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94
유리엘은 몸을 돌렸다.
‘사티엘이 몸담았던 인간세계로 갈 수는 없다. 이들은 견디지 못할 것이야.’
말하자면 막 태어난 어린아이.
불확정성을 다루는 인간에게 데려갔다가는 끔찍한 일이 벌어질 터였다.
‘포식자나 마찬가지.’
힘없이 뒤를 따르며 천사들이 물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성광체가 있는 대천사는 태양으로 떠났고, 인간은 그들의 천적이 되었다.
“크라운.”
요정 72계급의 수장이었다.
***
아슈르의 시그널이 만든 거대 범선이 광활한 우주 공간 속을 뻗어 나갔다.
시로네는 함장실에 있었다.
‘레이엘은 도착했겠지.’
아슈르의 범선도 하루면 태양에 갈 정도로 빠르지만 광속은 차원이 다르다.
‘속도가 아닌 개념. 우주를 구성하는 신호의 단위.’
마음은 광속보다 빠르지만, 초광속이란 것도 신호와 신호 사이의 무無일 뿐.
‘빛보다 빠른 물질은 없다.’
그런 속도로도 태양까지 가는 데에는 대략 10분이 소요되는 거리였다.
아슈르가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시그널의 능력을 총동원한 그가 회복할 동안 바깥을 경계하고 있던 시로네였다.
“아니에요. 워프는 불가능하니까요. 아슈르 씨가 아니었다면 시도조차 못 했을 거예요.”
마음에 일말의 의심이라도 남아 있으면 양자 현상은 발동되지 않는다.
오메가의 경험을 통해 근접할 수는 있어도, 이번만은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
‘어떤 생물도 태양에 들어간 적은 없어. 아니, 설령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태성의 통제조차 벗어나 있는 미지였다.
“직선거리로 가는 게 가장 빠를 테지만, 아광속은 위험 요소가 많습니다. 안전한 길로 우회하겠습니다.”
“네. 부탁드릴게요.”
여객실로 내려오자 창문 앞에 나란히 서 있는 이카엘과 에이미가 보였다.
이카엘의 표정이 어두웠다.
“걱정되시나요?”
시로네를 위해 천국을 배신했지만 천사들 또한 그녀에게 소중한 존재였다.
“네. 하지만 괜찮을 거예요. 유리엘이 남았으니까요. 그가 잘 보살펴 줄 것입니다.”
에이미가 물었다.
“천사들의 고향이라고 하셨죠. 어떤 곳인가요? 태양에 가는 건 처음이라서요.”
그녀의 배려를 느낀 이카엘이 미소를 지었다.
“아름다운 곳이죠. 물론 인간의 기준으로는 조금 과격한 환경일 수도 있지만.”
“조금요?”
시로네의 눈이 가늘어졌다.
“후후. 태양의 빛은 우주 공간의 끝과 끝을 여행하는 네트워크랍니다. 빛이 없다면 감각도 없고, 그렇다면 인간에게도 세계는 없는 것이죠.”
“모든 것이 태양으로부터 나왔군요.”
“네. 그것이 ‘라’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태양을 통제하는 존재가 바로 꺼지지 않는 태양, 아카식 레코드의 화신인 앙케 라인 것이죠.”
영원불멸의 라.
“라로 인해 태어난 어떤 생물체가 에이미 양의 행성에 왔다면, 힘든 환경이라고 느낄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천사인 저에게는 태양이야말로 가장 포근하고 정신이 편안해지는 안식처인 것입니다.”
“그럼 천사들은 태양을 버틸 수 있다는 거네요.”
“당연히 못 버티죠.”
입술을 삐죽 내민 이카엘이 눈을 흘겼다.
“…….”
소녀 같은 모습에 에이미가 말을 잃자, 이내 웃음기를 머금고 설명을 이어 갔다.
“개념체인 천사라고 해도 태양의 거대한 에너지 앞에서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12사도가 오지 못한 이유였다.
“하지만 성광체는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흡수됩니다. 그렇기에 천사는 태양에 갈 수 있는 거예요. 말하자면, 태양 자체가 거대한 성광체라고 보시면 됩니다.”
어떤 의미인지 알 듯했다.
