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69
“뭐야? 왜 마음대로 열려?”
“함정 아닐까요?”
오퍼레이터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막대 사탕이 문조차 열지 못하는 시스템이라면 굳이 함정을 팔 이유는 없어.”
흑장을 등에 채운 그녀가 문 안쪽의 어둠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믿고 가자. 이 도시에 우리만 있는 게 아니잖아.”
“아…….”
마르샤는 도시의 저편을 넘어 보았다.
‘이미 도착할 시간이 지났는데?’
그러고 보니, 시로네가 오지 않고 있었다.
***
성전에 긴급 대회의가 열렸다.
하비츠의 영향력이 성전의 대의를 깨트릴 정도로 강해졌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각국의 국왕, 정확히는 ‘참석 가능한 자들’이 모인 가운데 주장이 이어졌다.
“언제까지 당하고만 있을 겁니까. 전보다 세가 약해졌다고는 하나 마족들도 여전히 인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세계 지도국을 선출하여 힘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사람들이 죽어 나갈 때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던 그들도 이제는 심각성을 깨닫고 있었다.
‘상황이 바뀌었지.’
알비노가 턱을 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20분 전, 하비츠는 코로나의 국왕을 암살하려고 했다. 본격적으로 각국 수장을 사냥하기 시작한 마당에 인류 평화라는 대의는 의미가 없어.’
왕에게 직함에 걸맞은 책임과 의무를 기대하는 것은 집단 망상에 가깝다.
‘있지도 않은 신이 선할 거라고 믿는 것과 같지.’
의장이 말했다.
“이견은 없으시겠죠. 그렇다면 언제 투표를 하는 게 좋을까요?”
구체적인 일정에 들어가자 각국 수장은 입을 다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투표를 해치우고 싶었으나, 그런 식으로 지도국이 되어 봤자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터였다.
‘너무 늦어도 안 돼. 자칫하면…….’
1시간 뒤에 하비츠에게 죽는 사망자가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팽배했다.
그렇게 해서 정해진 시간은 다음 날 아침 7시, 각국 수장들이 양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위일 터였다.
의장이 정리했다.
“그럼 성전에 참석한 국가의 만장일치로 기존 일정보다 빠른 내일 아침 7시에 투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각 부서의 실무자들께서는 2시간 내로 조정된 일정을 각국에 공표해 주시기 바랍니다.”
딱히 특별한 일정은 없었다.
기껏해야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이 합동으로 공연하는 피날레가 오늘 밤에 치러지게 된다는 것 정도.
“그렇게 되었군. 이제 누구도 알 수 없게 되었어.”
알비노의 말에 루피스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흙탕을 헤집어 먼저 보물을 손에 쥔 자가 이기는 거죠. 토르미아도 승산이 있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자들은 사실 프로 도박사들이지.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않아. 일국의 지도자라는 것은, 운으로만 올라갈 수 있는 확률이 아니거든.”
“이제 블러핑은 통하지 않습니다. 높은 배당률보다는 확실한 패를 가진 쪽으로 기울겠죠.”
“음, 성전 초기에만 해도 확실한 패가 제법 있었지. 우오린의 카샨, 문 왕국의 역술, 키트라의 점성술 등.”
하지만 우오린은 성전에 참석하지 못했고, 문 왕국은 궤멸했으며, 키트라 또한 전선에서 이탈한 상태였다.
“케시아.”
알비노가 말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쪽은 케시아일 게야.”
그가 시선을 돌린 곳에 케시아의 국왕 페르미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머리 뚜껑을 열어 봤으면 좋겠군.’
알비노의 눈이 가늘어졌다.
‘욜가의 아들이여, 무엇을 알고 있는 거지?’
페르미는 시계를 확인했다.
‘내일 아침 7시라. 그렇다면…….’
이미르가 더 빠르다.
현재까지도 페르미의 미래는 바뀌지 않고 있었다.
***
이미르, 심층 1단계.
탄생 순간의 무의식이 잠들어 있는 모태 심리에 가올드 일행은 도착했다.
무감각의 영역 아래에 있는 것은 100억 가이아인의 육체로 만들어진,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대지였다.
“설령 100억의 인간이라 해도 이 정도의 땅을 구성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여기에 담긴 상징은…….”
아리우스가 말했다.
“자신의 전부라는 것이겠죠.”
100억 가이아인의 통합으로 탄생한 이미르의 육체였다.
일행은 땅을 살폈다.
마치 용암에 녹은 듯 지문처럼 일그러진 땅이었다.
군데군데 팔이 올라와 있고 부조처럼 생긴 얼굴들이 하늘을 보고 있었다.
아리우스가 말했다.
“역시 달라요. 일반인의 정신에서 나타나는 특징들이 없습니다. 성, 요람, 기후 같은 것들. 어떤 것도 이미르의 인지에 담기지 않았다는 뜻이겠죠. 태어날 때부터 최강인 겁니다.”
미로가 물었다.
“공기가 탁한데?”
“네. 욕망의 대기예요. 가이아인이 땅이 된 것은 이미르가 육체를 완전히 통제했다는 의미죠. 그곳에서 욕망의 가스가 피어올라 이 세계를 가득 채운 겁니다.”
“심층 2단계에서 터진 화산은 이곳의 대기가 폭발한 거로군.”
“네. 1층의 가스가 2층으로 분출되는 상황. 가올드 씨의 위력을 봤을 때 그것조차 극히 드문 사건이었을 겁니다.”
아리우스가 돌아섰다.
“어쨌든 세계의 구성은 단순하네요. 땅은 육체, 대기는 감정이라면, 정신은…….”
100억 가이아의 울티마는.
“저기에 있겠죠.”
아리우스를 따라 모두 고개를 들었다.
“세상에.”
