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86
“……어?”
우주에 존재하지 않아서, 보는 것만으로 심장이 멎을 것 같은 충격이었다.
“초형태.”
하비츠는 생각했다.
‘형태가 전부다. 우주의 모든 현상은…….’
원자보다 작은 미립자, 그보다 더 작은 파동의 형태에서 시작되는 것이기에.
‘그렇다면 저 형태는 어떤 현상을 만드는가?’
하비츠의 질문에 대답하듯 위저드는 천천히 두 손을 모아 수인을 맺었다.
“무계無界.”
11명의 시옥은 눈앞에서 빛처럼 빠르게 피어오르는 붉은 꽃잎을 보았다.
“초공파超空波.”
상상력의 결실이 꽃으로 승화되어 시옥 전원의 머리에서 피어나기 시작했다.
‘막을 수 없어.’
오직 위저드가 상상해 낸 어떤 것, 즉 우주에 존재하는 물리가 아니었다.
허무의 12시가 이를 악물었다.
“이런 젠장……!”
모든 것이 초기화되고.
펑!
그의 머리통이 폭발하는 것과 동시에 남은 시옥이 지상에서 눈을 크게 떴다.
‘처음부터 12시를 노렸어.’
10명의 시옥이 살아 있는 비현실적인 상황을 두고도 위저드는 담담했다.
그녀에게는 비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끝내도 되나요?”
지상에 착지한 위저드가 수인을 맺자 무상신이 흔들리더니 자취를 감추었다.
“앵화.”
죽는다.
“크아아아아!”
소멸을 직감한 사탄이 육체를 거대하게 키우고, 전신에서 붉은 꽃이 피었다.
이성을 잃은 시옥이 돌진했다.
“사탄이시여! 우리를 지켜보소서!”
손가락으로 원을 그린 위저드가 사탄을 겨누더니 반대편 엄지를 원에 관통시켰다.
“개박련.”
수천 개의 꽃이 만개하고, 정체 모를 충격에 사탄의 육체가 줄어들었다.
“크아아아! 크아아아!”
충격, 구속, 억제, 변형 등, 온갖 물리력이 사탄을 하비츠로 되돌렸다.
“안 돼!”
시옥이 패닉에 빠진 순간, 위저드는 반나체로 비틀거리는 하비츠에게 돌진했다.
‘여기서 죽인다.’
사탄 소멸까지 아마도 1초, 1.5초?
‘내가 해냈어.’
지극히 짧은 시간.
‘사탄을 죽인다.’
하지만 한 인간이 성공을 앞두고 꿈을 꾸기에는 충분한 시간이기도 했다.
‘사탄을 죽이면…….’
물욕은 없다.
전 세계를 준다고 해도 무심할 수 있는 경지에서 유일하게 달콤한 것은.
‘시로네 오빠.’
성인의 영역까지 강제로 정신을 끌어올린 그녀가 바라는 것은 사소한 욕망.
‘잘했다고, 칭찬받을 수 있을까?’
하지만 욕망.
‘어?’
인지에서 하비츠가 사라지는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충격에 흔들렸다.
‘내가 여기에서 뭐 하고 있는 거지?’
마음의 소리를 통해 배니싱이 발동했음을 깨달은 하비츠가 살기를 뿜어냈다.
“크으으으!”
땅을 박차고 돌진하는 와중에도 위저드는 혼란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왜? 왜지?’
모른다.
하지만 천재적인 탄성력이 무지의 상태를 그대로 붙잡고 원래의 자리로 되돌렸다.
‘하비츠!’
위저드가 인지하는 것과 동시에 하비츠의 주먹이 그녀의 복부를 강타했다.
“커억!”
어떤 대응도 할 수 없는 아이의 몸에 어른의 주먹이 꽂히자 숨이 턱 막혔다.
“꺽! 꺽!”
시옥이 악귀처럼 달려들었다.
하지만 하비츠가 먼저였고, 그의 장검이 위저드의 목덜미에 얹혔다.
“사탄이시여! 죽여야 합니다!”
위저드는 여전히 움직일 수 없지만 당장 목을 베지 않는 것조차 불안했다.
‘제발 죽이소서. 두 번의 기회는 없습니다.’
하비츠의 생각은 달랐다.
“후우.”
죽다 살아난 그가 하늘을 향해 숨을 크게 내쉬더니 위저드에게 말했다.
“괜찮아? 좀 세게 들어갔는데.”
“……죽여라.”
자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다시 한번 싸운다든가, 상대의 방심을 노리고 불시의 일격을 가한다든가.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하비츠는 사라진다.
“승부는 끝났어. 그러니 죽여.”
“흐음.”
위저드의 목에서 검을 치운 하비츠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털썩 주저앉았다.
“아슬아슬했어. 대단하군. 순수한 혼돈에서 하나를 도출하는 거. 그건 나도 못하는 건데 말이야.”
모순이기 때문이다.
“죽여! 죽이라고!”
“하지만 모순은 자연적인 상태가 아니야. 더 오래 유지하지 못한 게 패인이지. 5년, 아니 1년 뒤에는 완벽하게 나를 죽일 수 있을 거야.”
위저드는 천천히 등을 세웠다.
“……하루면 충분해.”
“어쩌면 그럴 수도. 솔직히 나도 네가 무슨 사고를 가졌는지 모르겠거든. 시로네가 보냈나 보군.”
위저드는 이를 악물었다.
