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52
쿵 하고 벽에 처박히자 빛의 연기가 점차 손의 형태로 변해 그를 짓눌렀다.
“헛소리하지 마. 나는 오류가 아니야. 내가 있는 한 베론 문제는 여전히 유효해.”
절대로 틀릴 수 없기 때문에.
“…….”
유프라는 말이 없었다.
신은 율법으로 그를 조작했지만 본질을 해석할 능력까지 갖춘 것은 아니었다.
“야훼.”
유프라의 눈에서 빛이 꺼졌다.
“너는 오류다.”
마치 기계가 작동을 멈춘 것처럼 그의 고개가 완전히 아래로 떨어졌다.
‘사망.’
아니, 접속 차단인가.
핸드 오브 갓을 소멸시키자 유프라의 육체가 서 있는 상태로 쓰러졌다.
오파츠의 결과를 눈으로 확인한 시로네는 쓰러진 글렌에게 시선을 돌렸다.
“글렌을 구해 주세요. 제발…….”
‘오파츠가 아니야.’
직전까지 갔겠지만, 루키아의 등장으로 완전히 마음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일단 볼게요.”
악마의 왼손에 관절이 뒤틀렸으나 손을 빨리 뗀 덕분에 부러진 곳은 없었다.
미라클 스트림으로 원기를 회복시킨 시로네는 아가페의 빛을 밀어 넣었다.
“크으으으! 죽인다, 루키아. 널 죽일 거야.”
시로네가 고개를 저었다.
“야훼라고 해도 글렌 씨의 원인까지 바꿀 수는 없어요. 그는 수많은 사건을 경험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의지로 이 상태에 도달한 겁니다.”
여전히 마음의 힘을 믿는 시로네는 신에게 조종당했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모조리 부정하는 건 힘든 일이죠. 하지만 결국 마음을 바꿀 수 있는 건 자기 자신이에요. 글렌 씨를 믿는 수밖에 없어요.”
루키아는 눈물을 흘렸다.
“나도 봤어요. 글렌의 과거를, 막시무스 대사제님이 나를 어떤 감정으로 대했는지.”
시로네는 천국의 마을에서 막시무스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랬군요. 이제는 모르겠어요. 글렌을 믿었는데. 사랑이라는 거, 마냥 아름다운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아름다운 겁니다.”
시로네가 글렌을 부축하며 말했다.
“그 감정의 이름이 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그것을 관철시키는 마음이죠.”
“관철시키는 마음…….”
“정말로 글렌 씨를 사랑한다면 포기하지 마세요. 그러면 그것이 무엇이든, 아름다울 테니까요.”
“…….”
뭔가를 깨달은 루키아가 일어났다.
“이제 알았어요, 제가 글렌이나 유프라 씨처럼 되지 않은 이유를. 전 이곳에 와야 했던 거예요.”
‘그러고 보니…….’
피라미드 안에서 사건의 중첩이 일어났지만, 루키아는 원인이 바뀌지 않았다.
“그렇구나.”
이유는 하나였다.
“신에게 루키아 씨는 이미 완성된 결과인 거예요. 아레스 씨를 만난 것도, 글렌 씨가 당신을 이곳으로 데려온 것도 모두 우연이 아닌 거죠. 하지만…… 왜일까요?”
어째서 신은 루키아가 필요했을까?
“악마의 왼손.”
신의 오른손으로 이적을 행하던 그녀에게 찾아온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루키아가 소리쳤다.
“신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뭔지 알 것 같아요! 사람들을 찾아 주세요!”
신이 시로네를 이곳에 부른 이유일 터였다.
‘나 또한 도구로 쓰겠다는 거겠지. 하지만 당신 계산대로 되지는 않을 거야.’
환청이 들리는 듯했다.
-끔찍한 진실에서 너 자신을 구원하라.
“좋아요, 출발하죠.”
