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59
“후후, 나를 꼬셔 보겠다고? 뭐, 연인 사이에는 할인이 더 붙기는 하지. 그래서…… 네가?”
시로네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됐다.’
기계적인 감정일 뿐이라면, 이성의 비율을 높여 두는 게 승부에 유리했다.
“글쎄요. 우리 셋 모두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아마 1회에 필요한 포인트도 다르겠죠?”
“물론 그렇지. 어디 보자. 나랑 연인이 되고 싶다면, 금발 머리 너는 100만 포인트.”
시로네를 가리킨 그녀가 네이드, 이루키, 에덴 순으로 포인트를 읊었다.
“너는 400만. 여기는 200만. 이 아이는 300만이야.”
네이드가 손을 들었다.
“잠깐만. 시로네는 그렇다 치고, 어떻게 내가 이루키보다 더 비쌀 수가 있죠? 심지어 에덴은 여자인데 300만이라는 게 말이 돼요?”
“호호! 그게 어때서? 취향은 자유거든.”
시로네도 예상 못 했다.
“…….”
네이드가 말문이 막힌 가운데 이루키가 나섰다.
“내가 할게.”
최종 승부는 시로네가 해야 하기에 그 전에 순번을 돌려 둘 필요가 있었다.
“사랑합니다. 마음을 받아 주세요.”
상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2다이스를 사용할 거야. 2에서 12까지 네 가지 숫자를 말하고, 거기에 걸린 쪽이 승리. 안 걸리면 패배. 둘 다 똑같을 경우는 무승부로 한 번 더. 물론 포인트는 차감.”
이루키는 입술을 푸르르 털었다.
“먼저 말하시죠.”
무승부일 경우 괜히 200만 포인트를 더 내야 하기에 같은 숫자를 피하는 게 좋았다.
“음. 4, 7, 9, 12를 선택할게.”
“그럼 나는 3, 5, 8, 11입니다.”
풍경이 사라지고, 다이스 판정을 내리는 위상공간이 광활하게 펼쳐졌다.
‘이곳에서는 어떤 손기술도 불가능하다.’
시로네를 제외하고.
“간다.”
이루키가 승부를 걸자 상인도 기다리지 않고 주사위를 높게 던졌다.
상인의 다이스는 6, 이루키는 3이었다.
“이겼다.”
이루키의 승리가 확정되자 위상공간이 사라지고 상점의 풍경으로 되돌아왔다.
상인의 얼굴에 홍조가 피었다.
“처음 널 봤을 때부터 심장이 두근거렸어. 좋아, 우리 사귀자.”
무서울 정도의 태세 변환.
‘다이스에서 이기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 내부 트랙에서는 정말로 주사위가 왕이야.’
그녀가 행복한 얼굴로 말했다.
“데이트는 어디로 갈까? 가게 닫아도 되는데.”
지금 이 순간에도 포인트가 줄어들고 있기에 시간을 허비할 여유는 없었다.
“그 전에 뭐 좀 물어볼게. 일단 이름하고 나이는 알아야 하지 않겠어?”
“어머, 그러네. 난 카라야. 나이는 스물여덟 살. 너보다 누나지만…… 이제 연인이니까.”
이루키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설득에 성공하면 이 정도 정보는 제공되는군. 하긴 쉬운 승부는 아니었지.’
무승부가 나올 확률이 더 컸다는 점에서 이루키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좋아, 그러면 하나만 더 물어볼게. 아까 말한 매수 프로그램에 대한 건데…….”
카라의 얼굴이 굳었다.
“알려 달라는 건 아니야. 다만 네가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게 확실한지 알고 싶어.”
“하아. 어떡하지…… 정말.”
일행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숨을 내쉬던 그녀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응.”
그리고 또박또박 말했다.
“가지고 있어, 정보.”
어둠의 조직 (3)
친구들을 돌아본 이루키가 물었다.
“그럼 혹시 그 정보가…….”
“안 돼, 안 돼! 더 이상은 아무것도 말해 줄 수 없어. 이걸 발설하면…… 아니, 안 돼.”
사랑의 감정으로도 말해 줄 수 없다면 신변에 관련된 내용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루키가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래도 말해 줄 수 없을까? 나를 믿어. 네가 위험하면 내가 지켜 줄 테니까.”
