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7
5년 만의 대기록이라며 떠들어 대는 마부를 뒤로하고 3명은 도크로 달렸다.
대부분의 배들이 정박해 있었고 사람이 타고 있는 몇몇 선박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아마도 선원들이 카드 게임을 하고 있을 터였다.
시로네 일행은 늦게까지 문을 여는 술집을 중점적으로 수색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조직원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선원인 경우가 많았다.
“이래서 찾을 수 있을까?”
“찾을 수 있어. 적어도 1명은 있을 거야.”
끈기 있게 술집을 탐문한 시로네는 마침내 작은 선술집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다.
눈이 퉁퉁 부어 있어 처음에는 몰랐지만 지스의 옆에 있던 호객꾼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저기, 저 두 사람! 그 녀석들 맞지?”
“그렇군. 이제부터는 나에게 맡겨.”
리안이 주먹을 어루만지며 걸어 나갔다.
이런 상황에서는 실력보다 인상이 더 효과적일 터였다.
“어이, 너희들. 나 기억하지?”
“뭐야? 시비 거는 거냐? 지금 기분 개떡 같으니까…… 헉!”
혓바닥이 꼬인 발음으로 쏘아붙이던 소년이 리안을 알아보고 일어섰다.
리안의 덩치는 물론 위협적이지만 그들이 정말로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팔코아에게 시달린 지스가 무슨 일을 하러 갔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저, 저기…… 그러니까.”
당황하는 표정이 증거였다.
결국 뭔가 일이 있다는 뜻이었으나 리안은 내색하지 않았다.
“알아, 다 알고 있다고. 그러니까 조용한 데서 얘기 좀 하자. 나는 사람 있는 곳에서 난폭해지고 조용한 데서 착해지는 성격이거든. 어떡할래?”
지스의 친구는 동료를 흘끗 쳐다보았다.
그리고 두 사람의 시선이 짧게 교차하는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출구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젠장! 튀어!”
그들은 미친 듯이 발을 굴렀다.
하지만 아무리 달려도 발에 걸리는 게 없었다.
‘뭐지? 왜 이러지? 취했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에야 두 다리가 허공에 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지막 기회를 주마. 좋게 따라올래, 아니면 이 자리에서 거꾸로 심어 줄까?”
한 손에 하나씩 사람을 들어 올린 리안은 힘을 과시하듯 팔을 완전히 폈다.
“힉!”
완력을 넘어서 괴력에 가까운 힘에 지스의 친구들은 오금이 저렸다.
“갈게요. 갈 테니 제발 힘쓰지 마세요.”
다음부터는 일이 쉬웠다.
방파제 쪽으로 그들을 데려간 리안은 대략적인 상황을 들었다.
“그러니까 팔코아라는 놈이 에이미를 데려오라고 시켰다 이거지?”
“네. 지스도 엄청 두들겨 맞았어요! 저희도 죽을 뻔했다고요. 팔코아한테는 덤비지 않는 게 좋아요. 그 자식 완전 또라이란 말이에요.”
“내 주먹에 맞은 또라이치고 제정신 안 돌아온 놈은 없어. 에이미를 어디로 데려갔지?”
“진짜로 장소는 몰라요! 믿어 주세요!”
“그래? 그럼 네 친구에게 물어보지. 2명이 살 기회를 포기하고 1명만 살기를 택한다 이거로군.”
검술학교에서 배운 취조 기술로 압박하자 지스의 친구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정말 몰라요! 하지만 짐작 가는 곳은 있어요!”
시로네와 테스가 다가왔다. 리안도 어설픈 수사관 흉내를 그만두고 멱살을 붙잡았다.
“거기가 어디야? 빨리 말해!”
“왕, 왕궁요.”
“왕궁? 무슨 헛소리야?”
“술집 이름이에요. 갈리앙트에서 가장 큰 술집요! 아무 마차나 잡아타도 데려다줄 거예요. 절대로 우리가 말했다고 하면 안 돼요! 안 그럼 저희 죽어요!”
리안은 대꾸할 겨를도 없이 돌아섰다. 시로네와 테스도 이미 달리고 있었다.
항구를 벗어나자 마차 한 대가 보였다. 공교롭게도 여기까지 자신들을 태운 마차였다.
“아저씨! 마부 아저씨!”
짐칸에 앉아 곰방대를 물고 있던 마부가 고개를 돌렸다.
“여어, 벌써 구경 끝났나? 달리는 것도 빠르니 구경하는 것도 빠르구먼, 허허허!”
“아저씨, 지금 출발요! 급해요!”
“암, 급하지. 청춘은 급하고말고! 자, 어서 타게!”
짐칸에서 자리를 옮긴 마부가 일단 말부터 출발시키고 뒤를 돌아보았다.
바람 때문에 목소리가 절로 커졌다.
