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93
말인즉슨 지하에 파묻혀 있는 디지털 라의 알고리듬이 변했다는 뜻이다.
‘더 강한 힘으로 생물을 배척하는 것은, 앞으로 벌어질 미래에 대한 힌트.’
시로네가 미라클 스트림을 발동했다.
“제가 할게요.”
빛의 연기가 퍼지자 뮤커스의 표면이 파도처럼 밀려 나가기 시작했다.
“장막을 씌운 다음 압력으로 눌렀어요. 어지간한 힘으로는 뚫지 못할 겁니다.”
물론 세계 전체를 뒤덮은 질량이 한곳에 집중되면 얘기는 달라질 테지만.
‘그때는 전면전이지.’
걱정과 달리 뮤커스는 크게 요동치지 않았고 일행은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 아래에 디지털 라가 있어. 정확히는 이상한 장치를 타고 한참을 가야 하지만.”
시로네는 기억하지 못해도 페르미는 아포칼립스의 지리를 알고 있었다.
“그럼…….”
빛의 연기를 다시 끌어모은 시로네는 머리 위로 핸드 오브 갓을 시전했다.
“조심하세요.”
앵무 용병단의 간부들이 관리자를 호위했다.
‘뮤커스는 계속 재생된다. 최대한 빠르게 파고 들어가는 게 최상의 방법이야.’
핸드 오브 갓이 검지를 세우더니 뮤커스를 향해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엄청난 진동을 느낀 뮤커스가 수십 미터 바깥에서 거대한 촉수 기둥을 세웠다.
막대 사탕 마크가 소리쳤다.
“으아아! 온다!”
동시에 땅에 박힌 핸드 오브 갓이 드릴처럼 회전하며 아래로 푹 하고 꺼졌다.
“뛰어내려!”
사방에서 날아드는 촉수를 피해 채굴 팀이 빠르게 구덩이로 몸을 날렸다.
좁아지던 구멍이 완전히 닫히고, 표면에 처박힌 촉수들이 물 덩어리처럼 폭발했다.
“으아아아!”
끝없이 추락하는 깊이에 중년의 털보, 스마일 마크가 소녀처럼 비명을 질렀다.
‘엄청나게 깊다.’
핸드 오브 갓이 중력가속도보다 빠르게 뚫고 있지만 그래서 더욱 문제였다.
‘압력이 너무 세지는데.’
위를 올려다보자 시로네가 뚫은 창자 같은 터널이 빠르게 닫히고 있었다.
‘응?’
그 순간 핸드 오브 갓에 밀려들던 엄청난 저항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시로네!”
마르샤가 소리치고.
“크윽!”
핸드 오브 갓을 미라클 스트림으로 되돌린 시로네가 모두를 받아 냈다.
“하아! 하아.”
하늘에 떠 있는 상태에서 오퍼레이터는 200미터 아래에 있는 도시를 바라보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뮤커스로 가득 차 있을 줄 알았던 내부에 대략 도시 하나 크기의 공간이 있었다.
마르샤는 시로네에게 날아갔다.
“고마워. 플라이 마법으로 버틸 가속도가 아니었어.”
“네. 그런데 여긴?”
거대한 돔에 갇힌 형세였고 도시의 외곽을 따라 뮤커스의 장막이 펼쳐져 있었다.
“아마도 이런 거 아닐까?”
마르샤가 검지를 세웠다.
“아포칼립스 세계는 현실의 변화에 대응하지. 미래에 있을 어떤 사건으로 인해 뮤커스의 확장이 정상 속도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면…….”
“공기가 갇히는 구역이 생기죠.”
“그래. 뮤커스는 현실에서 셀 버스터가 일어날 것을 예고하지. 하지만 지면이 높아진 이유는 양이 늘어난 게 아니라 부풀어 오른 거야. 아마 아포칼립스 세계 곳곳에 이런 공간이 있지 않을까? 마치 치즈 속처럼.”
시로네도 동의했다.
“일단 내려가서 살펴보죠.”
마법을 시전해 지상으로 내려온 채굴 팀은 우선 도시의 풍경을 둘러보았다.
