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07
“아니, 저기에 입사했다는 건 납치가 아닐 텐데요? 아마도 그 친구분은…….”
“시끄러워! 죽을래?”
허리에 찬 사슬을 들어 올린 손유정이 리체라의 귀에 입을 대고 소리쳤다.
얼굴밖에 없는 상태에서는 그것조차 고문이었으나, 동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제길! 진짜 서러워서 못 살겠네. 정말 지옥이 있기는 한 거야? 사슬도 없고 말이야.”
“호호호! 당연하지! 나는 천하무적이니까. 지옥조차 나를 막을 수 없단 말씀.”
시로네가 미간을 찌푸렸다.
“손유정.”
긴고아가 줄어들자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죄, 죄송해요!”
“자만하지 마라. 나네가 너를 지옥으로 보낸 이유를 한시도 잊어서는 안 돼.”
박지의 검을 꽂은 나네의 얼굴이 떠오르자 손유정의 두 눈이 불타올랐다.
‘부처. 이 개자식.’
시로네의 초에니 바르도와 다른 점이라면 자력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뿐.
‘그녀가 현실로 돌아가려면 박지에 도달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곧…….’
감정을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가죠.”
시스템제어 지부의 출입구에 도착하자 정장을 입은 자들이 지키고 있었다.
리체라가 말했다.
“관리자입니다. 에이전트라고 부르죠. 저것들, 진짜 악독한 놈들이라고 하던데.”
부지 안에도 에이전트가 돌아다니고 있었고, 개중에는 흑승도 보였다.
‘에이전트.’
오메가의 기록에는 지옥의 정보가 극소수지만 그들의 악명은 익히 들었다.
이면 세계의 시스템 전문가들로, 정화에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는 자들이었다.
‘흑승이 잡아들이면, 에이전트가 판결한다. 그들의 권력은 지옥에서 절대적이야.’
에텔라가 말했다.
“정면으로 쳐들어가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아요. 저들을 쓰러뜨린다고 해도…….”
정화 시스템을 다루는 건 다른 문제였다.
“헛소리.”
샤갈이 나섰다.
“이 개 같은 사슬을 끊을 수 있는데 뭘 망설이지? 전부 죽여 버리면 되잖아.”
리안이 대직도로 길목을 막았다.
“시로네의 결정이 먼저다. 작전을 방해할 시에는 내 칼을 맞게 될 거야.”
“그러든지. 저 여자도 죽을 테니까.”
“야비하군. 인질 뒤에 숨지 않으면 자신의 신념도 지키지 못하는 한심한 놈인가?”
샤갈이 눈에 힘을 넣었다.
“네가 뭘 알아?”
“잘 알지. 약한 상대만 골라서 괴롭히는 하이에나 같은 인간. 태극의 사슬만 아니었어도 너는 죽었을 거야.”
샤갈의 주위에 단도의 환영이 아른거렸다.
“그래? 어디 해봐.”
에텔라가 말했다.
“그만해요.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에요. 정보를 수집하는 게 먼저입니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이미 불이 붙은 두 사람은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넌 쓰레기 같은 놈이야.”
리안은 샤갈이 싫었고, 누구라도 그럴 터였다.
“크크, 내가 그렇게 밉나? 왜? 내가 이 여자를 괴롭혀서? 고작 그런 이유로?”
“고작 그런 이유라고?”
리안이 참지 못하고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 샤갈이 태극의 사슬을 끌어당겼다.
에텔라의 등 뒤로 숨은 그가 소리쳤다.
“푸하하하! 그래! 나는 쓰레기다! 너희들이 불쾌할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거야!”
시로네가 나섰다.
“에텔라 선생님을 풀어 줘.”
“그럼 너희들이 더 열심히 해야지. 어이, 여자. 이 녀석들에게 말해. 이제부터 내 명령에 따르라고. 그러지 않으면…….”
샤갈이 자신의 허벅지에 칼을 찔렀다.