“그래, 이번에는 어딘가!”
시로네, 리안, 테스가 동시에 소리쳤다.
“왕궁요!”
***
주점 왕궁.
거창한 상호명을 써도 손색이 없을 만큼 으리으리한 4층 구조의 주점이었다. 문밖에서 살피니 마법 수정등이 내부를 대낮처럼 비추었고 장식물이 반짝이고 있었다.
“들어가자.”
시로네 일행이 걸음을 옮기자 예상했던 대로 입구를 지키는 기도가 막아섰다.
“이봐, 여긴 무기를 착용할 수……. 큭!”
리안은 기도의 목을 움켜쥔 상태로 밀고 들어간 다음 바닥에 패대기쳤다.
“끄윽!”
숨이 막혀 버둥거리던 기도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시로네 일행이 모습을 감춘 뒤였다.
내문을 열자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쏟아지듯 들렸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었고 폭언과 욕설, 음담패설이 허공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돌아다녔다.
테스의 인상이 구겨졌다.
평화로운 휴양지인 갈리앙트지만 해가 떨어지면 이렇듯 온갖 욕망이 소용돌이치는 곳으로 변하는 것이다.
“정말 이런 곳에 에이미가 있을까? 사람들도 많고, 게다가 저 차림새는 뭐야? 부끄럽지도 않나?”
시로네도 동의했다.
“에이미가 좋아할 만한 곳은 아니지. 문제는 왜 지스의 말에 따랐냐는 거야. 조심해. 여기서는 경비의 도움을 받을 수 없을 테니까.”
마르샤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곳 또한 어떤 식으로든 자치 정부와 연결되어 있을 터였다.
1층에서 에이미를 찾지 못한 일행은 2층으로 올라갔다.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서, 모두가 담배를 물고 있는 살벌한 도박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3층은 복도를 따라 철문이 설치된 방들이 줄줄이 들어차 있었고, 4층은 VIP룸이었다.
리안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찾기는 힘들겠는데. 홀에는 없고 도박장에도 없어. 3층을 뒤지자니 방마다 전부 들어가야 하고, 4층은 경호원들로 바글거려.”
선택을 할 시점이었다.
일일이 양해를 구하고 이 잡듯 뒤질 것인지, 아니면 제대로 사건을 일으켜서 모두를 바깥으로 끌어낼 것인지.
물론 선택은 후자였다.
에이미를 데려간 이유를 알게 된 이상 곱게 찾을 생각은 없었다.
“저기다! 저 자식들이야!”
그때 리안에게 호된 꼴을 당한 기도가 복도 입구에서 시로네 일행을 가리켰다.
기도가 데려온 사내가 소매를 걷으며 다가올 때는 시로네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엄청 크다.’
머리가 천장에 닿을 만큼 거대한 남자였고 복도 폭을 꽉 채울 만큼 어깨가 넓었다.
“……해결사라는 건가?”
뒤가 구린 가게는 손님을 가려 받게 마련이다.
보통 기도 선에서 걸러지지만 리안처럼 막무가내로 들어와 깽판을 치는 자들도 많았다. 그런 자들을 폭력으로 다스리는 게 해결사의 임무였다.
“뭐야, 이거?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들이잖아? 아니, 이 계집애는 그냥 애송이는 아니구먼.”
테스를 본 해결사가 주먹코를 벌름거렸다.
선천적인 피지컬과 운동으로 다져진 테스의 외모는 가게 1층의 어떤 사람보다 뛰어났다.
“흐흐흐, 너 정도면 이 가게에 딱 어울리는 손님이지. 어디 보자, 아저씨가 좀 봐줄까?”
해결사의 솥뚜껑만 한 손이 테스를 향해 뻗어 오자 시야가 완전히 가렸다.
“흥!”
코웃음을 친 테스는 해결사의 가운뎃손가락을 움켜쥐고 온 힘을 다해 꺾어 올렸다.
“으아아아!”
거구의 덩치가 몸을 꼬는 광경이 우스꽝스러웠다.
다만 손등에 닿을 만큼 휘어진 그의 가운뎃손가락만큼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아파! 아프다고!”
“덩치만 믿고 까불기는. 아무리 여자라도 내 팔 힘이 네 중지보다는 세거든! 인간의 육체가 전부 이어져 있다는 생각도 못 하는 멍청아.”
“으아아! 이 계집애가!”
고통을 참지 못한 해결사가 반대편 주먹을 무섭게 휘둘렀다.
동시에 잡고 있던 손가락을 놓은 테스가 번개처럼 몸을 뒤틀며 팔꿈치를 휘둘렀다.
경쾌한 단타가 덜컥 하고 해결사의 턱 끝을 때리고 지나갔다.
너무 완벽한 타이밍이라 마치 상대방이 일부러 다가와 맞은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억!”
