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37
“그렇지. 시이나를 잡은 국가는 쿠안의 칼을 피할 수 있다. 특히 우오린. 목덜미가 서늘한 만큼 필사적으로 달려들 거야. 말려들면 죽도 밥도 안 되는 수가 있어.”
공수 배치의 문제였다.
“버리는 게 가장 쉬운 패겠지. 다만 눈치가 보이는군. 이쯤에서 야훼의 의견을 들어 볼까?”
시로네가 말했다.
“저는 선생님을 지킬 겁니다.”
정론이지만, 루피스트는 고개를 갸웃했다.
“가능한 일인가? 시이나를 지키면 다른 누군가가 죽게 된다. 전부를 지키려다 사망자가 나오는 건 어쩔 수 없겠지. 율법 판정이니까. 하지만 네가 누군가를 편애하면 야훼가 아니게 되는 거잖아?”
마음에 차별을 둘 수는 없다.
“오해하지 마세요. 선생님을 지킨다는 말은 모두를 지킨다는 뜻이에요. 하비츠가 벌인 판에 놀아날 생각 없어요. 저는 판을 깨 버릴 겁니다.”
“시스템을 공격한다는 것이군. 그렇다면 마음의 모순은 없을 테지만…….”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방법이 있는 거야? 전에도 이걸로 다퉜지만, 이룰 수 없는 이상은 도움이 되지 않아.”
“…….”
거핀은 말했다.
세상 전부를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해졌다면 모두의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하지 못했지.’
분한 마음에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
물론 여전히 울티마는 요원하지만, 이제는 그에게도 한 장의 카드가 있었다.
“할 수 있을 겁니다.”
적어도 700만 명은 그를 지지할 테니까.
***
소회의실.
“잠시 휴정하겠습니다. 모두 맛있는 점심 드시고 오후에 다시 뵙도록 하죠.”
국제재판부장 시라노가 차갑게 일어섰다.
‘감히 내 허락도 없이 사표를 반려해? 이것들이 지금 나를 뭘로 보는 거야?’
“시라노.”
소크라테스가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어때? 괜찮으면 차라도?”
“꺼져, 돼지야. 지금 이 사달이 난 게 누구 때문인 줄 알아? 사표 반려, 네가 했지?”
“절차상으로는 문제가 없지. 내 사표를 제출하면서 자네 것을 반려한 것뿐이니.”
“언젠가 널 죽여 버릴 거야.”
“껄껄! 그 얘기를 들으니 젊을 적 생각이 나는군. 어때? 그때처럼 뜨거운 밤을…….”
시라노의 주먹이 날아드는 것을 발견한 소크라테스가 눈을 질끈 감았다.
“…….”
충격이 없자 살며시 눈을 뜬 그의 앞에 시라노가 비웃음을 짓고 있었다.
“멍청한 놈. 20년 전 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냐? 그건 동정이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시에 나는 이성애자도 아니었다고.”
“아니, 뭐…… 그래도 좋았잖아?”
“호호호!”
입을 가리고 웃은 시라노가 화장품 지갑에서 핀셋을 꺼내 던졌다.
“받아. 선물이야.”
“선물?”
“요즘 외로운 것 같은데, 그게 도움이 될 거야. 혼자서 잘 즐겨 보라고.”
시라노가 몸을 돌린 뒤에도 소크라테스는 한참이나 핀셋을 바라보았다.
“…….”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질척거려. 짜증 나게.’
한숨을 내쉬며 소회의장을 나선 시라노는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광안의 아르민.’
상아탑 주민으로 현재 코로나 왕국의 브레인 역할을 맡고 있다고 들었다.
‘여긴 웬일이지? 딱히 VIP도 없는데.’
각국의 능력자들은 왕을 지키거나, 타국의 왕을 공격하는 데 주력할 터였다.
“시이나.”
아르민은 토르미아 마법학교 교사들과 함께 나오는 시이나에게 다가갔다.
“오빠.”
시이나가 눈에 띄게 당황하자, 시라노가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 어머. 그런 거였어?’
아르민이 말했다.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그게…….”
교사들이 자리를 비켜 준 가운데 시이나는 그의 어깨 너머로 복도를 살폈다.
아르민의 아내, 위장이든 아니든 케이라가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어 있었다.
‘이게 뭐야? 사람 곤란하게.’
아르민은 여전히 좋은 오빠지만 이렇게 삼자가 모이는 상황은 불편했다.
“무슨 일인데?”
“코로나로 망명해라. 지금 당장.”
“뭐?”
시이나는 황당했다.
“대체 왜 그래? 무슨 일인데?”
‘카드 게임을 하는 사람들…….’
코로나의 싱크탱크에서 이번 살인전을 시뮬레이션 한 결과를 듣고 온 참이었다.
“너도 알잖아. 칼부림이 시작됐어. 토르미아는 너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을 거야.”
하비츠가 주도하는 시스템이니 정확한 예측은 어렵지만 확실한 것은…….
“네 목숨이 위태롭다고.”
시이나는 이해했다.
“그래서? 나라를 버리고 도망치라고?”
“모든 전력이 VIP 위주로 돌아가고 있어. 지금 너는 일개 교사일 뿐이야. 일단 코로나로 와.”
아르민이 손목을 붙잡자 시이나가 뿌리쳤다.
“애 취급하지 마. 내 몸은 내가 지킬 수 있어. 그리고 교사가 되라고 한 건 오빠였잖아.”
“어떻게 지킬 건데? 너를 노리는 자들이 누군 줄 알아? 스톱 마법이 아니면…….”
“그만해.”
케이라를 볼 면목이 없었다.
“왜 이러는 거야? 오빠에게 소중한 사람이 저기 있잖아? 이제 나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그 녀석이 문제란 말이야, 멍청아.
