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49
언제 봐도 놀라운 위력이었으나, 지금의 마족은 여느 때하고는 달랐다.
“크으으으!”
거대한 크레이터 안에서 아직 생존한 수많은 마족들이 얼굴을 드러냈다.
‘이 정도인가?’
“야훼, 죽여 버리겠다.”
흙무더기를 파헤치며 기어오는 마족들의 모습에 시로네는 눈을 감았다.
“후우.”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너를 죽…….”
조금 전과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빛의 구체가 하늘을 가득 채웠다.
“아, 안 돼!”
마치 아침에 동이 터 오듯이, 후이그 점령지의 지평선이 밝게 부풀어 올랐다.
“진격! 진격하라!”
상아탑 주위에는 블리자드가 깔려 있었으나 강해진 마족들은 거침이 없었다.
대략 20만의 마족, 가장 약한 병사도 기존 중대장급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좁은 입구로 마족들이 침투하는 가운데, 태성과 씽은 여전히 미동이 없었다.
씽을 보좌하는 4성급 주민 음지와 양지는, 아래층의 상황을 감각으로 느꼈다.
“씽 님, 이대로는 위험합니다.”
율법부와 균형부의 별들이 지키고 있지만 마족의 세력이 너무 강력했다.
태성이 말했다.
“씽, 이제 그만 오해를 풀어요. 이대로는 상아탑이 전복되고 말 것입니다.”
씽도 알고 있었다.
‘시로네, 너도 같은 생각이냐?’
씽이 움직이지 않는 한 태성도 율법의 힘에 의해 움직이지 못할 터였다.
“어째서죠?”
태성이 물었다.
“당신은 아무것도 이룰 수 없어요. 나를 구속하는 건 명분 없는 아집일 뿐입니다.”
“맞아.”
별과 주민들이 뜻을 모아 주기는 했으나 결국 관철시키는 건 씽 본인이었다.
“내가 틀린 걸 수도 있지. 부정하지 않겠어. 하지만 나는 알아. 내가 여기서 물러서면, 나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걸.”
만약 자신이 옳다면…….
‘99.99퍼센트가 틀렸고, 내가 옳은 것이라면. 내가 마음을 바꾸는 순간 모든 게 끝난다면.’
씽이 말했다.
“같이 죽자, 태성. 나는 이미 각오했으니.”
태성의 눈이 슬픔에 잠겼다.
“올라가! 숫자로 밀어붙여!”
마족들은 23층에서 상아탑의 별들을 상대로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아르테가 부채를 휘두르자 거대한 강풍이 철벽처럼 마족들을 밀어냈다.
“크으으으으!”
하지만 연속으로 마법을 시전하는 아르테의 정신력도 거의 한계에 도달했다.
“10분 이상은 버틸 수 없습니다. 그 안에 무슨 수를 쓰지 않으면…….”
상아탑이 전복된다.
“멍청한 놈들! 조만간 더 많은 마족들이 몰려들 것이다! 너희들은 패한 거야!”
전쟁에서 승패는 일상다반사지만, 지금의 패배는 인류에 있어 중요했다.
‘악이 더 이상 악이 아니게 된다.’
아르테는 이를 악물었다.
“풍라.”
23층의 대기가 날카롭게 회전하며 마족들의 살점을 갈기갈기 찢었다.
“강의剛毅.”
그 순간 아르테는 마법은 물론 자신의 정신이 둘로 쪼개지는 기분을 느꼈다.
“크윽!”
그가 휘청거리는 것과 동시에 엄청난 검의 기운이 대지를 긁으며 밀려들었다.
흑강시가 아르테를 끌어당기고, 벽에 23층의 높이를 전부 차지하는 금이 갔다.
마족들이 멍한 표정으로 몸을 돌린 곳에 제1군단장 바알이 걸어오고 있었다.
“군단장님!”
군대가 그에게 무릎을 꿇는 모습을 지켜보며 흑강시는 입술을 깨물었다.
