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42
게임이라는 룰 자체가 깨져 버리면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생존할 터였다.
‘역시 제타로는 재밌어.’
약간의 흥분을 느끼며 하비츠가 물었다.
“패배의 대가는?”
위저드가 말했다.
“상대가 원하는 소원을 들어주는 것으로 하죠. 자의적으로 결정할 수 없으니까요.”
“크크. 무슨 소원이든, 상관없는 거겠지?”
하비츠의 눈에 아른거리는 광기를 보고서도 위저드는 차분하게 답했다.
“네, 무슨 소원이든.”
서로가 원하는 건 다를지 몰라도 위저드의 열망도 하비츠 못지않았다.
“좋아, 그럼 정리해 보지. 예를 들어 1시간 뒤에 나는 사과를 먹겠다. 1시간 뒤에 나는 딸기를 먹겠다. 이 중에 하나는 사실이고, 하나는 거짓이다.”
제타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네는 사과와 딸기 중에 반드시 하나를 먹어 사실을 증명해야 되지. 둘 다 먹거나, 둘 다 먹지 않거나, 모두 자네의 패배야.”
사실과 거짓은 각각 하나씩 있어야 한다.
“흐음.”
그 후로 세부적인 룰까지 확인한 하비츠는 예상과 달리 신중한 태도였다.
스모도가 눈을 가늘게 떴다.
‘역시 느꼈군.’
이번 것은 정말로 위험하다는 것을.
생각보다 생각이 길어지자 일행은 초조했으나 제타로는 확신하고 있었다.
‘하비츠는 승낙할 거야.’
1시간 전의 대화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비츠는 승낙할 거야.”
제타로가 그렇게 말하자 발칸이 핏기 없는 창백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100퍼센트 확신할 수 있어? 게임을 한다는 건 룰을 따른다는 뜻이야. 최대 강점인 혼돈이 약해지는 거지. 이미 암살 게임을 하는 그가 이중으로 게임을 한다는 건 일종의 자살행위 같은데.”
제타로도 동의했다.
“그렇겠지. 어지간히 재미있지 않으면, 아니, 아마 어떤 게임도 그를 흔들 수 없을 거야. 하지만 이번에는 가능해. 위저드가 있으니까.”
제타로는 위저드를 돌아보았다.
“사실 룰은 단순해. 중요한 건 심리. 그리고 심리라면 하비츠를 찌를 수 있어. 반드시 한 가지의 사실을 말해야 하는 룰이기 때문이야.”
“신의 주파수.”
“그래. 하비츠는 위저드의 마음을 읽을 수 없지. 암살 게임의 룰을 들었을 때 바로 느낌이 오더군. 하비츠는 모든 것에 염증을 느낄 수 있어. 유일하게 마음을 읽을 수 없는 게 위저드라면, 그녀를 중심으로 룰을 만들면 되는 거야.”
발칸이 피식 웃었다.
“확실히 그렇군. 이건 게임보다 사람이 중요해. 흥미가 없는 사람하고 이 게임을 하게 되면, 그냥 실없는 말장난이 되어 버리지. 하지만 놈은 위저드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적극적으로 참가할 거야.”
“하비츠가 재밌으면 됐어.”
제타로는 슬픈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반드시 이 게임을 하게 될 거야.”
“좋아.”
하비츠가 말했다.
“승낙하지.”
극한의 냉정함을 유지하는 위저드마저도 얼굴이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하비츠는 시간을 확인했다.
“슬슬 내 게임도 해야 하니, 우선 이쪽으로 갈까? 나는 이번 암살 게임에서 제타로를 죽일 것이다.”
사실일까, 거짓일까.
“그리고 또 하나. 나는 이번 암살 게임에서 스모도를 죽일 것이다.”
“…….”
둘 중의 하나는 사실이어야 한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해 봐. 너희 둘이 전부 살아남는다면 내 패배겠지.”
“흐음.”
스모도는 턱을 괴었다.
‘이미 마음을 정한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두 가지를 나열해 두고 선택하려는 것인가? 어쨌든 나랑 제타로 둘 중의 하나는 죽겠군.’
제타로 또한 생각에 잠겼다.
‘너무 쉬운데? 나랑 스모도가 자살해 버리면 끝나는 거잖아? 하비츠의 생각은…….’
그가 고개를 들었다.
“아.”
하비츠는 이 게임에 빠져 있다.
‘설령 나랑 스모도가 자살해도, 위저드가 패배하면 무승부가 된다. 어떻게든 위저드를 실패하게 만들겠다는 선전포고인 셈이다. 아니, 그보다 훨씬 거대한 욕망.’
과연 상대는 어떻게 나올까?
“좋아요. 접수했습니다. 그럼 저는…….”
위저드가 말했다.
“이번 암살 게임이 끝나기 전까지 시로네에게 입을 맞추겠습니다.”
사실 혹은 거짓.
“그리고 저는…… 이번 암살 게임이 끝나기 전까지 당신에게 입을 맞추겠습니다.”
제타로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위저드는 이 게임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어. 이거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아이가 아니다.
아마도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시뮬레이션을 통해 그녀의 정신은 성인만큼 성숙할 터.
‘심리전에서 밀리지 않는다면 하비츠를 이길 수 있다.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거짓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야. 이 게임의 진짜 의도는…….’
현재 제타로가 느끼고 있는 것과 같다.
“재밌군.”
하비츠가 말했다.
“좋아, 접수하지. 그럼 어디…… 내 게임을 시작하기까지 8분 정도 남았으니.”
시계를 집어넣은 그가 말했다.
“가라. 8분이다.”
