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87
“그럴 수도 있겠죠.”
“너는 우리를 배신했어! 그러니……!”
“하지만 당신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이카엘의 차가운 눈빛을 본 순간 사티엘은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이제 거핀은 없으니까요.”
“……무슨 소리야?”
“어떤 수단을 동원해도 만날 수 없고,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 당신의 기억뿐.”
사티엘의 이가 뿌드득 갈렸다.
“지금 타오르는 그 분노마저 꺼 버리면, 이제는 무엇으로도 그를 느낄 수 없기 때문에.”
“닥……쳐.”
“그래서 싸우는 게 아닌가요?”
“죽여!”
천사장의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모든 평천사들이 소멸을 각오하고 날아들었다.
시로네가 이카엘을 가로막는 그때 유리엘이 평천사들을 향해 돌진했다.
“라그나로크.”
극락곤이 땅을 후려치는 순간 거대한 백색 전기가 역류하듯 승천했다.
굉음은 문제가 아니었으나, 성광체를 뒤흔드는 충격파에 천사들은 얼어붙었다.
이카엘이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유리엘.”
“착각하지 마시오.”
여전히 천사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그가 살며시 고개를 틀었다.
“당신을 위한 결정이 아니니. 나에게도 마음이라는 게 있다면, 그것은 분명 살의일 테지만…….’
묘하다.
세상 모든 것을 부술 수 있기에, 더더욱 손을 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은.
‘이카엘을 파괴하는 건 쉬운 일이다.’
유일한 문제는 그녀가 파괴되고 난 뒤의 자신을 감당할 수 있는가였다.
그때 모든 천사들이 고개를 돌렸다.
“응?”
이어서 아슈르가, 다음 순간에는 인간인 에이미와 시로네가 깨달았다.
“뭔가 오고 있어.”
분명한 건 물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느낌.’
섬뜩한 느낌이 밀려들고 있었다.
황도12궁.
점성술사들은 바닥에 그려진 오망성 위에 떠 있는 기계장치를 바라보았다.
‘비통하구나.’
세계의 본질이 금속 안에 담겨 있다는 것은.
파라스의 국왕 키트라가 두 눈에서 영롱한 푸른 빛을 뿜어내며 지시를 내렸다.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라.”
진리의 피라미드에서 인의 세례를 받았던 그는 잠시나마 신의 본질을 보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피라미드 밖이었고 감정병은 말끔하게 나아 있었다.
“원인이란 무의미한 것.”
현재 키트라 외에도 진리의 피라미드와 접촉한 자들은 세계 각지에 퍼져 있었다.
“거대조정.”
리셋이 시스템 초기화를 의미한다면 거대조정은 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것.
그 결과로 일어난 것은…….
땅이 흔들렸다.
시로네는 지평선 너머에서 올라오고 있는 피라미드 구조물을 바라보았다.
“저게…… 뭐야?”
파라스에 있는 진리의 피라미드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거대했다.
“시로네!”
이카엘이 소리쳤다.
“시간파가 계속 밀려오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 세계의 율법을 바꾸고 있어요.”
“시간파?”
천사들이 가장 먼저 깨달은 이유였다.
“세계 각지에 저런 것이 세워지고 있어요. 굽어보기로 전부 살필 수는 없지만, 벌써 8개가 넘습니다.”
시로네는 입술을 깨물었다.
‘초고대 문명.’
우주에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을 시기에 만들어진 바깥 세계의 증거.
‘직접 개입하는 건가? 무엇을 위해?’
시로네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평천사들이 사티엘에게 몰려들었다.
“천사장님, 대체 저게……?”
“…….”
사티엘은 침묵했다.
설령 대천사라 할지라도 그들이 존재하기 이전에 세워진 것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아니, 설령 알고 있었다고 해도 마찬가지.’
오파츠는 접근하는 모든 존재의 정보를 자기장으로 교란시키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하는 거지?”
황도12궁이 고했다.
“전하! 좌표를 입력했습니다. 하오나, 일단 운명을 바꾸면 그때는 되돌릴 수 없사옵니다.”
굳이 말을 하는 이유는 점성술사들조차 겁에 질려 있기 때문이었다.
‘미친 짓이야. 세계 지도국이랄지, 인류가 멸망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여태까지 알고 있던 세계가 사라진다.
“시행하라.”
“흐윽.”
순수한 공포에 몇몇 점성술사들이 눈물을 흘렸으나 키트라는 담담했다.
‘신이 될 수 있다면.’
머리통이 날아가는 것은 상관없는 일.
“거대조정.”
점성술사들이 기계를 작동하자 구체의 금속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키트라의 눈에서 푸른 빛이 폭발했다.
“오오오오!”
온통 창백해진 시야의 장막 너머로 흐릿한 무언가가 아른거리는 듯했다.
‘신이여.’
천사들은 굽어보기로 세계 각지의 상태를 살피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이건 말이 안 돼.’
피라미드가 세워진 지역은 지형이 완전히 바뀌었고 생물은 보이지 않았다.
“시로네, 심상치 않아요. 지금 당장…….”
이카엘이 말을 하려는 그때 가장 가까이 세워진 피라미드가 전기에 휩싸였다.
“크으으으으!”
