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97
“정말로 나를 막겠다는 거야?”
주민과는 달라서, 상아탑의 별이라면 시로네도 자비를 베풀 필요가 없었다.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이죠.”
흑강시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시로네의 주위로 순간 이동의 섬광이 떨어졌다.
‘탄주라, 대호.’
율법부의 1성급 별과 위성.
‘보르보르.’
이어서 균형부의 2성급 별 보르보르가 시로네의 후미를 제압한 상태로 착지했다.
‘총합 6개의 별.’
별의 숫자에서는 앞서지만 그렇다고 해도 균형이 맞는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죽을 수도 있어.”
부적에 가려진 흑강시의 얼굴에서 입꼬리 주변이 씰룩 올라갔다.
“참으로 인간적인 말이로군요. 우리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주민들조차 목숨을 거는 상아탑에서, 신념보다 하찮은 게 생명이었다.
의식을 되찾은 주민들이 탑의 외벽으로 물러선 가운데 전투가 시작되었다.
미라클 스트림이 천장까지 솟구치고 별과 위성이 동시에 위치를 바꾸었다.
대법관 탄주라가 소리쳤다.
“인류의 위기를 앞두고 상아탑에 분란을 조장한 죄, 징역 300년! 아집에 빠져 판단을 그르친 죄, 징역 273년!”
그의 능력 ‘판결문’이 발동되면서 시로네의 몸에 구속력이 깃들기 시작했다.
보르보르가 고개를 저었다.
“소용없어.”
율법부의 별들은 모두 율법을 다루지만, 씽조차도 막지 못하는 게 야훼였다.
‘물론 알고 있지.’
그럼에도 탄주라는 계속 판결을 내렸다.
“대법관의 판결을 무시하고 도주한 죄 징역 600년! 죄를 뉘우치지 않고 항소한 죄! 징역 987년!”
시로네가 판결을 거부할수록 탄주라의 판결에서 죄의 무게가 가중되었다.
‘언젠가는 잡힌다.’
흑강시가 날린 수백 장의 부적이 점차 시로네의 꼬리를 물고 있는 게 증거였다.
“죄를 뉘우치지 않으므로 800년 추가! 다시 800년 추가! 또다시 800년 추가!”
그렇게 징역 2만 년이 넘어가자 시로네의 움직임이 마침내 구속되었다.
“사형.”
탄주라가 최종 판결을 내리는 것과 동시에 그의 위성 대호가 쌍검을 뽑았다.
‘수감’ 상태에서 발동되는 ‘작두’의 능력은 리안의 신적초월에 준하는 위력.
‘끝났어.’
시로네의 몸에 부적이 달라붙고 작두의 절삭력이 목덜미를 깨무는 순간.
‘손의 기술!’
시로네가 사라졌다.
“제길!”
모두가 100퍼센트 확신한다면 시로네는 그들의 마음을 속일 수 있다.
‘양날의 검. 하지만 절대로 실패하지 않지.’
마음의 문제는 알고 있다고 해서 당장 교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위험해!”
보르보르가 소리치고, 거대한 빛의 주먹이 흑강시를 향해 날아들었다.
‘막을 수 없어.’
하늘에서 몸을 웅크린 흑강시가 몸에 달라붙은 부적을 모조리 불태웠다.
광채가 터지고, 핸드 오브 갓을 통해 시로네는 막대한 충격파를 느꼈다.
‘막았어?’
길고 가는 숨소리가 들렸다.
“후우우우.”
부적들이 전부 사라진 흑강시의 육체가 태양처럼 밝게 빛나고 있었다.
“20년 만이군, 이 모습을 드러내는 건.”
“백강시.”
부적은 사라졌어도 그의 육체에는 문 왕국의 주술이 새겨져 있었다.
탄주라가 수염을 쓸어내렸다.
‘흑강시는 위성이 없다. 봉인이 풀리면 그 자체로 다른 인간이 되기 때문에.’
