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66
“식량이 떨어졌어. 사냥을 나가면 너를 감시할 수 없으니 당연히 네가 따라와야지.”
“아니, 그런 법이…….”
그 순간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들렸다.
“으악! 뭐야?”
요라한이 주저앉고, 한 자루의 장검이 아르망의 손으로 날아들었다.
“어, 어떻게 한 거야?”
그녀가 장검을 허리에 차며 말했다.
“정격조종.”
오메가 999년 (4)
“언니, 정말 대단해요.”
화족들이 박수를 치는 가운데, 소세계창유의 새로운 기술을 본 요라한은 멍했다.
“그런 것도 할 수 있는 거야?”
“아르망 언니는 화족 중에서 금속을 가장 잘 다뤄요. 그걸 정격조정이라고 하죠.”
아르망은 칼을 뽑아 들고 칼날을 확인했다.
마치 검이 살아 있는 것처럼 찌르르하는 소리를 내며 떨리고 있었다.
“가자.”
엉거주춤 일어선 요라한이 아르망의 뒤를 따르려는 그때 화족이 말했다.
“조심하세요. 아르망 언니가 가는 곳에는 육식동물도 살고 있으니까요.”
종이 유지되려면, 생태 시스템은 필수였다.
“하지만 별일은 없을 거예요. 아르망 언니는 정말로 강하거든요. 그러니 꼭 붙어 다니세요.”
요라한이 팔뚝을 보였다.
“무슨 소리야? 나도 제법 강하다고.”
그가 되지도 않는 주먹질을 하며 아르망을 쫓아가자 화족들이 웃었다.
“정말 착한 분이야. 혹시 화족 아닐까?”
그들은 요라한이 좋았다.
“어이, 어디까지 가는 거야? 좀 쉬자고.”
마을을 벗어나 산을 오르기를 1시간, 요라한은 이미 지친 상태였다.
“나약하기는. 그런 체력으로 세상을 떠돌았다고?”
물론 산을 타는 거야 자신 있지만, 아르망의 속도는 정말로 빨랐다.
“너처럼 다니면 누구도 못 쫓아가.”
“흥.”
차갑게 돌아선 것과 달리 아르망은 바위에 걸터앉아 물통을 건넸다.
“마셔.”
“아, 고마워.”
물을 마시면서 요라한은 아르망을 곁눈질로 살폈다.
평소의 사나운 모습과 달리 풍경을 감상하는 그녀는 예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흠! 흠!”
사레가 들리자 아르망의 표정이 사라졌다.
“왜 그래?”
“아니, 그냥. 웃을 수도 있구나 해서. 여태까지 웃는 건 한 번도 못 봤거든.”
항상 붙어 다녔기에 장담할 수 있었다.
“그만큼 네가 마을에 위험하다는 거야. 깨달았으면 이제 그만 떠나.”
“왜 나를 싫어하는 거야? 맹세컨대, 나는 화족에게 상처를 줄 생각이 없어.”
“인간이니까.”
아르망이 말했다.
“여태까지 만난 인간들도 처음부터 악하지는 않았어. 너처럼 선의로 접근하는 경우가 태반이었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달라지지. 마치 착한 척하는 놀이는 지겹다는 듯이.”
요라한은 부정할 수 없었다.
“왜 인간을 싫어하냐고? 바로 내가 인간과 닮았기 때문이야. 육식종을 제외하면 화족은 태양에서 에너지를 얻어. 누가 더 가질 필요도, 나눌 필요도 없는 무한의 자원. 하지만 너와 나는 달라. 우리가 무언가를 먹으면, 다른 어떤 생명체는 굶어야 하는 거야.”
이르망이 덧붙였다.
“너를 미워하는 게 아니야. 육식종의 흉악한 자아를 믿지 않는 거지. 네가 무슨 생각을 하든, 결국 너도 우리를 가지고 싶어 할 거야.”
“미안.”
요라한이 말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인간은 그런 종족이지. 솔직히 말하면 나도 조금 전에 너를 보고 가슴이 뛰었으니까.”
아르망은 반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너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야. 무엇이 옳은지 알고 행동할 테니까. 난 인간의 희망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해.”
“…….”
선악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할 뿐.
“그러니 내 마음을, 내 진심을 한 번만 읽어 주면 안 될까? 너에게 보여 주고 싶어.”
“안 돼.”
“어째서? 내가 얼마나 나쁜 놈인지 알려면 일단 나에 대해 알아야 하잖아.”
“그런 문제가 아니라…….”
약간 민망한 듯 아르망이 입술을 내밀었다.
“나는 인간과 동화된 적이 없어.”
“응?”
“처음에는 동물에게 해 봤지. 끔찍했어. 내가 먹어야 하는 것과 공명해야 하는 기분은.”
“아…….”
“자꾸 마음을 읽으라 하는데, 소세계창유는 그런 게 아니야. 정말로 하나가 되는 거지. 수동성을 가진 화족은 오히려 괜찮아. 어떤 마음이 들어와도 기꺼이 받아들이니까. 하지만 나는 달라. 인간의 자아가 내 안에 침투하면…….”
그녀의 몸이 떨렸다.
“혐오스럽지. 좋아하지도 않는 누군가의 욕망을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지 알 것 같았다.
“오해하지 마. 네가 싫다는 뜻은 아니니까.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연결되고 싶지 않아.”
차였다고 생각하니 속이 쓰렸으나 그는 아르망의 마음을 십분 이해했다.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어. 너에게 소세계창유라는 것은 인간이 누군가에게 모든 것을 바치는 것 이상의 용기가 필요할 테지. 미안해.”
