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44
“트랙을 몇 바퀴 돌았지?”
“일곱 바퀴요.”
“엄청 빠르군. 거기에 명예로운 악행 루트를 계속 탔다면 대략 5천만 포인트 정도 될까?”
커티스는 시로네 일행의 효율을 상상하지 못했다.
“뭐…….”
“좋아. 부정하지 않는다는 건 최소 5천만 언저리는 된다는 거지. 그렇다면 가능성이 있어.”
페나가 손을 내밀었다.
“잠깐. 먹는 중이잖아. 내가 들어도 되는 거야?”
“상관없어. 안다고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게다가 이건 인원도 중요하거든.”
커티스는 담배를 물었다.
“100억을 모으거나, 운이 좋거나. 멜키두로 들어가는 정석적인 루트는 이 두 가지야. 하지만 숨겨진 방법이 있어. 내가 파산하는 거지.”
에덴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포인트가 0이 되면 경비의 추격을 받잖아요. 감옥에 갇히게 되고요.”
“그게 핵심이야. 감옥에서 형량을 다 살면 스타트 지점에서 다시 시작. 그런데 말이야, 스타트 지점으로 가지 않을 방법이 하나 있어.”
시로네는 깨달았다.
“매수군요.”
그것 또한 범죄였다.
“그래. 나를 탈옥시켜 줘. 모든 범죄가 무죄인 이곳에서 다시 범죄자가 되는 거야.”
“범죄자가 되면, 무슨 일이 생기죠?”
창밖을 돌아본 커티스가 담배 연기를 뿜으며 말했다.
“뒷문이 열리지.”
율법 요동 (1)
시로네는 커티스의 말을 곱씹었다.
“일종의 시스템 파괴로군요.”
“그래. 어떤 범죄자들은 멜키두를 싫어했지. 범죄라는 것은 범죄일 때 가치가 있는 법이야. 어떤 짓을 저질러도 무죄라면, 사이코패스들은 금방 질리게 마련이거든.”
커티스는 담배를 껐다.
“그렇다면 여기서 자신을 드러낼 방법은 뭐가 있을까? 시스템을 공격하는 거지. 그들은 감옥에 가서 탈출할 방법을 궁리했어. 멜키두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니,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적용되었겠지. 그러다가 발견한 거야, 시스템에 숨어 있는 미션을.”
“경비를 매수하는 것.”
“그래.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어. 안쪽 트랙의 어떤 구역에는 뒷문, 즉 어둠의 세력이 운영하는 가게가 있지. 표면적으로는 드러나 있지 않지만. 그쪽 루트를 통해서 무언가를 지불하면 경비를 매수할 수 있다.”
시로네 일행은 생각에 잠겼다.
“왜 이런 방법이 존재하는지는 몰라. 시스템 오류일 수도 있고, 최초 설계자의 어떤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일 수도 있지. 난 후자라고 생각해. 살인자의 안식처라는 간판을 내걸 정도면 살인자의 속성 정도는 훤히 꿰고 있을 테니까. 분명 이런 짓을 저지를 놈도 있으리라는 걸 알고 있는 거겠지.”
페나가 말했다.
“끼어들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경비를 매수하면 코어에 갈 수 있는 거야?”
“거기까지는 알 수 없지. 심지어 100억 포인트로 열쇠를 사도 코어에 갈 수 있는지는 몰라. 누군가 그것을 안다면 미제 사건이 아닐 테니까.”
‘기록 말소인가.’
시로네가 생각에 잠긴 가운데 커티스가 말을 이었다.
“일단 어둠의 조직과 연을 맺으면 대부분의 시스템은 무시할 수 있어. 그렇다면 굳이 멜키두의 룰을 지키며 코어로 갈 필요도 없다는 거지. 어때, 승산이 있을 것 같지 않아?”
부정할 수 없었다.
“꼭 파산해야 하는 건가요?”
“내가 추적 끝에 얻은 정보는 이거야. 매수 프로그램이 발동하려면 반드시 감옥에 갇힌 자를 빼내야 해. 필요 포인트는 최소 5천만 이상. 또한 내부 트랙에는 경비대와 연을 맺은 어둠의 조직이 장사를 하고 있다. 그리고 내 포인트는 걱정할 필요 없어. 어차피 난…….”