스모도와 제타로는 서로 시선을 교환하는 것과 동시에 황급히 도망쳤다.
“째깍, 째깍.”
시계 소리를 입으로 내던 하비츠가 여전히 남아 있는 위저드에게 물었다.
“지금 나를 죽일 생각인가? 살의를 가지는 순간 배니싱이 발동될 텐데.”
하비츠가 입꼬리를 올렸다.
“아니면, 뭐? 나에게 키스라도 하려고?”
“죽이지 않아도.”
위저드가 화신술을 발동하자 무상신의 흉흉한 잔상이 허공에 피어났다.
“당신을 막는 건 충분해요.”
“게임을 재미없게 하는군.”
물론 어떤 자세로 게임에 임하든 승자의 보상을 생각하면 상관없었다.
‘더 강해졌다.’
흐느적거리는 무상신의 모습에서 하비츠는 그녀가 어떤 경지인지 직감했다.
“크크.”
하비츠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
“안타깝군.”
위저드의 발밑에 12개의 그림자가 생기더니 시옥이 불쑥 올라왔다.
‘나도 완전체거든.’
하비츠가 몸을 날리는 순간, 위저드가 이를 악물고 무상신을 발동했다.
백자역회전.
“사탄을 위……!”
시옥의 말이 터지기도 전에 0.666초가 깨지고 시간이 되돌아왔다.
“쳇!”
황급히 복도를 달렸으나 이미 하비츠는 갈림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갔지? 스모도? 제타로?’
50프로의 확률.
‘스피릿 존에 걸리지 않아. 시옥을 발동한 거야. 절반의 확률에 기대야 하나? 아니면…….’
시로네를 만나 임무를 완수해야 할까?
“…….”
남은 시간은 5분이었다.
제타로는 입에 단내가 나도록 뛰었다.
“하아! 하아!”
죽음이 두렵다기보다는 하비츠를 즐겁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다.
‘하비츠는 날 죽일 거야.’
3분 전 제타로는 스모도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비츠는 날 죽일 거야. 더 좋아하는 사람을 죽이는 게 재밌다면 아무래도 나지.”
그의 자부심이었다.
“내가 하비츠를 유인할 테니까, 자네는 저쪽으로 도망쳐. 이제는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
“괜찮겠어?”
“어차피 이 게임에서 우리는 도구일 뿐이야. 위저드가 제대로 할 수 있을 거야.”
“알았어. 그럼…… 조심해. 큭큭.”
자신이 내뱉은 말에 스모도가 웃음을 터뜨리자 제타로도 허파를 들썩였다.
“껄껄! 뺨은 한 대 쳐야겠어. 나도.”
하비츠의 배니싱을 인지하는 건 위저드뿐이기에 죽는지도 모를 테지만.
“잘 가라고.”
그렇게 두 사람은 갈림길에서 헤어졌다.
제타로는 빈 사무실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책상 아래 몸을 숨겼다.
“더는 못 뛰어.”
막연하게 죽음을 기다리며 예전의 즐거운 추억을 회상하려는 그때.
“응?”
배니싱이 발동되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분명 뭔가를 피하려고 들어온 것 같은데…….’
남은 시간은 1분.
스모도는 복도에 멍하니 서 있었다.
“뭘 잊어버렸지?”
하비츠, 그가 장검을 길게 늘어뜨리고 스모도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것으로 내 말은 사실이다.”
남은 시간 3초, 2초, 1초.
시간을 확인한 그가 허리를 뒤틀며 스모도의 목을 베려는 순간이었다.
“허억!”
델타 본청에 헥사의 빛이 퍼지자 스모도의 뇌리에 하비츠가 인지되었다.
엘리키아의 양자 신호를 통해 이곳의 상황이 건물 전체로 퍼져 나갔다.
시로네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야훼…….”
암살 게임에 맞추어 1시간에 한 번씩.
“키이이이!”
괴기스럽게 얼굴을 일그러뜨린 하비츠가 스모도의 심장을 향해 검을 찔렀다.
“크윽!”
황급히 몸을 비틀었으나 검은 스모도의 폐부를 뚫고 등으로 빠져나갔다.
위치를 파악한 위저드가 도착했다.
“하비츠!”
“……스모도라고?”
여전히 책상 아래에 앉은 채, 제타로는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왜? 왜 내가 아니고…….”
위저드는 어쩔 수 없이 인정했지만 스모도에게도 밀렸다는 건 충격이었다.
“아니야!”
제타로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럴 리가 없어! 하비츠는 내가 제일 재밌다고 했단 말이야! 내가 왜……!”
검이 쭉 하고 뽑혀 나가자, 핏물을 울컥 쏟아 낸 스모도가 미소를 지었다.
‘제타로. 다행이다.’
바닥에 주저앉은 그가 벽에 등을 기댄 채 헐떡거렸다.
‘이번 판은, 하비츠가 재밌지 않았을 거야.’
하비츠가 돌아섰다.
“내가 이겼다.”
그가 두 팔을 벌리고 말했다.
“너는 시로네를 만나지 않았어. 그리고 나는 스모도를 죽였지. 내 승리야.”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위저드가 스모도를 가리켰다.
“숨이 붙어 있으니까.”
배를 움켜쥐고 폐에 남은 공기로 연명하는 스모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그럼 끝장을 낼까?”
위저드가 무상신을 발동하는 것과 동시에 하비츠가 검을 쳐들었다.
초공-무계창조.
그 순간 1프레임이 사라지고.
하비츠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느새 위저드가 자신에게 입을 맞추고 있었다.
“…….”
위저드가 소리 없이 착지할 때까지도 하비츠는 검을 든 채 서 있었다.
“이것으로 무승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