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12
“좋아, 해 주지.”
하지만 놀랍게도 하비츠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않고 순순히 허락했다.
“나도 부탁할 게 있거든.”
“응?”
우오린이 눈을 깜박거렸다.
***
언더 코더, 하이 기어와 마찬가지로 아포칼립스의 시간 또한 현실과 달랐다.
“채굴. 힘든 작업이네요.”
벌써 보름이 넘게 채굴을 했지만 유의미한 정보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마르샤가 말했다.
“아직 괜찮아. 특정 시간대의 키워드를 찾는 건 화석을 캐는 것과 비슷해. 그 연대의 사건만 찾으면 정보는 대량으로 나올 거야.”
오퍼레이터가 턱을 괴었다.
“흐음, 다양한 연대가 쌓여 있는 장소를 찾으면 좋을 텐데요. 박물관이랄지, 정부 기관의 서류 보관실, 혹은 그에 준하는 데이터베이스.”
넘버 세븐이 말했다.
“문제는 뮤커스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야. 벌써 17시간 동안 공기층이 나오지 않고 있어.”
초대형 굴착기 ‘엑스트라’에 탑승한 채굴 팀은 조종실에 달린 화면을 살폈다.
레이저 드릴이 뮤커스를 파내는 광경만이 끝없이 반복될 뿐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오퍼레이터가 투덜댔다.
“기체가 너무 느린 거 아냐?”
“장난해? 석재를 파내면서 시속 40킬로미터로 달리는 게 쉬운 일인 줄 알아? 메탈 게놈사에서 특별히 제작한 타이탄 합금으로 만든 거라고. 엔진은…….”
“소름 돋으니까 제발 그만해. 어차피 전부 오빠가 만든 가상의 회사잖아.”
넘버 세븐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쳇! 이런 리얼리티가 명품을 만드는 모티브가 된단 말이야. 알지도 못하면서…….”
잡담이 30분 정도 오가는 그때, 엑스트라의 기체가 심하게 요동쳤다.
“뭐야?”
“전진 속도가 빨라졌어. 저항이 약해지고 있는 거야. 조만간 뚫릴 것 같은데.”
모두의 시선이 화면으로 집중된 가운데 답답한 석회질이 확 사라졌다.
“나왔다!”
쾌재를 부르는 것도 잠시, 엄청난 중력가속도가 엑스트라를 끌어내렸다.
“으아아아! 으아아아!”
벌써 몇 번이나 같은 상황을 경험했지만 적응이 되지 않는 두려움이었다.
“기다려요.”
밖으로 나간 시로네가 핸드 오브 갓으로 엑스트라의 기체를 움켜쥐었다.
“휴우.”
그 상태로 아래를 내려다보자 군사시설이 포함되어 있는 작은 마을이 보였다.
‘정부 기관이다.’
눈을 빛낸 시로네는 커다란 첨탑 앞으로 날아가 엑스트라를 안착시켰다.
“무슨 기념비인 모양인데.”
장비를 챙긴 채굴 팀이 주변을 수색하더니 돌아왔다.
“여긴 전쟁 용사 기념비야. 시신은 다른 곳에 안치된 것 같은데, 이곳에 소지품이 있을 거야. 혹시 모르니 살펴보자.”
땅에 설치된 철문을 개방한 채굴 팀은 수천 개의 선반이 있는 지하로 내려갔다.
시로네는 무작위로 살폈다.
‘신원 확인 줄. 가족 사진. 수첩. 일기장…….’
선반에 놓인 물건들을 천천히 훑어보던 그의 시선이 한곳에 고정되었다.
“응?”
장난감 피라미드였다.
잠시 복도 좌우를 살핀 시로네는 손에 꽉 차는 크기의 피라미드를 꺼냈다.
내부는 텅 비어 가벼웠는데 위아래로 흔들자 종이가 돌아다녔다.
‘쪽지.’
밑면의 뚜껑을 열고 두 번 접힌 종이를 펼치자 정밀한 눈동자가 그러져 있었다.
“전시안…….”
모든 것을 보는 신의 눈.
쪽지를 피라미드의 상층부에 가져다 대자 정확히 선이 맞아떨어졌다.
