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54
통합된 의견은 절대로 아닐 테니까.
인류의 종착지 (2)
***
화공사 시스템제어 지부.
시옥 선발 대회가 열렸던 집회장은 전투의 여파로 초토화가 되어 있었다.
손유정이 모르타싱어를 데리고 도망친 구멍을 통해 바깥의 소음이 밀려들었다.
‘흑승인가.’
사옥에 들어오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있겠지만 바깥도 안전하지는 않을 듯했다.
레테가 말했다.
“야훼여, 고집을 꺾으시죠. 최고 고객으로 대우해 주는 건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현실의 마가 증폭되면서 에이전트의 힘도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강해졌다.
관리자라고 해도 그들의 히든 코드 또한 마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었다.
“내 생각은 변하지 않아. 육뇌, 중앙 연산장치를 정화시키는 법을 말해.”
낙태당한 아이로 이루어진, 이면 세계의 카르마를 연산하는 장치였다.
“불가능하다고…….”
한숨을 내쉰 레테가 눈을 부릅떴다.
“몇 번을 말해!”
그녀의 몸에서 정화의 불꽃이 타오르자 이사진이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그렇다면 타협은 없어.”
“……좋아.”
집회장의 문이 열리고 엄청난 숫자의 마족들이 출입구를 완전히 봉쇄했다.
“오늘부로 여기는 마족의 성지가 될 거다. 야훼, 너의 무덤이 생길 테니까.”
“…….”
시간이 지날수록 마는 강해질 테고, 언젠가는 넘어설 수 없게 될 터였다.
‘방법이 있을 거야.’
레테는…… 무엇을 감추고 있는 것일까?
기관실.
에텔라는 도시 규모의 절벽 사이에 뭉쳐 있는 태아로 이루어진 뇌를 바라보았다.
‘불쌍한 아이들.’
림보에게 업은 없다.
단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무엇도 해 보지 못하고 제거당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지옥에 있는 이유는, 오직 삶에 대한 집착 때문이었다.
‘살고 싶겠지.’
하지만 이렇게 살아서 무엇을 할 것인가?
육뇌를 정화시키는 방법은 오직 하나, 그들 스스로 삶을 포기할 때뿐이었다.
‘할 수 있을까?’
저토록 살아 보려고 발버둥 치는데.
“윽.”
아랫배에 치미는 통증에 에텔라는 인상을 찡그린 채 허리를 숙였다.
‘두려워하고 있어.’
아직 씨앗처럼 작은 생명이지만, 림보가 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는 것이었다.
‘미안해.’
우리 아가.
‘엄마는 저 아이들의 원통함을 풀어 주어야 한단다. 그게 엄마가 이곳에 온 이유야.’
스승 라파엘이 샤갈을 위해 희생한 것을 통해 에텔라는 사랑을 배웠다.
‘할 수 있을 거야.’
이제는 그녀 또한 엄마이기에, 또한 배 속에 생명이 자라고 있기에…….
‘림보의 원통함을 달랠 수 있어.’
그렇게 이면 세계가 정화되면, 인간의 삶도 지금보다는 훨씬 나아지리라.
에텔라는 한 걸음을 내디뎠다.
“흐으으으.”
불길이 이글거리는 까마득한 낭떠러지를 본 순간 절로 신음 소리가 나왔다.
죽음은 두렵지 않다.
태극의 굴레로 이곳에 들어온 한, 그녀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운명.
‘저 아이들이, 저 아이들 이전에 있던 아이들이 얼마나 나를 원망할 것인가.’
낙태당한 아이들의 대모가 되어 그들 모두의 고통을 끌어안고 소멸하는 것.
‘할 수 있어. 아니, 내가 해야 하는 일이야.’
이 세상의 모든 일에 이유가 있다면, 샤갈의 아이를 가진 것도 운명일 터.
‘샤갈.’
태극의 사슬로 연결되어 있으나 샤갈은 에텔라의 감정에 응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슬에서 느껴지는 것은 반쯤 미쳐 버린 샤갈의 끝없는 분노였다.
‘당신도 불쌍한 사람이에요.’
신의 율법에 조정당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좋은 친구가 되었을 사람이었다.
‘가정은 무의미하지.’
율법은 사실 그대로를 판화처럼 찍어 버리기에.
“하지만…….”
가정하고 싶다.
‘인간은 가정할 수 있어. 모든 불확실성에 자신의 마음을 던지는 것. 그게 마음이니까.’
샤갈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생각을 안고 가는 거야.’
다시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 태아를 가진 배 속에서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다.
“흐윽!”
작은 생명은 죽고 싶지 않은 것이다.
“미안해.”
에텔라는 눈물을 흘렸다.
사랑을 깨달은 만큼 배 속에 있는 자신의 핏줄이 애달프지 않을 리가 없었다.
“널 이곳에서 살게 하지는 않을 거야.”
소멸이다.
복부의 고통보다 훨씬 큰 통증이 그녀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었으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가자꾸나.”
그러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샤갈은 뱀처럼 울부짖었다.
“키이이이!”
눈에 보이는 것은 닥치는 대로 죽이고 있는 그는 실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크크. 크크크크.”
어차피 장님이라며?
잃어버린 시간, 행복할 수도 있었던 삶, 신에게 조롱당해 은인을 죽인 원통함.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는 거야!”
인간의 감정을 압력솥에 가두어 놓고 분노를 주입하면 이렇게 될까?
