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27
“너, 어디서 이런 걸 배웠어? 어떻게 한 거야?”
12년 평생을 통틀어 이토록 무서운 표정을 짓는 아빠는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냥…… 재밌어 보여서.”
“말해!”
“시, 시로네 오빠가 가르쳐 줬어!”
말이 끝나는 즉시 세인은 계단을 박차고 올라가 2층 다락방으로 갔다.
“시로네! 너……!”
세인이 문을 연 자세로 굳어 버리고, 뒤늦게 도착한 미로가 천장을 보며 웃었다.
“우와.”
눈을 감은 시로네를 중심으로 방 안의 모든 기물이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어스름 (2)
아리우스가 말했다.
월!
그렇게 세인 가족이 모인 가운데 공중을 떠다니던 물체가 천천히 추락했다.
“죄송해요.”
천천히 눈을 뜬 시로네가 말했다.
“제가 가르쳐 줬어요. 미로에게는 잘못이 없어요. 너무 화내지 마세요.”
“대체 뭘 어떻게 한 거야? 물체가 허공을 날아다니다니. 초능력 같은 거냐?”
사실 알고 있었다.
‘꿈에서 봤던 능력.’
아니, 이제는 깨어 있는 상태로도 강제로 뇌리에 박히는 사건들이었다.
미로가 세인의 앞을 가로막았다.
“오빠는 아무 잘못도 없어요. 그냥 오빠가 하는 걸 보고 내가 흉내 낸 거라고요.”
‘보기만 했다고?’
세인은 정신이 멍해졌다.
‘그런 건가.’
루버는 그들의 상태를, 어떤 게 원본인지 알 수 없는 틀린 그림 찾기라고 했다.
‘두 가지 다른 세계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 것도 진짜라고 믿을 수 없어.’
다만 꿈속에서 미로는, 인류에서 가장 깊은 사고를 가진 구도자였다.
‘시로네도, 미로도, 이대로는 안 돼. 무언가가 이들을 각성시키고 있다.’
세인이 말했다.
“가올드에게 가자.”
“갔다 왔어.”
문을 열고 들어온 가올드는 테이블에 집 키와 현찰을 던지고 상의를 벗었다.
“왔어?”
강난이 옷을 받으며 말했다.
“오늘은 좀 어때?”
“똑같지 뭐. 상납일이라 얼마 못 벌었어. 그 녀석들 은근히 협박하던데.”
강난은 가올드의 장사 수완이 좋지 않은 것을 한 번도 힐난하지 않았다.
“괜찮아질 거야. 상인 연합이 움직일 거거든. 조만간 타모 조직과 붙게 되겠지.”
강난은 상인 연합 소속이었다.
“무기 창고를 털어서 아지트를 치는 거야. 숫자는 우리가 훨씬 많으니까.”
“흥! 그까짓 놈들이 무슨…….”
“너무 그러지 마. 다들 생존권을 걸고 싸우고 있어. 우리도 처지가 다르지 않고.”
“그놈들은 이 세계가 전부니까. 우리처럼 틀린 그림 찾기가 아니라고.”
“그래.”
강난이 씁쓸하게 웃었다.
“꿈속에서 우리는 정말 멋졌지. 하지만 언제까지 꿈속에서 살 수는 없어.”
“…….”
강난은 가올드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왜 그러는데? 살아가기로 한 거 아니었어? 적어도 미로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그만.”
가올드는 미안했다.
“그런 거 아니야. 미안해. 나도 좀 혼란스러워서 그래. 요즘 들어 더더욱.”
강난도 마찬가지였다.
“알아, 당신이 어떤 생각 하는지. 가끔…… 불안해. 내가 짐이 되는 것은 아닌가.”
“짐이라니.”
어떤 것이 진짜 그림이든, 강난은 가올드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다.
가올드와 강난의 눈빛이 마주치고, 서로의 입술이 가까워지는 그때.
“아저씨!”
열린 문을 박차고 미로가 들어왔다.
“엇!”
가올드와 강난이 화들짝 멀어지는 것을 발견한 그녀가 눈을 깜박거렸다.