‘빌어먹을.’
대대장이 사단장급이 된 상황에서, 군단장은 대체 무엇이 되어 있을까?
“물러서라.”
바알이 상아탑의 별에게 말했다.
“길을 열어라. 너희들은 나를 이길 수 없어. 나는 태성하고 담판을 지을 거다.”
탄주라가 물었다.
“우리가 비켜 줄 거라 생각하오?”
“내가 너희들의 목숨을 가지고 협박하는 거라고 생각하나? 천만에. 이건 마지막 기회다. 내가 마계를 열지 않고 타협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데들리 크로스.’
바알이 마계를 여는 순간 상아탑이 아닌, 인류 전체가 멸망할 터였다.
“악의 교전이로군.”
하지만 바알의 협박은 상아탑 별들의 마음을 오히려 차갑게 만들었다.
“지성은 협박에 굴하지 않소. 인류가 멸망하든, 우주가 파괴되든…….”
탄주라가 몸을 날렸다.
“옳은 것은, 옳은 것이기 때문이오.”
일벌백계.
“옳음을 부정한 죄. 사형.”
바알이 율법에 감금되고, 측면에서 달려온 위성 대호가 작두를 시전했다.
“크크.”
다음 순간 모두가 본 것은 반으로 쪼개진 탄주라와 대호의 시체였다.
“지성은 죽었다.”
칼날을 옆으로 늘어뜨린 바알이 입구를 막고 있는 별들에게 물었다.
“반박할 테냐?”
“…….”
후이그 점령지에서 엄청난 속도로 날아온 시로네가 눈을 번쩍 떴다.
상아탑을 중심으로 마족들이 바다를 방불케 할 정도로 모여들고 있었다.
미네르바가 제트를 타고 다가왔다.
“입구가 막혔어!”
마족들은 내구력부터 달라졌기에, 물리력으로 뚫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태성, 조금만 더 버텨요.’
사법 광륜 아타락시아를 펼친 시로네가 육탄계를 발동하며 지상으로 쇄도했다.
“저 미친놈이!”
미네르바가 방향을 트는 것과 동시에 시로네는 마족의 한복판에 추락했다.
“뭐, 뭐야?”
야훼라는 것을 깨달은 악마들이 의기양양하게 송곳니를 드러냈으나.
“후우우우.”
빛의 숨결을 뿜어내는 시로네의 얼굴을 보고 이내 창백하게 질렸다.
“비켜.”
누군가를 지칭한 건 아니지만, 마족들은 세계가 좌우로 벌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사건의 의미 (2)
***
시로네 일행이 태양의 대류층에 도착하자 화염이 뭉치며 피닉스가 탄생했다.
행성의 피닉스도 강력하지만 장소가 태양이라면 아예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결국 왔구나.”
불사조가 뿜어내는 항성 에너지에 미라클 스트림의 직경이 1미터나 줄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이카엘이여.”
일행은 울티마로, 이데아로, 정신체로 피닉스의 언어를 받아들였다.
이카엘이 말했다.
“사티엘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어리석은 짓이다. 전체의 규율에 대항할 수 있는 건 없어.”
“해 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이지요. 설령 이 우주가 소멸한다고 해도, 마음만은 남을 겁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좋을 대로 하거라. 너의 안식처이니. 하지만 인간은 코어에 갈 수 없다. 아니, 애초에 어떻게 여기에 있을 수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빛에 휩싸인 남자와 나신의 여자를 돌아본 피닉스가 불꽃을 폭발시켰다.
“떠나라!”
미라클 스트림으로 방어막을 치고 있음에도 시로네는 정신이 아찔했다.
‘엄청난 에너지다.’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에이미가 장막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눈이 멀고도 남을 빛이 쏘아지고, 그녀의 육체가 다시 불타올랐다.
