠습니다. 그리고…….”
보좌관이 신문을 꺼냈다.
자이브 전국에 발행되는 일간신문으로, 국내적으로 영향력이 컸다.
“추적 기사가 떴습니다. 어젯밤 연회에 관한 정보가 새어 나간 모양입니다.”
“뭐야?”
새 옷으로 갈아입은 기스가 단추를 채우다 말고 신문을 낚아채 갔다.
성전의 비리를 고발하다, 라는 제목의 아래 메이클이라는 기자의 서명이 보였다.
“또 이 녀석인가.”
“왕립정치학교를 졸업한 수재입니다. 예전부터 왕족에 비판적인 기사를 써 왔죠.”
“이래저래 귀찮게 됐군. 아라크네 놈들, 이렇게 허술했어? 이래서 싸구려랑 놀면 안 된다니까.”
“어떻게 할까요?”
“돈으로 구슬려 보고, 안되면 더 큰 돈으로 구슬려. 그 뭐냐, 아들이 아프다고 하지 않았나?”
“선천성 심장 기형으로 입원 중입니다. 벌써 2년째 병원에서 치료 중이라고 하더군요.”
“상태는?”
“꽤 호전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마지막 단추를 채우고 있던 기스가 우뚝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어이, 보좌관.”
“네, 전하.”
“자네도 자식이 있나?”
당연히 알고 있는 것을 물어보니 보조관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답했다.
“네. 첫째 딸이 이제 곧 학교에 들어갑니다. 둘째는 올해로 네 살이 되었고요.”
“만약에 말이야, 자네 자식이 그런 병에 걸렸다면 어떤 심정일 것 같나?”
“마음이 안 좋겠죠. 아마도 심장이 찢어지는 것 같은 기분 아닐까요?”
기스의 눈에 힘이 바짝 들어가더니 온 힘을 다해 팔을 돌려 뺨을 후려쳤다.
보좌관이 우당탕 옆으로 넘어지고, 그의 복부에 기스의 발이 날아들었다.
“그걸 아는 놈이 일 처리를 이따위로 해?”
“죄송합니다!”
“애가 아프면 부모의 마음이 찢어져, 안 찢어져? 찢어지겠지? 그럼 너는 어떻게 해야 되겠어?”
잔뜩 웅크린 보좌관의 옆구리 쪽으로 기스의 발이 연거푸 날아들었다.
“애를 더 조져야 할 거 아냐! 반 죽여 놓으라고! 의사를 매수하든 목을 조르든, 숨통을 깔딱깔딱하게 만들어야 할 거 아니냐고!”
기스는 하비츠가 앉아 있는 책상 위의 명패를 들고 보좌관을 후려쳤다.
“대가리에 똥만 찼냐? 머리가 그렇게 안 돌아가? 당장 가서 전부 뒤집어엎어!”
“용서해 주십시오!”
피가 날 때까지 얻어맞으면서도 보좌관은 차마 하겠다고 말하지 못했다.
‘사람이 그런 짓을 어떻게 해.’
정치인으로 살면서 수많은 비리를 저질렀지만 넘을 수 없는 선이라는 게 있었다.
‘날마다 고열에 시달리는 아이를, 약 없이는 숨도 못 쉬는 아이를…….’
보좌관이 우직하게 버티자 기스는 명패를 내리고 숨을 헐떡거렸다.
‘이 자식 봐라?’
몇 대 맞고 말겠다는 식인 듯했다.
“야, 일어나.”
“네, 네!”
정신이 혼미한 상황에서도 보좌관은 벌떡 기립해서 옷의 먼지를 털었다.
“자네, 그래 가지고 정치하겠어? 여기서 평생 내 뒤만 닦고 살 거야? 남자가 그거밖에 안 돼?”
“아닙니다.”
“나, 재단에 기부도 하는 사람이야. 내가 살린 환자들이 몇 명인 줄 알아? 자네의 그 알량한 양심이 이 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나?”
보좌관은 입술을 깨물었다.
“다 이럴 때 쓰려고 국가가 애들도 돌봐 주고 하는 거야. 똑똑하잖아? 왜 자꾸 남의 자식한테 자네 인생을 투영해?”
기스가 보조관의 어깨를 짚었다.
“아니면 뭐야? 실제로 자네 애가 그렇게 아파 봐야 현실이 뭔지 알겠어?”
보조관의 눈동자가 충격에 흔들렸다.
“흐윽.”
그리고 이내 울상으로 변하더니 바닥에 엎드려 기스의 다리를 부둥켜안았다.
“죄송합니다! 정말로 도저히 못 하겠습니다! 전하! 저 한 번만 살려 주십시오!”
공포에 손이 벌벌 떨렸다.
‘괴물이다. 이 남자는 괴물이야.’