강난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온통 빛으로 채워진 하늘의 중심에 엄청난 크기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블랙홀.”
미로의 말에 아리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늘에 퍼진 빛이 가이아인의 정신이라면 저 검은 구멍이 모든 빛을 잡아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것이…….”
정면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너희들이 찾는 울티마 시스템이다.”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시선을 내린 곳에 이미르가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
“율법을 바꾸는 힘이지.”
다른 말로 중력.
우주라는 배경 안에서 얼마나 맹렬하게 존재하는가를 나타내는 척도였다.
살아가는 것 (3)
***
이면 세계.
파사현정의 깨달음을 얻은 손유정의 여의봉이 레테의 몸을 벌집으로 만들었다.
“헉!”
그녀가 이제 막 땅에 힘을 전달하려는 시점이었다.
‘뭐가 이렇게 빨라?’
반응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레테가 놀란 만큼 손유정도 한계를 돌파한 자신에게 놀랐다.
‘왜?’
옳기 때문에.
홀로 방에 앉아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면 누구나 알 수 있는 하나의 옳음.
‘이것이 지성.’
악의 방법론이 쉽고 복잡하다면, 선의 방법론은 어렵지만 단순하다.
그 단순성을 온전히 삶으로 받아들였을 때, 선은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
또한 이것이야말로…….
악은 절대로 가질 수 없는, 오직 선을 위해 마련되어 있는 성지였다.
손유정의 몸에서 화신이 피어오르자 레테가 한쪽 눈을 재생시키며 고개를 쳐들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제천대성의 화신이 지옥의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짜증 나게.’
두 다리를 굽힌 레테는 빠져나갈 길을 탐색했다.
‘이대로 머물다가는 야훼를 놓치게 된다. 진성음에게 가는 것만은 막아야 해.’
시스템제어 지부를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
레테가 총알처럼 몸을 날리는 순간 모르타싱어가 히든 피스의 능력으로 그녀의 공간을 끌어당겼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그녀가 몸을 틀자 증기를 뿜으며 날아드는 손유정이 보였다.
레테가 내뱉었다.
“……후회할 거다.”
“안 해.”
이제는.
레테를 둘로 쪼갠 여의가 땅을 후려치자 충격파가 지부의 창고를 휩쓸었다.
“사장님!”
에이전트가 달려 나가려는 그때 대지의 화염이 솟구치더니 거대한 형태를 이루었다.
“저건?”
악마일까, 신일까?
건물 크기의 괴물이 화염을 뚝뚝 떨어뜨리며 포효하고 있었다.
“하찮은 피조물들이 감히 지옥의 관리자를 방해해!”
열기에 닿는 것들이 정화되자 에이전트가 다시 거리를 벌렸다.
‘이 모습이 지옥의 어머니, 레테인가?’
고개를 쳐든 레테가 이를 갈았다.
‘야훼, 나를 묶어 둔다고 해서 네 뜻을 이룰 수는 없을 것이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하늘 끝에서 시커먼 구름이 엄청난 속도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아마도 지옥에 있는 모든 흑승이 시로네와 리안을 향해 날아가는 것이었다.
“유정아!”
모르타싱어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다가왔으나 레테를 올려다보는 손유정은 차분했다.
“괜찮아.”
제천대성의 화신이 황금빛 연기를 입에서 뿜어내며 레테에게 곤봉을 겨누었다.
“이제는 말할 수 있으니까.”
눈앞에서 어떤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옳은 건 나야.”
그녀의 이데아를 담은 한 줄기 섬광이 괴물의 명치를 관통했다.
***
이미르 심층 1단계.
미로는 이보다 더 어두울 수 없는 검은 구체를 눈에 담았다.
‘블랙홀.’
구체의 외곽을 따라 흐르는 빛은 어디로도 신호를 보내지 못했다.
‘하긴, 태양이 율법을 상징한다면…….’
마음의 극한인 울티마는 검은 태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아리우스가 말했다.
“빛이 움직일 수 없다는 건 신호가 없다는 뜻. 즉, 율법이 완벽하게 구속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미르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래. 모든 물질은 이 우주라는 배경 속에서 저마다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지.”
이곳은 모태 심리, 따라서 이미르의 언어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원천 정보였다.
“어떤 식으로 표현되는가?”
이미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게?”
인간의 기준일 뿐이다.
“단단함?”
완벽한 정의는 아니었다.
“존재.”
이미르가 그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시간과 공간 속에 얼마나 자신의 존재를 관철시키느냐. 순위를 매기자면 단연 항성을 꼽을 수 있겠지. 하지만…….”
이미르가 몸에 힘을 주자 주위의 풍경이 구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더 강한 것도 있는 법이거든.”
존재의 관철.
그 어떤 율법으로도 이미르가 하고자 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르가 한 걸음을 내딛자 창공의 빛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며 회색의 풍경으로 변했다.
“내 존재는 우주의 장막 너머에 닿아 있다.”
바깥 세계였다.
“모든 의문이 풀렸습니다.”
아리우스가 말했다.
“블랙홀은 100억 명의 정신을 통합하는 이미르의 고유한 정신을 상징하는 현상이에요. 저 풍경 자체가 울티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찾고 있는 울티마는 블랙홀의 끝에 있을 겁니다.”
부피가 없는 밀도 무한대의 특이점에.
“몽아 씨가 만든 악몽에서 이미르는 100억 개의 눈동자에게 정의되어 있었습니다. 왜 그것이 두려운가? 조금이라도 중력이 붕괴되면 울티마가 깨지기 때문이에요. 즉, 이미르라는 존재가 부정당하는 겁니다.”
미로가 말했다.
“간단하게, 단 하나의 눈이라도 그를 외면하면, 우리가 이길 수 있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