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14
자기비판을 끝낸 페르미는 가상의 리볼버를 머리에 댔다.
‘당겨.’
딸깍, 딸깍, 딸깍,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그의 분노가 차갑게 식어 갔다.
‘생각하자.’
그것이 영장류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 당면한 문제를 전부 파악하고, 하나씩 순차적으로 해결을…….’
화가 나서, 머리가 핑 하고 돌았다.
“아, 진짜.”
담배를 꺼내서 불을 붙인 페르미가 길게 연기를 뿜어내며 중얼거렸다.
더러운 욕이었다.
***
자이브 수도의 으슥한 골목에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댕댕 울렸다.
“흐음. 시로네라…….”
구스타프 4기예는 위저드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들었다.
위저드의 입장에서도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손해 볼 것은 없었다.
‘하비츠를 죽인다.’
집중하고 있을 때의 위저드는 그 어떤 마법사보다 냉정하고 차분했다.
나타샤는 생각했다.
‘아이 같지 않아. 저 아이가 성인이 되면, 이런 느낌을 가진 마법사가 되는 건가?’
딱히 듣지 않아도, 위저드가 이 정신을 만들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 짐작이 갔다.
발칸이 말했다.
“이제 이해가 되는군. 적개심을 갖는 순간 사탄은 율법 밖으로 도망친다. 따라서 하비츠를 죽이기 위해서는 살의 없는 살인이 일어나야 해.”
조차 실패했지만 위저드는 달랐다.
“시로네는 사고할 수 있는 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너. 하지만 사탄에게 패했고, 이제 더 이상 순수한 상태로 하비츠를 대할 수 없어.”
“맞아.”
위저드가 손을 쓸 수 없는 이유였다.
“아주 작은 논리적 사고만으로도 하비츠는 내 인지에서 벗어나 버려. 내 마음의 소리는 여전히 읽을 수 없겠지, 최초의 전략은 수정할 필요가 있어.”
발칸이 턱을 괴었다.
“흐음. 배니싱을 뚫을 수 있는 방법이라. 나에게도 하나 있기는 한데…….”
그 순간 위저드가 무상신을 발동했다.
구스타프 4기예가 반응할 틈도 없이 그녀가 전방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피해!”
발칸이 뒤를 돌아본 순간 주위의 공기가 마치 영하처럼 차갑게 느껴졌다.
무엇인지는 모른다.
‘뭐야?’
다만 초공감각을 가진 위저드는 뼈마디가 얼어버릴 것 같은 시린 기운을 감지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감정이다.’
피처럼 붉은 비명, 썩은 냄새가 나는 분노, 파편처럼 찢어진 마음.
“쿨럭!”
발칸의 입에서 핏물이 한 바가지 쏟아지는 순간 제타로의 얼굴이 하얘졌다.
“발칸!”
스키마로 단련된 거구의 육체가 마치 도끼에 찍힌 나무처럼 쿵 하고 쓰러졌다.
“발칸, 정신 차려!”
나타샤가 위저드에게 물었다.
“뭐야?”
“나도 몰라. 어떤 기운이야. 현실의 것이 아닌, 그렇다고 저승의 것도 아닌…….’
경계에 서린 끔찍한 한이었다.
“컥! 컥!”
제타로의 긴급 소생술을 받은 발칸이 거친 숨을 내쉬며 정신을 차렸다.
“끄으으으!”
하지만 이미 살에 맞은 육체는 빠른 속도로 기능이 떨어져가고 있었다.
“됐어. 이제 괜찮아.”
발칸이 손을 뿌리쳤으나 제타로는 그 손을 다시 붙잡고 맥을 짚었다.
“가만히 있어. 이건…….”
마치 맥을 귀로 듣는 듯 고개를 기울이 제타로의 표정이 점차 구겨졌다.
‘빌어먹을.’
워낙에 강골이라 당장은 버틸 테지만, 보통 인간이라면 당장 사망할 맥이었다.