무언가 복잡한 심정이었으나, 소녀는 이내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뭐야? 아저씨랑 강난 이모랑…… 윽!”
세인이 머리를 쥐어박았다.
“남의 집에 들어갈 때는 노크하라고 했지? 천둥벌거숭이 같으니라고. 빨리 사과해.”
“여기가 무슨 남의 집이야? 이모~ 나 왔어.”
미로가 두 팔을 벌리고 달려오자 강난이 웃으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래.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현실에서는 견원지간이지만, 미로는 그 사실을 모르고 강난은 가올드와 살고 있다.
완벽한 타협인 것이다.
“루버 씨는?”
근래 들어 루버와 몽아가 보이지 않았으나 그들 또한 찾을 일이 별로 없었다.
“여기에 없어요. 무슨 일이에요?”
세인이 시로네를 돌아보자 가올드가 맥주 뚜껑을 따고 건배하듯 말했다.
“왔냐, 샌님?”
강난이 그의 옆구리를 쳤으나 시로네는 늘 그렇듯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안녕하세요.”
세인이 말했다.
“사고가 생겨서 왔어. 시로네와 미로에게 뭔가 일이 생긴 모양인데…… 루버 씨가 필요해.”
“무슨 일인데요?”
“시로네, 여기서 할 수 있겠니?”
시로네가 내키지 않는 듯 우물쭈물하자 세인이 다가와 어깨를 다독였다.
“괜찮아. 화를 내려는 게 아니야. 너를 도우려는 거지. 여기서 한번 해 봐.”
“네, 그럼.”
시로네가 양손을 앞으로 내미는 자세를 취하자 가올드가 껄껄 웃었다.
“뭔데? 마술이냐?”
말이 끝나는 동시에 손에 들고 있던 맥주병이 떠오르더니 시로네에게 날아갔다.
“…….”
가올드와 강난이 황당한 표정으로 입을 벌린 가운데 미로가 소리쳤다.
“이모, 이모! 나도 저거 할 수 있어요!”
시로네가 다시 보낸 맥주병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가올드가 고개를 들었다.
“뭐야? 젠장.”
“두 사람 모두 각성했어요.”
몽아가 말했다.
어스름이 지는 해안가에 있는 그들은 가올드의 집을 향해 돌아서 있었다.
“이모탈 펑션으로 숨겨진 코드를 찾은 게지. 타모 조직이 들어온 후폭풍이야.”
“하긴, 오대성님은 1.5층을 부정하니까요. 현실의 느낌을 이 세계에 구현한 거겠죠? 미로 씨는 그걸 보고 똑같이 깨달은 것이고요.”
몽아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이렇게 타협이 깨지기 시작하면 1.5층도 결국 파괴되고 말 거예요. 두 사람의 변화를 주시해야…….”
“가올드를 지켜봐라. 그가 1.5층의 존재 여부를 결정짓게 될 테니까.”
“네?”
몽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가장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사람인데요? 이쪽저쪽, 전부 다 흔들리는 것 같아요.”
“그게 인간이니까. 끝없이 흔들리지만, 결정을 내리면 그것이 전부가 되는 거야.”
그렇기에 관철인 것이다.
“현실에서 오대성님, 미로, 가올드가 충돌한다면 누가 관철시킬지 알 수 없어. 박빙이기 때문이 아니다. 상상할 수 없는 결과라는 것이지.”
몽아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만약 가올드 씨가 각성하면 어떻게 되죠?”
“아마도…….”
엉망진창이 되지 않을까?
소파에 앉은 가올드가 맥주를 들이켰다.
“크으, 시원하다.”
양탄자에 아리우스가 누워 있고, 시로네와 미로가 장난감을 허공에 띄우며 돌고 있었다.
“흐음.”
식탁에 있는 세인이 강난에게 말했다.
“3일 뒤면 수량은 맞출 수 있을 거야. 문제는 인원이지. 상인 연합 쪽은 어때?”
강난은 폭탄의 설계도를 살폈다.
“300명까지는 맞췄어. 하지만 창고를 지키는 자들은 화기로 무장하고 있잖아. 정말 괜찮을까?”