커티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거의 파산했으니까.”
페나가 그를 돌아보며 눈을 깜박거렸다.
“정말? 너 꽤 잘나갔잖아.”
“이런 고급 정보를 어떻게 얻었을 거라고 생각해? 이곳 시간으로 벌써 2년을 돌았어. 그래도 100억 포인트는 요원하지. 그러다가 사소한 정보를 접했는데, 형사의 직감이 이거다, 라고 말하더군. 그때부터 파고들어 갔지.”
“시도하기 어려운 방법이야.”
이루키가 말했다.
“여긴 대부분 범죄자니까. 매수를 하려면 2명, 혹은 두 팀이 움직여야 하는데 신뢰를 쉽게 쌓을 수 없지. 게다가 한쪽은 파산해야 하는 구조.”
네이드가 덧붙였다.
“미션의 난이도도 달라. 시스템이 만든 논-플레이어가 아니라, 시스템하고 직접 겨루는 셈이잖아. 게다가 내부 트랙의 입구에 도착하지 못하면 최소 반 바퀴 이상 외부 트랙을 돌아야 해. 엄청난 시간이지.”
커티스가 동의했다.
“그래서 너희에게 온 거다. 정보를 수집하면서 너희들의 이야기도 들었지. 미션 클리어 속도가 엄청나더군. 너희들이라면 내부 미션을 해결할 수 있을 거야.”
“나는 뭘 하면 되지?”
페나가 물었다.
“나를 부른 이유도 있을 거 아냐?”
허겁지겁 음식을 시킬 때는 그녀가 정말 아무 생각이 없는 줄 알았다.
“음, 내가 파산하면 감옥에 갈 거야. 거기서 재판을 거쳐 다시 장소를 옮기게 돼. 내가 여태까지 저지른 죄가 얼마나 크냐에 따라 형무소의 규모가 다르지. 나를 추적한 다음 이 녀석들에게 전해 줘.”
“한마디로 연락책이네.”
“그래. 그사이에 너희들은 내부 트랙에서 미션을 해결해 줘. 아, 그리고 혹시 포인트가 남는다면 다이스를 강화시켜 두는 게 좋아. 어둠의 조직과 거래하려면 포인트보다는 다이스가 더 중요해질 테니까.”
“싸울 수도 있다는 뜻이에요?”
“아, 너희들은 내부 트랙에 간 적이 없지? 외부 트랙에서는 포인트가 왕이지만, 내부 트랙에서는 다이스가 왕이야. 그리고 어둠의 조직은 내부 트랙에 있지. 미리 대비해서 나쁠 건 없잖아.”
“알겠어요. 그럼 이제 어디로 가죠? 여기서는 사용자 간의 공격이 금지잖아요.”
“멜키두는 도망자를 위한 공간이야. 어떤 아이템으로도 대상을 추적하는 건 불가능해. 오직 다이스의 확률에 의지해야 하는 거지. 단, 예외적으로 미션이 없는 공간은 지정된 아이템으로 갈 수 있어.”
커티스가 카드를 꺼냈다.
“이동 아이템, 왕도 입성. 멜키두의 수도라 불리는 파르메로 이동시켜 주지. 가장 규모가 크고 번화한 도시야. 더 이상 필요 없는 물건이나 아이템을 사용자끼리 거래하는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거든.”
“사람들이 많겠군요.”
“그래. 솔직히 코어에 들어가기를 포기한 자들은 여기서 장사를 하기도 해. 크라임 포인트만 있으면 원하는 범죄는 다 저지를 수 있으니까.”
이루키가 물었다.
“바이탈로 오는 아이템도 있나요?”
“물론이지. 설마 기적 같은 확률로 너희들을 기다렸겠어? 이동 아이템, 살의의 초심. 지금은 써 버려서 없지만 왕도 입성만큼 비싼 아이템이야. 문제는 너희들과 어떤 방식으로 만나냐는 건데…….”
“네 번 중에 한 번.”
시로네도 필요한 정보를 공개했다.
“제가 주사위를 굴릴 때는 숫자를 조종할 수 있어요. 원하는 칸에 갈 수 있다는 얘기죠.”
커티스와 페나는 멍했다.
“……무슨 소리야?”
