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63
“거지 같은 게.”
마족들의 능력을 고려했을 때 최소 20킬로미터는 떨어져야 시간을 벌 수 있다.
하지만 그들 또한 제1군단 소속으로 세계대전을 치른 정예 중의 정예.
“그냥 죽이지는 않을 줄 알아라.”
메스 텔레포트와 동시에 상황을 파악하고, 미네르바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
얼음 절벽에 점차 균열이 가더니 미네르바가 10미터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후우.”
벽에 등을 기댄 10세 소녀는 모든 것을 체념한 표정으로 마족을 바라보았다.
‘기다려라, 쓰레기들아. 누나도 곧 갈 테니까.’
마족들이 다가왔다.
“크크, 포기한 모양이군. 하긴, 여기서는 너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그녀의 몸이 곱아들었다.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할 거다. 자살이라도 하면 안 되잖아? 앞으로 몇 시간을 버틸지 궁금한데?”
“……자살.”
미네르바는 피식 웃었다.
‘차라리 그게 나았겠지. 나 혼자 죽고 사라졌다면 대재앙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을.’
그녀가 일으켰던 워킹 데드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죽는 게 무서워서?’
실제로 목을 매달려고 한 적도 있었지만 차마 죽을 수 없었던 이유는.
‘분해서.’
너무 화가 나서 죽고 싶고, 그럼에도 죽을 수 없는 자신에게 더욱 화가 나서…….
‘진짜로 죽어 버리고 싶고!’
밧줄에 목이 매달린 순간에도 살아 있는 그놈들의 얼굴이 눈에 아른거려서.
‘전부 다 죽여 버릴 거야!’
마녀가 되었다.
“아가들아, 너희들이 대단한 줄 아냐? 한낱 인간의 감정 따위로 움직이는 주제에.”
미네르바의 눈에 살기가 피어오르자 그녀를 구속하고 있던 능력이 풀렸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
풍경을 가득 채우며 달려드는 마족을 바라보며 미네르바가 곰방대를 물었다.
“을 만든 게 나야.”
“죽여!”
그녀의 입에서 독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워킹 데드.
20분 뒤.
“큭! 크윽!”
두 다리가 부러지고 오른쪽 어깨가 빠진 미네르바가 눈 위를 엉금엉금 기었다.
“독한 년.”
남은 마족은 불과 7명뿐이었다.
“하아. 하아.”
절벽으로 기어간 미네르바가 등을 기대자 마족들이 입가를 찢으며 다가왔다.
“애석하겠군. 운이 좋았다면 희대의 작전을 성공시키고도 살았을 텐데.”
미네르바가 입에 고인 피를 뱉었다.
“어쩌라고. 병신.”
대마법사의 정신력이 아니라면 이미 생명이 꺼졌어도 무방할 정도의 상태였다.
“크크, 그렇게 나와야지. 죽은 동료들의 몫까지 감당하려면 좀 힘들 거야.”
그녀는 땅에 늘어뜨린 왼손을 까닥거렸다.
“그래, 와. 해 보라고.”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엄청난 살기가 피어오르자 마족들이 인상을 찡그렸다.
“뭐 이런 게 다 있어? 마족보다 독하잖아.”
“됐어. 시간도 없으니 빨리 끝내자고. 껍질을 벗겨 놓으면 알아서 울겠지.”
저항할 힘조차 없는 미네르바에게 다가간 마족들이 그녀의 팔을 만졌다.
‘절대로 울지 않아.’
그녀의 눈에 회색 하늘이 보였다.
‘그래, 나도 곧 간다, 쓰레기들아. 몇 시간 정도는 시달릴 것 같지만.’
“여기부터 하자고.”
손목을 베는 칼날이 얼음처럼 차갑다고 생각하는 그때 바람 소리가 들렸다.
마족들의 육체에 선이 그어지더니 순식간에 토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어떤 놈이……! 컥!”
마지막 마족이 목이 잘린 채 쓰러지자 익숙한 형태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시로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달라.’
외모는 시로네와 똑같았으나 차가운 눈빛은 야훼의 정신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마도.’
그녀가 내뱉었다.
“……성 뇌.”
정식 명칭은 정체 모를 누군가의 뇌지만, 미네르바는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이런 곳까지 웬일이야?”
대화가 부담스러운 듯 뇌는 시로네의 모습을 지우고 본래의 형태를 되찾았다.
“대답해. 파벌 싸움에도 참가하지 않았으면서, 갑자기 마음을 바꾼 이유가 뭐야?”
뇌가 다시 환영을 펼쳤다.
“…….”
여태까지 그의 수많은 모습을 봤지만 단언컨대 이런 형태는 처음이었다.
따라서 본모습이었고 또한…….
“가이아인. 맞지?”
금속질의 머리카락이 길게 내려오고 눈썹은 없었으며 인상은 차분했다.
성 뇌가 말했다.
“나는 아담. 온 인간의 시작이자, 이 세계에 남은 마지막 가이아인이다.”
그가 정정했다.
“정확히는 뇌지만.”
“그런 것 같네. 하지만 나에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야. 여기에 온 이유가 뭐야?”
“작별을 고하러.”
“작별?”
미네르바는 비웃음을 지었다.
“태성이 4성급을 정하는 기준은 알고 있어. 같은 부서라고 해도 내 부하는 아닐 텐데?”
아담은 하늘을 보았다.
“상아탑의 별이 되어 수많은 인간의 삶을 모방했다. 율법을 해독하기 위해. 너의 삶에 대해서는 미안한 마음뿐이야. 내 책임이다.”
“뭐가?”
“모든 것. 우리가 망쳤다. 그녀만의 잘못은 아닐 거야. 내가 막았어야 했어.”
