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34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었지만 실상은 흥미진진한 눈빛이었다.
반면 세리엘은 가슴이 철렁했다.
‘저 녀석이 어떤 놈인데…….’
알페아스 마법학교에서 페르미를 아는 사람이라면 똑같이 생각할 터였다.
“알겠습니다.”
그녀의 예상을 깨고 페르미는 순순히 뒤로 물러나더니 가게를 나왔다.
세리엘에게 다시 책을 건네던 그가 책에 묻은 커피를 보고 당황했다.
“아…….”
페르미도 당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미안. 어, 그게 있잖아.”
페르미가 어색하게 책을 들었다.
“지금 가서 새 걸로 사 올까? 나 혼자 갔다 와도 되는데.”
정적이 이어지고.
“푸우.”
세리엘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푸하하하! 야, 너 정말 웃긴다! 푸하하하!”
“……뭐가?”
페르미는 모를 것이다.
그녀가 소중히 아끼는 책이었지만, 결국 한 권의 책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구나.’
마법학교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페르미의 속마음을 읽은 기분이었다.
‘그때 그 녀석은…….’
솔직히 좀 멋있었던 것 같다.
사탄의 제안 (4)
***
광장을 빠져나온 페르미와 세리엘은 시장 쪽에 있는 술집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며 페르미가 물었다.
“괜찮겠어?”
“술도 못 마실까 봐? 빨리 들어가. 나 배고파.”
저녁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으나 점심을 굶는 바람에 허기가 심했다.
“대충 때우자고.”
자리에 앉은 세리엘이 주문을 했다.
1시간 정도 지나자 빈속에 술이 들어간 두 사람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서로 친한 사이는 아니라도 같은 졸업반이기에 대화는 끊기지 않았다.
“항상 힘들지.”
창문을 통해 저녁 밤거리를 살피던 세리엘이 테이블에 턱을 괴고 말했다.
“정말로 힘든 건, 졸업반 과정의 루틴에 적응하면 무엇이 힘든지도 모른다는 거야. 단점을 찾아야 성장을 하는데 성과가 잘 나오지 않아.”
“꾸준히 올라가고 있는 거야. 어느 날 뒤를 돌아보면 성장해 있는 거지. 졸업반 최장수생인 내 말을 믿으라고.”
베테랑의 말에 힘을 얻은 세리엘은 미소를 지었으나 이내 마음이 식었다.
‘졸업 시험 브로커.’
언제든지 졸업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지고서도 여태까지 학교에 있는 이유가 뭘까?
‘물어볼까?’
페르미가 눈웃음을 지었다.
“할 말이 있는 것 같은 표정이군. 뭐든 해 봐.”
솔직히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고, 졸업반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도 즐거웠다.
“에이!”
분위기를 깨는 것에 갈등하던 세리엘은 앞에 놓인 술을 한번에 마셨다.
그렇게 3시간 정도가 지나자 세리엘의 눈동자가 풀리기 시작했다.
“야, 페르미. 너 그러면 안 돼. 그딴 식으로 살지 말라고, 이 자식아.”
벌써 네 번째 듣는 소리지만 페르미는 잔잔한 미소를 지은 채 듣고 있었다.
“너, 솔직히 대단한 놈인 거 알아. 근데…… 아는데! 그렇게 살면 안 돼. 다른 친구들이 마법사가 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
“어떻게 돈을 받고 졸업장을 팔 수 있냐고?”
“그래, 이 자식아. 돈을…… 응?”
술이 절반은 깬 세리엘이 눈을 크게 뜨자 페르미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여러 해 졸업 시험을 치렀지. 많은 사람을 합격시켰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을 탈락시켰어.”
긴 연기가 뿜어졌다.
“누구한테 돈을 받았냐고? 아니. 청탁을 받은 적도, 돈을 받은 적도 없어.”
“그렇다면 왜……?”
“그게 내 신념이니까. 시스템을 컨트롤하는 것. 누군가는 싸워서 이기는 게 전부겠지만, 나는 그래서는 안 돼. 너희들이 자신의 실력을 확인하기 위해 경쟁하듯, 나도 내 방식대로 싸우는 것뿐이야.”
