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36
“하-비-츠!”
복도가 쩌렁쩌렁 울리는 가운데, 모퉁이를 도는 하비츠의 털이 곤두섰다.
‘아슬아슬했군.’
율법이 허용하는 접근 한계치를 넘은 순간 마치 벼락에 맞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웨나 위저드.
‘이제부터 시작이다. 모든 인간이 너를 죽이려고 달려들 테지. 기대해도 좋아.’
살인전의 서막이 올랐다.
살인전 (2)
***
오전 11시.
델타 본청에서 레베카의 사망을 아는 사람은 여전히 시로네 1명뿐이었다.
시로네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
‘하비츠.’
그녀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은 여전히 배니싱이 풀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말해 줘야 할까?’
아마도 그럴 테지만, 시로네가 말한다고 해서 누가 믿어 줄 것인가?
‘나조차도 애매하다. 하비츠가 누군지도 정확히 모르겠어. 감각의 대응이 뒤틀린 느낌.’
손의 감촉만으로 사물을 맞힌달지, 귀를 막고 상대의 말을 듣는 기분이었다.
어쨌거나 실재하는 것은 분명했다.
‘추적해야 할까?’
시로네는 하비츠에 대한 정보를 추출하기 위해 11감을 곤두세웠다.
‘불가능하다.’
울티마에서 선악공애가 분리되었을 때부터 발생한 율법의 작용이었다.
‘내가 하비츠를 만나는 사건은 벌어지지 않아. 따라서 조금 전의 상황은…….’
하비츠가 의도한 것.
‘어째서? 나에게 접근해서 좋을 일이 없을 텐데? 갑자기 변한 이유가 뭐야?’
위저드.
하비츠에게 무언가 큰 사건이 벌어졌다면 그녀와 접촉한 일뿐일 터였다.
‘하비츠가 살아 있다면…….’
위저드는 살아 있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생각하지 말자.’
한 가지 조건으로 단정 짓기에는 발생할 수 있는 변수가 너무 많았다.
‘위저드를 믿는 거야.’
토르미아 섹터로 들어가자 대기하고 있던 근위대가 시로네에게 일렀다.
“모두 기다리고 계십니다.”
토르미아 근위대의 간부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단테가 브리핑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로네.”
루피스트가 물었다.
“뭔가 알고 있는 게 있나? 우리가 왜 여기 모여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군.”
“하비츠…….”
그 순간 배니싱이 풀렸다.
“어?”
단테가 정신을 차렸고,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알비노가 찝찝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벌써 터진 건가?”
“네. 레베카가 사망했어요. 제가 보는 앞에서 가차 없이 생명을 끊었죠.”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언제쯤?”
“대략 30분 전이에요. 왜 바로 배니싱을 풀지 않았는지는 모르지만…….”
“사망 시간을 조절하는 거야.”
단테가 말했다.
“1시간에 1명씩 죽인다. 레베카의 사망 시간을 알면 또 다른 희생자가 발생하는 시간이 특정되니까. 그건 하비츠가 원하는 게 아니지.”
리리아가 물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전부를 속일 수 있을까? 배니싱을 풀어야 하는 정확한 타이밍 말이야.”
“가능해. 시로네가 들어온 순간 우리가 깨달은 것은 우연이 아니야. 의도적이라고.”
“아…….”
신의 주파수.
알비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배니싱으로 누군가를 죽이고, 우리들의 마음을 읽어 원하는 시간에 푼다. 그가 원하는 건 게임이야. 어떻게 판이 돌아가는지 즐기려는 거지.”
루피스트가 말했다.
“우선 상황 파악부터 하죠.”
단테가 차트로 향하고, 시로네는 근위대의 간부들이 있는 자리에 앉았다.
근위대장 라이, 기동대장 테스, 경비대장은 에이미의 큰오빠 다이안이었다.
“시로네.”
테스가 내민 손을 잡은 시로네는 라이와 다이안에게도 꾸벅 고개를 숙였다.
단테가 말했다.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하비츠가 살인 게임을 선언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피아 식별입니다.”
단테가 카샨의 국기를 짚었다.
“강력한 지도국 후보인 만큼 동맹 구도는 복잡하지 않아요. 현재 문 왕국과 강한 동맹으로 맺어져 있습니다.”
테스가 손을 들었다.
“카샨이 문 왕국에 물을 먹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래도 강한 동맹인가요?”
“정치란 감정만으로 하는 게 아니니까요. 이제 문이 가진 카드는 카샨과 함께하는 자폭밖에 없습니다. 카샨도 알고 있을 테니, 당분간 동맹 체제는 유지될 겁니다.”