“처음이 중요하지. 무기 창고만 탈취하면 우리도 화기가 생겨. 타모 조직은 와해될 거야.”
미로가 끼어들었다.
“아빠, 나에게 좋은 생각이 있는데.”
여태까지 미로에게 비밀로 해 왔으나, 그녀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시로네와 마찬가지로 집중하면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느껴진다고 했다.
“넌 끼어들지 마.”
그렇다고 해도 세인은 딸을 끌어들일 생각이 없었다.
“그러지 말고 들어 봐. 일단 폭탄을 던지는 게 문제잖아? 적들은 총을 쏘고. 그러니까…….”
시로네가 허공으로 토스한 장난감을 받은 미로가 식탁으로 옮겼다.
“이게 폭탄이에요.”
허공을 천천히 날아가던 장난감이 세인과 강난 사이의 식탁에 톡 떨어졌다.
“펑.”
세인의 동공이 흔들렸다.
“어때요? 이런 식으로 하면 총에 당하지 않고 창고를 폭파시킬 수 있잖아요?”
정적이 찾아왔다.
“아서.”
가올드가 말했다.
“이건 애들 장난이 아니야. 고작 물건이나 옮기는 정도로 싸울 수는 없다고.”
미로가 발끈했다.
“아저씨가 뭘 안다고 그래요? 타모 조직에 당하기나 하면서. 솔직히 싸울 용기도 없죠?”
대답을 회피하듯 맥주를 들이켜는 가올드를 보며 세인이 물었다.
“정말로 안 할 거냐?”
“안 해.”
“왜?”
가올드의 손이 시로네를 가리켰다.
“너희들 바보냐? 이거 안 보여? 이상한 능력을 쓰잖아. 그런데 고작 폭탄이나 던지겠다고?”
“……하고 싶은 말이 뭐야?”
“틀린 그림 찾기. 이 정도면 어느 쪽이 진짜인지는 명확해진 거 아니야?”
이 세계가 거짓인 것이다.
“타모 조직을 내버려 두면 놈들은 이 세계를 끝낼 거야. 그럼 우리도 깨어날 테고.”
“그럴 수도. 하지만 네 말대로 그곳이 진짜라면 우리는 죽어. 게다가 너에게 있어 현실이란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악몽일 텐데?”
통각의 극한에서 몸부림치는 삶.
“1분도 못 살 거다. 끔찍한 고통일 거야. 그 짧은 순간 미로를 만나기 위해, 모든 걸 감수하겠다고?”
“그래.”
미로의 고개가 가올드에게 돌아갔다.
“죽기 전에 한 번만…… 이런 뜻은 아니야. 정확히는 미로가 포함된 모든 것이지. 너도, 강난도, 시로네도. 어쨌거나 여긴 내 세계가 아니라는 거야.”
“가올드는 할 수 없어.”
루버가 말했다.
“고통이란 이 순간을 얼마나 명확히 느끼는가의 척도지. 이미 지나간 고통 따위, 안중에도 없는 거야.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 같은 건, 막상 그 현실을 마주한 순간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것이지.”
“그렇군요.”
“현실의 고통이란, 이미 그렇게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선택권이 있을 때, 인간은 절대로 고통을 택하지 않아. 물론 자신의 발전을 위해 스스로 고통 속으로 밀어 넣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가올드는 그럴 수 없지. 그가 감당해야 하는 고통은 생물의 범주를 초월한다.”
가올드가 말했다.
“그래서…… 딱히 신경 쓰고 싶지 않아. 상인 연합이니 뭐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내버려 두면 그만이야.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테니까.”
미로가 소리쳤다
“실망이에요! 아저씨, 나 좋아한다고 그랬죠? 하지만 나는 겁쟁이는 질색이라고요!”
가올드는 맥주를 들이켰다.
“글쎄. 네가 나이를 먹어서 성인이 된다면 모를까, 꼬맹이한테는 관심이 없는걸.”
“아저씨는 바보야! 멍청이! 말미잘!”
그날 밤.
시간이 늦어 가올드의 집에서 잠을 청하던 세인은 불길한 기분에 눈을 떴다.
‘재수 없는 악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