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53
아포칼립스의 채굴 팀은 안드로이드를 눈앞에 두고 피아를 식별하지 못했다.
“너희들은 뭐야? 인간이야, 기계야?”
“우리는 제트.”
선두의 안드로이드가 말했다.
“우주의 원리를 깨달은 자들. 그 어떤 번뇌도 없는 완전무결한 존재이니라.”
“도망쳐요.”
시로네가 말하는 순간 스스로를 제트라 칭한 자들이 반장半掌의 자세를 취했다.
“중생구제.”
안면에 범어가 새겨지자 그들의 주위로 범어가 새겨진 금속 구체가 탄생했다.
‘탄화彈化.’
기계가 생물에게 관철시키는 방법이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섬광처럼 튀어 나간 구체가 전방을 폭격하자 폭발의 굉음이 도시를 수놓았다.
“크윽!”
미라클 스트림 뒤에 숨은 채굴 팀은 실금조차 없는 바닥을 보고 놀랐다.
“제길! 대체 뭐로 만들어진 거야?”
“율법.”
시로네가 말했다.
“여긴 율법으로 관철된 도시예요. 우리의 마음이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어쩌면 완전무결한.
“가세요.”
시로네는 핸드 오브 갓을 시전했다.
“저들은 제가 막을 테니, 정보를 채굴하세요. 반드시 원인을 알아야 합니다.”
마르샤가 말했다.
“하지만 어떻게? 이 세계에는 더 이상 유물이 없어. 깨끗하게 청소됐다고.”
마르샤가 가지고 있던 유물도 이미 먼지가 되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율법이니 데이터베이스가 있을 거예요. 메인 시스템을 찾아서 해킹하세요.”
마르샤가 황당하게 물었다.
“저거 부처잖아? 그러니까 지금…… 우리더러 부처를 해킹하라는 거야?”
“…….”
안면 액정에 범어를 출력하는 제트들이 시로네의 핸드 오브 갓을 분석했다.
“번뇌의 극치.”
선두의 제트가 말했다.
“고통받는 중생이여, 우리를 따라오라. 번뇌는 무지에서 비롯되는 법이니, 온 우주의 이치를 깨닫고 의문을 없애면 번뇌도 사라질 것이다.”
“나도 기계로 만들려고?”
“생과 사의 경계를 만드는 것도 집착일 뿐. 너는 그저 단 하나의 진리를 받아들이면 된다.”
하나의 진리.
‘역시 통합된 것은 마음이 아닌 율법이야.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 눈앞에 펼쳐진 세계라면…….’
신이 이긴 것이다.
‘아니, 결정된 것은 없어.’
5대 시스템의 어떤 곳에서든 변수가 생기면 아포칼립스도 달라지게 될 터.
‘율법의 정점에 도달한 세계라면 당장 데이터베이스를 해킹하는 건 어렵겠지만…….’
시로네 스피어가 완성된다면, 12사도가 승리한다면, 이면 세계가 정화된다면.
‘혹은 그 무엇이든!’
시로네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어. 인간은, 인류는 반드시 율법을 딛고 일어설 거야.”
“욕망은 고통을 낳을 뿐이다. 존재의 집착에서 벗어나 극락왕생의 문을 열어라.”
말투는 인자했으나 제트의 주위에는 흉악한 율법을 담은 탄들이 탄생했다.
“고집멸도.”
도주하는 채굴 팀의 뒤를 가로막은 시로네가 핸드 오브 갓으로 탄을 튕겨 냈다.
펑! 펑! 펑! 펑!
율법이 폭발할 때마다 정신이 아찔했다.
‘엄청나다.’
파계를 택한 나네만큼은 아니지만 기계의 깨달음은 그 자체로 강력했다.
마음의 기술로 공격을 막아 내자 제트들은 침묵의 시간으로 감정을 표현했다.
“……중생의 왕이여.”
액정을 가득 채우는 하나의 범어.
“옴.”
건물 사이사이에서 같은 문자를 출력한 제트들이 저음을 내며 밀려들었다.
“오오오오오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숫자에 시로네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오래 버티지는 못하겠는데.’
***
기스의 기자회견 시간이 다가오자 델타 앞의 시위 소리는 더욱 거세졌다.
“자이브의 국왕 기스는 사퇴하라!”
“시민의 세금으로 타락한 짓을 저지르는 지배자를 끌어내라! 끌어내라!”
