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46
“물론이죠.”
플루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 기스. 몸이고 마음이고 다 줄게. 하지만 이번엔 각오해야 할 거야.’
암살 게임 이후 토르미아의 전략 또한 변했다.
‘너는 오늘, 내 품에서 죽는다.’
율법 요동 (3)
***
시로네 일행은 태양에 도착했다.
여전히 거리는 멀었으나 홍염과 코로나의 공격에 더 이상은 접근이 불가능했다.
아슈르가 말했다.
“태양에너지를 견딜 수 있는 건 없어요. 정신체만이 무사할 수 있습니다.”
태양풍에 우주 범선이 흔들렸다.
“이카엘 님은 상관이 없을 테고, 에이미 양도 불의 이데아를 다룰 수 있으니 괜찮겠죠. 다만 시로네 님은…….”
모두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시스템이 충돌할 겁니다. 물론 세계의 절반은 양자라지만, 지금 견뎌야 하는 태양도 율법으로 가장 강한 힘을 가진 개념이니까요.”
에이미가 말했다.
“괜찮겠어? 버틸 수 없을 것 같으면 나하고 이카엘 씨만 가는 방법도 있어. 동시 사건은 하나가 잘못되면 전체가 위험해지잖아.”
시로네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할 수 있을까?’
빛의 투과율을 제로 수준까지 떨어뜨려도 창밖에 보이는 건 온통 백광이었다.
“괜찮아. 최선을 다해서 버틸 테니까.”
“그럼 이제 범선을 없애겠습니다. 소멸과 동시에 엄청난 에너지에 노출될 겁니다.”
일행은 침을 꿀꺽 삼켰다.
“부디…… 무사하시길.”
우주 범선이 패널로 쪼개지며 사라지자 빛의속도로 태양이 그들을 덮쳤다.
“헉……!”
에이미의 육체가 불타고 이카엘조차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태양의 거대한 신호 앞에서는 어떤 개념도 관철시킬 수 없는 것이다.
시로네는 이를 악물었다.
‘그래 봤자 율법이야.’
미라클 스트림이 육체를 휘감으면서 태양에너지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시로네가 확보한 공간은 고작해야 직경 7미터의 구체였다.
“후우.”
불의 이데아로 탈바꿈한 에이미와 신체가 녹아내린 이카엘이 돌아섰다.
“해냈군요.”
우주 전체에서 반경 7미터지만, 인간이 버틸 수 있다는 사실에 이카엘은 전율했다.
또다시 태양풍이 덮쳤다.
“사티엘일 겁니다. 이 세계의 율법은 태양의 코어에서부터 변하게 되니까요.”
에이미가 물었다.
“코어에서 무언가를 바꾼다고 해도 표층까지 올라오는 건 시간이 걸릴 텐데요?”
“시간은 중요하지 않아요. 어떤 일이 벌어지면 결과는 이미 정해진 것이죠. 인과를 순서대로 경험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착각입니다.”
시로네가 덧붙였다.
“원인이 변하는 순간 결과는 이미 바뀐 거지. 오메가의 기록이 천분율인 이유야. 끝이 정해지지 않고서는 퍼센트를 계산할 수 없잖아. 고대의 가이아인은, 아니 앙케 라는 마지막을 알고 있었던 거겠지.”
에이미는 씁쓸했다.
“지금이 오메가 999년이지?”
“응. 아마도 100퍼센트에 가까운 99.9퍼센트일 거야. 바깥 세계에 진입하기 직전이니까.”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게 끝나는 거였구나. 인간의 삶도 이 우주도, 바깥 세계를 여는 순간…….”
“율법의 판단일 뿐이야.”
시로네가 말했다.
“프로그램의 연산에 불과하다고. 이 세계를 결정하는 건 어디까지나 인간이야.”
신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이카엘 또한 거핀을 통해 마음을 믿지만 신의 피조물로서 갈등이 생겼다.
‘인간의 마음 또한 프로그램일지도 모른다. 아직은 누구도 알 수 없는 일.’
바깥 세계에 가기 전까지는.