카라가 두 손으로 뺨을 감쌌다.
“어떻게 해. 너무 멋있어.”
네이드가 아랫입술을 삐죽 내민 반면 시로네는 희망을 품고 기다렸다.
“미안해. 나는…….”
그녀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괴로워하자 이루키는 순순히 뒤로 물러섰다.
“여기까지인 것 같아. 다이스 외적으로 변수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군.”
애초에 카라에 대한 감정이 없었기에 당사자를 앞에 두고도 태연했다.
에덴이 말했다.
“그래도 시작이 좋잖아. 200만으로 끝냈으니까. 재수 없었으면 천만도 넘게 들어갔을 거야.”
“커티스 씨가 괜히 파산한 게 아니지. 어떡할래? 다음 상점도 돌아볼까?”
시로네가 말했다.
“여기서 하자. 에덴의 말대로 상대방에게 호의를 끌어내는 데만 상당한 포인트가 들어가. 이건 기회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여기서 승부를 내야 한다.
“카라 씨, 매수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어요. 아는 게 있다면 말해 주세요.”
카라의 표정이 변했다.
“내가 정보를 갖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절대로 밝힐 수 없어. 날 설득하려면 룰은 지정 숫자, 1회에 1천만 포인트를 내야 할 거야.”
‘절반이 깎였다.’
이루키의 설득에 대한 공범 효과일 터였다.
“좋아요, 당신을 설득하죠.”
“나는 2다이스를 사용할 거야. 2에서 12까지, 한 가지 숫자를 말하고 같은 눈이 나오면 승리.”
“한 가지 숫자?”
차원이 다른 난이도 상승이었다.
‘감정으로 표현하자면 그만큼 감추고 싶은 비밀이라는 뜻이야. 솔직히 등골이 오싹한데.’
룰이 똑같이 적용되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 이 승부에는 맹점이 있었다.
‘무승부로 끝나도 관리자는 잃을 게 없어. 결국 극단적으로 이기기 어려운 확률이다.’
물론 일반인의 기준에서였다.
“좋아요. 7을 고르죠.”
“나는 4.”
위상공간에서 2명이 주사위를 던졌다.
‘양자 붕괴.’
시로네가 던진 주사위의 확률이 소거되면서 3과 4의 눈이 나왔다.
카라는 11이었다.
‘이겼다.’
친구들이 주먹을 불끈 쥔 가운데 카운터의 카라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엄청난 충격…… 그런 감정.
“후.”
다리에 힘이 풀린 그녀가 의자에 털썩 앉더니 입꼬리를 파르르 떨었다.
“그래, 알았어. 이런 식으로 나오면 할 수 없지. 자기 친구, 정말 대단하네?”
“내 친구가 좀 세긴 하지.”
주사위를 던진 것뿐이지만, 마음의 기술로 통제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좋아. 나도 자세히 알고 있는 건 아니야. 물론 이것조차 발설하면 목숨이 위태롭겠지만.”
카라의 두 눈에 푸른 빛이 들어왔다.
“내가 알고 있는 건…….”
‘모드가 변했어.’
기본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지 않은 실시간 키워드가 입에서 튀어나왔다.
“코르코라스.”
시로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표정으로 되돌아온 카라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게 전부야. 미안해, 자기.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이제…… 떠나는 거야?”
기계적인 감정이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나오면 헷갈릴 수밖에 없었다.
“가자.”
이루키가 차갑게 돌아섰다.
“야, 그래도 작별 인사는 하는 게 좋지 않아? 이상하게 마음이 안 좋네.”
“그래서 가는 거야.”
결국 주사위 놀음이었다고 생각하면 상처를 받는 건 인간뿐일 테니까.
“다음에 꼭 데이트하자.”
카라의 얼굴에 어떤 표정도 없을 것 같아서, 일행은 뒤를 돌아보지 못했다.
7번 섹터의 입구에서 시로네가 말했다.
“코르코라스. 커티스 씨가 말한 쓰레기 매립지의 명칭이야. 페나 씨가 기다리고 있는.”
네이드가 말했다.
“음, 내 생각에 이건 엄청난 정보야. 커티스 씨는 여기까지 설득할 엄두도 못 냈을걸. 어쨌든 앞으로 다혈질은 설득하지 말자. 룰이 너무 어려워.”
이루키가 동의했다.
