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96
“무슨 일인데에.”
“……내가 모든 것을 망치고 있는 것 같아.”
에이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모두를 구한다는 생각은, 결국 1명도 구할 수 없게 만들었어. 전부 엉망진창이야. 이제는 내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도 모르겠어. 루피스트 씨가 옳아. 차라리 내가 없으면 세상은 지금보다 괜찮을 거야.”
“그렇지 않아.”
에이미는 시로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남들보다 조금 더 먼 길인 거야. 끝이 보이지 않아서, 그래서 길을 잃은 것처럼 느껴지는 것뿐이야. 하지만 너는 똑바로 달리고 있어. 처음 너를 만났을 때부터…….”
세상 물정 모르는 겁 많던 소년이.
“지금까지.”
야훼가 되기까지.
“한 번도 네가 싫었던 적이 없는걸.”
훌쩍, 눈물을 멈춘 시로네가 품에서 벗어나자 에이미가 개구쟁이처럼 웃었다.
“예에, 울티마.”
그녀의 주먹이 시로네의 가슴을 툭 하고 때렸다.
“…….”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고 눈을 깜박이자 수줍게 시선을 피한 그녀가 말했다.
“사람들이 너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자신만의 목적지가 눈에 보이기 때문일 거야. 하지만 혼자가 아니야. 네가 얼마나 먼 길을 가든, 끝까지 같이 가 줄 사람들이 있잖아. 나, 친구들, 이카엘…….”
“에이미.”
시로네가 다시 울먹거리자 에이미가 가까이 다가와 정면으로 끌어안았다.
“틀리지 않았어. 난 그렇게 믿어.”
“……응.”
아직 눈물은 멈추지 않았지만, 이제 시로네는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
상아탑 230층.
태극의 힘에 구속당한 상태인 태성은 차가운 표정의 씽을 바라보았다.
“씽, 우리는…….”
태성의 입이 열리는 순간.
“큭!”
음지와 양지가 동시에 인상을 구기더니 태극의 힘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어째서?’
세계 각지에 세워진 피라미드로 인해 쌍둥이좌의 운명이 뒤틀린 것이다.
“씽 님! 율법이 바뀌고 있습니다!”
양지가 소리치고.
“아아아! 다 끝났어! 이제 우주는 파멸하고 말 거야! 모든 게 끝났다고!”
음지가 울부짖었다.
구속력이 기하급수로 약해지자 태성이 좌우를 살피더니 갑자기 튀어 나갔다.
씽이 소리쳤다.
“멈춰!”
율법의 극의 대력관철.
개연성을 파괴하는 아집이 지금 이 순간의 율법을 완전히 얼어붙게 만들었다.
“하아. 하아.”
음지와 양지가 숨을 헐떡였다.
‘태극이 붕괴되는 것은 일단 막았다. 하지만 이러면 씽 님도 움직일 수 없는데.’
다시 구속당한 태성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씽, 이러지 말아요.”
“역시 날 죽이려고 했군.”
“아니에요! 당신을 도우려고 한 것입니다! 바알이 상아탑을 무너뜨리면……!”
“닥쳐. 허상의 말은 듣고 싶지 않아. 내가 판단하고, 내가 행동할 것이다.”
태성이 울먹였다.
“어째서 믿지 못하는 거예요? 알잖아요. 인간을 위해, 내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싸워 온 저입니다.”
씽의 콧잔등이 일그러졌다.
“……증명할 수 없잖아.”
나 이외의 존재가 허상이 아니라는 증거.
“인류의 운명이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는 결코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야. 이 명제를 증명하지 못하면, 셀 버스터가 인류를 멸망시킬 수도 있어.”
“제가 막겠습니다. 아르고네스를 설득할게요. 분명 제 말을 들어줄 거예요.”
“닥치라고 했잖아!”
아집이 강해지자 태성의 입이 굳었고, 씽의 육체 또한 세계에 고정되었다.
제1군단장 바알이 빠르게 탑을 역행하는 반면 시로네는 큰 저항을 받았다.
“제길! 왜 이렇게까지 싸워야 하는 거야?”
“오대성이여! 포기하시오!”
172층까지 내려오자, 씽의 철학을 따르는 주민들이 다수 포진해 있었다.
“이번 층에서 잡아!”
일반 주민이라 하더라도 타국에서는 최고의 지성으로 불리던 자들이었다.
무엇보다 시로네를 압박하는 주민 중에는 세계 100대 위험인물도 있었다.
“오대성이여! 나의 죽음으로 당신을 반박하오!”
“크윽!”
한 노인이 단도를 꺼내 들고 목을 그으려고 하자, 시로네가 돌진했다.
단도를 빼앗은 그가 소리쳤다.
“그만해요! 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
정방형의 4층 건물의 옥상에서 정장을 입은 남자가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진리의 관철을 위해!”
“블리크.”
세계 100대 위험인물 중의 하나로, 금융 사기로 13조 골드를 횡령한 전적이 있었다.
“시로네, 당신이 틀렸소. 당신의 판단 하나가 전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다는 걸 왜 모르는 것이오?”
“아니. 내가 지킬 거야.”
물러서지 않는 눈빛에 블리크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군. 당신을 존경하지만…….”
그가 아래를 가리켰다.
“파괴하겠소.”
손가락이 가리킨 곳을 보자 한 여성이 남편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안 돼!”
시로네가 순간 이동으로 날아가 그녀를 떠밀자 철문이 굳게 닫혔다.
뒤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남편의 생사를 확인하는데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가 벽에 머리를 박아 대고 있었다.
“이야아아!”
땅을 박차고 돌진한 시로네가 그녀의 머리를 가슴으로 받아 냈다.