‘어쨌거나 결국 인류가 여기까지 왔구나. 정말로 바깥 세계의 문턱 앞까지.’
야훼의 등장.
무한 개수의 다중 우주를 전부 들여다보아도 극히 드문 사건일 터였다.
시로네는 태양을 노려보았다.
‘이곳에 오기까지 우주는 정말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바깥 세계, 허수의 시간이 흐르는 곳에서 이곳을 보게 된다면…….’
이 모든 사건도 찰나의 오류일 뿐.
따라서 신은 시로네가 도달한 수십억 년의 여정을 이제 막 발견한 셈이다.
‘야훼 따위, 그저 오류라고 생각하겠지. 여태까지 소멸시킨 수많은 세계 중의 하나라고.’
과연 그럴까?
맥클라인 거핀, 마음을 가진 신이 광자계 바깥에서 쏘아 보낸 유일한 신호.
‘헥사.’
인간을, 마음을 관철시킬 것이다.
***
엘리키아의 빛을 통해 성전은 하비츠가 스모도를 죽인 사실을 깨달았다.
즉, 앞으로 1시간의 유예.
그사이에 각국의 관리들은 파라스의 국왕 키트라의 사망 여부를 확인했다.
국제재판부의 미토 시라노가 공증하는 가운데 파라스 쪽에서 관을 열었다.
“직접 확인하시죠.”
키트라는 평온하게 눈을 감고 있었고, 목에 감긴 독사가 혀를 날름거렸다.
“뭐, 뭐야, 이 뱀?”
“생전에 국왕께서 아끼는 동물이었습니다. 국법에 따라 순장을 할 예정입니다.”
타국의 관습에 끼어들 생각은 없지만 시신에 손을 댈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정말 죽은 건가?’
일단 눈으로 봤을 때는 얼굴도 창백하고 폐가 움직이는 기미도 없었다.
시라노가 다가왔다.
“제가 확인하죠. 어차피 공증해야 하니.”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손을 내밀자 독사가 송곳니로 그녀의 손등을 깨물었다.
“히익!”
관리들이 물러섰으나, 시라노는 표정의 변화 없이 경동맥을 짚었다.
‘심장이 뛰지 않아.’
뱀이 여러 번 손등을 물었다.
키익! 키익!
늪색 마녀라는 별칭답게 독사의 독은 그녀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했다.
손등을 혀로 핥은 그녀가 공표했다.
“사망 확인했습니다. 의심쩍은 분들은 직접 하세요. 나중에 딴소리 마시고.”
“흠흠.”
나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자 파라스의 관리가 관 뚜껑을 닫으며 말했다.
“곧 권한 대행이 결정될 겁니다. 그때 투표권을 받을 테니, 처리해 주십시오.”
“그러죠. 가급적 빨리 하는 게 좋을 거예요. 1시간 후에 성전 긴급 회담이 열린다고 하더군요.”
하비츠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인부들이 관을 들고 섹터로 되돌아가는 모습을 시라노는 찝찝하게 쳐다보았다.
‘살을 맞아 죽었다고?’
연로한 케시아의 국왕을 제외하면 발칸도 진강도 즉사할 정도의 충격은 아니었다.
‘뭐, 나는 확인했으니까.’
적어도 공식적으로 키트라는 사망했다.
***
케시아 섹터.
세리엘을 자신의 방으로 데려온 페르미는 정리된 서류철을 내밀었다.
“자, 엔젤 제조법.”
묵묵히 그것을 받아 든 세리엘은 서류를 넘기며 내용을 확인하는 척했다.
‘이것 때문에 온 게 아닌데.’
아침에 봤던 페르미의 표정, 그리고 뒤늦게 전해 들은 국왕의 사망 사건.
“괜찮아?”
세리엘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페르미는 의자에 힘없이 앉아 있었다.
“뭐가?”
“너무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어. 불과 몇 시간 만에 사람이 죽고, 테러가 일어나고.”
“아, 테러.”
거기까지 생각했었지.
“난 도무지 모르겠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혼란스러울 뿐이야.”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페르미가 말했다.