태성의 말에 의하면 백강시는 4성급이었다.
‘음지와 양지, 성 뇌, 루버처럼 인간이라 불리기에는 조금 다른 존재지.’
마치 연료가 증발하듯 백강시의 길고 단단한 육체에 아지랑이가 일렁거렸다.
“야훼여, 나는 문 왕국의 율법 병기로 태어난 존재. 내 몸에는 88개의 주술이 깃들어 있소.”
하나하나가 가히 최강의 주술이었다.
‘파란만장하지, 저 사람도.’
인간이 아닌 무기로 취급을 받았던 그가 상아탑의 별이 되기까지의 삶 또한.
‘모두 자신만의 짐이 있다.’
스스로 짊어지기로 했기에 설득이 불가능한 것이 상아탑의 별들이었다.
탄주라가 부채를 펄럭이며 말했다.
“우리들은 일반 주민이 아니오. 죽일 수는 있어도 살릴 수는 없을 것이외다.”
그렇다고 해도 시로네가 무죄 판정을 받은 것은 불쾌한 일이었다.
‘손의 기술이라. 정말 섬뜩하구나.’
당하는 입장에서는 속은 기분이겠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현실인 것이다.
‘지금 상태로는 판결이 무용지물. 야훼를 막으려면 마음부터 부숴야 한다.’
같은 판단을 내린 보르보르가 자신의 육체에 깃들여 있는 미카에게 말했다.
‘오대성을 스캔해.’
전자기 생물체인 미카가 야훼의 정보를 스캔하면 그녀가 모방할 것이다.
-위험한 전술입니다. 야훼의 감정은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종류로 예측됩니다.
‘유일한 방법이야.’
일단 정신을 모방하면 보르보르는 원하는 대로 상대의 감정을 바꿀 수 있다.
‘자괴감으로 이끌어 마음을 파괴한다.’
위성 미카가 전기를 일으키자 미라클 스트림이 뱀처럼 방향을 틀었다.
‘반응했어?’
-저보다 빠를 것 같은데요.
‘…….’
시로네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적으로 만나는 것은 차원이 다른 까다로움이었다.
“오대성이여.”
백강시의 몸이 수증기처럼 타올랐다.
“영광으로 알겠소.”
온갖 주술을 집적시킨 육체는 하나의 부적이 되어 시로네에게 쇄도했다.
‘힘의 권능.’
소용돌이 문양이 새겨진 주먹이 땅을 강타하자 층이 흔들리는 폭발이 일어났다.
시로네는 피부가 저릿저릿했다.
‘역시 쉽지 않아.’
탄주라의 판결이 몸을 구속시키는 가운데 보르보르의 시선이 느껴졌다.
‘죽이고 싶지 않아.’
그래도 인류를 위해 싸우는 자들이 아닌가?
“……이제 그만해요.”
“역시 대단하군요. 상아탑의 별 앞에서 여유를 부리다니.”
백강시는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그의 복부에 새겨진 상형문자가 근육째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삼천세계.’
복부가 쩍 열리더니 만화경으로 들여다본 듯한 무지갯빛의 파편들이 회전했다.
‘부처?’
그 하나하나의 색채에서 설법을 떠올린 시로네가 핸드 오브 갓으로 방어했다.
“개방.”
거대한 에너지파의 방출이 헥사의 표면을 긁으며 상아탑의 벽을 꿰뚫었다.
“크으으으!”
아마도 두 번은 사용할 수 없을, 백강시라는 인간 부적의 진수였을 터.
‘그런 것을…….’
세상이 아닌 인간에게 써 버리다니.
“이 멍청이들아!”
탄주라의 판결이 다시 2만 년을 돌파하고, 보르보르가 시로네를 끌어안았다.
‘미카.’
스파크가 일어나는 찰나의 순간.
-스캔 완료.
무미건조한 음성에 이어 보르보르의 정신이 야훼의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것으로 끝이다.’