“정신체의 집합이라는 거네요. 하지만 인간인 우리들도 버틸 수 있을까요?”
시로네가 말했다.
“미라클 스트림으로 방어는 할 수 있을 테지만, 아무래도 그게 한계일 거야. 만약 사티엘 쪽에서 적대적인 대응을 한다면 위험할 수도 있겠지.”
“그래서 에이미가 함께 와 준 것이죠.”
이카엘이 말했다.
“불의 화신을 가진 에이미라면, 태양의 힘에도 버틸 수 있을 것입니다. 율법으로 말하자면 시스템의 충돌이 일어나지 않고 호환이 된다는 거죠.”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물론 자신이 있고, 자신이 없더라도 따라왔을 테지만, 상대는 다름 아닌 태양이었다.
‘내가 태양을 밟고 돌아다닌다고?’
상상하는 에이미의 눈에 초점이 풀리자 이카엘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호호, 걱정하지 마세요. 천사들의 개념체에 영향을 미칠 정도라면 라의 위상에 근접했다는 뜻이니까요. 기대해도 좋아요. 정말 아름다운 곳이에요.”
에이미는 창문을 돌아보았다.
“태양…….”
우주 공간 저 끝에서 금화 크기로 반짝이는 항성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태양은 경이롭다.
인류 행성의 100배에 달하는 불덩어리를 불과 1천 미터 거리에서 보고 있노라면, 이 세계가 얼마나 찬란한지 깨닫게 된다.
“…….”
엄청난 빛에 의해 두 눈은 멀었고 생물이라면 진즉 녹아내렸을 테지만.
“확실히 운행이 달라졌네.”
개념체인 천사들은 온통 창백한 열화의 세계를 그 자체로 받아들였다.
레이엘이 성광체로 의식을 전달했다.
“우주 전체에 조정이 일어났어. 하나의 행성에 몇 개의 피라미드를 세우기 위해.”
변화의 비율로 봤을 때 어떤 기구로도 계측할 수 없는 미세함이었다.
절반의 절반, 그 절반의 절반을 공겁으로 파고들며 도달한 지점에 위치한 조정.
그 영역에서 일어난 변화를 천사들은 이렇게 부른다.
“느낌.”
사티엘이 미간을 찌푸렸다.
“천사의 감각으로도 느낌이 전부일 정도의 극히 작은 변화. 하지만 분명 달라졌기에…….”
거대조정이다.
태양 표면에서 일어난 폭발로 수천 킬로미터 높이의 불기둥이 우주로 솟구쳤다.
빛의 향연.
지금 태어난 빛은 진공을 가로질러 우주 전체에 무수한 사건을 일으킬 테지만…….
“흥.”
그 빛에 천사의 권위는 없었다.
“인정할 수 없어. 천사들을 되돌릴 거야. 코어에서부터 바꾸면 되겠지.”
“할 수 있을까? 대천사가 전부 모인다고 해도 어려운 일이야. 무엇보다 라의 코어에 접속한다고 해도, 이 변화를 되돌리려면…….”
증폭의 힘이 필요하다.
“이카엘.”
그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사티엘의 분노를 키웠다.
“해 보는 수밖에 없잖아. 이제 남은 건 우리 둘뿐이야. 마음이라는 것을 가진 천사는…… 응?”
사티엘은 레이엘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어째서 너는 성광체가 남아 있는 거지? 율법의 기준을 어긴 적이 있어?”
“…….”
대답은 없었고, 레이엘의 뒤에 숨어 있는 3각 마라 루나가 눈에 힘을 주었다.
‘다 너 때문이잖아.’
사티엘이 스스로 천사장이 되기로 결정했을 때, 대천사들은 그녀의 곁을 떠났다.
고래고래 악을 질러 봤자 그녀의 목소리는 세상을 감동시키지 못했지만.
‘레이엘 님은 걸음을 멈추셨다.’
-내가 천사장이야! 내가 모든 것을 바로잡을 거야! 배신자 이카엘을 처단할 것이야!
밤새도록 그녀의 절규를 듣고 있던 레이엘은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루나, 돌아가자.”
“레이엘 님, 사티엘 님은 대천사를 이끌 권위가 없습니다. 어찌하여 굽히려 하십니까.”
-내가 가장 고귀하다! 내가 천사장이야!