‘죽자.’
스승님이 실망하는 얼굴을 보느니 차라리 여기서 생을 끊는 게 나았다.
“원하는 게 뭐야? 살려 둘 생각이라면 떠나.”
“자살하려고?”
“…….”
말없이 입술만 깨물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하비츠는 지그시 바라보았다.
‘나에게 이 여자는 어떤 존재지?’
알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위저드가 죽지 않기를 바란다는 건 확실했다.
‘참으로 묘하단 말이야.’
구스타프 4기예도 만나면 즐겁지만 이 정도로 강한 울림은 아니었다.
‘아, 그래.’
더 놀고 싶은 것이다.
‘이 여자는 나를 본다.’
뭔가 위로를.
‘사람들을 괴롭히자고 할까? 아니야. 시로네의 편에서 싸우자고 해야겠지. 뭘 해도 재밌을 건데…….’
위저드의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나를 싫어하는군.’
하비츠의 눈에 잠시 슬픔이 지나가고,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죽이고 싶으면 언제든지 찾아와.”
“사탄이시여! 헉!”
시옥이 땅 밑으로 꺼지자 위저드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찾아오라고?”
“그래. 물론 죽이고 싶다는 마음으로는 나를 죽일 수 없겠지만 말이야.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봐야 하지 않겠어? 죽는 것보다는.”
위저드는 말없이 생각에 잠겼으나 하비츠는 이미 들은 기분이었다.
“오늘 재밌었다.”
하비츠가 숲으로 들어간 뒤에도 그녀는 오랫동안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흑…….”
최면이 풀리고.
“으아아앙! 으아아앙!”
일곱 살의 어린아이로 돌아온 위저드가 서럽게 눈물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트리거 (3)
***
아슈르는 다시 돌아왔다.
투명한 패널에 갇힌 2차원 형태가 유리판이 깨지는 것과 동시에 실체화되었다.
“이카엘 님!”
곧바로 검을 뽑아 들고 싸울 태세를 취한 그였으나 상황은 예상과 달랐다.
‘무슨 일이…….’
천사들의 몸이 마치 불에 달구어진 듯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가장 먼저 시로네가 보였으나 아슈르는 이카엘의 옆에 있는 불꽃의 여체에 주목했다.
‘에이미.’
개념체인 천사들이 불에 탔다는 것은 현상을 초월하는 화력이 작용했다는 뜻이다.
‘불의 이데아.’
아슈르가 알기로 그 경지에 도달한 존재는 태양의 화신, 앙케 라뿐이었다.
‘나네가 그 꿈을 삼켰다.’
에이미가 부처에게 도움을 받은 일을 상기한 아슈르는 대충 상황을 직감했다.
‘그녀 또한 끝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어떤 천사도 그녀에게 접근할 수 없을 터.’
모든 천사는 태양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에이미의 몸에서 불꽃이 사라지고, 인간의 육체를 되찾은 그녀가 숨을 헐떡였다.
“후우.”
완전연소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무적이지만 불이 꺼진 뒤에는 후폭풍이 심했다.
시로네가 순간 이동으로 다가왔다.
“에이미, 괜찮아?”
대답 대신 미소를 짓는 에이미의 눈빛에는 자그마한 희열이 담겨 있었다.
‘확실히 엄청난 위력이다.’
시로네 또한 핸드 오브 갓으로 천사들을 날려 버린 전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차원이 달랐다.
‘이데아라는 것은 본질. 에이미가 불태울 수 없는 건 존재하지 않을 테니.’
“시로네 님.”
아슈르가 다가오자 시로네가 물었다.
“위저드는 어떻게 됐죠?”
“대상과 접촉했습니다. 맡겨 달라고 하더군요. 지금쯤이면 결판이 났을 겁니다.”
사탄과의 일전이었다.
“그렇군요.”
걱정이 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아이 취급을 할 만큼 약하게 훈련시키지 않았다.
‘지금은 위저드를 믿는 수밖에.’
그 순간 멀리서 사티엘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리엘.”
이어서 충격파가 밀려들고, 유리엘의 목을 움켜쥔 사티엘이 날아왔다.
“나를 방해하지 마라! 너라도 소멸……!”
극락곤에 얼굴을 얻어맞은 사티엘이 말을 끝맺지 못하고 옆으로 날아갔다.
20미터 떨어진 곳에 손가락을 박은 그녀가 웅크린 자세로 이빨을 드러냈다.
“너……!”
이카엘이 말했다.
“그만두세요.”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듯이, 그녀의 목소리에는 특별한 울림이 있었다.
“이렇게 싸울 때가 아닙니다. 세계가 끝을 향해 가고 있어요. 우리는 마지막을 대비해야 합니다.”
“전부 너 때문이잖아!”
땅을 박차고 돌진한 사티엘이 이카엘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천사를 배신한 주제에!”
이카엘이 그녀의 손을 움켜잡자 사법 광륜 노스탤지어가 발동했다.
“죽어!”
분해의 능력이 손바닥을 모래처럼 붕괴시키는 그때 이카엘이 성광체를 퍼트렸다.
“아타락시아.”
그녀의 존재감이 증폭되자, 사티엘의 노스탤지어마저 빛을 잃고 약해졌다.
“크윽!”
그럼에도 사티엘은 물러서지 않았다.
“이카엘, 이 위선자. 너는 우리들의 힘이 필요한 것뿐이잖아. 시로네를 위해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