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62
“으악! 칼! 이거 칼!”
비틀대며 물러서자 아리아가 술병을 쥐고 풀스윙으로 팔을 휘둘렀다.
펑 하고 병이 터지면서 보토가 쓰러졌다.
“으아아아! 으아아아!”
머리에서 피가 쭉쭉 솟구치고, 배 속을 헤집은 칼날은 불처럼 뜨거웠다.
“배, 배! 내 배에 칼이……!”
“큭큭. 그럼 빼, 이 자식아.”
간부들이 가지고 놀듯 복부에 발길질을 가하자 보토가 사지를 흔들었다.
“안 돼! 악! 나 죽어! 아! 아! 살려 주세요!”
아리아가 손을 휘저었다.
“시끄러. 빨리 데리고 나가.”
다리를 붙잡힌 보토가 질질 끌려 나가자 나무 문이 관 소리를 내며 닫혔다.
“후우, 그래.”
다시 자리에 앉은 아리아가 물었다.
“뒷문은 내 전공이지. 3대 갱단 중에 나보다 잘 뚫는 사람은 없을 거야.”
멜키두의 시스템을 만든 자는 인류 최초의 살인자 카인으로 추정된다.
물론 진실은 코어에 있을 테지만, 요한 카르텔은 오랜 세월 그의 유지를 받들었다.
현실에서, 또 멜키두에서.
“한마디로 제대로 찾아왔다는 거야. 하지만 너희들은 나에게 뭘 해 줄 수 있지?”
“아무것도.”
“응?”
시로네가 말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겠습니다. 이 정도면 거래 조건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아리아의 얼굴에서 다시 감정이 사라졌다.
“너, 갱이 뭔지 알아?”
“알고 싶지 않아요.”
아무리 악인이라도 동료를 잔인하게 괴롭히는 모습에 짜증이 치솟았다.
“여기서 총 무서워하는 인간은 아무도 없어. 왜? 무섭다고 피하는 순간 매장이거든. 그냥 당기는 거야. 먼저 쏘는 놈이 살아남는 거라고.”
백사장 낭인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홀덤 게임 같은 거랄까. 손에 카드 패가 AA가 들어와도 상대방이 올인 하면 쫄리는 법이지. 배짱이 없는 놈은 죽는 거고, 배짱이 있는 놈만 콜을 외치는 거야.”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살기를 느낀 시로네의 말투가 사나워지자 아리아의 눈에 광기가 번뜩였다.
“올인이라고, 병신아.”
아리아의 손에 어느새 머신 건이 들렸고, 모든 갱들이 시로네에게 사격했다.
총성이 귀를 어지럽히고 어두운 조명 안에 불꽃이 번쩍번쩍 타올랐다.
페나가 귀를 막고 웅크렸다.
“으, 으아아!”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했으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아픈 느낌이 없었다.
한쪽 눈을 천천히 뜬 그녀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고 상체를 세웠다.
“뭐, 뭐야!”
같은 것을 깨달은 갱단이 하나둘씩 사격을 멈추자 결국 이명 소리만 남았다.
“너, 누구야?”
시로네를 중심으로 퍼진 빛의 연기가 700발의 탄환을 전부 붙잡고 있었다.
“콜.”
다음 순간 탄환이 쏘아진 방향과 속도 그대로 갱단 전원에게 되돌아갔다.
“허억!”
미간 앞에서 멈춘 탄환이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자 갱들이 몸을 떨었다.
시로네가 말했다.
“총 무서워하는 인간은 없다고? 아니, 그냥 눈에 보이는 게 없는 거지. 이제 어때? 조금은 무섭나?”
사실이었다.
“마지막 기회야.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 결정해.”
아리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졌어.”
동시에 회전을 멈춘 총알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전부 바닥에 떨어졌다.
“하아. 하아.”
부하들이 털썩털썩 주저앉자, 아리아는 의자에 앉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카인이시여.’
정말 진실이었단 말인가?
-최초의 살인을 통해 악의 효율을 깨달은 카인께서는 멜키두의 시스템을 만드셨다. 인간에게 희망을 준 것이지. 그 어떤 실수도 용서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요한 카르텔의 순수 혈통으로서 그녀는 선대 수녀에게 많은 것을 들었다.
-우리는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한다. 세상은 그것을 범죄라 부르지만, 우리는 신성한 행위라고 부르지. 악이란 선보다 훨씬 강력하고, 훨씬 순수하며,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머무는 진리다.
요한 카르텔의 수녀는 반드시 멜키두에 들어와 코르코라스를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아리아, 악은 강하지만 한계도 명확하다. 언제나 어둠 속에 숨어야 하고, 빛을 동경해서는 안 된다.
-왜죠?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왜 우리는 빛날 수 없나요? 카인께서 모든 죄인에게 희망을 주셨잖아요.
-마지막 전언.
선대 수녀는 설득 대신 말을 이었다.
-요한 카르텔이 최후까지 지켜야 하는 비밀이니,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멜키두를 떠나며 카인은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악마를 위한 성지는 없다.
오메가 999년 (1)
세계 각지에 세워진 피라미드의 영향을 받은 인간이 많아질수록 이면 세계의 마는 강해졌다.
그 증폭된 마는 고스란히 마족에게 전해져 난공불락의 상아탑 공격에 기여했다.
“돌진! 돌진!”
마치 세상의 모든 생물들을 인간과 무작위로 교배시킨 듯한 형태의 마족들.
“지성을 쓰러뜨린다! 우리가 이긴다!”
제1군단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그들의 무력은 상아탑의 별들조차 막기가 버거웠다.
미네르바가 소리쳤다.
“시로네는?”