피닉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빛의 어머니. 어떻게 인간이 신호의 원천에 도달할 수 있단 말인가. 불가능한 일이다.”
“가세요, 이카엘.”
에이미가 천천히 떠오르며 말했다.
“여긴 제가 맡겠습니다.”
잠시 갈등하던 이카엘이 각오를 굳힌 듯 미라클 스트림의 장막을 벗어났다.
“흡!”
촛불처럼 육체가 꺼지고, 태양의 불꽃에서 그녀의 정신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미안합니다, 태양의 성모여. 저는 사티엘을 이대로 소멸시킬 수 없습니다. 그게 마음이에요.”
에이미를 노려보며 피닉스가 말했다.
“소용없는 일이다. 너희들은 신을 설득할 수 없어. 어떤 존재도 할 수 없는 일이야.”
“…….”
침묵으로 대답한 이카엘은 허리를 굽히며 태양의 코어로 스며들었다.
“그래, 불의 이데아를 가진 인간이여.”
피닉스가 상체를 꼿꼿이 세웠다.
“라에 올 자격이 있음은 알겠다. 하지만 결국 나를 넘을 수는 없음이라.”
“과연 그럴까?”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에이미의 화염이 가장 밝은 백광으로 변했다.
시로네는 입술을 깨물었다.
‘직경 6미터.’
태양의 가혹한 환경 속에서 구사할 수 있는 헥사의 범위는 육탄전에 가까울 터.
‘지금은 기회를 엿보는 수밖에 없어.’
그때 덩치를 어마어마하게 키운 피닉스가 에이미에게 화살처럼 쇄도했다.
“소멸하라!”
형태가 붕괴될 정도로 충돌하는 것과 동시에 강력한 충격파가 시로네를 덮쳤다.
한편, 태양의 코어에 스며든 사티엘과 레이엘은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크으으으!”
우주의 순행을 되돌리려고 할 때마다 정신체가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어째서…….”
사티엘이 절규했다.
“왜 우리를 부정하는 겁니까! 왜! 왜!”
앙케 라로 대변되는 신의 실체는 한 번도 그들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존재합니까?”
신의 권위를 위해.
인간이 신에 도달하는 순간 인과는 역전되고, 창조와 피조의 위상은 바뀐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야훼라는 오류 하나 때문에 우주의 모든 기준을 바꾸는 것에 무슨 권위가 있는가?
‘당신이 만든 우리는 무엇입니까? 대천사의 고귀한 개념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당신이 만든 세계, 당신이 정한 규칙, 창조에 대한 책임감은 조금도 없습니까?’
신은 마음이 없다.
허수의 입장에서 프로그램에 따라 오류를 제거하는 차가운 존재인 것이다.
이카엘이 복사층을 뚫고 들어왔다.
“사티엘.”
정신체로 스며든 상태였기에 감정을 감출 수 있는 어떤 방법도 없었다.
“이제 그만해요. 인간이 되는 겁니다. 당신도, 나도, 인간이 되는 거예요.”
“다른 천사들은!”
사티엘의 눈에 독기가 차올랐다.
“항상 너만 생각하지! 마음이 없는 다른 천사들은? 인간들에게 이용만 당할 거야!”
“사티엘, 그건…….”
“막아!”
레이엘의 정신체가 이카엘을 치받자 수많은 신호가 복잡하게 교차했다.
“죄송합니다, 이카엘 님. 어쩔 수 없어요. 이대로 인간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대로는 율법의 수레바퀴에 끼어 으스러질 겁니다. 야훼가 아니면 버틸 수 없어요.”
“하하! 그렇겠지!”
사티엘의 눈에 독기가 차올랐다.
“거핀, 그 하등한 인간과 더러운 짓을 한 주제에! 우리를 너랑 똑같이 보지 마!”
“사티엘, 당신의 행동도 천사들을 위한 건 아니에요. 당신은 그저 힘을 얻어 나에게 복수하려고…….”
“그게 뭐어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