“역시 많이 변했네. 못 보던 건물도 있고. 이러면 상황이 복잡해지는데.”
바닥에도 뮤커스의 찌꺼기가 남아 있었으나 탐색이 어려울 정도는 아니었다.
처음으로 아포칼립스에 들어온 관리자들은 고요한 풍경에 울적해졌다.
“사람은 살지 않는 건가?”
마르샤도 생각하던 참이었다.
“아예 없는 건 아니었어. 태양의 아이들, 다이내믹 휴먼.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없었다.
“대부분 뮤커스의 홍수에 휩쓸렸겠지. 이상한 일은 아니야. 이 정도라면…….”
으어어어어. 으어어어어.
어디선가 들리는 신음 소리에 일행의 걸음이 멈췄다.
“뭐야?”
빠르게 주위를 살핀 시로네는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달려갔다.
정사각형의 철제 구조물이었다.
‘본 적이 있어.’
미궁 안드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제19000번 세계.’
인류가 도달 가능한 수많은 세계 중에 정신적 종말을 맞이했던 곳.
“그냥 가죠.”
“무슨 소리야? 사람들이 갇혀 있는데.”
창고 위로 뛰어오른 마르샤가 철제문의 손잡이를 붙잡고 잡아당겼다.
“끄응.”
열리지 않자 프리먼이 올라왔다.
“비켜 봐. 내가 부술게.”
마정탄을 장착한 그가 문 옆에 있는 기계식 패널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잠깐!”
막대 사탕 마크가 손을 들어 말렸다.
“저에게 맡겨 주세요.”
프리먼의 손을 잡고 창고로 올라간 소년은 패널의 형태를 꼼꼼히 살폈다.
“와, 끝내주네.”
오퍼레이터가 물었다.
“열 수 있어?”
“10초.”
언더 코더에서 직접 제작한 카드를 가져다 대자 패널이 투명해지며 코드가 보였다.
“흐음. 기술력은 뛰어난데, 패턴은 단순하네요. 잠그기만 하면 됐던 걸까요?”
철컹, 장치가 해제되었다.
“편하네. 어떻게 한 거야?”
“헤헤, 이런 쪽의 전문가니까 부른 거 아니에요? 어쨌든 이제 열어도 돼요.”
마르샤가 손잡이를 잡았다.
“어디…….”
문이 열리고, 시로네가 예상했던 대로 충격의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꺅! 이게 뭐야!”
아이부터 노인까지, 남자부터 여자까지 나신의 상태로 한데 엉켜 있었다.
“인간 저장고.”
모두가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인류가 직면하게 될 최악의 상황이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예요.”
“최악의 상황?”
마르샤는 창고 안을 내려다보았다.
서로의 몸에 묻은 액체를 핥으며 살아가는 광경은 결코 인간의 삶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여긴 아포칼립스잖아? 현실의 정보를 바탕으로 구성되는.”
“네. 즉, 현실에서 어떤 변화가 없다면 우리는 먼 훗날 이렇게 된다는 거죠.”
“왜?”
마르샤의 눈이 흔들렸다.
“왜 이렇게 되는데? 어째서 우리가?”
“아직은 알 수 없죠. 원인을 알기 위해서는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돼요. 그리고 채굴을 하려면 우선 바이러스를 심어야 되고요.”
시로네는 몸을 돌렸다.
“그만 가요. 이러는 동안에도 현실 세계는 이 순간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니까.”
마르샤가 멍한 표정을 짓는 가운데 프리먼이 철문을 살며시 닫았다.
“가자, 마르샤.”
분위기가 가라앉은 가운데 채굴 팀은 경건한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마나 위안거리인 점은, 디지털 라로 가는 루트가 남아 있다는 점이었다.
“여기야.”
시로네는 건물 옆에 세워진 비석을 보았다.
‘페어리 바이오미메틱스 연구소.’
정보가 손실된 상태로 왔기에 기억에는 없지만, 그렇기에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잠깐. 페어리?”
아주 오래전, 요정은 거핀에 의해 둘로 분리된다.