아타락시아 육탄계를 시전한 시로네는 이미 마족 군대의 깊숙한 곳으로 사라진 뒤였다.
“보이지 않아요! 상아탑에 들어갔거나……!”
들어가지 못했거나.
그 순간 상아탑의 입구 쪽에서 굉음이 터지며 빛의 기둥이 승천했다.
‘저기구나.’
육탄계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태성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이야. 하지만 오래 유지할 수는 없어. 지원을 보내야 하는데.’
상아탑 별들이 힘을 집중하여 뚫고 있으나 마족의 저항은 갈수록 강해졌다.
쐐기를 박아 바위를 쪼개려다가 오히려 바위에 물려 버린 상황이 된 것이다.
‘정공법으로는 뚫을 수 없어.’
미네르바가 말했다.
“미문.”
인간의 핏물이 고여 있는 곳에서 볼록하게 여자의 얼굴이 솟아올랐다.
“네, 오대성님.”
상아탑 1성급 주민으로, 슬라임처럼 육체를 녹일 수 있는 의태 능력자였다.
“전장은 버리고 상아탑으로 가. 시로네를 도와줘. 누구라도 들어가야 해.”
“알겠습니다.”
미문이 다시 피 웅덩이 속으로 사라지자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대성님.”
금발의 건강미를 뿜어내는 아리아나가 가슴골에 미니를 태우고 있었다.
미네르바가 완전히 돌아섰다.
“너희들은 좀 정상적으로 다닐 수는 없냐?”
“페어는 한 몸이라는 거 모르세요? 마족들이 강해지고 있어요. 1시간 뒤면 상아탑의 전투력을 상회할 것 같아요. 지금 뚫어야 해요.”
“방법은 있고?”
“쐐기 작전을 극단적으로 쓰는 거죠. 삼각형 형태의 매스 텔레포트로 마족을 날리는 거예요. 순간적으로 공백이 생길 때 전력을 다해 치는 겁니다.”
그럴듯했다.
“적당한 크기의 쐐기로는 효과가 없어. 엄청나게 큰 쐐기여야 할 거야. 게다가 매스 텔레포트로 떨어지면, 도착하자마자 마족에게 밟혀 죽을 거다.”
미니는 죽음을 각오했다.
“그러니 저와 아리아나가 해야죠. 아군만 남기는 기술은 코로나 왕국으로는 역부족이에요.”
아리아나가 덧붙였다.
“무엇보다 시로네 님이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어요. 우리 부서가 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님.”
방어진 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죄송합니다.”
3성급 주민 게일과 위성 모스코치, 미문의 위성 마리의 몸이 쪼개졌다.
“크하하하! 우리가 이긴다!”
남은 별들이 사력을 다해 막고 있으나 앞으로 5분을 버티지 못할 듯했다.
‘그래. 고생했다, 쓰레기들아.’
인류안전집행부에 있는 대부분의 별들은 한때 인류를 위협한 자들이었다.
“좋아, 그 전략으로 간다.”
미네르바가 말했다.
“단, 시행하는 건 나야. 마족들을 날릴 테니까 너희들은 입구를 뚫고 시로네를 도와.”
“하지만…….”
미네르바는 고개를 저었다.
“할 거면 확실한 게 나아. 게다가 내가 해야 그나마 생존 가능성이 있지 않겠어?”
슬픈 거짓말이었다.
“네. 죄송합니다.”
“준비해.”
지시가 내려진 즉시 별들이 흩어지자 미네르바는 상아탑을 돌아보았다.
‘시로네.’
많이 예뻐졌네요.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
율법의 변화에 따라 그녀도 더 이상 누군가의 욕망을 부추기는 마녀가 아니었다.
‘하지만…….’
고작 그것으로 위로받기에는 마음에 새겨진 상처가 너무나 컸다.
‘난 여전히 마녀야.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갔던 시대의 대마녀.’
미네르바의 육체가 열 살 소녀로 변했다.
‘무엇으로도 씻어 낼 수 없지.’
마음은 기억하고 있다.
어른들의 손에 붙잡혀 고통받아야 했던 그 시절, 그 모습의 육체를.
-아파요! 아파요!
-괜찮아.
내가 아픈 거 아니니까.
“크으으으!”
소녀의 얼굴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때 난 깨달았다.’
음식을 씹으려고 턱을 움직일 때, 그것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그저 반복, 또 반복하며, 자신의 욕구가 채워질 때까지 계속, 또 계속…….’
인간이 뭐냐고?
‘사람을 괴롭히는 기계일 뿐이잖아.’
어떤 죗값이라도 치를 각오가 되어 있지만 절대로 변하지 않는 한 가지는.
‘후회하지 않아.’
그녀는 인간을 용서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시로네.’
나를 용서하지 마라.
미네르바의 스피릿 존이 쐐기 형태를 유지한 채 엄청난 속도로 커졌다.
만 단위를 넘는 피아 식별이 찰나에 끝나고 육체가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매스 텔레포트.”
마족 진영에 삼각형의 빛이 탄생하더니 증발하듯 통째로 자취를 감추었다.
미니가 소리쳤다.
“입구가 보인다!”
비록 바늘처럼 가느다란 통로지만 다른 형태로는 도달하지 못했을 지점이었다.
“돌격!”
코로나의 병력이 함성을 지르고, 남은 별들이 전력을 다해 입구 쪽을 치받았다.
상아탑에서 20킬로미터 떨어진 설산에 둔탁한 충돌음이 메아리쳤다.
“크윽!”
제트를 들어 공격을 막은 미네르바의 몸이 얼음 절벽에 판화처럼 찍혔다.
마족들은 잔뜩 분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