거짓말일까?
‘브로커가 아니라고? 혹시 내가 학교에서 페르미를 편들어 주기를 바라는 것일까? 아니…….’
페르미는 분명 믿을 수 없는 사람이지만 반나절 동안 그녀가 느낀 것은.
‘이 녀석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
차라리 침묵할지언정.
“담배. 학교에서는 못 봤는데.”
“딱히 좋아하는 건 아니야. 금기라는 개념을 삶에 적용시키고 싶지 않을 뿐.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필요 없다면 무엇도 하지 않을 거야.”
그가 시스템을 컨트롤하는 방식이었다.
‘어떤 삶을 살았을까?’
페르미에 대해 알아 갈수록 혼란스럽다는 사실이 더욱 궁금증을 부추겼다.
“좋아, 믿어 줄게. 하지만 이 정도 했으면 네 능력은 증명한 셈이잖아. 왜 학교에 남아 있는 거야?”
페르미는 떠올렸다.
‘어머니.’
이스타스 상층부에서 지금도 특정 사건의 망령으로 떠돌고 있을 욜가의 모습.
“글쎄. 왜일까?”
세리엘은 덜컥 두려웠다.
페르미의 표정은 한없이 투명했지만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아서.
“너…….”
그저 안아 주고 싶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가자. 늦었어.”
계산을 마친 두 사람은 어느덧 어둠이 짙게 깔려 있는 거리로 내몰렸다.
이대로 헤어져야 할까?
시간도, 분위기도, 이러기도 저러기도 애매한 상황에서 페르미가 물었다.
“혹시…….”
세리엘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세리엘이 이름 모를 여관방에서 눈을 뜬 것은 새벽 4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바깥은 고요했고, 옆에는 잠에 빠진 페르미의 숨소리가 새근새근 들렸다.
‘아…….’
불과 몇 시간 전, 어제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미친 거 아니야, 진짜?’
예상보다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상당히 좋았지만, 술이 깬 세상은 감정이 전부가 아니었다.
졸업반의 경쟁자, 파벌로 따지자면 적군의 수장과 하루를 보낸 것이다.
슬그머니 몸을 돌린 세리엘은 뱀처럼 침대에서 내려와 옷가지를 챙겼다.
‘조심, 조심.’
무릎을 꿇은 채로 옷을 입고, 가방의 소지품까지 확인하는 동안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천천히 문을 열고 나간 그녀는 1데시벨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살며시 문을 닫았다.
그런 다음 안의 동태를 살피고, 도망치듯이 복도를 달려 여관을 나섰다.
‘이건 평생 비밀이야. 에이미한테도 말 못 해.’
세리엘이 방을 나서고, 불과 1분 만에 페르미는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이미 잠에서 깨어 있었던 듯 어둠을 응시하던 그가 팔로 눈을 가렸다.
“후우.”
델타의 복도에서 세리엘은 생각했다.
그해 졸업 시험에서, 에이미는 금화륜의 린치에 당해 초반에 탈락했다.
‘나는 합격했지.’
물론 졸업 1순위인 에이미와 달리 세리엘은 금화륜의 견제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의 일과 맞물려 세리엘에게는 해결할 수 없는 숙제로 남아 있었다.
‘페르미는 왜 에이미를 탈락시켰을까? 단순히 전술적인 이유? 아니면 나를…….’
그녀에게 약점 같은 얼굴을 앞에 두고도 선뜻 말을 꺼낼 수 없는 이유였다.
“페르미, 혹시 무슨 일…….”
“미안.”
페르미가 말을 끊고 돌아섰다.
“급한 일이 있어서. 엔젤 제조법은 조만간 전해 줄게.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세리엘은 안도했지만,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렸다.
‘뭐야?’
조금 전의 그 표정, 시로네에게 들은 지금은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기에.
‘또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린 거야?’
오전 8시, 성전이 열렸다.
각국의 정상들과 관리들이 참석했지만 어제하고는 공기의 기질이 달랐다.
살을 맞은 국가는 분노를, 살을 피한 국가는 경계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알비노가 수염을 만졌다.
‘분위기 살벌하구먼. 이미 알고 있다고 봐야겠지. 오늘 성전은 힘들겠어.’