단테가 설명을 이었다.
“그다음 토르미아, 진천, 코로나, 부족 연합은 약한 동맹을 맺고 있습니다.”
라이가 물었다.
“강한 동맹과 약한 동맹의 기준이 뭡니까?”
“한쪽이 무너졌을 때 다른 동맹국도 피해를 입는다면 강한 동맹입니다. 반대로 약한 동맹은 결속력은 약하지만, 동맹국이 피해를 입는다고 해서 자국에 당장 피해가 오는 것은 아니죠.”
단테가 자이브를 짚었다.
“자이브, 아이론, 아라크네는 강한 동맹입니다. 이유는 설명하지 않아도 아시겠지요. 현재 자이브의 국왕 기스가 성 추문에 연루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결과에 따라 아이론과 아라크네에도 피해가 갈 겁니다.”
알비노가 물었다.
“이번 성 추문, 아라크네의 작품이 아닌가? 이건 카샨, 문과 성질이 다르잖아?”
“물론 그렇습니다만 첩보에 의하면 아라크네와 결탁한 쪽은 자이브 내부 파벌, 즉 기스의 정치적 라이벌인 레이몬드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자이브였다.
‘내부 파벌이었구나.’
시로네는 란기와 면담을 했을 때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래서 밝힐 수 없었군. 하긴, 거짓말은 아니지. 그래서 미카도 잡아내지 못한 거야.’
단테가 말했다.
“파라스, 케시아, 구스타프는 동맹 전략을 따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는 그들의 목적이 지도국이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뜻하죠. 그들의 표를 얻기 위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루피스트가 물었다.
“파라스는 어떻게 됐지? 살에 맞았잖아?”
“정보를 수집하기 어렵습니다. 아예 타국과 교류 자체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죠. 조만간 국왕의 공식 서거를 발표하겠다는 서문만 받았습니다.”
알비노가 피식 웃었다.
“볼만한 쇼가 되겠군.”
“저도 그렇게 가닥을 잡고 있습니다만, 실제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판단할 수 없을 겁니다.”
단테는 차트에서 돌아섰다.
“동맹 구도가 중요한 이유는 결국 투표입니다. 롬, 가르토, 테미카. 이 표가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전세가 뒤바뀌고, 이 권한은 오직 각국의 대표만이 가지고 있습니다.”
리리아가 말했다.
“살에 맞아 의식불명이라고 해도, 투표의 권한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거네.”
단테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비츠의 선언이 중요한 이유야. 현재 포니 전하는 위독한 상태지만, 그 사실이 암살의 위험도를 떨어뜨리지는 않아. 누군가가 칼을 겨눈다면, 지금 브리핑한 각국의 이해관계 안에서 벌어질 확률이 높아.”
알비노가 말했다.
“오히려 괜찮은 상황이 아닌가? 암살이라면 토르미아에도 괜찮은 히트맨이 있으니까.”
파르카 쿠안이었다.
“네. 저는 암살이라는 범주에서 12개국의 수행 능력을 공수로 분류해 시뮬레이션을 했습니다. 확실히 토르미아의 공격력은 94점으로 톱급에 속합니다.”
나름 호재였으나 루피스트는 단테가 말하고 싶은 진짜 의도를 간파했다.
‘공격력은 어디에도 뒤처지지 않아. 반대로 수비력은 약점이 될 수도 있다는 건가.’
물론 근위대장 라이는 뛰어난 검사지만, 전쟁이란 결국 상대성의 작용이었다.
‘리안이 있었다면…….’
달콤한 상상을 잠시 해 보았으나, 비현실적인 가정은 언제나 독이었다.
“알고 있습니다.”
분위기를 느낀 라이가 자백했다.
“타국에 비해 수비력은 떨어집니다. 우리들의 약점을 뼈에 새겨 두고, 최대한 보강하겠습니다.”
담담한 말투였지만 그가 느낀 수치심이 어떨지는 모두 짐작할 수 있었다.
‘빌어먹을.’
라이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나는 왜…….’
리안만큼 강하지 못한 것일까?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다고 해서 방심을 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어째서 도달하지 못한 거지? 리안이 나보다 무엇을 더 했다는 거야? 오히려 그 녀석은 천하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재능이 없었기 때문인가?
자신이 얼마나 많은 거리를 뛰었든, 리안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이 뛰었어야 했을까?
‘내가 얼마나 많이 검을 휘두르든…….’
리안, 그 녀석은.