시로네의 뒤를 따라가며, 루키아는 의식을 잃은 글렌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어. 네가 해야 돼, 글렌. 나도 흔들리지 않을 테니까.’
그린 오션.
페어리의 침공에 맞서는 엘프의 무기는 천연의 대자연, 수해 그 자체였다.
거목들이 채찍처럼 가지를 휘두르고 바위 골렘이 작은 몸을 짓밟았다.
쿠우우우웅!
끔찍한 소리에 페어리 부대가 주춤했다.
“쳇! 저항이 만만치 않은데.”
“이 정도는 예상했잖아. 그보다 우리는 실험체를 잡는 데 주력해야 돼.”
크라운은 엘프를 원했다.
“그것도 이 요상한 숲을 뚫었을 때의 얘기지. 비겁한 놈들. 대자연 뒤에 숨다니.”
“화족인지 뭔지,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 수해 전체를 통제하고 있다고.”
그때 웅장한 바이브레이션이 들렸다.
“아직인가?”
페어리들이 돌아보니 파괴의 대천사 유리엘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아, 대천사님.”
그가 극락곤을 돌리며 말했다.
“물러서라.”
대답을 듣기도 전에 숲으로 돌진한 유리엘이 극락곤으로 땅을 내리쳤다.
‘천보륜.’
숲의 반경 수백 미터가 폭발했다.
“흐으으윽!”
화족의 수장 프로테아가 몸을 웅크리는 것과 동시에 지진파가 도달했다.
엘프의 수장 에녹스가 다가왔다.
“어떻게 된 거지?”
“소세계창유가 잠시 끊어졌습니다. 대천사의 힘은 너무나도 흉악하군요.”
화족은 마족 전쟁에서 대부분 사망했고 십수 명만이 명맥을 이어 가고 있었다.
강을 통제해 숲의 불을 진화하던 플라리노가 절망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대로는 밀리고 말 겁니다. 어찌하여 야훼께서는 오시지 않는 건가요? 정녕 우리들은…… 인간의 삶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다, 플라리노.”
에녹스가 말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구원해야 한다. 인간처럼 싸우고 투쟁하는 마음, 그 마음이 없다면 야훼께서 오신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어. 결국 가축이 되겠지.”
“하지만…….”
“인간도 두려웠을 것이다. 인간도 고통스러웠을 것이야. 그걸 넘어서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어.”
세계의 중심에.
“자! 나가자, 엘프들이여! 언제까지 페어리에게 비겁자란 오명을 들을 것인가!”
300명의 엘프들이 눈빛으로 동의했다.
“전군 출……!”
에녹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청난 충격파가 100미터 앞까지 밀려들었다.
“크윽!”
바람의 마법으로 먼지를 날려 버리자, 거구의 유리엘이 다가오고 있었다.
‘엄청난 힘…….’
의지를 가진 자 중에서는 아마도 우주를 통틀어 손에 꼽히는 무력일 터.
“어째서 종의 대결에 끼어듭니까?”
야훼가 그렇듯, 대천사 또한 엘프와 페어리의 대결에 간섭할 이유가 없다.
“글쎄.”
유리엘이 하체를 굽혔다.
“나 또한 하나의 종이기 때문일까?”
단지 자세를 낮춘 것만으로도 마치 폭발을 보는 것 같은 힘이 느껴졌다.
엘프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가운데 에녹스 또한 정신이 아찔했다.
“전쟁을 끝내지.”
페어리들이 소리쳤다.
“유리엘 님! 엘프들은 살려 둬야……!”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유리엘은 극락곤을 휘돌리며 돌진하고 있었다.
‘끝인가…….’
에녹스가 절망에 잠기는 그때 한 남자가 유리엘의 측면을 그대로 치받았다.
쾅 소리를 내며 유리엘이 날아가자 엘프와 페어리의 표정이 멍해졌다.
“……당신은?”
회색 코트를 입은 미남자, 곱슬머리에 강철로 만든 눈동자가 특이했다.