설명을 길게 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그런 능력이에요. 도박장에서나 보상을 받을 때는 공짜지만 이동에는 크라임 포인트를 써야 해요.”
“흐음, 마법이라 이거지. 한 번 쓰는 데 대략 어느 정도 포인트가 소모되지?”
“30만요.”
“뭐?”
페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말도 안 돼! 마을이라도 통째로 날리는 거야? 내가 들은 가장 큰 포인트도 10만인데.”
“어, 그게…… 좀 어려운 마법이에요.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요.”
처음으로 감정을 들킨 그녀가 표정을 고쳤다.
“흠흠, 그렇기는 하지. 하긴…… 그 정도 마법을 내가 아예 안 본 것도 아니니까.”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한편 놀란 것은 커티스도 마찬가지였으나 그보다는 능력의 효율에 압도당했다.
‘멜키두는 주사위가 전부다. 어떤 아이템도 주사위의 숫자를 조작할 수는 없어.’
따라서 시스템 파괴적이다.
“결정했다.”
커티스가 말했다.
“시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되겠군. 너희들은 우리를 따라올 필요 없어. 일단 내부 트랙에서 다이스를 강화시켜. 너희들이라면 외부 트랙 468칸을 한 번에 도는 것도 가능하겠지. 아이템을 사용하면 말이야.”
주사위의 숫자를 최대로 맞출 수 있는 데다 더블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커티스는 페나를 보았다.
“그사이에 나랑 너는 파르메로 간다. 거기서 내가 호송되면 다이스로 추적해. 형무소의 매수자를 네가 물색하는 거야. 그런 다음 이 녀석들을 만나.”
“그런데 어디서 만나야 하지? 왕도 입성은 나도 한 장밖에 없어. 떠나면 끝이라고.”
“접선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상관없잖아. 차라리 여기 바이탈로 정하든가.”
“흥! 살의의 초심 따위, 사 본 적도 없다고. 난 여기 다이스로 왔단 말이야. 왠지 재수가 좋은 것 같아서 도박에 기대를 걸어 본 건데…….”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다른 이동 카드는 있을 거 아냐? 너처럼 철두철미한 애가 도망칠 대비를 안 했다고?”
“있기는 한데…….”
카드를 꺼낸 그녀가 울상을 지었다.
“이거란 말이야. 의욕 상실.”
내용은 몰라도, 시궁창 같은 배경에 절규하는 자들의 그림이 말해 주었다.
“환장하겠군.”
커티스가 설명했다.
“의욕 상실은 쓰레기 매립지야. 멜키두에서 가장 낙후된…… 아니, 그냥 쓰레기 매립지야.”
“그렇군요.”
“급한 상황에 도망칠 수 있다는 것 외에는 장점이 없지. 물론 그것도 엄청난 장점이지만, 문제는 자의로 벗어날 수 없다는 거야. 하루에 한 번 다이스를 굴려서 더블이 나올 때까지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하거든.”
페나가 덧붙였다.
“왜 쓰레기 매립지인 줄 알아? 여기 사는 놈들이 쓰레기니까. 하루만 있어도 미쳐 버릴걸. 너희들이 오면, 식당 테이블에서 날 보게 될지도 몰라.”
이루키가 물었다.
“그럼 왜 그런 아이템을 산 거예요?”
“싸니까.”
“…….”
“크라임 포인트가 우습니? 살의의 초심 한 장 값으로 의욕 상실 세 장은 살 수 있거든!”
커티스가 말렸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제쳐 두고, 이제 각자의 동선을 체크하자고. 우선 왕도의 위치는…….”
시로네 일행의 지도에 새로운 정보가 적히는 것으로 동선 파악이 끝났다.
페나는 시무룩했다.
“에휴.”
“너무 그러지 마. 나는 형무소에 가야 한다고. 쓰레기 매립지는 차라리 천국이지.”
“그래그래, 꼭 정조대 넣어 줄게.”
시로네가 말했다.
“페나 씨, 혹시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하세요. 상점에서 구해 드릴게요. 이제 같이 일을 해야 하니까요.”
“후후, 커티스랑 아는 녀석들은 하나같이 왜 이래?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뭔지 알아? 진심 어린 동정이야. 장비 정도는 나도 구할 수 있다고.”
사뭇 의외였다.