발칸도 느끼고 있었다.
“뭔가…… 공격이 들어왔군.”
나타샤가 살기를 드러낸 채로 위저드를 노려보자 발칸이 손을 들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야. 저 아이가 나를 죽여서 얻을 수 있는 건 없지.”
스모도가 물었다.
“그럼 누군데?”
“타국의 누군가겠지. 내가 제거되어야 하는 이유는 구스타프의 황제라는 것 외에는 없으니까. 뭔가 내 안에 침투했어. 극한의 분노…….”
발칸이 다시 피를 토해 냈다.
“일종의 기운이야. 길면 한 달, 짧으면 1주나 2주 정도 버틸 수 있겠군.”
슬플 이유는 없었고, 나타샤가 물었다.
“하비츠?”
“뭐, 이런 종류의 공격이라면 모를 리가 없겠지. 어쨌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바닥에 피 가래를 뱉은 발칸이 위저드를 올려다보았다.
“만약 네가 우리와 손을 잡겠다고 한다면, 하비츠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위저드가 담담하게 물었다.
“어떤 방법?”
“게임.”
발칸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살의가 없이 살인을 하는 방법. 그런 시스템을 만들면 되는 거지. 일종의 게임이야. 문제는 하비츠가 관심을 가질 것이냐는 건데, 너라면 문제없을 거야.”
그는 확신했다.
‘하비츠는 위저드를 죽이지 않았다. 혼돈이 아니야. 이건 명백히 감정적이고 논리적이다.’
그렇다면 찌를 수 있다.
“알겠어.”
위저드가 말했다.
“감정이 아닌 시스템으로 접근하는 것. 분명 효과가 있겠지, 게임으로 끝난다면. 하지만 이건 게임이 아니야. 하비츠를 실제로 죽여야 하는 일이야.”
마지막 숨통을 끊는 순간만큼은 게임이 아니기에 감정적이 될 수밖에 없다.
“걱정하지 마.”
발칸이 제타로를 돌아보며 말했다.
“게임의 전문가가 우리 쪽에 있으니까. 확실하게 하비츠의 멱을 따 버릴 수 있어.”
오직 하비츠의 쾌락을 바라는 인간이기에 오히려 죽일 수도 있는 역설.
“하비츠를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는 순간, 우리는 분명 배니싱을 맞이하겠지. 하지만 제타로는 할 수 있어. 그렇지?”
“…….”
제타로는 그저 슬픈 표정이었다.
“그리고 나는…….”
발칸이 입꼬리를 찢으며 말했다.
“게임에서 져 본 적이 없거든.”
***
“제정신이야?”
하비츠의 요구 사항을 들은 우오린이 황당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정말로 그런 짓을 하겠다고?”
“상관없잖아. 이미 살은 쏘아졌어. 그것도 최강의 살이지. 내일이면 성전은 뒤집어질 거야.”
하비츠는 굳어 있는 우오린의 표정을 보았다.
“뭐가 그렇게 심각해? 네가 원하던 거잖아. 통제할 수 없다면 개판을 만들어 버리는 거. 그러면 주도권은 다시 너에게 넘어갈 거라고.”
물론 사실이었다.
또한 사탄이 부탁이라는 말을 꺼냈을 때부터 이미 재앙은 예고된 셈이지만.
‘아니, 각오했던 것보다는 훨씬 논리적이야. 심지어 합리적이기까지 하다. 카샨에게도 득이 되었으면 됐지, 실失은 없는 전략.’
선뜻 승낙할 수 없는 이유는 시로네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하비츠가 말했다.
“걱정 마. 이건 그냥 게임이니까. 아주 재밌는 게임. 내가 하고 싶은 건 따로 있거든.”
시로네를 사랑하는 위저드.
‘또 만나고 싶다.’
우오린과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하비츠는 한순간도 그녀를 잊지 못했다.