너무 강해서.
“쿠안은 올 수 없을 거야. 이미 왕령이 내려졌겠지. 국법을 어기고 너를 지키러…….”
“무슨 일이죠?”
흥미진진하게 대화를 엿듣고 있던 시라노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머나?’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다가오는 외팔이 검사, 파르카 쿠안이었다.
“쿠안 씨.”
아르민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가장 크게 놀란 사람은 시이나 본인이었다.
“어떻게 여기에?”
사람들의 주목이 이상한 듯 좌우를 돌아보던 쿠안이 태연하게 말했다.
“회의가 끝났을 것 같아서요. 같이 점심 먹으려고…… 혹시 바쁘신가요?”
쿠안은 다루기 어려운 검이었다.
“아, 아뇨. 좀 당황해서요. 그러니까, 저는 쿠안 씨가 바쁠 줄 알았거든요.”
“몇 가지 지령이 있지만 급한 건 아닙니다. 그리고 약속을 했으니 지켜야죠.”
그녀의 곁에 있겠다는 약속.
잠시 멍해 있던 시이나가 이내 웃음기를 되찾으며 쿠안의 팔을 안았다.
“가요, 밥 먹으러.”
그녀가 아르민에게 고개를 돌렸다.
“오빠도 돌아가. 여기는 걱정하지 말고. 성전 상황도 안 좋은데 몸 좀 챙겨. 많이 야위었어.”
비로소 긴장이 풀린 시이나의 모습 앞에서 아르민은 고집을 부릴 수 없었다.
“그래, 알았다.”
붕대로 감긴 눈이 쿠안을 돌아보았으나 잘 부탁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주제넘은 짓이지.’
아르민이 몸을 돌리자 케이라가 벽에서 몸을 튕기며 머리를 털어 냈다.
“이제 속이 풀렸어? 그럼…….”
그 순간, 바람이 불었다.
복도에 있는 모두가 강풍이 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반대쪽!’
올빼미 가면에 검은 망토를 입은 20인이 어느새 복도를 점유하고 있었다.
“……풍장.”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너무 이르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편대의 선두가 말했다.
“올리페르 시이나. 이 시간부로 당신의 신병은 우리가 인수한다. 순순히 따라오라.”
쿠안이 검을 뽑으려고 하자 선두가 손을 내밀었다.
“오해하지 마라. 싸우려는 게 아니야. 우리는 저 여자를 보호하려는 것이다.”
“보호? 누구로부터? 애초에 시이나 씨는 토르미아 왕국 소속이야.”
“예를 들면…….”
선두가 내민 손이 전방을 가리켰다.
“저런 거?”
모든 일행이 고개를 돌리는 것과 동시에, 10여 개의 폭탄이 날아들었다.
“이야호!”
치킨 헤드 머리를 한 일당이 혀를 길게 빼내며 폭탄을 던지고 있었다.
시라노가 소회의장의 입구를 막으며 소리쳤다.
“피해!”
폭발이 일어났다.
‘큭! 저것들…….’
대부분 운신이 가능한 자들이지만 전투 능력이 전무한 성전 직원도 있었다.
‘대놓고 테러를 해?’
연기가 걷히자 앞을 가로막고 있는 소크라테스의 거대한 등이 보였다.
푸들푸들 흔들리는 살이 고요해지고, 그가 미소를 지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괜찮아?”
“비켜! 안 보이잖아!”
덩치를 밀쳐 낸 그녀는 핵심 인물들이 빠져나간 무너진 벽으로 향했다.
“세상에.”
난장판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훈련받은 자들이 아니야. 출신을 들키지 않기 위해 용병을 고용했군. 어떤 국가지?”
각자의 개성도 실력도 전부 다르지만, 멀리서 살피는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저 여자만 노리고 있다.’
시이나의 허리를 감싼 쿠안은 외중력을 사용해 수많은 칼을 피해 다녔다.
‘오래 버틸 수 없어.’
치킨 헤드는 그렇다고 해도 풍장의 동시 공격은 쿠안에게도 상당한 압박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시이나.’
외팔이는 누군가를 지키며 싸울 수 없다.
“쿠안.”
상식을 깨는 동선으로 포위망을 빠져나오는 그때 아르민이 다가왔다.
“시이나는 나에게 맡겨.”
“…….”
“고집부릴 때가 아니야. 그 상태로는 검도 뽑지 못하잖아. 내가 반드시 지킬게.”
스톱 마법의 아르민.
“부탁하지.”
쿠안이 어떤 리스크를 짊어졌는지 알기에 시이나도 거부할 수 없었다.
“조심해요.”
그 말을 끝으로 시이나가 멀어지자 비로소 쿠안의 손에 검이 잡혔다.
“이것들이…….”
풍장이고 치킨 헤드고, 시이나를 마치 맡겨 둔 것처럼 데려가려고 하다니.
“내가 그렇게 우습냐?”
초기움.
세상이 좌로 우로 빠르게 회전하자 쿠안과 얽힌 모두의 눈이 핑핑 돌았다.
치킨 헤드가 비명을 내질렀다.
“이, 이게 무슨…… 컥!”
경지를 피부로 느끼기도 전에 십수 명의 목이 뎅겅뎅겅 떨어져 나갔다.
‘날파리는 필요 없어.’
질풍처럼 쇄도하는 쿠안의 시선이 허공에 부유하는 풍장을 겨누었다.
“실로 섬뜩하군.”
세계가 요동하는 느낌 속에서도 풍장의 선두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흥! 언제까지 여유를 부릴 수 있을지…….’
쿠안이 도약하려는 그때 좌우에서 차원이 다른 살기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뭐야?’
카샨의 근위대, 근, 중, 원이 서로 다른 거리를 두고 돌진하고 있었다.
“크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