“금룡 메티라.”
이어서 파공음이 들리더니 남은 12사도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착지했다.
“아아.”
에녹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래, 야훼께서는 우릴 버리신 게 아니야.’
독룡 포이네가 눈웃음을 지었다.
“종의 운명을 걸고 싸우는 곳에 다른 종이 끼어드는 건 반칙이지. 그렇지 않소, 유리엘?”
쿵쿵 땅을 울리며 그가 걸어왔다.
“불청객이군.”
12사도의 중앙에 앉아 있는 금발 소년, 광룡 페이톤이 입가를 찢었다.
“왜? 갑자기 후달리냐? 걱정하지 마라. 너 정도는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
“12분의 1이라.”
유리엘이 오른팔을 들었다.
“팔 하나로 싸우면 균형이 맞겠군. 원한다면 극락곤도 빼 줄 수 있는데.”
“흐흐흐! 흐흐흐흐!”
웃는 표정으로 굳어 버린 페이톤의 얼굴 반쪽이 용의 형태로 변화했다.
“너, 이리 와 봐, 새끼야.”
유리엘이 네가 오라는 듯 손을 까닥거리자 소년의 눈에서 광채가 뿜어졌다.
“이런 씨……!”
페이톤이 몸을 날리기도 전에 화룡 인페르커스가 유리엘에게 쇄도했다.
“좀 맞자.”
가죽 타이즈를 입은 그녀의 몸이 불타더니 장내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물의 마법을 시전한 에녹스가 이를 악물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엘프와 페어리의 전쟁은.
이 전쟁에서 승리한 쪽이 인류에 흡수되고, 세계의 미래를 바꾸게 될 터.
‘누가 관철시킬 것인가.’
종족 전쟁의 결과물은 지금도 율법의 여과기를 거쳐 정보의 종착지에 쌓이고 있었다.
아포칼립스.
갑자기 대지가 흔들리는 현상에 시로네 채굴 팀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뭐야?”
강도는 세지 않았으나 세계 전체가 바뀌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진동이었다.
“시로네! 이거!”
마르샤가 손에 들고 있던 유물에 녹이 슬더니 빠르게 낡아 가기 시작했다.
“새로운 미래가 쌓이고 있어. 엄청난 속도야.”
시로네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만큼 율법의 변화가 급격하다는 뜻이야. 어떤 큰 변수가 적용된 것인가?’
시간의 퇴적작용.
현재의 사건들이 전부 과거로 밀려나는 상황에서 채굴 팀은 바짝 긴장했다.
“끝, 끝났나?”
지진이 일어나기 전과 전혀 다른 아포칼립스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깨끗하다.”
건물 잔해로 너저분했던 풍경 대신 최첨단 기계식 도시가 세워져 있었다.
마르샤가 물었다.
“그래서 누가 이긴 거야? 엘프? 페어리? 이 도시를 세운 자가 누구냐고?”
건물 사이에서 일곱 기의 안드로이드가 나왔다.
“어?”
계란형 두상에 전면에는 검은 액정, 몸체는 은빛을 내는 금속 재질이었다.
‘마치 하이 기어 같군.’
모두 똑같은 승려복을 입고 있었고 목과 손에 전자 염주가 채워져 있었다.
“중생 발견.”
안드로이드가 동시에 돌아섰다.
“쳇! 들켰어.”
앵무 용병단이 경계하는 가운데 안드로이드의 액정에 범어가 세로로 질주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시로네는 그들의 차가운 기계음보다 액정에 적힌 깨달음의 깊이에 놀랐다.
‘부처?’
마르샤가 뭐 마려운 사람처럼 물었다.
“시로네, 이거 적이지? 응? 제발 적이라고 해 줘. 그래야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지.”
“색즉시공. 공즉시색.”
인류 최종 진화 단계-파이널 타입 제트(Z).
인류의 종착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