목적도, 의미도 없는 살인을 이어 가는 가운데 적들의 저항이 거세졌다.
‘갑자기 강해졌어.’
한 단계?
아니, 두 단계는 초월한 듯한 위력에 샤갈의 육체에 점차 상처가 쌓여 갔다.
흥분 상태에서 통증은 없었으나, 결국 그는 힘이 빠져 자리에 쓰러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온몸에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아오, 이 미친놈.”
에이전트들이 동료들의 시체가 널브러진 곳을 지나 그에게 다가왔다.
샤갈은 이를 악물었다.
‘몸이 안 움직여.’
어떻게 힘을 줘야 하는지 잊어버린 것처럼, 근육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야, 야.”
에이전트가 발을 들어 떠밀자 샤갈의 몸이 벌러덩 옆으로 쓰러졌다.
“너, 여기가 어딘 줄 아냐? 어차피 죽지도 않지? 지옥이 어떤 곳인지 가르쳐 주마.”
“크, 크크크.”
대자로 드러누운 샤갈은 참을 수 없는 간지러움에 허파를 들썩였다.
“허허, 웃어? 그래, 실컷 웃어라. 네 얼굴을 잘라 깊은 땅속에 묻어 줄 테니까. 한 1억 년 정도 어둠 속에 있으면 잘못을 깨닫게 될 거야.”
“그래…… 그거 좋지.”
1억 년 동안 땅속에 묻혀 있으면, 가슴에 맺힌 원통함도 조금은 풀어질까?
‘다 잊어버릴 수 있을까?’
어쩌면 이게 최선일 것이다.
‘이제는 그 여자를 괴롭힐 수도 없잖아.’
과거를 알아 버렸으니.
‘크크, 좋겠군. 나 같은 쓰레기에게서 벗어나서 말이야. 그래, 영원히 땅에 묻혀 줄 테니…….’
그때였다.
비로소 이성을 찾은 샤갈은 태극의 사슬을 타고 전해지는 에텔라를 느꼈다.
‘…….’
그녀가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순간, 전신의 세포가 경련을 일으켰다.
‘뭐야?’
정말로 이게 사실인가?
태극의 사슬은 거짓을 말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안 돼.’
샤갈은 자신이 에텔라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폭풍처럼 거친 감정에 휩쓸려 막연한 무언가를 증오하며 살았을 뿐.
“하지 마.”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
그 하나의 생각이 늘 먹구름으로 가려져 있던 샤갈의 정신을 맑게 했다.
“그러지 마.”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것을.
“크크크! 이 자식, 표정 봐. 완전히 겁에 질렸는데? 하긴, 무섭기도 하겠지.”
실제로 샤갈의 얼굴에는 핏기가 없었고 입술마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아기. 배 속의 내 아기.’
쓰레기 같은 아빠와 달리 정말로 좋은 엄마 밑에서 행복하게 자랄 아이마저…….
“흐윽! 흐으으윽!”
두 눈을 질끈 감고 펑펑 눈물을 흘리는 샤갈의 귀에 관리자의 음성이 들렸다.
-남은 정화 시간 87해 2,875경 3,241조 6,301억 22만 2시간입니다.
대략 마이너스 100억 시간.
오열하는 샤갈의 모습을 지켜보던 에이전트들이 손가락질을 하며 웃었다.
“혼자 보기 아까운데? 목을 자르면 일단 벽에 걸어 두자고. 언제 땅에 묻힐지…… 컥.”
속사검이 목에 박힌 에이전트의 몸에 수십 개의 구멍이 동시에 생겼다.
“……비켜.”
흰자를 드러낸 샤갈이 돌진하자 남은 자들이 황급히 전투태세를 갖췄다.
“이 자식, 어디서 이런 힘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방에서 쏟아진 속사검이 산탄처럼 그들의 육체를 난도질했다.
“비켜어어어!”
에텔라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가는 샤갈의 근육이 툭툭 찢어지기 시작했다.
‘제발…….’
시간에 맞출 수 있기를.
에텔라는 각오를 끝냈다.
“미안해요.”
사슬을 통해 샤갈의 감정이 전달되었으나 그녀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관계는 풀려고 해 봤자 더욱 꼬이기만 하는 실타래와 같았다.
‘이게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들이 알던 시간은 리셋되었고, 배 속의 아이는 사랑의 결실이 아니었다.
“선을 위해.”
에텔라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흐르는 동안 그녀의 다리가 절벽 밖으로 나갔다.
샤갈은 사슬을 붙잡았다.
“기다려!”
온 힘을 다해 사슬을 당겼지만 누가 우선이라 할 수 없는 태극의 굴레.
그 순간, 샤갈의 눈이 커졌다.
“아, 아아…….”
벼락을 맞은 듯 온몸이 벌벌 떨리고, 힘이 풀린 두 무릎이 땅을 쿵 하고 찍었다.
“으아아아!”
-남은 정화 시간 87해 2,875경 3,241조 5,028억 7만 18시간입니다.
1,300억에 가까운 시간이 정화되었다.
“왜! 왜! 왜!”
그녀를 괴롭혔던 수많은 시간 중에, 단 한순간이라도 다정했더라면.
‘병신 같은 놈!’
아니, 헤어지기 직전에라도 미쳐 날뛰지 않고 그녀의 곁을 지켰더라면.
“아니야! 거짓말이야!”
에텔라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으아아아!”
행복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