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56
“나는 모르타싱어가 아니야! 수학도, 마법도, 과학도, 아무것도 모른단 말이야!”
시로네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도 몰라.”
“…….”
“세상을 이해하는 것을 지식이라 부른다지만, 그렇게 알고 또 알게 되어 도착한 곳은…… 결국 무지無知였어. 이 세계가 무에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시로네가 다가갔다.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게 지성이다. 아집에 사로잡히지 않고, 많은 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
모르타싱어가 그랬듯이.
“너는 가공되지 않은 원석이다. 그렇기에 나네가 이곳으로 보낸 것이겠지. 마음의 문을 열어라. 모든 가능성에 너를 맡기는 거야. 그런 다음에도 선택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옳음일 테니까.”
“진정한 옳음? 마음을 열라고? 그렇게 쉬운 거야? 내가 모든 가능성을 전부 돌아보았다면, 사람을 죽여도,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어도 옳은 게 된다는 거야?”
“그래.”
시로네가 확신을 담아 말했다.
“정말로 네가 마음을 열었다면, 진심으로 모든 가능성에 너를 맡겼다면 말이야…….”
그는 긴고아에 검지를 대었다.
“절대로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테니까.”
쨍 하는 소리를 내며 긴고아가 깨졌으나 이미 손유정은 넋을 잃고 있었다.
‘선택하지…… 않는다고?’
무엇이 옳음인가?
인류의 역사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옳음에 대해 온갖 말을 쏟아 냈지만.
‘옳음이란…….’
아무도 없는 방에 고요히 앉아, 두 눈을 감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그저 옳은 것.”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단지 현실의 참혹함에 지쳐, 인간의 잔인함에 질려, 애써 외면하고 있을 뿐.
“손유정.”
시로네가 말했다.
“너는 1명의 인간을 지옥에서 구했다. 이제 너를 구속할 이유는 없어.”
긴고아가 있던 자리를 어루만진 손유정은 고개를 들어 시로네를 눈에 담았다.
‘야훼와 부처.’
너무나도 닮은 이 두 사람은 대체 어느 지점에서 갈라지게 된 것일까?
손유정의 눈에 불이 켜졌다.
“키이이!”
시로네의 곁을 전광석화처럼 지나친 그녀가 에이전트를 여의로 강타했다.
“커억!”
여태까지 음이 소거됐던 것처럼, 전투의 소음이 화들짝 밀려들었다.
“가.”
손유정이 등을 지며 말했다.
“무엇을 하든 이놈들을 데리고는 곤란하겠지. 내가 맡을 테니까 당신은 떠나.”
“부탁해. 리안, 가자!”
시로네가 몸을 날리자 레테가 악을 질렀다.
“야훼를 잡아!”
손유정이 소리쳤다.
“모르타싱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모르타싱어가 규정외식으로 두 사람을 멀리 움직였다.
“제길! 이건 또 뭐야?”
퍼즐처럼 뒤섞인 공간이 되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야훼가 지부를 벗어난 뒤였다.
“쫓아!”
지시를 받은 에이전트가 채 10센티미터를 떠오르기도 전에 얼굴이 찌그러졌다.
“끅…….”
원통형으로 함몰된 곳에 여의의 잔상이 채워지고, 이어서 고기 다지는 소리가 들렸다.
순식간에 수십 방을 얻어맞은 에이전트의 육체는 지그재그로 꺾여 있었다.
“끄으으으.”
그가 쿵 하고 뒤로 넘어가자 증기를 내뱉은 손유정이 레테를 돌아보았다.
“가긴 어딜 가? 이제 몸 좀 풀어 보려는데.”
레테가 싸늘하게 웃었다.
“흥, 어차피 갈 곳은 한 군데뿐이야. 너희들의 사지를 뜯어 놓고 추격해 주마.”
“과연 할 수 있을까? 알고 있지? 돌원숭이는 태산에 깔려도 부서지지 않는다는 거.”
두 자루의 여의를 눈앞에 연결시킨 손유정의 몸이 금빛으로 타올랐다.
“파사현정破邪顯正.”
사악함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내는, 그녀가 추구하는 진정한 옳음이었다.
‘죄송해요. 다시는 꺾이지 않을게요.’
절단 부위가 사라지면서 하나의 여의로 재탄생하자 레테가 미간을 구렸다.
‘제천대성.’
아주 오래전, 지금과 같은 기운을 뿜으며 지옥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손유정의 얼굴이 악귀처럼 구겨졌다.
“키이이이이!”
빛의 파편이 퍼지는 것과 동시에 레테의 상체에 펑펑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그 미친 원숭이 새끼!’
엄청난 속도로 물러서고 있는 레테의 왼쪽 눈을 한 줄기 섬광이 관통했다.
인류의 종착지 (4)
***
이미르의 정신 1.5층에서 시로네는 꿈을 꾸었다.
전승몽.
꿈에서 시간은 중요하지 않지만 그가 받아들이는 데이터의 용량은 엄청났다.
그만큼 거대한 이야기.
초대 요라라고 불리는 한 남자가, 끔찍한 비극 속에서 얻은 깨달음이었다.
때는 인류가 부족 생활을 마치고 중앙집권 체제가 생기기 시작할 무렵.
“후우, 덥다.”
폭군들이 넘쳐 났고 피지배자의 삶은 시로네의 세상보다 훨씬 비참했다.
많은 철학자, 구도자가 삶에 문제를 제기하고 자신의 생각을 설파하던 시기.
“사람을 만나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스무 살의 구도자 요라한 또한 구도의 뜻을 가슴에 품고 세상을 떠돌고 있었다.
물병의 뚜껑을 연 그가 목을 쳐들었으나 떨어지는 건 고작 물 한 방울.