피아가 사라진 정신의 공간에서 시로네와 보르보르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녀의 왼쪽 눈에 주륵, 눈물이 흐르고.
“……어?”
너무나 거대해서 처음에는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이 온몸을 휘감았다.
아아아아아!
정신의 세계에서 눈물은 홍수가 되어 그녀가 머무는 공간을 가득 채웠다.
-쇼크! 쇼크입니다! 의식을 차단……!
미카의 음성조차 파묻힌 감정의 폭풍 속에서 보르보르는 깨달았다.
‘흉내조차 낼 수 없다.’
시로네가 느끼는 참담함의 일부분이라도 그녀는 감당하지 못할 터였다.
‘어떻게 버틸 수 있지?’
아니,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지?
‘너무 불공평하잖아. 1명의 인간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세계라는 것은.’
그 억울함이 한계를 돌파해 정신에 침투하지 마침내 의식이 뚝 하고 끊어졌다.
“보르보르!”
다른 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로네가 보르보르를 끌어안고 소리쳤다.
“정신 차려!”
그녀의 몸에 전류가 흐르고, 감겨 있던 눈꺼풀이 천천히 올라왔다.
‘미카…….’
-제세동을 완료했습니다. 하지만 곧 죽어요. 당신의 마음은 이미 파괴되었습니다.
탄성을 잃어버린 고무줄처럼, 그녀의 정신은 더 이상 현실에 깃들 수 없었다.
“……오대성.”
보르보르가 입을 열었다.
“미안합니다.”
씽을 설득시킬 수 없었다.
보르보르가 어떤 말을 하든, 씽의 입장에서는 허상의 정보가 되기 때문이다.
‘나라고 다르지 않다. 인간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으면서, 인간을 신뢰하지 못한 것은.’
하지만 시로네는 달랐다.
‘진짜냐 가짜냐는 중요하지 않아.’
설령 허상이라도, 이런 마음이 깃들 수 있는 세계라면 아름다울 테니까.
“오대성을 보내 주세요.”
물론 상아탑의 별들이 고작 몇 마디의 말로 마음을 바꾸지는 않을 테지만.
“부탁드립니다.”
보르보르는 처음으로 표정을 드러냈다.
“…….”
그런 기분이었다.
“흥.”
보르보르가 사망하자 사방에서 부적이 날아와 백강시의 육체를 봉인했다.
“오대성이여, 생각을 바꾼 것은 아니오. 큰 별을 잃은 것에 대한 슬픔이지.”
상아탑의 별들은 모두 그녀를 좋아했다.
“보르보르는…….”
시로네가 오메가로 아는 그녀의 인생은 네 살까지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큰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어요.”
-심장이 멈췄군요.
혈류가 차단되고 뇌사가 진행되는 동안 미카가 보르보르에게 말을 전했다.
‘그래. 생물학적으로는 이미 죽었지. 너도 이제 내 몸에서 나가. 그동안 고마웠어.’
미카는 생각에 잠긴 듯했다.
-저는 여기에 남을 겁니다.
‘나는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어. 여기에 남으면, 너도 죽는 것과 똑같은 거야.’
-그래요. 그렇겠죠.
미카에게 마음 같은 건 없기에, 보르보르는 위성의 말에 의아함을 느꼈다.
-타인의 정신에 기생하는 것보다, 당신의 침묵에 기생하는 것이 훨씬 건설적이라는 계산입니다.
‘후후, 그래.’
미카와 함께라면 죽음이라는 것도 조금 긴 잠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다시 눈을 뜨면…….’
주마등이 스쳐 지나갔다.
모라이 시장에서 태어난 보르보르는 세 살 때부터 새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했다.
집을 떠난 열일곱 살 때까지 아버지는 세 번이나 바뀌었고, 하나같이 끔찍한 자들이었다.
어머니가 장사하는 동안 그녀가 했던 일은 그저 시장 바닥에 앉아 있는 것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