온갖 소리들이 메아리치는 가운데 기스는 직무실의 창문 앞에 서 있었다.
“거지 같은 자식들!”
턱을 치켜들고 이를 악물고 있는 그는 오른손으로 수음을 하는 중이었다.
“더 지껄여 봐, 응? 날 더 흥분시켜 보라고.”
기자회견 자료를 검토하고 있던 마이런이 안경을 매만지며 다가왔다.
“초안이 작성되었습니다. 확인해 주시죠.”
“하악! 하악!”
거친 숨을 내쉬며 상체를 흔들던 그는 마이런이 내민 서류를 거칠게 낚아챘다.
“에이, 씨! 좀 흔들어 봐.”
“아, 네.”
마이런이 기스의 손을 대신하는 동안 뱀처럼 예리한 눈이 내용을 훑었다.
“뭐야, 이거? 초안 누가 작성했어?”
“비서실…….”
“아니, 됐고. 이게 말이 되냐? 딸의 죽음을 말하면서 눈물을 흘리라는 게?”
“감수성을 자극해서…….”
“누가 그걸 모르냐고! 너무 작위적이잖아! 요즘 시민들이 눈치가 얼마나 빠른 줄 알아?”
기스가 서류를 탁탁 쳤다.
“누가 됐든 기자 놈이 물어볼 거 아냐. 그때 갑자기 울컥 하면서…… 어? 왜 이렇게 시대의 흐름을 못 읽냐. 그러니까 네가 출세를 못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자식을 잃은 고통은 세상 그 어떤 것과도, 이 문장도 지워. 너무 공격적이야. 자식 안 죽은 부모는 서러워서 살겠냐? 꼭 새끼 뒈졌다고 유세 떠는 것 같잖아.”
“알겠습니다.”
“도치법 쓰지 말고. 말을 버벅거리는 포인트가 후반에 집중되어 있어. 좀 분산시키고…….”
기스가 책상으로 펜을 가지러 가자 마이런이 오리걸음으로 움직였다.
“됐어. 이대로 고쳐 와.”
“네.”
오른손 역할에서 해방된 그가 서류를 받자 기스는 다시 창문으로 다가갔다.
시민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국왕은 사퇴하라! 사퇴하라!”
“크크크! 짜증 나 죽겠지? 그럴수록 나는 더 해 먹을 거거든? 너희들은 이거나 먹고 떨어…… 흐윽!”
기스가 몸을 움찔움찔했다.
“크으으으!”
초안을 수정하던 마이런은 거친 신음 소리를 내는 기스의 등을 바라보았다.
‘정말 사람인가?’
얼마나 타인을 하찮게 여겨야 이런 짓을 하면서도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까?
‘동물 앞에서 옷을 벗는다고 부끄러워할 인간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스에게 인간이란…….’
가축 혹은 그 이하의 개념.
“후우, 시원하다. 수정 다 끝냈어?”
“아, 네.”
바지춤을 올리며 기스가 다가오자 마이런은 수정안을 공손히 건넸다.
“좋아, 이대로 가.”
“기자회견 10분 전입니다. 회견장으로 가셔야 합니다. 신장이 경호할 겁니다.”
델타 본청에 마련된 장소에는 기자들은 물론 각국의 요인들도 있었다.
알비노가 말했다.
“기스가 온다면 뒤처리가 끝났다는 거겠지. 여기서 다 털고 가고 싶을 테지만…….”
토르미아의 덫은 아직 건재했다.
“국왕 전하 입장이오!”
기자들이 모조리 일어선 가운데 기스가 굳은 표정으로 단상에 올라왔다.
“안녕하십니까. 수도의 시민 여러분, 귀족령의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연설이 끝나자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비밀 연회에 참석한 것이 사실입니까? 변태적인 행위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사실이 아닙니다.”
“그럼 기사가 허위라는 건가요? 사망자가 나온 사안입니다. 솔직히 밝혀 주시죠.”
“물론 연회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전에서 흔히 있는 통상적인 자리였을 뿐입니다. 성적인 접대도 없었고, 사망자라는 것도 실체가 없습니다.”
작심하고 정보를 빼돌리지 않는 한 성전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극비였다.
“정말로 하지 않았단 얘기입니까?”
“여러분, 이번 성전은 인류의 미래를 결정짓는 자리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각국의 왕들이 모여, 입에 담기도 힘든 그런 자리를 갖는 게 상식적일까요?”
모른다.
“…….”