문 왕국, 토르미아, 진천, 코로나, 파라스, 구스타프의 정상들이 참석하지 못했다.
시로네는 생각했다.
‘문 왕국의 문룡까지 당했다. 결국 살을 맞은 국가 중에 피해가 없는 건 부족 연합뿐인가.’
한 가지가 거슬렸다.
‘키트라가 당했다는 건 말이 안 돼. 그는 오파츠다. 살을 맞는다고 해도 충격이 없을 텐데.’
전략적으로 정보를 감추는 것인가?
우오린이 같은 생각을 하는 가운데, 코로나의 싱크탱크 상아탑이 발언했다.
“상아탑 2성급 주민, 별야 쯔오이입니다.”
검은 화성이라는 별칭답게 그녀의 목소리가 장내에 쩌렁쩌렁 울렸다.
“간밤에 코로나 왕국에 암살 시도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최소 4개국 이상이 같은 공격을 당했으며, 유력한 용의자는…….”
쯔오이의 시선이 옆으로 흘렀다.
“문 왕국입니다.”
문 왕국의 승상이 벌떡 일어섰다.
“이건 모함이오! 솔직히 말씀드리지! 이번 사건으로 우리 또한 피해를…….”
“그건 됐습니다.”
쯔오이가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누가 범인이든 투표권을 가진 문룡이 이탈했다면 관심을 둘 필요가 없었다.
“전말이야 차차 밝혀 나가면 될 터. 코로나가 묻고자 하는 것은 타국을 공격한 방법입니다. 조사에 의하면 살이라는 것으로, 이면 세계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문 왕국의 승상이 슬그머니 앉았다.
“단순히 귀신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 귀신의 감정을 증폭시킨 장본인. 즉 사탄이 연루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기로 사탄은…….”
쯔오이의 시선이 반대로 돌아갔다.
“카샨 제국에 있지 않나요?”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자, 우오린이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다.
“우선 큰일을 겪은 국가에 조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카샨 제국은 이번 사태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여전히 어떤 평화조약도 깰 의도가 없음을 명확히 밝힙니다.”
거짓말도 당당하게 하니 그럴듯했다.
“그렇다면 사탄은?”
“카샨과 문이 코드 원을 한 것은 사실이나, 문이 원한 것은 제가 아닌 사탄이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카샨은 이번 일과 전혀 무관합니다.”
알비노가 비소를 지었다.
‘꼬리 자르기라.’
그때 성전의 문이 열리더니 하비츠가 들어왔다.
“내가 말해 주지.”
관리들의 절반이 벌떡 일어설 만큼, 족쇄가 풀린 사탄의 존재감은 엄청났다.
“뭐 하는 건가! 어서 근위대를 불러라!”
하비츠가 손을 들었다.
“자, 자.”
배니싱이 발동되고, 30초가 지나서야 관리들은 단상에 오른 그를 인지했다.
‘빌어먹을!’
자신의 목이 떨어질 수도 있었다는 공포감에 관리들이 우오린에게 쏘아붙였다.
“카샨! 약속하지 않았소! 하비츠를 통제하지 못하면…… 그러니까…… 하비츠! 어? 그게…….”
배니싱을 껐다 켰다를 반복하자 관리들은 생각에 뻥뻥 구멍이 뚫린 듯했다.
“들어 봐.”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규칙을 어긴 건 문 왕국이 먼저지. 그 전까지 나는 성전에 참가한 누구도 해친 적이 없어.”
“…….”
확인된 바에 의하면 사실이었다.
“문 왕국은 11개국 전체에 살을 날리려고 했다. 코드 원에서 우오린이 선택한 것은 나를 넘겨주는 대가로 대상 국가를 절반으로 줄인 일뿐이야. 타국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무엇보다 카샨을 지키기 위해서지.”
국제법은 자국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서의 방어적 공격 태세를 인정한다.
“따라서 카샨도 피해국이다. 나 또한 성전의 규칙에 적극적으로 따르고 싶었지. 하지만 문 왕국이 협박했고, 그들이 내 통제권을 박탈시킨 거야.”
라고…….
‘우오린이 전해 달라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