“시로네! 여기!”
마르샤의 목소리를 들은 시로네는 피라미드를 챙기고 그곳으로 달렸다.
“무슨 일이에요?”
“찾았어.”
마르샤가 들고 있는 것은 곰팡이가 슬어 있는 두툼한 책이었다.
‘고대 주술 안내서.’
시로네는 울티마로 해독했으나 마르샤는 언어가 아닌 그림을 참고했다.
“대충 훑어보다가, 갑자기 이런 게…….”
그녀가 펼친 페이지에 성전의 마크와 12개 참가국의 국기가 보였다.
‘문 왕국의 주술, 살殺. 왕족의 암살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 당시 사망자는…….’
시로네는 곧바로 책을 덮었다.
“지금 현실은 몇 시지?”
***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
경건한 음파가 밤을 타고 수도에 퍼지면 집집마다 불이 꺼질 테지만.
“꺄아아아아아!”
4킬로미터 떨어진 동굴에서는 그것이 곧 귀신을 깨우는 소리였다.
“전하! 피하십시오!”
결계마저 찢어 버린 한의 정수에 역술사는 문룡을 데리고 입구 쪽으로 물러섰다.
“이럴 수가…….”
손톱으로 얼굴을 할퀴는 한 여자의 환영이 전기처럼 번쩍거리고 있었다.
무당이 널뛰었다.
“원통한 영혼이여! 구천을 떠도는 귀신이여! 한을 풀어야지. 그 한을 풀어야지!”
귀신은 바닥에 떨어진 왕들의 그림을 노려보며 악에 받친 소리를 질렀다.
“죽일 거야! 전부 다 죽여 버릴 거야! 살아 있는 것들, 전부 내가 다 죽여!”
‘이렇게 선명하다니. 이건…… 너무 심하다.’
역술사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으나, 문룡은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뭣들 하는가? 쏴라.”
그렇게 방아쇠가 당겨지고, 역술가들이 최후의 결계를 장검으로 베어 냈다.
“가라! 가거라! 너의 한을…… 컥! 원통한 한을……! 으, 으아아아아아!”
피를 토한 무당이 고꾸라지는 순간 하얀 서리 같은 것이 입구로 튀어 나갔다.
“흥!”
문룡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귀신의 얼굴을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왕이다.”
아아아아아아…….
동굴을 빠져나간 한의 정수는 아련한 비명이 되어 밤하늘을 수놓았고.
댕. 댕. 댕.
열두 번의 종소리가 들렸다.
12시, 12국 (1)
자정의 종소리는, 마치 처음부터 그런 소리는 없었던 것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고요한 밤.
“빨리 진상 파악해!”
성전 각국의 섹터는 초비상 사태였다.
‘뭐지? 대체 뭐야?’
문 왕국이 증폭시킨 살이 얼마나 빨리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지는 보고된 바가 없다.
‘암살 공작이다. 그것 외에는 설명할 수 없어.’
종소리보다는 빠를 터였다.
“포니!”
아포칼립스에서 암살 정보를 채굴한 시로네는 토르미아의 섹터로 달려갔다.
기사들은 석상처럼 우둑하니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나 표정만으로 알 수 있었다.
‘역시…….’
섹터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자 수뇌부들이 초조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럼에도 고요하다.
마치 끓는 물을 압축시켜 얼려 버리려는 듯 그들은 필사적으로 억누르고 있었다.
당혹감을.
시로네도 그때부터는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국왕이 머무는 곳으로 다가갔다.
“후우.”
심호흡을 크게 한 다음 문을 열자 밝은 조명 대신 촛불의 어두운 음영이 기다렸다.
“시로네.”
루피스트와 알비노가 서 있고, 단테가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무사한가요?”
침대는 커튼에 가려져 있었기에 루피스트는 시로네의 물음으로 깨달았다.
“아포칼립스인가? 언제부터?”
“조금 전에 알았어요. 이미 늦은 것 같지만요.”
단테가 말없이 커튼을 젖히자 안색이 창백한 포니가 죽은 듯 누워 있었다.
“리리아 씨.”
포니의 옆을 지키고 있는 자는 아케아니스 신단의 마도사 리리아였다.