모두가 더 높은 곳을 원하는 세계에서 꼭대기에 오른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기스는 명패를 떨어뜨렸다.
“진짜 환장하겠네.”
당장이라도 패서 죽이고 싶지만 감정보다는 이용 가치가 우선이었다.
“알았어. 일어나. 한심한 놈.”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하!”
기스가 그의 등을 다독였다.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야. 뭔가 오해를 한 모양인데, 굳이 자네가 손에 피를 묻힐 필요는 없잖아.”
“네?”
코피를 흘리며 눈을 깜박이는 보좌관의 모습에 기스는 부아가 치밀었다.
“자네가 못 하면 남을 시켜. 깡패는 괜히 있어? 멍청한 놈 하나 물색해서 돈으로 노릇노릇 구우라고. 무슨 말인지 알지? 할 줄 알잖아.”
“아…… 네.”
기스가 턱짓을 했다.
“뭐 하고 섰어? 알았으면 빨리 가서 처리해! 내가 수저로 떠서 먹여 주기까지 해야 돼?”
“아닙니다! 당장 하겠습니다!”
보조관이 밖으로 튀어 나가자 기스는 피가 묻은 옷을 새것으로 갈아입었다.
“하여튼 배만 불러 가지고. 무슨 손발이 맞아야 해먹을 거 아니야. 짜증 나게.”
타이를 매고 거울 앞으로 가자 그의 뒤에 서 있는 하비츠가 비쳤다.
“어디 똑똑한 놈 없나? 다른 왕국들은 빠릿빠릿한 놈들 천지던데. 내가 다 해야 돼, 아주.”
하비츠가 하품을 늘어지게 했다.
“지루하군.”
인간 세계 어디를 가든, 어떤 자의 마음을 읽든 이제는 신물이 날 지경.
“그래도 힌트는 얻었어.”
하비츠가 문을 열고 나갈 때까지도 기스는 사탄을 인지할 수 없었다.
“그나저나…….”
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어떤 애가 밀고한 거야? 함정인가? 아니야, 아라크네에 그 정도의 배짱은 없어.’
당분간 향락을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이런 씨…….”
절로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
토르미아 구역.
시로네가 델타를 벗어났다는 정보를 얻은 루피스트가 수뇌부를 소집했다.
알비노와 포니가 포함된 가운데, 루피스트가 테이블 위에 신문을 던졌다.
“오늘자 일간신문이야. 자이브 왕국 발행. 조간에 싣지 않은 이유는 검열을 피하기 위해서겠지.”
플루가 신문을 펼쳤다.
“저도 오기 전에 봤어요. 아직 의혹에 불과하지만, 자이브는 성전의 주최국이잖아요. 그런 만큼 기스의 입지에 타격이 있지 않을까요?”
“큰 충격은 없을 거야. 기스 정도의 권력과 돈이라면 사람 하나 병신 만드는 건 일도 아니지.”
알비노가 수염을 만졌다.
“그래도 행동에 제약이 걸리기는 할 테지. 연회에 참석하는 것도 자중할 테고. 밀고자가 누군가?”
“아직 모릅니다. 함정은 아닐 겁니다. 아라크네의 미인계는 그 정도로 어설프지 않으니까요.”
플루가 물었다.
“그럼 왜 밀고했을까요?”
“사람의 일이니, 그날 밤에 사건이 있었겠지. 일단 눈이 돌아가 버리면 무슨 짓이든 하는 게 인간이야.”
“그래서? 우릴 부른 이유가 뭔가?”
루피스트가 입을 열었다.
“저는 이 사건을 좀 이용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힌트인 것 같아서요.”
“정치적으로 묻어 버리자는 거로군. 암살보다는 평화적이기는 하지. 하지만 어떻게?”
“결과적으로 아라크네의 미인계는 실패했다고 보입니다. 하지만 기스는 야수 같은 인물. 연회에 나가지 못하게 되었으니 속이 부글부글할 테죠. 어쩌면 그 틈을 파고들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알비노가 말했다.
“지금이라면 토르미아도 미인계를 사용할 수 있다,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건가?”
“네. 기스는 극히 조심할 겁니다. 하지만 그 경계심을 뚫을 정도의 인물이 붙는다면? 그때는 재밌어지죠.”
플루가 물었다.
“그 인물이 누군데요?”
루피스트와 알비노가 말없이 고개를 돌리자 그녀가 자신을 가리켰다.
“저요?”
“싫으면 말해.”
“아뇨. 좋은 작전이라는 건 인정해요. 하지만 전 미인계를 훈련받은 적이 없는데요. 게다가 딱히 미인도 아니고요.”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마. 너 정도면 충분히 괜찮아. 상황 판단 능력과 대응 능력까지 고려해서 결정한 거야.”
알비노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