천사들의 성광체가 거칠게 흔들리고, 급기야 누군가가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
펑! 펑! 펑! 펑!
성광체가 폭발한 천사들이 마치 실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지기 시작했다.
천사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고, 시로네는 이카엘과 눈을 마주쳤다.
‘설마?’
펑! 펑! 펑! 펑!
벌써 절반의 천사가 쓰러진 상황에서 사티엘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천사장님! 헉!”
옆에 있던 천사의 성광체가 폭발할 때에는 자신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거렸다.
‘끝인가?’
폭발의 연쇄 작용은 사티엘을 건너뛰고 반대편에 있는 천사로 이어졌다.
그렇게…….
“전부?”
평천사들이 사라지고 남은 자리에는 사티엘과 이카엘, 유리엘뿐이었다.
‘왜 우리는 남아 있지? 대천사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 생각이 먼저 들 테지만, 시로네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건 상관없어.’
진리의 피라미드를 탐색하는 시로네는 벽에 새겨진 문자의 정체를 알았다.
‘하나하나가 천사라고 했다. 그렇다면 대천사라고 해도 피할 수는 없어. 이들의 공통점은 다른 것에 있다.’
마음.
그것 외에는 생각할 수 없는 가운데, 사티엘이 주먹을 움켜쥐고 소리쳤다.
“말도 안 돼!”
세상을 지배하는 천사들이 힘없이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비참함의 극치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천사들이…….”
그 순간 그녀의 앞으로 섬광이 날아들고, 빛의 대천사 레이엘이 착지했다.
“사티엘, 율법이 바뀌고 있다.”
시스템이 달라지면, 특정 개념에 대한 정의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천사들의 개념은 절대성을 잃어버렸어. 인간의 위상으로 격하된 거야. 시간파의 주기로 보건대 우리도 결국 피할 수는 없을 거야.”
사티엘은 평천사들을 살폈다.
아직 숨을 쉬고 있지만 고결함의 상징인 성광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이 피라미드로 향했다.
‘대체 저게 뭔데?’
전기를 머금고 있는 거대한 구조물은 조만간 무슨 짓을 저지를 듯 보였다.
“어떡하려고?”
“나라면 시간에 맞출 수 있어. 같이 가자. 위상이 떨어지기 전에 해결해야 한다.”
사티엘은 즉각 이해했다.
‘제길.’
지금 당장 이카엘을 처단하고 싶지만 지금은 그녀의 존재마저 위태로웠다.
“흥, 차라리 잘됐어. 너에게 내려진 벌이라고 생각해라. 그토록 좋아하는 인간이 되어서 말이야.”
성광체의 기운이 전보다 훨씬 옅어진 이카엘은 그저 입을 다물고 있었다.
“가자, 레이엘.”
사티엘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레이엘이 사법 광륜 액셀러레이터를 발동했다.
빛의 속도로 사라진 그들의 자취를 시선으로 좇으며 유리엘이 중얼거렸다.
“인간이라.”
위상이 떨어진다는 것은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처참한 일이었지만, 묘하게 가슴이 떨렸다.
‘나쁘지 않지.’
그가 이카엘을 돌아보았다.
“어찌할 것이오. 사티엘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은데.”
에이미가 물었다.
“레이엘이 어디로 간 거죠?”
“태양입니다.”
“태양? 그러니까…… 저거 말인가요?”
에이미가 하늘에 떠 있는 해를 가리키자 이카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인간은 행성에서 태어나지만, 천사들은 태양에서 태어납니다. 우리는 개념체. 빛의 신호가 응집되어 실체화되는 거니까요.”
시로네가 말했다.
“레이엘이라면 10분이면 도착할 거예요. 따라가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인간의 육체가 견딜 수 있을까?
“흐음, 그렇단 말이지.”
시로네의 걱정을 불식시키듯 에이미의 육체가 또다시 화염으로 불타올랐다.
트리거 (4)
***
“무슨 일이지?”
용뢰의 회의실을 나온 루피스트와 플루는 복도 창문 앞에서 얼어붙었다.
지평선 너머에 거대한 피라미드가 아련하게 솟아올라 있었다.
현대의 기술로 세운다고 해도 족히 몇 년은 걸릴 법한 크기의 구조물.
‘불가능해.’
그런 것이 찰나의 순간에 세워졌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시로네가 달려왔다.
“루피스트 씨.”
이카엘 일행이 태양으로 떠나고 다시 델타 본청에 동시 사건을 발동한 그였다.
시로네가 모르는 모종의 협의가 오갔으나 그들은 내색하지 않았다.
플루가 물었다.
“저게 뭐야?”
“파라스 왕국에서 움직인 것 같아요. 아마도…… 초고대 문명의 구조물일 겁니다.”
루피스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바깥 세계의 직접적인 개입으로 지어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게 왜 지금?”
“초고대 문명은 인류 역사 이전에 존재했죠. 짐작일 뿐이지만 바깥 세계와 연결되는 통로라고 생각해요. 조만간 세계의 시스템이 변할 겁니다.”
시로네는 천사들의 상태를 말했다.
“마음을 가진 천사들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당장 인간에게 해가 되는 것은 아니군.”
“그럴 수도 있지만 파장은 커요. 무엇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강도가 세질 겁니다.”
델타의 관리가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