“흐윽!”
태극의 사슬을 통해 고통이 그대로 전해지자 에텔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칼날이 연거푸 박혔다.
“말하라고! 빨리!”
이성을 잃은 리안이 돌진했다.
“이 개자식!”
“푸하하! 날 베고 싶나? 어디 해봐! 어떻게 되는지 나도 궁금해 죽겠으니까!”
에텔라를 옆으로 치워 버린 샤갈이 두 팔을 벌리고 대직도를 기다렸다.
리안은 이가 갈렸다.
‘베고 싶다! 이 천하의 악인을!’
하지만 에텔라가 고통을 받는다는 사실에 결국 검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의 왼쪽 주먹이 쳐들렸다.
‘미안합니다, 에텔라 씨. 한 방은 때려야겠어요!’
이 정도로 강하게 해 두지 않으면 샤갈은 앞으로도 일행을 통제하려 들 것이다.
거기에 더해.
‘내 감정도 좀 풀어야겠어!’
무지막지한 속도로 주먹이 뻗어 나가는 그때 에텔라가 샤갈을 끌어안았다.
“크윽!”
신적초월의 능력으로 동작을 멈추자 펑 하고 풍압이 사방으로 퍼졌다.
에텔라가 말했다.
“그만두세요.”
리안도 그녀에게는 할 말이 없었다.
“크크크, 죽일 듯 덤비더니 고작 이거냐? 결국에는 너도 말뿐인 인간이었군.”
에텔라가 샤갈의 얼굴을 돌렸다.
“당신도 그만해요.”
“뭘 그만해? 난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아. 너를 괴롭히고 괴롭혀서, 미치게 할 거다.”
시로네가 참지 못하고 나서려는 그때 에텔라가 말했다.
“괴롭힌 적 없어요.”
‘선생님.’
그녀는 일행에게 돌아섰다.
“태극의 사슬은 끝없이 순환합니다. 누구 하나가 당했다고 말할 수 없어요. 그의 잘못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황당한 건 샤갈이었다.
“뭔 소리야, 너?”
에텔라는 삶이 끝나기 직전, 현실에서 샤갈과 보낸 마지막 순간을 떠올렸다.
“샤갈을 받아들인 건 저예요. 그를 원망할 수 있는 사람도 오직 저뿐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원망하지 않아요. 제가 할 일을 깨달았으니까요.”
태극의 숙명.
“이 남자의 삶이 저의 삶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샤갈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세요.”
모두 침묵했다.
‘희생.’
자신의 일이 아님에도 속이 썩어 문드러질 것 같은 희생의 아픔이 느껴졌다.
‘그 또한 신념이다. 한 자루의 검이다.’
리안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에텔라 씨의 각오를 들었으니, 앞으로 샤갈을 판단하지 않겠습니다.”
에텔라가 다시 샤갈에게 몸을 돌렸다.
“당신도 우리를 좀 도와줘요. 사슬을 풀고 싶잖아요. 힘을 합치면 할 수 있어요.”
“…….”
그런가?
‘나는…… 사슬을 풀고 싶은 건가?’
시로네가 말했다.
“그럼 작전을 세울게요. 우선 이면 세계의 시스템부터 알아 둬야 해요.”
일행이 작전을 짜는 동안에도 샤갈은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에텔라의 마음이 사슬을 타고 전해져 왔다.
‘위선자 같으니라고.’
따듯하고 친절한 느낌.
‘사실은 내가 역겹겠지. 재수 없이 내가 죽기라도 하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쁠 거야. 그러니까…….’
샤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재수 없어.’
그 이름 모를 거대한 감정을 뚫고 칼날처럼 예리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동정하지 말란 말이야!’
악 중의 악이다.
“크아아아아!”
샤갈의 괴성에 모두가 고개를 돌렸을 때, 이미 그는 시스템제어 지부로 뛰어가고 있었다.
“샤갈! 꺅!”