“그런데 페나 씨는 어떻게 멜키두에 들어온 거예요? 가장 강한 음기에만 반응하는 것일 텐데, 사기 전과가 대체 어떤 것이기에…….”
“사기라니! 천만의 말씀. 나에게 유일한 죄가 있다면 아마 신이 주신 미모일까?”
시로네 일행의 벙찐 표정에 그녀가 표정을 고치고 테이블에 턱을 받쳤다.
“그냥 사랑했을 뿐이야. 말 거니까 대화하고, 좋은 거 사 주니까 받고. 뭐, 그땐 좋았지. 나 같은 여자도 이런 사랑을 받을 수 있구나. 그런데 알고 보니…….”
그녀가 배시시 웃었다.
“그렇게 잘해 주는 남자들은 죄다 유부남이거나 이미 임자가 있더라고.”
대충 짐작이 갔다.
“아내가 찾아와서 머리채 잡아 뜯기고, 협박당하고, 결국 마지막은 고소지. 수많은 항목 중에서도 꼭 사기로 걸어. 내가 사기꾼이 되면 그 사람과 나눈 사랑이 전부 거짓이라도 되는 줄 아나 봐.”
페나가 턱을 떼고 말했다.
“항소도 하지 않았어. 그럴 돈도 없었고, 이런 경우 형량도 그리 길지 않으니까. 솔직히 가장 무서운 건 감옥에 간 것보다 갑자기 돌변한 남자들의 태도였지. 그렇게 차가운 사람이었던가.”
커티스는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크게 걸린 거야. 아주 높으신 분이었던 모양이지. 고소고 뭐고 그냥 죽이려고 하더라고. 그렇게 칼 든 인간들을 피해서 도망치다 보니 여기에 온 거야.”
페나는 음식을 챙겼다.
“그래도 난 멜키두가 좋아. 서로 의심하니 배신감 느낄 필요도 없고, 어차피 다 나쁜 놈들이라 여기서는 나도 평범한 사람 같거든. 히히!”
시로네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최대한 빨리 갈게요.”
“그래. 멜키두에서 나가야지. 너무 걱정 마. 이래 봬도 사람 상대하는 수완은 좋으니까.”
식당을 나온 그들은 인적이 없는 바이탈의 입구에서 서로를 마주 보았다.
커티스가 카드를 꺼냈다.
“최소 5천만 포인트는 남겨 두어야 해. 자세한 일정은 페나를 통해 전하지.”
그렇게 2명이 떠나자 시로네가 말했다.
“우리도 출발하자. 우선 내부 트랙으로 들어가서 다이스를 강화하는 거야.”
“좋아. 개처럼 벌었으니 개처럼 쓰자고. 그럼 이번에는 내 차례인가?”
크라임 다이스를 손 위에 굴리던 네이드가 허공을 향해 힘껏 뿌렸다.
4와 4, 더블이었다.
“아싸! 봤지? 내 실려어어어……!”
그들의 육체가 빛의속도로 이동했다.
율법 요동 (2)
***
자이브 수도 병원.
조직폭력배 트라비스는 본래 삼엄해야 할 경계를 손쉽게 뚫을 수 있었다.
‘점심시간이라고 해도 이렇게 텅 비어서야.’
기스의 보좌관 마이런과 접선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2시간 전이었다.
거금을 건네며 그가 지시한 내용은 메이클이란 기자의 입을 막는 것이었다.
마이런이 말했다.
“무슨 뜻인지는 알 것이네. 기사만 못 쓰게 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서류 가방의 무게를 느낀 트라비스의 등골을 타고 또다시 전율이 흘렀다.
“그거면 됩니까?”
예상보다 쉬운 일이었다.
“그거면 되네. 사전 준비, 후속 조치 다 해 놨으니 자네는 들어가서 할 일을 해. 단, 가급적 사망자는 안 나왔으면 좋겠군. 전문가잖아. 이번 일만 끝나면 앞으로 깡패 짓은 하지 않아도 될 걸세.”
평생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던 극적인 신분 상승의 꿈이 실현되고 있었다.
“맡겨 주십시오. 목숨 걸고 해내겠습니다.”
트라비스는 정문으로 당당히 들어갔다.
“좋아, 해 보자.”
일단 병원으로 들어가자 안에 있는 경비들은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