‘위저드를 만나서…… 그러니까 일단 만나야 되겠지. 그리고…… 응?’
문득 깨달았다.
‘나는…….’
그녀와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12시, 12국 (3)
***
진천 제국 섹터는 사상 유례없는 경계 등급으로 복도를 틀어막았다.
“황제 폐하!”
문 왕국의 살에 맞은 진강은 침소에 들기 전에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어떻게 된 일이냐!”
수십 명의 의원이 달라붙어 상태를 살핀 결과 똑같은 소견이 나왔다.
“기가 약해진 겁니다. 정상적인 맥이 아닙니다. 적의 술수에 걸려든 것입니다.”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세계 최강의 진천이 고작 기 놀음에 당하다니! 자네들이 그러고도……!”
“됐다.”
진강이 침소에서 일어섰다.
“폐하,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살에 맞은 자는 신진대사가 망가지고 심각하면 악한 기운에 빙의될 수도 있다.
“괜찮다고 하지 않느냐.”
진강 또한 얼굴에 핏기가 없는 건 마찬가지였으나 눈빛만은 강렬했다.
“살법이라…… 더러운 짓을 하는구나.”
진천의 뿌리가 문 왕국인 만큼 주술에 대해서도 같은 맥락인 부분이 많았다.
“살, 살법?”
관리들의 얼굴이 붉어졌다.
“문 왕국이옵니다! 이런 파렴치한 짓을 할 수 있는 자는 문룡뿐입니다!”
진강은 차분하게 걸음을 옮겨 의자에 앉았다.
‘왜 막지 못했는가?’
문 왕국만큼은 아니지만 진천에도 주술의 전문가들은 차고 넘쳤다.
‘주술적인 방어막을 전부 뚫고 나를 명중시켰다. 인간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해.’
이면 세계의 작용일 터였다.
“폐하.”
소식을 들은 진천우주국의 안찰이 진강의 발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죽여 주시옵소서.”
이면 세계를 요격할 준비를 하는 부서의 수장으로서 책임을 회피할 수 없었다.
진강은 그녀를 탓하지 않았다.
“보고하라.”
“지옥의 특정 지역에서 비정상적인 마魔의 작용을 확인했습니다. 대략 1시간 전으로 추정되고, 진천우주국이 확인한 건 불과 7분 전이옵니다.”
“흐음.”
진성음이 광천성과 연결되어 있기에 진천은 이면 세계를 조사할 수 있다.
물론 다른 은하의 행성을 관찰하듯 어디까지나 수학적인 자료들이었다.
‘광천성만으로는 기술적 한계가 있다. 오히려 53분 만에 포착한 것을 대단하다고 봐야겠지.’
어쨌거나 1시간.
‘미리 협의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촉박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군. 또한 이면 세계라면…….’
하비츠를 배재할 수 없다.
‘즉 사탄의 충동적인 성향이 들어간 결과.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격이다.’
진강이 말했다.
“상대가 먼저 칼을 뽑았으니, 우리도 응당 맞서 줘야겠지. 안찰, 네가 해야 한다.”
“……네.”
진천우주국의 국장이지만, 안대를 푼 그녀는 마정안을 가진 최강의 첩보원이었다.
의원이 일렀다.
“폐하, 이제 그만 휴식을 취하시지요. 어떻게든 살을 풀 방법을 찾아내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자리에서 일어난 진강은 황제의 보검을 꺼내 들고 좌중을 둘러보았다.
“푸우우우!”
길게 숨을 내쉬었으나 원통한 감정은 빠져나가지 않고 오히려 속을 뒤틀었다.
“쿨럭!”
또다시 피를 토하며 비틀거리자 의원들이 놀란 표정으로 벌떡 일어났다.
“폐하!”
진강이 보검을 겨누며 접근을 막았다.
“오지 마라.”
귀신?
진강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지고, 악마의 얼굴이 잔상처럼 아른거렸다.
“크크크. 크크크크.”
“폐, 폐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