“왜 그래, 시로네?”
마르샤가 물었으나 시로네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가페의 힘으로 노르인과 결합한 엘프. 천국에서 인간을 통제하는 페어리.’
그리고 지금, 천국을 호령하던 페어리는 시로네의 행성에 머물고 있었다.
“엘프가 아니었어.”
마르샤가 눈을 깜박거리는 가운데 시로네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인간 세계를 지배하는 건 페어리였던 거야.”
거대조정 (1)
마르샤가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포칼립스는 현실을 기준으로 도달할 수 있는 미래의 마지막 정보가 쌓이는 곳이에요. 물론 물리적으로 축적되는 구조는 아니지만요.”
“그래. 평범한 가정집에도 1년 된 물건이 있는가 하면 20년이 넘은 물건도 있지. 채굴이란 가장 오래된 유물을 채집해서 근미래의 정보를 밝혀내는 것. 물론 그러다 보면 실제로 채굴을 해야 할 때도 있지만…….”
“네. 그런 의미로 봤을 때 디지털 라가 있는 건물이 페어리 바이오미메틱스라는 건 의미하는 바가 커요. 마족 전쟁에서 엘프는 인간의 편을 들었어요. 엘프의 족장 에녹스는 자신들을 실패한 종족이라 생각하죠.”
오직 인간만이 한없이 꿈꾸고, 끝없이 욕망하고, 쉬지 않고 투쟁한다.
“그녀는 알고 있는 겁니다. 인간 사회에 동화되지 못한 종족은 결국 가축이 된다는 것을.”
대표적으로 화족이 있다.
“에녹스와 엘프들은 지금도 싸우고 있어요. 그리고 이 비석이 그들의 결과를 말해 주고 있죠.”
“페어리가 이겼네.”
인간에게도 결코 좋은 결과가 아니었다.
“왜 나타나지 않지? 거인이야 이미르의 명에 복종하기에 움직임이 없는 게 이해되지만…….”
“요정도 마찬가지예요. 이카엘이 천사장의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구심점이 사라진 거죠. 하지만 그들이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는 이제 확실해요.”
페어리 바이오미메틱스 주식회사.
“인간이 되려고 하는 겁니다.”
바이오미메틱스.
“엘프의 아가페하고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
천사들의 울음소리가 구슬펐다.
“아, 어째서 이런 일이…….”
천사일까?
순수한 개념, 성광체를 잃어버린 그들에게서는 고결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바닥까지 떨어진 자존감뿐.
‘어째서 슬퍼하는가?’
유리엘은 시로네가 떠난 창공을 올려다보았다.
‘개념을 잃어버렸다고 해서 우리가 우리가 아니게 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왜?’
늘 완벽한 기준이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고유의 개념을 가진 천사들은 행위에 대한 갈등이 없다.
‘설령 타락천사라고 해도…….’
자신의 개념 안에서 저질러진 범죄인 것.
‘천사들에게 성광체란 힘이나 능력을 떠나, 존재의 기준이었음에 틀림없다.’
그 정도의 충격이 아니고서는 위상의 추락이라 부를 수 없을 터였다.
‘그렇다면 나는?’
유리엘은 자문했다.
‘성광체를 잃어버렸다고 해도, 존재의 기준이 없다고 해도 나는 선택할 수 있는가?’
이카엘을 죽이지 못했다.
“…….”
파괴의 대천사가 파괴 앞에서 주저했다는 것은 명백한 마음의 작용이었다.
‘우주의 기준이 아닌, 스스로의 기준으로 나를 정의하고 말았다.’
성광체는 소멸하지 않는다.
“아아, 유리엘 님.”
천사들은 유리엘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찬란한 성광체를 향해 모여들었다.
“우리들은 이제 어찌해야 합니까? 소멸해야 할까요? 아니면 존재해야 할까요? 이 손을, 이 발을…… 어디로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까?”
유리엘은 천사들의 비굴한 표정을 내려다보았다.
‘한 번도 해 본 적 없겠지.’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하는 행위 같은 것은.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