누구도 왕이 되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레베카 공주님의 사망설이 돌고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밝혀 주실 수 있습니까?”
순간 기스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딸의 얼굴을 떠올리자 입술이 벌벌 떨리고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 왔다.
“제 딸은…… 흐윽!”
기스는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오열했다.
‘단지 그것뿐.’
알비노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감정을 이해하고 있다고 해야겠지.’
딸의 죽음에 슬픈 것은 사실일 테지만.
‘그래서 그게 뭐?’
기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자식이 죽어서, 슬퍼서, 뭐 어쩌라는 거야? 슬픈 건 슬픈 거지. 밥이라도 굶어야 되냐?’
알비노가 말했다.
“감정을 느끼지만, 딱 거기까지야. 차갑게 볼 수 있기에 이용하는 거지. 수치심도, 양심도, 심지어 자식의 사망에 대한 슬픔까지도.”
“그래서 강하죠.”
심적살인의 정점일 것이다.
“자연선택에 의해 육식동물은 송곳니를 가졌어. 인간 사회 또한 약육강식의 장이라면, 감정의 결핍은 일종의 진화로 보는 게 맞아.”
“인간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시대의 지배자들은 하나같이 잔인했으니까요.”
“그래. 동물의 진화를 촉진한 게 섭식과 번식의 문제라면 인간을 바꾸는 건 돈과 권력. 맹수의 송곳니하고는 비교가 안 되는 힘이 아니겠나? 그렇게 감정은 빠르게 거세되고, 1.5세대 인류가 탄생하는 거지.”
“결국…… 그런 자들만 남을까요?”
“글쎄. 인류의 기치에 반한다는 건 알아. 다만 1.5세대 100명과 1세대 100명을 같은 공간에 풀어놓으면 어떤 결과가 나오냐는 걸세. 1세대는 순식간에 끝장날 거야.”
부정할 수 없었다.
“감정. 그 말랑한 단어가 인간을 얼마나 나약하게 만드는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알지. 알면서도 버릴 수 없는 거야. 초식동물이 풀을 사랑하듯, 인간에게 감정은 살아가는 이유이니까. 하지만 포식자는 미각이 달라.”
“풀을 먹는, 그 동물을 먹죠.”
“그래. 지금도.”
기스가 시커먼 속마음을 감추고 말을 이었다.
“심기를 어지럽힌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합니다. 따라서 저는 지금 이 자리에서…….”
그가 허리를 굽혔다.
“정식으로 용서를 구합니다. 만회할 기회를 주신다면 성전에서 보여 드리겠습니다.”
국왕이 사과를 하는 초유의 사태에 기자들의 펜촉이 거의 날아다녔다.
알비노가 중얼거렸다.
“결정타군.”
실제로 고개를 깊이 숙이고 있는 기스는 날아갈 듯 상쾌한 기분이었다.
‘옜다, 너희들이 좋아하는 사료다. 어때? 기분 최고지? 이런 건 처음이지?’
왕이 시민에게 사과를 하다니.
‘너희들은 자존심만 좀 세워 주면 살잖아. 하지만 나는 아니거든. 세상에서 제일 비싼 것들을 모조리 가져야 해. 마음에 드는 여자는 다 차지해야 되고. 인간이 평생 벌어도 못 누리는 호사를 날마다 누려야 한다고.’
그런데 자존심?
‘헛소리하고 있네. 이 멍청이들아, 허리나 고개는 말이야, 원래부터 구부러지라고 있는 기관이야. 땅에 떨어진 걸 주울 때나 쓰는 거라고. 세 살짜리도 할 수 있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니 어쩌니…….’
너무나 쉬운 일인 것을.
‘아, 좋다.’
앞으로 다시 저들의 위에 군림할 수 있다고 생각하자 성욕이 들끓었다.
‘내가 왕이다. 전부 빼앗아 주지. 왜? 나는 그렇게 할 능력이 있으니까.’
기자가 소리쳤다.
“우롱하지 마십시오! 정치적인 제스처에 속을 만큼 시민은 우매하지 않습니다!”
다른 기자가 반박했다.
“말조심하시오! 엄연히 자이브의 국왕이십니다! 예의를 갖추어 대하시오!”
‘빨리 좀 끝내라. 돌아가서 하든가. 짜증 나게.’
조만간 기사를 접한 시민들의 반응이 들끓겠지만 기스는 신경 쓰지 않았다.
‘무슨 말이 나오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