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40
“마찬가지야.”
비록 적이지만, 서로가 싸우는 이유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들이었다.
“우오린에게 가고 싶다. 그것뿐이야.”
토르미아는 물론 성전 각국의 병력이 여황을 죽이려고 혈안일 터였다.
“왜 왔지?”
시로네가 물었다.
“네 말대로 우오린을 지키는 게 전부잖아. 그녀를 말릴 수는 없었어? 왜 동참한 거야?”
“우오린은…….”
키도의 눈에 슬픔이 어렸다.
“나를 좋아하지 않아.”
“…….”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어. 그녀가 원하는 걸 해 주지 않으면 내 곁을 떠날 거야.”
‘그렇지 않아.’
우오린은 키도를 버리지 않을 테지만, 키도의 애달픈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시로네가 말했다.
“시이나 선생님이 걱정돼. 쿠안 씨도.”
토르미아는 시이나를 포기했기에, 그들을 구출할 사람은 시로네뿐이었다.
‘여기서 시간을 너무 많이 지체했어. 쿠안 씨는 오래 버티지 못할 거야.’
오메가를 통해 풍장 100명의 전투력을 알고 있다.
‘특히나 율라는…….’
시로네가 적의를 거두고 몸을 틀자 카샨의 근위대가 천천히 움직였다.
서로의 필요에 의한 휴전이지만, 키도는 시로네를 지나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빚진 거야.”
시로네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키도.”
서로를 지나친 두 사람이 몸을 돌리고, 시로네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우린 친구지?”
키도가 땅을 박차며 말했다.
“당연하지.”
풍장의 누구도 비명을 지르지 않았지만, 시이나는 귀를 막고 싶었다.
살이 잘리는 소리, 뼈가 끊어지는 소리, 장기에서 빠지는 바람 소리.
몸으로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이제 그만……!”
눈앞에 탄생한 피의 소용돌이에서 쿠안의 지분이 얼마나 될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시이나!”
악귀처럼 소리치며 튀어나온 쿠안의 주위로 피와 살의 비가 쏟아져 내렸다.
이제 풍장의 숫자는 24명.
홀로 75명을 베어 버렸다는 점에서, 풍장의 전멸은 이미 정해진 것이었다.
율라가 중얼거렸다.
“경이롭다.”
풍장은 바람이다.
풍장이 최강인 이유 또한 누구도 바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지만…….
“닿지 않아.”
쿠안은 바람을 피하고 있었다.
절름발이, 외팔이, 외눈, 외귀, 이제는 생각마저 온전하지 않을 터.
‘아니, 생각할 필요가 없는 거지.’
검귀의 칼춤을 지켜보며, 율라는 먼 향수에서 밀려드는 기억에 전율했다.
‘저것이었나.’
이상적인 검술을 머리로 그릴 수는 없지만 오감을 초월한 느낌은 있었다.
‘소녀가 꿈꾸었던 검술은.’
완력 기반의 요소를 전부 무시한 채 만인을 베어 버릴 수 있는 살인기.
‘가장 강한 검사가 되고 싶었다.’
그녀는 99명의 검술 천재를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풍장의 리더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녀가 망쳐 버린 천재가 그 모든 의미를 파괴하고 있었다.
“시이나…….”
절뚝거리며 칼을 그을 때마다 풍장의 검은 장막이 붉은 피로 물들었다.
‘내가 베었지.’
아킬레스건을 도려냈다.
그것으로 검의 길은 끝났어야 했으나, 결국 쿠안은 먼 길을 돌아 이곳에 왔다.
‘이 여자를 지키기 위해서인가.’
누군가를 죽이기 위한 것이 검이라면, 율라는 분명 세계 최강의 검사였다.
‘쿠안의 검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검.
“결판을 내자.”
시이나를 지상에 내려놓은 율라는 99명을 베어 버린 쿠안에게 걸어갔다.
‘뒤가 비었어.’
시이나가 스피릿 존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율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실수하지 마라.”
“…….”
얼마나 예민한 것인가, 시이나는 자문했다.
‘검사의 민감도는 알고 있어. 딱히 다른 검사와 다른 반응도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분명…….’
훨씬 빠르다는 생각, 혹은 착각?
인간이 측정할 수 없는 영역이 느낌이라면, 율라의 느낌은 가히 괴물이었다.
“싸우고 싶다면 그렇게 해. 하지만 너의 행동이 저 남자에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 잘 생각해라.”
시이나는 끼어들 수 없었다.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방법조차 모르겠어.’
율라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닿을 수 있다.’
풍장은 유체역학을 몸으로 구현하지만, 그녀의 경지는 그보다 훨씬 깊었다.
‘내 감각은 정停에 있으니.’
고요한 수면이라도 실상은 수많은 원자들이 어지럽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정중동의 극치.”
율라의 눈에 쿠안은 점멸하는 듯 보였지만 검은 심장을 정확히 겨누었다.
“간다.”
쿠안과 율라가 동시에 움직였다.
그들의 무위에 비해 턱없이 느린 속도였기에 시이나는 의아했으나.