맞는 순간 의식이 끊어진 해결사가 눈을 뒤집어 까며 흐느적거렸다.
그리고 테스가 비켜서자 거인의 몸이 고목나무처럼 쾅 하고 쓰러졌다.
지켜보던 기도는 얼이 빠졌다.
“이, 이럴 수가…….”
갈리앙트섬에서 가장 솜씨가 좋기로 알려진 해결사가 고작 여자의 일격에 쓰러질 줄은 예상치 못했다.
“별것도 아닌 게 까불어.”
테스가 탁탁 손을 터는 모습을 시로네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반면 리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래서야 어디 남자가 나설 틈이나 있겠는가.
‘그래도 대단한 건 사실이지. 엘자인 가문.’
엘자인 검술은 정확하고 정교한 공격으로 유명했다.
상대의 약점을 최우선으로 찾는 사고방식과 어떤 상황에서도 급소를 찌르도록 하는 훈련을 바탕으로, 힘의 세기나 덩치의 격차를 순식간에 상쇄시키는 것이다.
우선하는 것(4)
‘최소한의 동작으로 턱 끝에 충격을 전하는 집중력. 운이 좋은 줄 알아. 테스가 검을 뽑았으면 너는 이미 죽었어.’
시로네 또한 단 일격에 의식을 잃어버린 거구의 해결사를 보고 넋을 잃었다.
마법사와 쌍벽을 이루는 검사의 움직임 또한, 어떤 의미로는 마법 같았다.
“진짜 대단하다, 테스.”
“헤헤! 괜찮았어? 시로네는 역시 보는 눈이 있다니까. 한마디도 없는 누구랑 다르게 말이야.”
듣는 둥 마는 둥, 리안은 기도에게 다가갔다.
“오, 오지 마! 너희 여기가 어딘 줄 알아?”
“아니까 찾아왔지. 그럼 우리가 숨바꼭질하는 걸로 보여? 에이미, 지금 어디 있어?”
“젠장! 에이미가 누군지 내가 어떻게 알아?”
리안이 멱살을 잡았다.
“알게 해 줄까?”
“제기랄! 진짜 모른다니까! 정 궁금하면 네놈들이 찾아보면 되잖아!”
“이 자식이…….”
리안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가뜩이나 시간이 촉박한데 염장을 지르고 있었다.
시로네가 나섰다.
“리안, 됐어. 모르는 걸 물어봐서 뭐 해?”
“그럼 어떡하려고? 정말 방마다 돌아다니게?”
“아니. 알고 있는 걸 물어보면 되지.”
“알고 있는 거?”
시로네와 눈을 마주친 기도는 흠칫했다.
리안과는 또 다른 느낌의 살기였다.
“팔코아가 어디 있는지 물어봐.”
***
주점 왕궁. 지하 1층.
아는 사람들은 이곳을 ‘신전’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신이 머무는 곳은 아니지만 어떤 자들은 신을 보기도 하는데, 루프가 일으키는 환각 작용 때문이었다.
결국 신전이란 각종 마약이 유통되는, 쾌락에 미친 자들의 공간이었다.
17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고 전체 면적은 1층보다 1.5배나 넓었다.
늘 만석이지만 유독 4번 방은 손님에게 열지 않는다.
프리먼 조직의 행동대장이자 왕궁의 사장인 팔코아의 전용 방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가 물었지. 죽은 다음에 묻힐래, 묻히고 나서 죽을래? 그 자식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
“으흐흐, 뭐라고 했습니까, 대장? 그놈이 뭐라고 해요?”
팔코아가 죽는시늉을 하며 소리쳤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푸하하하! 미치겠네! 제~발 살려 주십시오!”
팔코아의 부하들이 테이블을 두드리며 광소를 터트렸으나 지스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미친놈들. 대체 이게 뭐가 웃기다고 하는 거야? 전부 제정신이 아니야.’
“어머, 자기는 왜 술 안 마셔?”
지스는 옆에 앉은 종업원과 눈조차 마주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이곳에서 술을 마셨다가는 내일 떠오르는 태양을 못 볼 것 같았다.
타는 목을 달래려 물만 벌컥벌컥 들이켜며 그는 한편에 앉은 에이미를 살폈다.
물론 그녀 또한 팔코아의 웃음 코드를 이해하지 못했는지 정면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정말 대단하다. 나는 무서워 죽겠는데, 여기서도 표정 하나 안 바뀌네.’
보통은 살벌한 조직원에게 둘러싸인 상황이라면 긴장을 해야 정상이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담담함을 넘어 지루한 느낌까지 엿보였다.
‘재미없어.’
에이미는 술로 입술을 축였다.
어린 시절에는 한때나마 이런 무용담을 즐겼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언제부터 변한 것일까?
‘아마도…….’