“쩝, 쩝.”
산길을 오르느라 갈증이 심했으나 도무지 물이 있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이거…… 잘하면 죽겠는데?”
그렇게 말하고는 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도 나 정도면 괜찮은 삶이지. 폭정에 시달리며 사는 수많은 생명이 있는데.”
전쟁, 또 전쟁.
권력자들의 야심은 끝이 없었고, 하루가 멀다 하고 타국과 충돌이 일어났다.
‘전쟁을 멈춰야 해.’
누군가는 정치 시스템을, 누군가는 자본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소수의 희생으로 지탱하는 건 한계가 있어. 모든 사람이 아주 작은 배려를 한다면, 전쟁도 멈출 거야.’
그는 인간의 마음을 믿었다.
“좋아! 가자!”
누구라도 만나야 설파할 거 아닌가?
호기롭던 산행에서 처음으로 불길한 기미를 느낀 것은 그로부터 2일이 지난 뒤였다.
“허억. 허억.”
수많은 오지를 다녔어도 이곳처럼 완전히 고립된 지역은 처음이었다.
‘여긴…… 대체 어디야?’
그 흔한 동물조차 보이지 않았고, 그저 나무와 풀 같은 것들뿐이었다.
나름 약초학을 공부했으나 처음 보는 식물이었고, 어제는 잘못 먹었다가 설사를 했다.
‘탈수가 심해지고 있어.’
정신을 잃었던 것일까?
간헐적으로 돌아오는 의식 속에서 요라한은 하루 정도를 더 보낸 듯했다.
‘이렇게 끝나는 건가?’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하고 떠나는 게 안타까웠지만 억울할 일은 아니었다.
‘누군가 있겠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무렴, 내가 뭐라고. 인기도 없었잖아.’
요라한의 꿈이 얼마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인지, 그 시대에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나른하다.’
영원한 잠을 받아들이려는 그때 풀을 밟는 소리에 이어 누군가가 불렀다.
“여기서 뭐 하세요?”
눈을 번쩍 뜬 요라한의 시야에 아름다운 성인 남녀의 얼굴이 들어왔다.
“사, 사람…….”
쉰 목이 원망스러웠다.
“사람 살려.”
시선을 교환한 남녀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다시 요라한에게 물었다.
“어떻게 살려 주는데요?”
“물, 물 좀. 마실 거…… 제발…… 부탁.”
“물? 물은 마을에 있는데.”
지금 당장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요라한이 절망에 빠진 가운데 여자가 물었다.
“못 참겠어요?”
못 참으면 어쩔 건데,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고개를 이미 끄덕이고 있었다.
“알았어요. 조금만 기다려요.”
여자가 눈을 감았다.
처음에는 명복을 빌어 주려는 것인가 생각했으나 이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사방의 나무가 흔들리더니 이파리에서 수많은 물방울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뭐지? 꿈인가?’
마법이 소수의 전유물이었던 시절이었기에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벌어진 입으로 물방울이 떨어지자 뇌가 강력한 쾌락 물질을 분비했다.
“하아. 더, 더…….”
“물을 모아서 주자.”
남자의 제안에 여자는 이파리를 모아 진흙으로 붙여 그릇을 만들었다.
“여기 있어요.”
그녀가 물을 부어 주자 요라한의 목젖이 튀어나올 것처럼 껄떡거렸다.
“하아.”
그 순간의 느낌을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살았다.’
그렇게 잠에 빠졌다.
바깥에서 들리는 웃음소리에 요라한은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얼마 만에 들어 보는 새소리인지 생각하던 그가 벌떡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뭐, 뭐야?”
주위를 둘러보니 작은 오두막이었고, 그는 풀로 엮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꿈이 아니었어?”
그렇게 침대 아래로 두 발을 내리는데 천막이 열리고 두 명이 들어왔다.
열일곱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과 소녀, 아름다웠지만 요라한을 자극한 건 후각이었다.
‘꽃 냄새.’
몸에서 꽃향기가 나는 인간이라니.
씻을 물을 가지고 들어온 그들은 잠에서 깬 요라한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 깨어났네? 족장님에게 말씀드려야겠다.”
“잠깐, 잠깐만.”
급히 부르자 그들이 멈췄다.
“미안한데 여긴 어디지? 어떻게 된 거야? 혹시 너희들이 나를 구해 준 거니?”
“아뇨. 구해 준 건 오빠랑 언니예요. 저는 족장님에게 얘기하러 가야 하는데, 가도 되나요?”
굳이 물어보는 말투가 수상했으나 요라한은 좀 순한 성격일 뿐이라 생각했다.
“그래. 목숨까지 구해 줬는데 너무 염치없지만, 혹시 음식을 좀 얻을 수 있을까?”
갈증이 끝나니 아사할 지경이었다.
“먹을 거…….”
잠시 생각하던 그녀가 말했다.
“아! 아르망 언니가 먹는 음식이 있어요. 그거라도 가져다드릴까요?”
“그래, 고맙다. 내가 지금 돈이 없지만 몸이 나으면 뭐라도 해서 갚을게.”
그들이 밖으로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붉은 살점이 담긴 접시가 들어왔다.
“자, 드세요.”
“…….”
그가 상상했던 것과 달리 음식은 피만 물로 씻어 낸 날고기였다.
“뭐, 지역마다 문화의 차이는 있지만, 특이하구나. 불로 구우면 더 맛있을 텐데.”
“히익!”
그들이 움찔했다.
“화족은 불을 사용하지 않아요. 불은 모든 걸 파괴해요. 자연도…… 우리도.”
“화족?”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어쨌거나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기에 요라한은 그들에게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