“오래 알고 지냈지.”
루나는 그 순간 사티엘 쪽을 돌아보던 레이엘의 얼굴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나까지 떠나 버리면 안 될 것 같아서.”
“레이엘 님…….”
그는 스스로 선택했다.
사티엘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흥. 뭐, 아무튼 됐어. 너라도 있으니 조금은 수월하겠지. 빛의 대천사니까.”
“그래. 들어가자.”
두 천사가 태양으로 몸을 기울이는 순간 루나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크윽! 레이엘 님…….”
“아공간으로 돌아가라. 여긴 우리들의 고향. 마라가 버틸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여기서 1미터만 나아가도 몸이 녹아 버릴 듯했다.
“싫습니다. 따라가겠습니다.”
달빛의 마라 루나는 광기의 여신. 레이엘에 대한 집착이 상상을 초월했다.
“루나.”
레이엘은 시리도록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내가 명한다.”
“레이엘 님. 나의 주인이시여.”
눈물을 흘리며 뺨을 비빈 루나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아공간으로 사라졌다.
레이엘이 돌아섰다.
“출발하자.”
엄청난 속도로 태양을 향해 돌진하는 두 천사의 개념체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아아.’
사티엘은 무한한 안식을 느꼈다.
‘라. 나의 고향.’
천사의 육신이 순식간에 증발하고, 2개의 성광체가 태양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거대조정 (2)
***
플루가 떠난 복도를 응시하던 시로네는 정확한 타이밍에 몸을 돌렸다.
“얘기 좀 해요.”
루피스트는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언제까지 속일 수는 없지.’
끝까지 모르기를 바랐지만, 물어본다면 말할 수밖에 없는 동맹 관계였다.
“그래.”
토르미아 구역의 회의실로 들어가자 알비노가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
“저에게 숨기는 게 뭐죠?”
루피스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급하게 내린 결정이야. 우리는 플루를 이용해서 미인계를 쓸 작전이다.”
“누나도 받아들였나요?”
“당연하지. 아무리 부하 직원이라고 해도 의견을 묵살하고 이런 일을 시키지는 않아.”
시로네는 플루를 알고 있었다.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니고요? 어쨌든 이런 방식은 제가 바라는 게 아니에요.”
“늦었어. 이미 들어갔다고. 너도 봤잖아.”
“되돌릴 수 있어요.”
“국가 차원의 전략이야.”
“하지만 저하고 협의되지 않은 전략이죠. 이런 식이면 토르미아를 도울 수 없어요.”
마법협회에서 가장 냉철하다고 자부하던 루피스트도 지금 발언은 무시할 수 없었다.
“협박하는 거냐?”
“아뇨. 사실이 그렇기 때문이에요. 진심이 아닌 것으로 울티마를 도모할 수는 없으니까요.”
“좋아. 그렇다면 우리도 너를 포기하는 수밖에.”
루피스트는 초강수를 두었다.
“플루 누나를 데려올게요.”
“네가 왜? 플루는 내 직원이야. 이제는 네가 이래라저래라 간섭할 수 없어.”
“제가 옳다고 믿는 걸 하는 거예요. 여태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루피스트가 쾅 하고 테이블을 내리쳤다.
“대체 뭐가 문제야!”
“대피. 대피.”
언성이 높아지자 테이블에 있던 알비노가 슬그머니 움직여 소파에 앉았다.
“여기가 어딘지 알고 있잖아! 타국에서는 이보다 더한 일도 벌이고 있다고! 그런 놈들을 상대로 정정당당하게 싸우자는 거냐! 아직도 네가 마법학교 학생인 줄 알아! 1학년 3반이야?”
시로네는 입을 다물었다.
“잘 들어. 우리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이유는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만 골라서 해 왔기 때문이야. 물론 그 안에는 노력이나 훈련 같은 고결한 것도 있겠지. 하지만 그게 전부라고 생각해? 때로는 더러운 것에도 손을 대어야 이길 수 있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1학년 3반.”
알비노의 시선이 시로네를 향했다.
“어린 시절 이상을 꿈꾸며, 자신이 무언가를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며 노력했던 사람들이 지금 이 자리에 있죠.”
시로네의 머릿속에 지금까지 살아왔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