아르망의 눈에 처음으로 감정이 담겼으나, 이내 표정을 고치고 일어섰다.
“출발하자. 해 지기 전에 사냥을 끝내야 해.”
그때 수풀이 흔들렸다.
아르망과 요라한이 동시에 돌아서자 늑대 무리가 포위망을 좁히고 있었다.
“쉿.”
아르망이 장검을 뽑았다.
‘화족의 향기는 짐승을 부르지 않아. 요라한 때문이구나.’
자신이 데려왔으니 탓할 수는 없으리라.
“천천히 물러서. 내가 막을 테니까.”
먹지 않는 것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게 족장의 조건이었으나,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화족은 인간을 돕는다.’
두 가지 신념이 충돌하는 그때, 늑대 무리가 혀를 빼물며 달려들었다.
“달려!”
요라한이 도망칠 시간을 벌기 위해 그녀는 늑대 무리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게 맹수인가.’
아르망이 육식종이라고 해도 결국 식물, 늑대의 호전성에 혀를 내둘렀다.
‘적당히 할 수 없어.’
각오를 끝낸 그녀가 회전하며 검을 휘두를 때마다 생명이 뚝뚝 끊어졌다.
“후우. 후우.”
늑대의 사체가 널브러진 숲의 풍경을 바라보는 아르망의 마음은 처참했다.
“제길! 그 녀석 때문에……!”
아아!
요라한의 비명이 들렸다.
소세계창유를 통해, 절벽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그의 발걸음이 전해졌다.
“이런!”
도착했을 때는 늑대에게 둘러싸인 요라한이 벼랑 끝에 몰려 있었다.
크아앙!
늑대의 위협에 그가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아르망이 몸을 날렸다.
‘절벽 아래는 급류.’
그보다는 중간에 튀어나온 암석이 문제였다.
‘소세계창유.’
채찍처럼 날아온 나무 덩굴을 붙잡은 아르망이 추락하며 손을 내밀었다.
“잡아!”
요라한이 손을 내밀었으나 거리가 너무 멀었다.
‘이대로는 죽어.’
암벽에 부딪히면 즉사였다.
‘인간을…….’
거의 무의식에 가까운 발현으로, 아르망은 소세계창유를 요라한에게 사용했다.
“흐윽!”
그녀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나쁜 자식!’
언제는 자신 있다면서?
알게 모르게 그녀에 대해 생각했던 마음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이래서 싫은 거야. 왜 내가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해? 그런 주제에 당당하게…….’
그 순간 요라한의 욕망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인내, 신념, 배려.’
타인의 감정을 지켜 주기 위해 여태까지 그가 감당해야 했던 모든 노력.
“아.”
그녀는 처음으로 느꼈다.
‘이런 기분이구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상대방을 먼저 생각할 때, 욕망은 탁한 껍질을 깨고 아름다운 실체를 드러낸다는 것을.
‘상처받지 않아.’
그가 최선을 다해 아르망을 지켜 주는 한.
‘요라한.’
그녀는 마음을 전했다.
‘나를 받아들여.’
아르망과 하나가 되는 순간의 기분을 요라한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이런 거구나.’
인간들 사이에서는 절대로 느끼지 못할, 지배와 피지배를 초월한 통합이었다.
‘완전한 하나.’
요라한의 몸이 저절로 움직여 암석을 피했으나 급류는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으악!”
물에 빠지는 순간 소세계창유가 깨지자, 아르망이 덩굴을 놓고 뛰어내렸다.
“요라한!”
그녀의 몸이 거품조차 일으키지 않고 물속으로 파고들었다.
***
시로네의 전승몽이 진행되는 동안 가올드의 세계에서는 십수 년이 흘렀다.
타협을 이룬 세계에서 일상은 단조로웠고 처리해야 할 데이터는 극히 적었다.
“축하하네, 가올드.”
오늘을 제외하고.
“이렇게 어린 신부를 얻다니. 하긴, 이것도 능력이지. 좋은 것 많이 먹게나. 껄껄!”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대기실로 들어간 가올드는 거울 앞에 섰다.
“…….”
앙상한 60대의 노인이 서 있었다.
“괜찮아? 표정이 왜 그래?”
강난이 다가와 옷매무새를 만져 주었다.
“긴장 풀어. 당신의 꿈이 이루어지는 날이잖아.”
“나의 꿈.”
“알아. 좀 이상하겠지. 하지만 현실에서 당신은 미로를 위해 모든 걸 바쳤잖아. 여긴 끔찍한 고통도 없고 전쟁도 없어. 그럼 된 거 아냐?”
“끔찍한 고통.”
아, 그랬지.
피할 수도, 죽을 수도 없는 고통 속에서 매 순간 괴로워했었지.
“자, 신부 보러 가자. 좀 웃어! 누구도 당신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 없으니까.”
신랑이 신부 대기실에 도착하자 안에 있던 사람들이 자리를 비켜 주었다.
“들어가 봐.”
마치 벽이 없는 것처럼 문에 바짝 다가선 가올드가 작게 노크를 했다.
“네, 들어오세요.”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대기실에는…….
“아저씨.”
가올드의 모든 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신부 옷을 입은 미로가 너무 아름다워서, 차라리 지금 시간이 멈춰 버렸으면 하고.
“뭐야? 왜 그렇게 봐? 나 이상해?”
성인이 될 때까지 십수 년을 기다렸으나, 한편으로는 마치 어제였던 것 같기도 했다.
“너는…….”
가올드가 씁쓸하게 웃었다.
“갈수록 어려지는 것 같다.”
현실에서 우리, 마법학교 동창 아니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