“즉사는 막았어. 하지만 장담할 수 없어.”
침대 옆에 놓인 토템과 주술 무구들, 시로네가 크게 숨을 내쉬며 물었다.
“어떻게 예측했죠?”
단테가 답했다.
“예측 못 했어. 짐작도 못 했지. 리리아가 첩보의 흐름을 통해 흉살을 읽어 낸 거야.”
리리아가 말을 받았다.
“국왕 전하 외에도 대부분의 요인에게 주술적 방어벽을 만들었지만, 이건 예상 밖이야. 엄청나게 강해. 독을 탄 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셈이라고.”
초에니바르도의 감각이 침대 이면에서 흔들리는 귀신의 모습을 감지했다.
“포니에게서 나가.”
미라클 스트림이 포니의 몸을 감쌌다.
“키야아아아!”
의식이 없는 포니가 눈을 번쩍 뜨고 허리가 새우처럼 크게 휘어졌다.
“죽일 거야! 다 죽여 버릴 거야!”
박지를 경계로 잔상이 중첩되면서 포니의 얼굴이 사악한 악마로 변했다.
‘제길.’
미라클 스트림을 없애자 리리아의 율법에 의해 귀신이 다시 짓눌렸다.
“심각하네.”
리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상적인 마기가 아니야. 나도 제령을 시도했지만 살의 기운이 너무 강해서 소용이 없어. 강제로 박지를 허물게 되면 국왕 전하가 죽고 말 거야.”
시로네의 눈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문 왕국일 거예요. 그들이 주술을 이용해 각국의 왕을 암살하는 미래를 파악했어요.”
루피스트가 물었다.
“누가 죽지?”
“그건 의미가 없어요. 이미 채굴을 했으니 현실의 변화에 따라 미래도 미세하게 바뀔 겁니다. 다만 최초 암살 대상은 6명이었던 것 같아요. 토르미아, 진천, 코로나, 부족연합, 파라스, 구스타프.”
단테가 말했다.
“12개국의 절반이네. 누가 사주했는지 모르게 연막을 친 거야. 어차피 아포칼립스의 정보는 증거로 채택될 수 없어. 각국이 유리한 대로 취사선택할 수 있는 증거는 객관성을 확보할 수 없으니까.”
알비노가 중얼거렸다.
“카샨이 없군.”
모두가 그를 돌아보았다.
“문 왕국의 입장에서 카샨의 황제는 최우선 제거 대상일 텐데. 실제로 전통적인 3제국 중에 카샨만 빠져 있지. 손을 잡았다고 볼 수밖에.”
리리아가 물었다.
“그 점을 노리고 일부러 뺀 것일 수도 있잖아요? 카샨에게 덮어씌우기 위해서요.”
루피스트가 고개를 저었다.
“살을 날린 것은 일종의 선전포고야. 전범국으로 지목되면 타국도 국왕 암살에 대한 명분을 얻는다. 그런 상황에서 굳이 제국을 몰아세우는 건 역풍을 맞게 돼. 설령 각오했다고 해도, 애초에 11개 국가 전체에 살을 날리는 게 이득이지.”
단테도 동의했다.
“동맹은 확실해 보입니다. 남은 건 대응이죠. 우리도 연합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해요. 조용한 건 오늘 밤까지뿐일 겁니다. 날이 밝으면 칼이 움직일 테니까요.”
피바람이 불 것이다.
“쿠안을 쓰지.”
알비노가 무심하게 내뱉었다.
“불러오게.”
고개를 끄덕인 단테가 방을 나서는 모습을 리리아는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잔혹하구나, 승리해야 하는 삶이라는 건.’
침대에 앉은 시로네는 날카롭게 숨을 쉬고 있는 포니의 이마를 짚었다.
필사적으로 버티는 듯 보였다.
‘조금만 더 버텨.’
박지를 붕괴시키는 순간 귀신은 포니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 놓을 터였다.
‘내가 구해 줄게.’
포니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이면 세계에서 직접 마를 제거하는 수밖에 없었다.
노크 소리가 들렸다.
“협회장님.”
문을 열고 들어온 토르미아의 외교 대신의 얼굴은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코드 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