“인간이 움직이는 이유는 딱 하나야. 욕망. 누군가는 돈을, 누군가는 권력을, 누군가는 쾌락을.”
“인류는?”
세리엘이 물었다.
“지옥으로 변해 가는 세상은? 그 안에서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들은?”
“애초에…… 그런 걸 생각하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잖아, 우린. 그저 살아가는 거야. 인간에게 의미를 부여하게 되면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어.”
“그렇지 않아.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어. 성전 앞에서 데모를…….”
“당연하지. 그게 정치인이 바라는 거니까.”
“뭐?”
“자금 순환의 기본 전략. 국민이 돈을 펑펑 쓰는 경우는 두 가지야. 첫째, 돈이 많아지거나. 둘째, 열 받아서 뚜껑이 열리거나.”
“…….”
“정치인은 경제의 주체가 아니야. 기업에 기생해서 돈을 빨아먹지. 그런데 기업은 국민들에게서 돈을 끌어모아야 하거든. 그럼 정치인은 어떻게 해야 되겠어? 최대한 국민들을 열 받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야.”
페르미가 목젖 아래를 톡톡 두드렸다.
“숨이 딱 넘어가기 직전까지만 삶을 팍팍하게 만드는 거지. 선을 넘으면 폭동이지만, 선만 넘지 않으면 자금을 푸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야. 삶의 질을 전반적으로 악화시키면 쓸데없는 소비가 증가하니까.”
세리엘의 슬픈 표정에 한숨이 나왔다.
“신경 꺼. 너는 할 일을 하면 되는 거야. 약을 만들고, 환자들을 구해. 혹여라도 정치인하고 얽히지 말고. 네가 인간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한, 저 짐승들은 못 이겨.”
“너는?”
세리엘이 물었다.
“너도 인간에게 특별한 게 없다고 생각해?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동물, 그게 전부야?”
‘영감님.’
유능하다는 것은, 원하는 결과를 얻기까지 참고 또 참을 수 있다는 뜻이기에.
“…….”
페르미는 침묵했다.
반면 이미 대답을 들었다고 생각한 세리엘은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돌아갔다.
“갈게. 잘 지내.”
아마도 위로를 해 주러 왔을 터.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페르미가 충동적으로 의자에서 일어섰다.
“잠깐만.”
뒤에서 끌어안자 세리엘의 어깨가 흠칫했다.
“뭐, 뭐야?”
“그냥…… 잠깐만 있다가 가.”
물론 페르미를 위로할 생각으로 따라왔지만 여기까지 각오한 건 아니었다.
“이러지 마.”
세리엘이 주먹을 쥐고 말했다.
“한 번은 실수지만 두 번은 돌이킬 수 없어. 너, 똑똑한 놈이잖아. 모든 걸 망치게 될 거야.”
“……항상 멍청할 수는 있어도, 항상 똑똑할 수는 없지. 너도 알겠지만 난 지금 바보가 된 기분이야.”
학창 시절의 그때처럼.
“나는 싫어. 그럴 기분도 아니고, 너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아. 가게 해 줘.”
“그럼 가. 가면 되잖아. 내 손을 풀고, 이 방을 나가면 되는 거야. 똑똑하잖아, 너도.”
세리엘은 입술을 깨물었다.
엄청난 심적 갈등이 폭풍처럼 휘몰아쳤으나 결국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이젠 나도 몰라.’
몸을 돌린 세리엘이 키스하자 페르미가 그녀를 붙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회포는 간결했으나 나란히 드러누운 두 사람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세리엘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
“미친……놈.”
“그렇게 좋았어?”
벌떡 상체를 일으킨 그녀가 페르미를 노려보았다.
“농담할 때가 아니야! 우리가 아직도 실수할 나이인 줄 알아? 이런 식의 불장난은……!”
“불장난 아니야.”
페르미가 말했다.
“아니라고. 지금은 물론 그때도.”
진심을 느낀 세리엘이 표정을 풀고 물었다.
“그렇다면 말해 줘.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네가 원하는 게 뭐야?”
“…….”
“나에게도 말해 줄 수 없어? 내가 도울게. 절대로 너를 배신하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