“크윽! 제발 좀……!”
미라클 스트림으로 기절시키고.
“그만하란 말이야!”
쿵 하고 여자가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건물의 조명에 불이 들어왔다.
전방을 살핀 시로네의 눈이 충격에 흔들렸다.
“이런……!”
사방에 설치된 함정에 주민들이 있었고, 복잡한 기관 장치로 연동되어 있었다.
‘어디부터 처리하지?’
특유의 통찰력으로 기관을 분석했으나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복잡했다.
‘아니, 그것보다…….’
더욱 복잡한 건 마음의 설계였다.
‘전부 살릴 수 없어.’
왼쪽의 주민을 구하면 오른쪽의 주민이 죽는 방식이 기본적인 메커니즘.
‘거기에 남자, 여자, 노인, 청년을 구분하고, 고통의 강도, 사망의 종류, 시체의 상태까지…….’
시로네의 마음을 공격할 수 있는 모든 계산이 깔려 있는 함정이었다.
장치의 개성만 봐도 설계자를 알 수 있었다.
‘피토. 데커. 마그라시아.’
미궁 설계자, 약물 연구가, 사이비 교주 등, 세계 100대 위험인물이 만든 걸작.
“우리의 뜻을 전하겠소.”
철창에 갇힌 피토가 밧줄을 칼로 끊자 거대한 칼날이 그의 목으로 향했다.
“크윽!”
판단을 내릴 겨를도 없이 돌진한 시로네가 미라클 스트림을 퍼트렸다.
빛의 연기가 칼날을 붙잡자 건너편에 있는 철창의 주사기가 내려왔다.
“흐으으으!”
팔목에 바늘을 꽂은 여자가 독극물이 주입되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시로네는 바늘을 뽑으며 생각했다.
‘이걸 뽑으면…….’
7개의 철창에서 불이 붙고, 3개의 철창이 열린 바닥 아래로 떨어진다.
“제길!”
야훼의 본질을 간파하고 자신의 생명마저 탄으로 사용하는 자들이 상아탑의 주민.
‘왜 이렇게까지…….’
그들의 신념이 시로네의 정신을 타격했다.
‘정말로 내가 틀린 거야?’
불이 붙은 철창을 소방한 그는 다시 아래로 내려가 추락하는 철창을 붙잡았다.
‘이게 유일한 루트야.’
그렇게 계산이 끝났으나, 블리크의 설계는 잔인하리만치 완벽했다.
‘속았어.’
풀 수 있는 문제처럼 설계해 놓고 사실 정답 따위는 없었던 함정이었다.
건물에 보이는 모든 함정이 발동하면서 주민들을 죽음으로 몰아세웠다.
그 광경 자체가 탄이 되어 가슴을 관통했다.
“아…….”
다들 죽는다.
‘내가 전부 망치고 있어. 나 때문에, 내가 아니었으면 죽지 않았을 텐데…….’
어쩌면 상아탑 주민들은 야훼의 정신을 파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 에이미의 말이 우주 공간을 뛰어넘어 뇌리를 강타했다.
‘길을 잃은 게 아니야.’
너무 멀어서, 끝이 보이지 않아서 길을 잃은 것처럼 느껴지는 것뿐이다.
“틀리지 않았어.”
흔들리는 정신을 다잡은 시로네의 눈이 부릅떠지고 핸드 오브 갓이 탄생했다.
그리고 수만 개의 작은 손으로 분화되어 함정의 모든 장치를 조작했다.
‘어떻게 이런 걸 만들 생각을 하지?’
어떤 방법으로 해제해도 이중, 삼중으로 연결되어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함정.
‘동시에 해결해야 돼.’
정답이 없는 문제도 아득히 멀리서 보면 그 자체로 정답이 되는 법이다.
‘됐다!’
함정이 해제되자 미리 심어 놓은 수백 개의 폭탄이 동시에 뇌관을 때렸다.
거대한 불꽃이 피어오르는 찰나의 순간, 시로네는 핸드 오브 갓을 통합했다.
‘얼마나 멀든 상관없어.’
그렇게 모든 전문專門을 압도하는 대의로.
‘나는 끝까지 달린다.’
폭탄이 터지면서 건물이 흔들리는 순간 블리크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마지막이군.’
굉음을 내며 건물이 폭발하고 거대한 황금빛 손이 하늘로 쭉 뻗어 나갔다.
등에서 느껴지는 따듯한 기운에 눈을 뜬 블리크는 상황을 깨달았다.
‘흔들리지 않았는가?’
잠시 후 핸드 오브 갓이 1명의 예외도 없이 주민들을 지상에 내려놓았다.
모두 기절한 상태였고, 유일하게 깨어 있는 블리크가 시로네에게 다가갔다.
“졌습니다.”
관철시킨 쪽은 시로네였다.
“오대성을 상대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시로네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
“그러죠. 결론은 났으니까요. 아무래도 우리들의 힘으로는 역부족인 것 같습니다.”
블리크의 말이 끝나는 순간 한 장의 부적이 시로네의 발밑으로 날아들었다.
“큭!”
황급히 몸을 날리자 서 있던 자리의 1평방미터가 용암으로 녹아내렸다.
‘이건……?’
익히 아는 능력이었다.
“이런 식으로 마주치게 되어 유감입니다, 오대성님.”
전신에 부적을 덕지덕지 붙인 남자가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운 부적을 흔들었다.
율법부의 3성급 주민, 흑강시였다.
거대조정 (4)
시로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흑강시.”
문 왕국 출신의 주술사였다는 것 외에는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진 자였다.
‘저 부적은 까다롭다.’
특정 사물에 담긴 힘으로 율법을 관철하는 방식은 헥사로 막기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