“우오린?”
아담은 대답하지 않았다.
“끝이 다가오고 있다. 율법을 연산할 수 있는 건 나의 뇌뿐이니. 잘못된 것을 되돌릴 것이다.”
“헛소리하지 마. 그딴 식으로 모면할 생각 없으니까. 죽여. 그게 나에 대한 속죄야.”
“아직 이르다, 나의 딸아.”
하늘로 떠오른 아담이 빛의 연기에 휩싸였다.
“죽음만이 속죄는 아니다. 존재는 필요에 종속되니, 너의 쓰임을 깨달을 날이 올 것이다.”
아담이 진실로 율법을 연산할 수 있다면 그냥 흘려 넘길 수 없는 말이었다.
“어디로 가지?”
아담은 하늘 저편을 돌아보았다.
“이브에게.”
한 줄기 섬광이 날아가는 것을 지켜본 미네르바는 몸을 기울여 옆으로 쓰러졌다.
“큭! 큭!”
엉금엉금 기어서 곰방대를 붙잡은 그녀가 드러누워 한 모금을 빨았다.
“후우.”
회색 구름이 부하들의 얼굴 같았다.
“미안. 조금 더 살아도 될까?”
그 순간, 마치 마법처럼 눈보라가 걷히더니 태양 빛이 설산을 비추었다.
오메가 999년 (2)
***
성전의 지하 시설.
기관실의 불안한 소음을 들으며 걷는 우오린은 신경쇠약에 걸릴 지경이었다.
‘보이지 않아.’
시간선의 진동이 너무 크고 빨라서 이제는 도무지 기준을 잡을 수 없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시로네가 엘리키아로 하비츠의 암살 게임을 억제하고 있으나 변수는 남아 있었다.
‘사용할 수 있으면 계속했을 거야. 배니싱을 깨는 능력에는 딜레이가 존재한다는 얘기.’
아마도 1시간에 한 번.
무엇보다 동시 사건을 전개하는 시로네가 하비츠만 견제하는 게 가능할 리가 없다.
‘다른 곳에서 누군가에게 위기가 닥친다면 시로네는 이 능력을 사용할 거야.’
야훼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타국이 누군가를 노려야 한다면 단연 카샨의 여황이었다.
‘모든 왕국이 나를 노린다.’
왜 아니겠는가?
풍장은 전멸했고 간도마저 죽었다.
카샨의 역사를 통틀어 여황이 지금처럼 무방비 상태인 적이 있었던가?
‘여기가 내 끝이라고?’
아찔한 생각에 우오린이 손으로 벽을 짚었다.
“허억. 허억.”
체한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고, 피가 돌지 않아 극심한 현기증이 일었다.
키도가 그녀를 부축했다.
“괜찮아? 내가 업고 갈게. 너는 좀 쉬어.”
“하하.”
웃음이 터졌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지? 카샨의 여황에게 남은 게 고작 애완 고블린 한 마리라니.”
키도는 화내지 않았다.
“성전을 탈출하자. 근위대가 네 대역을 지키는 동안 도망쳐야 해. 지상의 여황이 가짜라는 게 들키면 그때는 빠져나갈 수도 없을 거야.”
“안 돼.”
“왜 그렇게 고집을 부려? 너 똑똑하잖아. 카샨이고 뭐고, 네가 살아야 나중도 있는 거야.”
“그래도 안 돼.”
우오린은 이를 악물었다.
“제국 따위, 얼마든지 넘길 수 있어. 하지만 난 끝까지 카샨의 여황이어야 해.”
“왜?”
“그러지 않으면 시로네에게 아무것도 아니게 되니까.”
키도는 입을 다물었다.
“성전에서의 발언권도, 막강한 군사력도, 여황의 권위도 없다면, 나는 뭐지? 그냥 여자일 뿐이야. 에이미처럼 싸울 수도 없는, 평범한 여자.”
우오린이 키도의 어깨를 붙잡았다.
“내가 시로네를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알아? 너는 모르겠지. 인류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나는 시로네를 기다렸어! 그런데 왜! 왜 내가 포기해야 돼!”
“알았어. 진정해.”
“절대로 포기하지 않아!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조금만, 조금만 더 버티면…….”
오직 뜨거운 사랑을 갈망하며, 가이아인에서 한낱 원시인이 된 그녀였다.
하지만…….
‘나는 싸울 수가 없어.’
역사를 통틀어 가장 좋은 유전자만 채택해도 에이미가 되는 건 불가능했다.
시로네도, 리안도, 쿠안도, 가올드도, 미로도…… 그 어떤 강한 자도.
‘될 수 없었다.’
형질만으로 도달할 수 없는, 생명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리라.
“지킬 거야.”
에이미에게 느끼는 패배감은 그런 것이었다.
“카샨마저 잃을 수는 없어.”
“그래, 알았다.”
키도는 양날 창을 한 손에 쥐고 우오린을 부축한 채 걸음을 옮겼다.
“해 보자고. 어디로 가면 되지?”
우오린이 미래시를 다시 발동하려는 그때 자욱한 연무가 깔리기 시작했다.
“뭐야?”
어느새 동양풍의 낡은 문이 서 있었고 을씨년스러운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귀사문.”
진천의 국장 안찰이 모습을 드러냈다.
“환영을 다루는 나에게 미래시는 통하지 않아. 여기까지다, 카샨의 여황이여.”
안대를 벗은 눈에 박혀 있는 마정안이 청명한 푸른 빛을 담고 있었다.
우오린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제길.’
지상의 근위대를 뚫고 대역이 가짜라는 것을 알아낸 것만으로도 초일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