‘생각하지 말자.’
라이는 고개를 저었다.
‘남에게서 찾으려고 하지 마. 내가 도달하는 거다. 나에게 있는 것으로 강해지는 거야.’
분위기가 정리되자 알비노가 물었다.
“최강은 어디지?”
“암살 수행 능력의 총합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국가는 카샨입니다. 공격은 풍장이 맡을 것이고, 수비는 카샨 근위대인 근, 중, 원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난관은 근위대장 키도라고 사료됩니다.”
‘키도.’
비록 대치하는 상황이지만 단테의 말을 듣는 시로네의 감정은 미묘했다.
‘맞아. 키도 강하지.’
칼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안드레의 세계를 탐험할 때 목숨을 바쳤던 친구였다.
‘그 녀석의 신념도 엄청나니까.’
알비노가 물었다.
“평가는 됐고, 수치상으로 토르미아의 공격이 카샨의 수비를 깰 수 있나? 그러니까, 쿠안이 키도를 베고 우오린의 목을 딸 수 있냐는 말일세.”
단테가 말했다.
“키도의 프로필은 라둠에서 카샨으로 넘어간 이후 갱신이 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섭식의 능력 ‘기억의 맛’을 통해 상당한 깨달음을 축적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쿠안과의 정면 대결 시뮬레이션에서도 결과를 도출할 수 없었습니다.”
루피스트가 동의했다.
“하비츠에게도 어느 정도 대응이 가능한 것 같더군. 우오린이 곁에 두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
단테의 표정이 결연해졌다.
“키도는 강력한 벽입니다. 다만 정보 마법사로서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어떤 벽도 쿠안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의 경지는 검에 있어 대응 불가능한 수준이니까요.”
단테의 진정한 재능은 자신의 능력보다 타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데 있었다.
알비노가 차를 홀짝였다.
“호오, 카샨도 찌를 수 있다?”
“공수의 조화가 상식적이라면 가능합니다. 타국이 어떤 식으로 공수의 비율을 맞출지는 정확히 알 수 없어요. 예를 들어 카샨이 풍장을 수비로 두고 키도를 공격으로 삼는다면 수행력의 총합은 오히려 떨어집니다. 비효율적이죠. 다만 전쟁에서는 비효율적인 도박도 늘 일어난다고 말씀드리는 것으로 총평하고 싶습니다.”
루피스트는 이해했다.
“그렇군. 토르미아의 입장에서 쿠안을 수비로 두고 라이를 공격으로 돌리는 것만큼 비효율적인 건 없지. 아, 근위대장은 불쾌해하지 말게.”
“괜찮습니다. 납득했으니까요.”
이번에는 라이도 감정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상대의 포석을 예측할 수는 있다, 다만 변칙적인 전략에도 대응 가능해야 하는 수준이라는 거군. 그 정도면 충분해. 기존의 전략대로 밀고 나가지.”
알비노가 되물었다.
“말인즉슨, 흰머리를 치자는?”
우오린이었다.
“동맹 구도를 봤을 때, 토르미아가 통제할 수 없는 유일한 세력이니까요. 손해를 보는 감이 있지만,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파야 되는 거겠죠.”
“동감일세. 남이 뭔가를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날로 먹으려는 수작이지. 문제는, 이 세상에 실제로 날로 먹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거야.”
단테가 말했다.
“전략적으로 봤을 때, 쿠안의 공격력은 어떤 국가를 상대로도 뚫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합니다. 다만 내부 리허설에서 나온 변수는, 그 전에 확인해야 할 것이…….”
“올리페르 시이나.”
알비노가 턱수염을 배배 꼬았다.
“그 검귀가 목숨까지 바칠 정도로 좋아하는 여자라지. 외팔이가 된 이유이기도 하고.”
“네. 첩보 전략에서 중요한 것은 수행력보다 리스크를 줄이는 것입니다. 올리페르 시이나는 유능한 교사지만, 쿠안의 족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건 정보와 별개로 용뢰의 판단에 근거해야 할 것 같은데요.”
알비노는 시로네를 살피며 물었다.
“올리페르 시이나를 지키는 것과, 그냥 죽이는 것의 효율을 따져 달라는 말인가?”
단테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살인전 (3)
알비노는 수염을 만졌다.
“흠. 쿠안은 다루기 어려운 칼이야. 그런 의미에서 시이나의 존재감은 크다. 전투력 유지를 위해서라도 가급적 지키는 게 좋겠지만…….”
루피스트가 말했다.
“타국도 우리의 생각을 읽고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