사슬이 쭉 하고 30미터를 늘어나더니 급기야 에텔라가 땅바닥을 끌려갔다.
“저 멍청이가!”
리안을 필두로 모두가 추격했으나, 어느새 샤갈은 입구에 도착해 있었다.
“저 녀석은 뭐야?”
에이전트들이 샤갈을 발견하고 호루라기를 물었으나 기질은 차분했다.
볼을 부풀리며 호루라기를 불자 경망스러운 목소리가 청공을 울렸다.
-침입자다! 크하하! 침입자야!
각 구역에서 근무하고 있는, 똑같은 복장을 한 에이전트들이 벌 떼처럼 몰려들었다.
“크으으으!”
이미 눈에 보는 것이 없는 샤갈은 그 많은 숫자를 오직 하나의 적으로 인식했다.
‘속사검.’
그의 주위에 아지랑이가 일렁거리고, 엄청난 개수의 속사검이 비처럼 쏟아졌다.
에이전트가 샤갈의 어깨를 붙잡았다.
“이 자식이……! 컥!”
칼날이 오른쪽 눈에 박히는 것과 동시에 그의 정장에 수십 개의 구멍이 뚫렸다.
“억! 억! 억! 억!”
에이전트는 순식간에 고슴도치가 되어 버렸으나 샤갈은 멈출 기미가 없었다.
“으아아아!”
분노는 줄어들지 않는다.
‘죽어! 죽어! 죽어!’
체력이 보존된다면, 그는 영원히 이 짓을 기계처럼 반복할 것 같았다.
‘날 무시해? 내가 우스워?’
무언가를 망가뜨리고 싶다는 감정은 명확하지만, 망가진 상태가 뭔지는 모르기에.
“으아아아!”
계속 찌르는 것이다.
형태가 바뀔 때까지, 세포 하나하나가 전부 파괴될 때까지, 원자마저 짓이겨질 때까지.
‘어떻게 해 버릴 거야! 어떻게든 해 버릴 거야!’
그 정도의 집요함.
입구에 도착한 시로네 일행은 참혹한 오버킬의 현장 앞에 말문이 막혔다.
“세상에…….”
에이전트조차 섣불리 접근하지 못할 정도의 악의는 지옥에서도 독보적이었다.
에텔라가 소리쳤다.
“그만해요!”
그녀의 마음이 사슬을 통해 전해지자 샤갈은 더 큰 악의로 받아쳤다.
“으아아아!”
어째서 수치스러운 것일까?
‘수치를 당한 건 저 여자인데. 어째서 내가…… 왜 하필이면 내가……!’
왜 나야?
‘그래, 나는 살인자다. 내가 죽였다. 천하의 악당이다. 그래서 벌을 받고 있잖아. 죽었잖아. 지옥에 떨어졌잖아! 그래도 부족하다면…….’
더 큰 고통을 받아도 상관은 없지만.
‘이거 하나만 물어보자.’
왜 나야?
‘어째서 내 과거는 없는 거야? 왜 티아를 사랑하게 만든 거야? 어차피 다 가짜면서…….’
만약 신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적어도 그 정도는 들어야 하지 않을까?
“샤갈!”
에텔라는 필사적으로 마음을 보냈으나 그럴수록 샤갈의 분노는 강해졌다.
“크아아아!”
수천 개의 단도가 전방을 난도질하면서 에이전트의 육체를 갈기갈기 찢었다.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다.
“통 큰 정화 감사합니다. 남은 정화 시간 87해 2,875경 3,241조 6,401억 721만 38시간입니다.”
시로네가 고개를 들었다.
“뭐야?”
기억하기로, 대략 40억 시간의 정화였다.
‘이런 거구나.’
태극의 업, 하지만 막상 당사자 두 사람은 반쯤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그만! 제발 그만!”
에텔라가 전심으로 소리치자 마침내 샤갈의 공격이 우뚝 멈췄다.
“하아! 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