“…….”
충돌하는 순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녀는 결코 알 수 없었다.
바람이 불고, 조용히 교차한 두 사람은 서로를 등진 채 침묵을 지켰다.
올빼미 가면이 둘로 쪼개지고, 창백하게 웃고 있는 율라의 얼굴이 드러났다.
한 줄기 선혈이 이마를 타고 내려와 콧잔등과 입술을 지나 턱에 도착하고.
“하…… 하.”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깊이로 가슴을 가르고 복부의 근육을 양분한 채 중심선을 빠져나갔다.
일자의 틈새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지고, 그 출력으로 율라의 몸이 넘어갔다.
“쿠안!”
털썩 무릎을 꿇은 쿠안에게 시이나가 달려갔다.
“쿠안! 괜찮아요? 쿠안!”
“안 닿았어.”
율라의 목소리에 놀란 시이나가 경계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의 닿을 뻔했는데…… 닿지 않았어.”
이유가 뭐지?
‘아아.’
혼란스럽던 율라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지켜야 할 것인가?’
율라에게 우오린이란 자신의 신념을 위해 관철시켜야 하는 대상일 뿐.
“좋겠구나.”
율라는 준비가 끝난 표정이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사람이 되었으니 말이야. 카샨의 여황보다 더.”
이제 내뱉을 숨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여황님.’
언젠가는 진실로 당신을 위해 줄 누군가를 만나길 바라며, 그렇게 숨을 거두었다.
“쿠안, 쿠안.”
시이나는 다시 쿠안을 흔들었다.
“시이나.”
“쿠안! 정신이 들어요?”
그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으나 쿠안의 상태를 본 순간 다시 창백해졌다.
“……지킨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제 다 끝났어요. 당신이 이겼다고요. 그러니까 이제 돌아와도 돼요.”
“시이나…… 내가…….”
“아니라고!”
시이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런 법이 어디 있어! 나한테 말도 없이! 내 곁에 있겠다고 했잖아! 다시는, 다시는……!”
떠나지 않겠다고.
그 말에 담긴 모순을 비로소 깨달은 그녀는 쿠안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아아아! 아아아아!”
시로네는 사방에 깔린 살점과 율라의 시신, 같은 말을 중얼거리는 쿠안을 보고 깨달았다.
“선생님…….”
오열하는 시이나의 모습 앞에서, 그는 어떤 위로의 말도 떠올릴 수 없었다.
사실과 거짓 (2)
시이나의 울음소리가 잦아들 무렵 쿠안이 의식을 잃고 그녀에게 쓰러졌다.
“쿠안.”
그녀가 놀란 표정으로 상태를 확인했으나 다행히 심장은 뛰고 있었다.
시로네가 물었다.
“선생님, 어떻게 된 거예요?”
생각에 잠겨 있던 시이나가 말했다.
“풍장은 전멸했어. 그리고 쿠안은…… 나를 위해 무언가를 포기한 것 같아.”
그녀가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이대로 성전으로 갈 수는 없어. 당분간 쿠안을 보살피고 싶어. 그래도 되겠지?”
“……네.”
시로네의 생각에도 더 이상 쿠안이 전장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쿠안 씨는 강한 사람이에요. 반드시 돌아올 거예요.”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는 시로네도 몰랐지만, 시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거야. 쿠안은 반드시 나에게 돌아올 테니까.”
검귀가 전장을 이탈했다.
***
델타 본청 앞은 아침부터 모인 시위대의 데모 소리로 시끄러웠다.
“기스는 물러나라!”
“시로네의 의지를 받듭시다! 야훼 또한 기스의 부조리함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기사에 이름 한 줄이 오른 덕분에 시로네 또한 유명세에 오르게 되었다.
6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목소리는 정원을 지나 델타 본청에까지 전해졌다.
“하아.”
중립지대의 사무실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남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름은 레이몬드.
기스의 정치적 라이벌이자 아라크네와 결탁하여 함정을 판 장본인이었다.
‘시민들의 외침에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구나. 이 더러운 나라를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
앞으로 자신이 이루어야 할 정치적 사명을 떠올리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레이몬드 님.”
호위 기사들이 경계하는 가운데 아라크네의 국무총리 페드라가 들어왔다.
“아, 오셨습니까.”
황급히 눈물을 훔친 레이몬드였으나 페드라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심려가 많으시겠습니다.”
“그렇지요. 저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이브 왕국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으니까요. 제 지분도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아닙니까? 잘하고 계신 겁니다.”
“후우.”
레이몬드가 슬픈 탄식을 내뱉자 페드라가 어깨를 다독이며 문을 가리켰다.
“함께 가시죠. 스트레스에는 운동만 한 게 없지요. 땀을 빼는 게 최곱니다.”
“그럴까요?”
페드라가 레이몬드를 데리고 간 곳은 아라크네 섹터의 가장 깊은 곳이었다.
아름다운 중년 여성이 그들을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미인계를 주력으로 구사하는 아라크네의 싱크탱크, 요음방의 리더였다.
“조용한 곳으로 마련해 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