“양자 붕괴 없이는 열두 번을 도전해도 장담할 수 없는 정도지. 그것만 해도 2억 4천만 포인트 날리는 거야.”
에덴이 입술을 두드렸다.
“흐음, 하지만 그 정도면 포인트 재벌에게 불가능한 수치는 아니잖아? 만약 운이 좋다면…… 응?”
운이 좋다.
에덴의 놀란 표정에서 시로네도 깨달았다.
“그렇구나. 코어에 들어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고 했지. 100억 포인트를 모아 열쇠를 사거나, 운이 좋거나.”
네이드가 말했다.
“처음부터 제3의 루트는 없었다는 거군. 이건 정식 공략법 중의 하나인 거야.”
이루키가 턱을 괴었다.
“확실히 일리가 있어. 100억을 모으는 것과 포인트를 써서 설득하는 것. 각각 외부 트랙과 내부 트랙의 핵심이지. 난이도로 봤을 때 비등할 정도라고 보는데.”
에덴이 덧붙였다.
“반면 우리는 설득이 절대적으로 유리해. 운이 좋아야 한다면, 우린 그 운을 통제하니까. 고작 2억 정도로 매수에 도전하는 건 우리 팀밖에 없을걸.”
네이드가 미소를 지었다.
“커티스 씨가 제대로 한 건 해 줬군. 나중에 만나면 밥이라도 사야겠어.”
감옥에서 고초를 겪고 있을 터였다.
“그래, 빨리 구해 드리자. 일단 다이스를 강화하는 거야. 설득을 이용하면 아이템을 더 많이 살 수 있어. 가장 먼저 구비해야 할 것은 의욕 상실, 그다음은 왕도 입성. 물론 5천만 포인트는 남겨 두어야 하고.”
계획이 세워지자 네이드가 소리쳤다.
“좋아! 출발하자!”
코르코라스.
쓰레기 매립지라고 불리는 곳은 멜키두의 모든 쓰레기가 버려지는 섬이었다.
물론, 사용자들이 지명 대신 쓰레기 매립지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곳이야말로 멜키두 내에서도 최악의 범죄자, 인간쓰레기가 모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호오오오오!”
망망대해에 떠 있는 섬의 백사장에 황금빛 섬광이 곡선을 그리며 착지했다.
네이드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시로네 일행은 백사장 주위를 둘러보았다.
“으, 냄새.”
사방에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다.
“해안선을 보니 상당히 큰 섬이군. 페나 씨를 찾는 데 시간이 걸리겠는걸.”
“어차피 여기 도착하면 하루는 체류해야 돼. 정보에 따라 더 머물 수도 있고.”
섬의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상점도 있을까? 바다에서 먹을 것을 구해야 하는데 어부들은 보이지 않아.”
이루키가 말했다.
“페나 씨가 그랬지, 너무 늦게 오면 식탁에서 날 보게 될 거라고. 인육을 판다는 얘기야.”
“으으.”
에덴이 몸서리를 치는 그때 쓰레기 더미에서 일단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크. 왔구나, 왔어.”
온몸에 문신을 새기고 구멍이 뚫린 반팔을 입고 있는 남자들이었다.
“너희들, 여기가 어딘지 아냐?”
“쓰레기 매립지요.”
“아니, 아니. 여긴 코르코라스지. 한마디로 말하면, 가진 거 다 털리는 곳이라는 거야.”
딱히 강해 보이지는 않았으나 시로네 일행도 포인트를 많이 사용한 상태였다.
리더가 말했다.
“1분 준다. 아이템 전부 내려놓고 무릎 꿇어. 비싼 게 있으면 목숨은 살려 주지.”
에덴은 남자의 팔뚝에 있는 각기 다른 형태의 엠블럼을 유심히 살폈다.
‘저건…….’
낭인들이 소리쳤다.
“뭐 해? 빨리 안 털어? 정말 죽고 싶어?”
칼을 들고 금방이라도 달려들 태세였으나 시로네 일행은 그저 태연했다.
“큭큭! 큭큭큭! 크악! 크악!”
웃어 본 일이 별로 없는 듯, 리더가 목을 긁다가 거친 기침을 토했다.
“간덩이가 부은 게 아니라면 초짜로군. 코르코라스의 악명을 모르는 걸 보니 말이야.”
낭인들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